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 콘수엘로와 장미 1
『어린 왕자』는 물론 픽션인 만큼 작가의 실제 경험을 그대로 반영했다기보다는 훨씬 더 보편적이고 복합적인 상징성을 지닌다고 보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오랜 이별 끝에 미국에서 재회한 그들 부부가 행복한 한때를 보내던 베빈하우스에서 창조된 이 작품이 콘수엘로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어린 왕자』에는 분명 작가의 아내에 대한 화해와 사랑의 약속이 담겨 있다.
글ㆍ사진 김화영
2013.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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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텍쥐페리는 훗날 아내 콘수엘로에게 보낸 편지에서 『어린 왕자』가 그녀를 위해서 쓰여졌다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알다시피 장미는 바로 당신이야. 내가 당신을 항상 돌봐주지는 못했지만 나는 늘 당신이 예쁘다고 생각했소.” 또다른 편지에서 그는 『어린 왕자』를 콘수엘로의 주장에 따라 그녀에게 바치지 않고 친구 레옹 베르트에게 바친 것을 후회한다고 했다. 그래서 미국을 떠나면서 콘수엘로를 『어린 왕자』의 후속편으로 삼을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삼고 그 이야기는 반드시 그녀에게 바치겠다고 약속했다. 『어린 왕자』는 물론 픽션인 만큼 작가의 실제 경험을 그대로 반영했다기보다는 훨씬 더 보편적이고 복합적인 상징성을 지닌다고 보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오랜 이별 끝에 미국에서 재회한 그들 부부가 행복한 한때를 보내던 베빈하우스에서 창조된 이 작품이 콘수엘로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어린 왕자』에는 분명 작가의 아내에 대한 화해와 사랑의 약속이 담겨 있다.

베빈하우스에 찾아와서 여러 주일을 함께 보냈던 앙드레 모루아는 자신의 일기에서 당시 사십 세의 콘수엘로가 남편에게 매우 헌신적이었다고 썼다. 그때 생텍스는 그녀에게 이런 기도문을 작성하여 암송하게 했다고 한다.
“주님, 너무 애쓰실 것 없습니다. 그저 저를 있는 그대로의 저이게 하여주십시오. 저는 작은 일에는 허영이 많아 보이지만 큰 일에는 겸손합니다. 저는 작은 일에는 이기적이지만 큰 일에는 모든 것을 심지어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습니다. 저는 작은 일에는 흔히 불순하지만 오직 순수함 속에서만 행복합니다.
주님, 저를 남편이 저의 마음속에서 읽어내는 여자와 늘 닮아 있게 하여주십시오.
주님, 주님, 저의 남편을 구해주십시오. 왜냐하면 그는 저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고 그가 없으면 저는 고아나 마찬가지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 그이가 우리 둘 중에서 먼저 죽게 하여주십시오. 그이는 저렇게 겉으론 단단해 보이지만 집 안에서 제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있으면 너무나 불안해하니 말입니다. 주여, 우선 그에게 불안을 면하게 해주소서. 제가 항상 집 안에서 소리를 내게 해주십시오. 가끔 뭔가를 깨는 일이 있더라도 말입니다. 제가 항상 일편단심이게 해주시고 그이가 싫어하고 그이를 안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지 않게 해주십시오. 그이는 제 마음속에 삶의 둥지를 틀었으므로 그런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불운입니다. 주여, 저희 집안을 보호해주십시오. 아멘 ! 콘수엘로.”
비슷한 무렵에 쓰여진 소설 『전시 조종사』의 제목은 그녀가 생각해낸 것이다. 당시 생텍스의 영어 가정교사 아델 브로는 어린 왕자의 노란 목도리와 옷차림에서 이내 콘수엘로의 모습을 알아보았다. 어린 왕자의 별에는 “불을 뿜는 활화산” 두 개 외에 불 꺼진 화산이 하나 더 있다. 이는 바로 화산이 많은 작은 나라 엘살바도르 출신의 콘수엘로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생텍쥐페리의 전기를 쓴 폴 웹스터는 이와 관련하여 명쾌한 해석을 내린 바 있다. “만약 콘수엘로가 『어린 왕자』의 장미라면 그녀의 허영 때문에 느끼는 마음의 고통, 한사코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자 하는 태도, 있지도 않은 호랑이에 대한 두려움, 바람이 들어올까봐 늘 걱정하는 조바심, 유치한 거짓말을 숨기기 위한 기침(실제로 콘수엘로는 지병인 천식 때문에 기침을 자주 했다고 한다) 등 많은 것들이 다 콘수엘로와 관련된 사실들의 암시라고 해석될 수 있다. 그의 아내는 『어린 왕자』의 초벌원고를 읽었을 것이고 거기서 별로 감추었다고 할 수 없는 남편의 비판적 시선을 당연히 알아보았을 것이다. 또한 자기 남편이 그녀의 변덕과 잘난 척하는 태도만 보고 진정한 내심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음을 인정하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어린 왕자』의 제9장에서 주인공이 장미꽃을 남겨두고 혼자서 자신의 별을 떠나오는 과정은 당시 이들 부부가 전쟁으로 인하여 유럽과 미국으로 헤어지게 되었던 정황을 연상시킨다. 어린 왕자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철새들의 이동을 이용하여 자기의 별을 빠져나왔”다는 사실은 작가 자신이 콘수엘로를 남겨둔 채 모로코와 리스본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하는 과정의 암시라고 읽을 수 있다. 그리고 떠나기 전에 별을 깨끗이 정돈하고, 화산이 폭발하지 않도록 잘 쑤셔주고, 바오밥나무 싹들을 뽑아주고, 꽃에 마지막으로 물을 준 다음 덮개를 덮어주는 장면은 전쟁중인 유럽에 외롭게 남아 있는 콘수엘로의 딱한 처지를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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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를 찾아서 김화영 저 | 문학동네
명실공히 우리나라 최고의 불문학자이자 개성적인 글쓰기와 유려한 번역으로 우리 문학계와 지성계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해온 김화영 선생이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와 만났다. 이 책 『어린 왕자를 찾아서』는 『어린 왕자』를 번역하면서 ‘어린 왕자’를 태어나게 한 진정한 어른이었을 생텍쥐페리의 삶을 조망하고, 작품이 가지고 있는 문학적 의미를 풀어냈다. 단순한 흥밋거리를 넘어 ‘어린 왕자’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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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영

문학평론가이자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1942년 경북 영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불어불문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프로방스 대학교에서 알베르 카뮈 연구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뛰어난 안목과 유려한 문체로 프랑스의 대표적인 문학 작품을 국내에 소개해 왔으며, 고려대학교 불문학과에서 30여 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정치한 문장과 깊이 있는 분석으로 탁월한 평론을 선보인 전 방위 문학인으로, 1999년 최고의 불문학 번역가로 선정된 바 있다.
저서로는 『지중해, 내 푸른 영혼』 『문학 상상력의 연구―알베르 카뮈의 문학세계』 『프로베르여 안녕』 『예술의 성』 『프랑스문학 산책』 『공간에 관한 노트』 『바람을 담는 집』 『소설의 꽃과 뿌리』 『발자크와 플로베르』 『행복의 충격』 『미당 서정주 시선집』 『예감』 『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 『흔적』 『알제리 기행』외 다수가 있으며, 역서로는 『알베르 카뮈 전집(전20권)』『알베르 카뮈를 찾아서』 『프랑스 현대시사』 『섬』 『청춘시절』 『프랑스 현대비평의 이해』 『오늘의 프랑스 철학사상』 『노란 곱추』 『침묵』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팔월의 일요일들』 『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짧은 글 긴 침묵』 『마담 보바리』 『예찬』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 『최초의 인간』 『물거울』 『걷기예찬』 『뒷모습』 『내가 사랑했던 개, 율리시즈』 『이별잦은 시절』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