여자보다 더 거절을 두려워하는 남자들
오래전 어느 모임에선가 뛰어나게 잘생긴 남자와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 무렵의 나는 호감이 가는 외모의 남자를 보면 일단은 가슴 두근거려 하며 그가 애인이 있는지 성격은 어떤지 탐색하곤 했었는데, 그날 그를 보고서는 전혀 특이할 만한 감정이 생기지 않았다.
글ㆍ사진 남인숙
2012.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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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어느 모임에선가 뛰어나게 잘생긴 남자와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 무렵의 나는 호감이 가는 외모의 남자를 보면 일단은 가슴 두근거려 하며 그가 애인이 있는지 성격은 어떤지 탐색하곤 했었는데, 그날 그를 보고서는 전혀 특이할 만한 감정이 생기지 않았다. 그가 나에게 관심이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 내 마음에 일방적인 욕망마저 생기지 않는 것이었다. 그건 웬만한 오피스텔 전세금을 뛰어넘는 가격의 명품 가방을 구경하며 ‘와-’ 하는 감탄만 스칠 뿐인 것과 비슷한 감정이었다. 내 피를 끓게 하고 갖고 싶다는 욕망에 열병을 앓게 하는 것은 내 주머니 사정에 맞춘 듯 아슬아슬한 가격표를 단 가방이다.

남자들이 느끼는 욕망도 이것과 비슷한 데가 있다. 그들은 자신에게 적당한 가격표를 내걸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여자들에게 욕망을 느낀다. 만일 어떤 여자가 너무 많은 남자들의 구애를 받는다는 것은 그녀가 달고 있는 가격표를 수용할 수 있는 남자의 폭이 넓다는 의미다.

중세 시대의 전설에서 악한 용을 물리쳐주고 구애를 하는 용사에게 ‘목숨을 구해준 건 고맙지만 그건 좀 곤란!’ 하고 말하는 공주는 없다. 남자들의 무의식 속에서 구애란 능력과 남자다움의 당연한 결과물이며 그것을 거절당하는 것은 존재에 대한 위협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대부분의 문화권에서는 남자가 먼저 구애를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똑같이, 어쩌면 더 거절을 두려워하면서도 남자들은 그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는 짐을 진다. 그렇게 몇 번의 거절을 경험한 남자들은 다시는 거절을 당하고 싶지 않아진다. 30대를 지나치는 남자들이 20대 초반 때처럼 쉽게 호감을 사랑으로 연결시키지 못하는 것은 감정이 메말라서라기보다는 겁이 많아져서다.

여자들은 저돌적으로 사랑을 표현하지 않는 남자들을 싫어한다. 그런 이들은 계산적이고 속이 좁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망설임 없이 성큼 다가와 세련되게 사랑을 이야기할 수 있는 건, 거절해도 아무 상관 없을 만큼 당신을 가볍게 생각하는 남자들뿐이다.

한 남자가 백마 탄 기사처럼 다가오지 못했다 해도 일단 당신에게 마음을 표했다면, 그는 아마도 그에 앞서 그 가난한 마음속에서 용을 백 마리쯤 물리치고 입을 연 것일 테다. 그를 받아들일 마음이라면 우선 그의 용기를 인정해주기를. 물론 다음 단계는 그에게 벅차지만 노려볼 만한 아슬아슬한 마음의 가격표를 슬쩍 보여주는 것이다.


 

어쨌거나 남자는 필요하다 글 남인숙 | 자음과모음

남인숙은 2004년 출간한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를 통해 80만 여성 독자의 열화와 같은 반응을 얻어냈다. 남인숙이 이번에는 직장에서든, 가정에서든 어디서나 여자들과 맞부딪치는 또 다른 인간들의 존재, 여자들의 영원한 숙적이자 영원한 파트너, ‘남자’에 대한 심리분석 에세이를 내놓았다. 저자가 오랫동안 여러 나이대의 다양한 남자들에게 설문조사와 취재 인터뷰를 한 자료와 각종 국내외 심리학 서적과 사회과학 서적이 제공해준 이론으로 틀을 보강한 에세이를 토대로 하였고 중국 고전소설인 『금병매』를 패러디하여 쓴 짧은 소설을 각 챕터마다 집어넣어 보다..

#남인숙 #어쨌거나 남자는 필요하다
5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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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ta2to

2013.01.24

아 이 감정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는데, 정말 딱인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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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사람

2012.04.05

거절을 두려워하는 것은 남녀불구하고 마찬가지 인 것 같아요. 그저 주위 사례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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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e^ve

2012.03.19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동성친구가 있다면, 그렇게^^ 남자가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생활패턴의 변화로 여성의 어깨에 부담이 많아져 이전에 여성끼리 나눴던 소통의 시간이 희박때문에 그렇다고는 하더라구요...누구의 주장이 옳다고는 말할수 없겠지만,가정만들기 프로젝트 참여가 아니라면,어쨌든 '은 아니라고 봐요. 앞으로 잘 읽어볼께요~이유도 궁금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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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인숙

소설가, 에세이스트. 1974년 서울 출생. 숙명여대 국문학과 재학 시절부터 방송작가, 자유기고가,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했다. 출간 이후 80만 부 이상이 판매되며 여성 에세이 분야의 새로운 트렌드를 주도한 베스트셀러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2004)를 비롯하여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 : 실천편』(2006), 『여자, 거침없이 떠나라』(2008), 『여자의 인생은 결혼으로 완성된다』(2009), 『여자, 그림으로 행복해지다』(2010) 등 2030 여성을 위한 에세이를 펴내어 독자들의 뜨거운 지지와 공감을 얻었다. 또한 그녀의 여성 에세이는 중국과 대만, 베트남, 몽골에 번역 출간되었고 특히 중국에서는 15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보이며 자국 위주의 중국 출판계에서는 드물게 비소설 분야의 베스트셀러 1위 기록을 세우는 등 여자에게 솔직하고 현실적인 조언을 전해주는 멘토의 지침서로서 언어와 문화의 한계를 극복하고 동시대 아시아 여성들의 필독서로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