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션] 관계의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한 필독 소설
상대의 보이는 모습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알지 못하는 시절, 보지 못한 모습, 드러나지 않는 마음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 여기에서부터 관계의 어려움을 지나갈 문이 열립니다.
글ㆍ사진 서유미(소설가)
2024.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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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하고 중요한 것은 아주 많습니다. 저는 언제나 눈에 보이는 것보다 가려지고 감춰진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가 어떤 집에 살고 무슨 차를 타고 다니느냐보다 누구와 만나 어떤 얘기를 하고 그 관계를 통해 어떤 마음에 이르게 되는지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이 세상에 혼자 오지 않았고 홀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 관계는 가깝다고 다정하지도 멀리 떨어져있다고 수월하지도 않습니다. 사람들은 관계와 관계의 어려움에 대해 늘 고민하고 때로 그 고민은 존재를 위협할 정도로 커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세 권의 소설 속에서 인물들의 거리감을 통해 관계의 갈등과 그것이 풀어지는 실마리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내 이름은 루시 바턴』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저 / 정연희 역 | 문학동네


소설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의 주인공인 루시 바턴은 그 자신도 두 딸 아이의 엄마이면서 엄마와의 관계가 낯설고 어색합니다. 어릴 때 가족들은 가난하게 살았고 엄마가 이따금 예고없이, 충동적으로 자녀들을 때렸기 때문입니다.

루시가 맹장수술로 입원한 지 3주쯤 지났을 무렵 엄마가 병문안을 오면서 소설은 시작됩니다. 그리고 “둘 다 뭘 해야 할지 몰라서” “드문드문 대화를 나누”게 되지요. 그러면서 루시는 “오, 엄마와 이런 식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나는 행복했다!”는 감정을 느끼게 되고 자신의 내면에 오랫동안 가라앉아있던 고체 상태에 가까운 침전물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원한 건 엄마가 내 삶에 대해 물어봐주는 것이었다.”는 내면의 갈망이었습니다.

결국 루시는 ”엄마가 이곳에 와서 오랫동안 듣지 못했던 애칭으로 나를 부르자 내 몸이 따뜻해지면서 액체로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내가 느끼는 모든 긴장감이 예전에는 고체였는데 이제는 아닌 것처럼.“의 상태로 나아가게 됩니다. 루시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해있는 동안에, 고통과 고립감 속에 있을 때 이런 일을 겪게 되었다는 것이 인생의 아이러니일지도 모릅니다.


『거지 소녀』 

엘리스 먼로 저 / 정연희 역 | 문학동네


연작 소설집 『거지 소녀』의 맨 처음에 실린 소설 「장엄한 매질」의 로즈는 아버지와 새엄마 플로와 함께 삽니다. 친엄마가 아니라 필연적으로 갈등을 예상할 수도 있지만 아버지와 재혼한 새엄마도 소통이 잘 되는 편은 아닙니다. 아버지는 헛간에서 일하면서 세익스피어 희곡의 대사를 중얼거리는 사람이고, “플로는 스피노자가 브로콜리나 가지처럼 그가 재배하려고 계획한 새로운 채소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로즈와 플로는 그럭저럭 “긴 휴전”을 유지하며 지내지만 “플로는 로즈의 시건방진 행동, 무례함, 지저분함, 자만심에 대해 얘기”하며 아버지에게 “저애가 날 모욕한다고요.”라고 하소연하게 됩니다. 그 말에 어쩔 수 없이 아버지가 나서고 로즈는 소설의 제목처럼 <장엄한 매질>을 당하지만 “로즈는 아버지와 결혼하기 전의 플로를 생각”하기도 합니다. 상대의 보이는 모습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알지 못하는 시절, 보지 못한 모습, 드러나지 않는 마음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 여기에서부터 관계의 어려움을 지나갈 문이 열립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헤아리는 마음을 갖는 일은 의미있고 중요합니다. 그래서 “로즈는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다. 들으면 좋아할 만한 사람은 플로였다.”라는 문장에 도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거지 소녀』 

시그리드 누네즈 저 / 정소영 역 | 엘리


인생에는 오랜 친구와 헤어진 애인과 이웃도 있지요. 시그리드 누네즈의 소설 『어떻게 지내요』에는 죽음을 앞둔 친구의 곁을 지키는 인물의 얘기가 나옵니다. 친구는 안락사 약을 구했고 어딘가 조용한 곳에서 인생을 마무리하려고 하니 그때까지 함께 지내달라는 제안을 합니다. 

“이것이 싸우는 내 나름의 방식이라는 걸 사람들도 이해해야 해. 내가 먼저 나를 없애버리면 암이 나를 없앨 수 없을 테니까. 그리고 떠날 준비가 되어있는데 기다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그러나 소설은 말기 암의 고통에 매달리거나 안락사 문제에 갇히지 않고 두 친구가 함께 지내는 일상과 함께 그들이 나누는 책과 작가와 언어와 죽음에 대한 대화를 보여줍니다. 각자의 삶과 과거, 신념에 대한 이야기들이 타인에 대한 공감과 연민에 이르는 과정을 따라갑니다. 

소설 초반,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 나는 한 유명한 대학교수의 강연을 들으러 갑니다. 그는 이 세계와 문명과 인류의 종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인류의 죽음에서 시작해서 개인의 죽음으로 끝나는 소설일지도 모릅니다. 인생의 끝은 죽음이지만 거기에 이르기 전까지, 삶이라 부르는 기간 동안 우리는 여러 기대와 가능성을 품은 채 관계를 맺고 그것이 위태로운 상태에 놓이다가 끊어지는 것을 아파하며 바라보고, 어렵게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고, 이런 과정을 반복하며 죽음으로 가게 되는 건지도 모르지요. 

심지어 아픈 친구는 딸과의 관계도 좋지 않습니다. 소설의 말미에 아픈 친구는 딸과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냥 서로 화해할 수 없다는 사실과 내가 화해를 했어.” 

관계를 열고 꼬인 상황을 풀어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를 헤아리는 것, 상대의 말을 듣고 자신의 말을 건네는 대화가 그렇게 만들어줄 거라는 기대를 품는 것. 그런 뒤에도 회복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면 그 상태 자체와 화해할 수 있는 마음에 이르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필자 | 서유미

2007년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나 하나 건사하며 사는 것도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결혼도 하고 늦은 나이에 아이도 낳았다. 가끔 아이를 보고 있으면 내가 이 세계와 인간에 대해 어떤 이야기, 문장을 보탠다는 것이 의미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든다. 아름다운 것, 완전한 것, 의미가 깊은 것들은 이미 어떤 상태로 완성되어 있는 것 같다. 서유미는 다만 그 부스러기, 그림자에 대해 적어보려 이렇게 저렇게 애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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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미(소설가)

2007년 문학수첩 작가상을 받으며 등단. 같은 해 창비 장편소설상을 탔다. 장편소설 『판타스틱 개미지옥』 『쿨하게 한걸음』 『당신의 몬스터』를 썼고 소설집으로 『당분간 인간』이 있다. 에세이 『소울 푸드』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