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두렵나요? 배신 당할까봐?
세상은 사랑하지 않아도 될 수많은 이유를 매일 우리에게 제공한다. 우리 중 상당한 수의 사람들이 아양 떠는 사랑이나 학대에 기반을 둔 사랑에 파묻혀 애착을 느끼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사랑이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부터 구원해주기를 기대한다. 진정한 사랑을 향해 가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는가?
글ㆍ사진 마리 리즈 라봉테
2012.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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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카고에서 열렸던 사랑을 주제로 한 세미나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당시 나는 내 육체와 감정으로부터 유발된 관절염에서 스스로 치유되고 있었다. 그러나 정신과 관련된 관절염은 남아 있었다. 병의 재발을 유발할 수도 있는 어떤 행동들과 조건화에 아직 매여 있었다.

어쨌든 나는 내 몸이 경험하는 것과 내가 아직 밝혀내지 못한 내 병의 무의식적 측면들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노력했다. 그때는 한겨울이었는데, 알 수 없는 뭔가가 차를 타고 시카고에 가서 세미나에 참석하라고 나를 몰아댔다. 몬트리올에서 시카고까지 가는 길은 길고 험했다. 그러나 나는 망설이지 않았고, 그것이 내 스스로 치유될 수 있는 길임을 차츰 확신할 수 있었다.



세미나는 스타니슬라프 그로프의 방법론을 적용한 호흡 연습으로 시작되었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계속 반복되었다. 사실 ‘love’라는 단어였다. 그 세미나는 영어로 진행되었으니 말이다. “love, love, love.” 귀가 아팠다. 그 단어가 귀에 들리는 것을 견딜 수 없었고, 내 안에 반항심이 치밀어 올랐다. 나는 울부짖고 싶었다. ‘love를 되뇌는 일 따위는 그만둬. 나는 그럴 수가 없어!’ 이윽고 둘씩 짝지어 하는 훈련이 시작되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머리와 가슴에 가볍게 손을 대고 하는 훈련법이었다.

나는 바닥에 드러누워 맨 처음으로 훈련을 받았다. 너무나 피곤해서 도망가거나 드러눕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내 짝이 마치 아버지나 어머니가 딸에게 하듯 내 가슴 부분을 만지고 이어서 내 머리에 손을 얹었을 때, 나는 내 마음이 열리긴 했지만 아직 타인들 앞에 닫혀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 마음의 한 부분이 사랑에 닫혀 있는 것을 느꼈다. 4살 이후 늘 그랬다…… 내 몸은 가슴과 머리 위에 아주 가볍게 놓인 친절한 손을 밀어내고 있었다.

다음 순간, 나는 단념했고, 그 손이 내 마음을 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사랑에 나 자신을 열었고, 사랑을 받아들였다. 타인의 손이 내 마음을 건드리자, 내 마음에서 그의 손으로 에너지가 순환했다. 동시에 내가 사랑으로부터 나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마음을 닫고 있던 동안 나에게 일어난 여러 사건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시각적 이미지들이 순환했고, 운동감각들도 순환했다. 내 몸이 사랑에 전율했다. 마침내 나는 사랑에 나를 맡겼다. 그때 내 나이 28세였다.



다음날, 나는 시카고에서 몬트리올로 다시 돌아왔다. 내 인생과 관련된 기억들이 머릿속에 계속 떠올랐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정신적’ 관절염에서 해방되었음을 깨달았다. 그 세미나가 내 마음의 감옥을 열어젖혔던 것이다. 나는 사랑에 나를 내맡겼고, 자유와 자발성 속에서 사랑을 경험했다.


사랑은 사랑 자체로 충분하다

우리가 가진 사랑의 상처와 정서적 욕구를 안다고 해서 저절로 치유되는 것도 아니고 정서적 욕구가 저절로 채워지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칼릴 지브란은 “사랑은 사랑 자체로서 충분하다”고 말했다. 나는 내 남자친구들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정서적 의존과 투쟁에 기반을 둔 사랑에서의 해방이 우리를 자아도취적 내향성으로 이끌어가는 것을 관찰했다.




매일의 삶 속에서 ‘나는 내 강박증에서 벗어나야 해. 나는 내 결핍을 채워야 해. 나는 내 욕구들에 응답해야 해. 나는 내 상처를 치료해야 해. 나는 나를 공격한 사람들을 용서해야 해. 나는 내 원한에서 해방되어야 해’라고 되뇌는 것은 힘들 뿐만 아니라 성공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물론 이런 행동이 감옥에 갇힌 우리의 인격을 해방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주의하지 않으면 자아로의 이런 회귀가 우리를 다시 감옥으로 데려갈 수도 있다. 우리가 받은 상처들 때문에 내가 마음의 이유(raison du coeur)들이라고 부르는 것, 즉 사랑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들을 발견할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사랑하지 않아도 될 수많은 이유를 매일 우리에게 제공한다. 우리 중 상당한 수의 사람들이 아양 떠는 사랑이나 학대에 기반을 둔 사랑에 파묻혀 애착을 느끼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사랑이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부터 구원해주기를 기대한다. 진정한 사랑을 향해 가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는가?


사랑은 내 안에 있었다

1977년의 어느 날, 나는 파리에서 황마(黃麻)로 된 양탄자 바닥에 누워 있었다. 어떤 여자가 내 앞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여자는 관절염의 고통으로 인한 신체의 긴장에서 해방되는 법을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나를 비롯한 참석자들은 테니스 공 2개를 척추 양쪽에서 굴리는 법을 배웠다. 그 여자의 부드러운 목소리 덕분에 나는 병 때문에 경직된 근육의 통증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여자가 잠시 휴식을 취하고 공 위에서 호흡하라고 우리에게 권했다. 나는 그녀가 하라는 대로 했다. 공들이 내 등근육 위에, 두 견갑골 사이에 놓였다. 나는 그 상태로 호흡을 하려고 시도했다. 그 순간, 갑자기 나는 깨달았다. 사랑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공들은 부드러웠고, 내 근육들이 유연해졌다.

나는 내 내면의 아주 깊은 곳에 호의, 아름다움, 사랑이라는 무한한 보물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두 뺨에 기쁨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병으로 고통받던 기억들이 내 눈앞에 빠르게 펼쳐졌다. 내가 내 몸 속에서, 내 존재 속에서 나 자신을 얼마나 혐오하고 미워하고 조롱했는지, 나 자신을 얼마나 많이 파괴했는지 깨달았다. 내가 나 자신을 학대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사랑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이 경험이 이 각성의 순간을 받쳐주었다.

나는 앞으로는 절대 나 자신을 파괴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내 안에 있는 그 아름다운 것들을 어떻게 파괴할 수 있겠는가? 1977년 2월의 그날 이후, 나는 다시는 자기 파괴에 빠져들지 않았다.



나는 나 자신의 순결하고 흠 없는 부분과 접촉한 것이다. 이 사랑의 저장고는, 이 은총의 샘은 우리 모두를 사로잡는다. 이 사랑은 어디에서 왔을까? 테니스 공에서? 물론 아니다! 나를 이끌어준 여자의 목소리에서?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언제나 듣기 좋았다. 그렇다면 내 안에서 휴식을 발견하게 해준 이 사랑은, 이 온기의 물결은, 이 충만감과 은혜로움은 어디서 왔을까? 그것은 내 존재로부터 온 것이다.

나는 이런 순결한 부분이, 이런 사랑의 힘이 내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일부러 모른 척했다. 평생 내 바깥에서 사랑을 찾았고, 나 자신을 파괴하느라 기진맥진했다. 어느 날 나는 자가치유에 전념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파리로 갔다. 나는 여러 달 동안 내 방어기제에 대해 연구했다. 그리고 정신신체 운동 덕분에 나 자신을 되찾았다. 마침내 내 깊은 존재와, 만났다. 이 경험은 내 관절들을 괴롭히던 치유할 수 없는 질병에 맞서는 자가 치유 과정 내내 나를 지지해주었다. 내 안에 순결하고 흠 없는 부분이 있다는 깊은 느낌이 힘겨운 순간들을 이겨내도록 나를 도와주었다.

내 육체적 정서적 고통을 점차로 해방시키려고 노력하는 과정에는 의심도 일어났다. 내가 진찰을 받았던 대증요법 전문 의사들이 내가 얼마나 심각하게 병들었는지 말해주었고, 나는 내가 낫지 못할 거라 생각하면서 낙심했다. 나는 내 안에서 해방된 에너지를, 은총을, 아름다움과 사랑을 느꼈다. 무엇으로도 더럽힐 수 없는 힘과 능력이 내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랑의 충동

내 주변 사람들, 즉 배우는 과정에 있는 학생들, 자기 인생의 남자 혹은 여자를 찾기를 바라며 인터넷을 뒤지는 친구들을 볼 때, 세미나 참석자들이나 강연회 청중과 대화를 나눌 때, 조카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그리고 여성 잡지를 읽을 때, 나는 사랑의 조건화가 그렇듯 사랑의 추구 역시 측량할 수 없을 만큼 무한하다는 것을 느낀다. 진료실에서 암에 걸린 환자들이 남편이나 아내와의 갈등관계에 대해 이야기할 때, 혹은 친구들이 사랑의 쓴맛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는 우리가 사는 지구 전체가 심각한 사랑병을 앓고 있음을 깨닫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안에서 자신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그러나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를 찾는다.

반면 타인에 대한 사랑은 매우 고통스럽고, 도달하기 불가능한 어떤 것으로 여겨진다. 나는 이런 관점이 모순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타인을 사랑하는 것을 목숨이라도 걸어야 하는 일로 여기는 것이다. 무엇이 사랑을 그토록 무서운 것으로 만드는 걸까?

우리는 상처받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사랑하기를 두려워한다. 우리는 배신당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사랑하기를 두려워한다. 우리는 상처와 대면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사랑하기를 두려워한다. 사랑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를 우리의 바깥에 있게 한다. 우리의 바깥에는 ‘만일 ~한다면 나는 너를 사랑할 거야’, ‘나를 사랑해줘. 하지만……’ 같은 조건화된 사랑의 형태들이 존재한다.

이런 사랑법은 사랑의 충동에 대한 검열을 요구한다. 그런데 사랑하고자 하는 충동은 생명 유지에 필수적이다. 사랑의 충동은 곧 삶에 대한 충동이고, 삶을 창조적으로 만드는 충동이다. 사랑의 충동에 자신을 맡기면 우리 자신과 만날 수 있고 우리 자신을 재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참호 안에 머무른다면 우리의 폐쇄성만을 발견할 뿐이다. 이 폐쇄성은 결국 우리 자신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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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충동 마리 리즈 라봉테 저/최정수 역 | 옐로스톤

“사랑은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원하는가?” 『사랑 충동』은 이런 물음으로부터 출발하여 사랑의 근원을 탐색하고 상처받은 사랑을 치유하고 우리 안의 완전한 사랑을 되살려내는 내용으로 이루어진 책이다. 캐나다에서 정신신체의학 분야의 정신과 의사로 활동하는 마리 리즈 라봉테는 오랫동안 남녀 관계로 인해 고민하는 사람들을 만나오면서 사랑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직접적인 계기는 어느 날 사랑 문제로 고민하는 친구를 위로하다가 사랑에 대한 책을 써보자는 마음을 먹게 된 것인데…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사랑 #사랑법 #사랑 충동
6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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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d1318

2012.12.31

사랑하고자 하는 충동은 생명 유지에 필수적이다. 역시 사랑은 우리 삶에 꼭 필요한 것이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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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2012.08.29

배신 당할까봐 사랑이 두려운것이 아니고 그냥 사랑이 과연 존재할까가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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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s0901

2012.08.19

사랑에 대해서 분석하는 느낌이 드는군요 그래도 사랑 문제는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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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리즈 라봉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