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구운몽을 제대로 읽었고 알고 있나?
정 교수에게 그토록 재미없던 『구운몽』. 구운몽과 관련한 그림, 즉 구운몽도를 만나면서 달라졌다. 그림이라는 창을 통해 바라본 『구운몽』은 달랐다. 재밌었다. 다시 보게 됐다. 그에게 이 소설은 허무주의 소설도, 불교소설도 아니었다. 낭만과 자유로움이 보였다. 삶이 아름다운 이유를 낭만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자유와 해방의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지난 7월 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한여름밤의 인문학 특강’에서 그는 그림으로 읽는 『구운몽』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이것을 『구운몽도』라는 책으로도 펴냈다.
글ㆍ사진 김이준수
2013.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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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 그 유명세만큼이나 오해가 많은 소설이다. 우선 많은 사람들이 으레 알고 있다고 생각하나, 제대로 읽은 사람은 많지 않다. 여느 고전처럼 말이다. 또 허무주의 소설로 보는 경향도 짙다. 주인공 양소유의 입신양명과 부귀영화가 한낮 일장춘몽이라는 이유에서다. 인생살이가 덧없고 허무하다는 독법으로 읽기도 한다. 아울러 불교의 윤회사상을 주제로 한 불교 소설로 읽는 시선도 있다.

물론 소설의 독법은 온전히 읽는 사람의 것이다. 그러나 자기만의 시선으로 이를 읽지 못한 채 『구운몽』에 덧씌워진 해석에 휘둘리는 경우가 많다. 정병설 교수도 처음에는 그랬다. 학창시절부터 읽었으나 재미가 없었다. 시험을 위한, 어떤 특정한 목적에 기반을 둔 수단으로 접근했던 까닭이었다. 이에 그는 예술작품을 통해 뭔가를 얻으려고만 접근하는 방식에 문제를 제기한다. 우리는 왜 작품을 그 자체로 즐기지 못하는가! 왜 무언가를 얻으려고만 하는가!

“<구운몽도>의 개성은 자유로움이다. 어디에 얽매이지 않는 활달함과 분방함이 <구운몽도>의 정신이며, 『구운몽』의 정신이기도 하다. 『구운몽』에서는 누구도 억지로, 강제로 일이 이루는 법이 없다. 양소유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인물이고 팔선녀도 그렇다.… 『구운몽』은 자유와 해방의 세계다. 자유와 해방의 공간에는 낭만과 사랑이 있다.”(p.170)


구운몽도를 찾아서

정 교수는 『구운몽』을 통해 가장 많이 묘사되고 언급되는 것 중의 하나인 돌다리 장면을 꺼냈다. 팔선녀와 성진이 처음 만나는 장면. 구운몽을 그린 그림들도 역시 이 장면을 가장 많이 담고 있다. 가장 오래된 구운몽도 역시 돌다리 장면을 그렸다. 병풍 형태의 구운몽도를 보여준 정 교수는 조선시대 병풍의 의미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당시 병풍은 아무나 가지는 것이 아니었다. 집안에 가장 소중한 자산이자 중요한 가구였다. 따라서 병풍에 그려진 그림은 많지 않다. 두루마리 형태가 더 많았다. 병풍은 그만큼 정성을 기울인 티가 난다.

구운몽도가 그려진 책 표지도 있다. 박문서관에서 발행한 ‘딱지본’ 책이다. 과거 조선시대 소설에는 그림이 없었다. 전 세계 소설 가운데 그림이 없는 소설은 우리 소설이 유일한 것으로 보인다는 언급도 덧붙인다. 중국만 해도 그림 비율이 20~30%, 서양소설도 그림이 꼭 들어간다는 것. 조선의 소설에는 20세기 이전에는 그림이 일절 없었다. 정 교수는 경제적인 이유인 것으로 추정했다. 그랬던 것이 20세기 딱지본을 만들면서 그림이 본격 등장했다. 작품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이 표지그림이었기 때문이다. 표지그림이 좋으면 잘 팔렸다. 따라서 구운몽도 역시 소박하기보다 화려했다.

“한국소설에 그림이 등장한 것은 근대 이후의 일이다. 근대 이후 들어온 서양의 신식 납활자 인쇄기술로 찍은 소설을 구활자본 소설이라고 하는데, 이들 소설에 비로소 표지 그림이 등장했다. 구활자본 소설은 표지가 딱지처럼 울긋불긋하다고 해서 딱지본 소설이라고 하는데, 딱지본 소설은 표지 그림에 따라 판매량이 크게 좌우되었고, 이 바람에 표지 그림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였다고 한다.”(p.96)
정 교수는 구운몽도를 찾아다녔다. 40여종을 봤다. 도록에도 잘 드러나지 않았다. 도록이 워낙 적었기 때문이다. 그가 본 인상적인 구운몽도 중의 하나는 한국자수박물관(서울 논현동)에 소장된 ‘10첩 병풍’ 구운몽도다. 한국자수박물관은 사설 박물관으로 이곳의 허동화 관장이 가장 아끼는 것이 구운몽도 병풍이다. 허 관장은 꿈을 꾸고 10년을 공들여 이 병풍을 구했다.

“10첩의 병풍은 명품 중의 명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박물관의 허동화 관장은 자신의 저서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규방문화』에서 특별히 이 병풍의 입수 경위를 소상히 밝히고 있다.… 하루는 허관장이 <구운몽도> 자수 병풍이 인삼 밭에 있으리라는 영감을 받았다는데, 그로부터 얼마 후인 인삼으로 유명한 충청도 금산에 <구운몽도> 자수 병풍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입수를 위해 십 년 이상 정성을 기울인 끝에 마침내 그것을 살 수 있었다고 한다.”(p.40)
정 교수는 이 구운몽도 10첩 병풍을 도록에서 보고 자수박물관을 찾아갔다. 홀에는 이것을 내놓지 않았고, 허 관장을 뵀으나 결국 병풍을 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고궁박물관에 출품을 하면서 정 교수에게 연락을 했고, 그때 처음으로 만났다. 대형의 병풍이었고, 어지간한 집에서 구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확인했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더 재미있는 구운몽도

“나는 그림을 볼 때, 내 마음의 때를 걷어내고 본다. 구운몽도는 100년 정도 됐는데, 우리가 관리를 잘못하기 때문에 상태가 썩 좋진 않다. 그래서 처음 만들어졌을 때를 떠올려보는 것도 괜찮다. 내가 본 여러 구운몽도 병풍에서 이야기 순으로 된 것은 단 한 점도 없었다. 원래부터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이야기 순으로 그려지진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는 병풍을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이었다. 병풍 상단에는 이야기가 없고, 중하단 부분에 이야기가 퍼져있는데, 동화적이다. 성진이 스승 명령으로 용궁에 가 용왕에게 인사를 드리면서 술 한 잔을 얻어먹었다. 약간 취기가 오른 성진이 스승에게 돌아가는 길, 위부인의 여덟 제자와 돌다리에서 마주치는 장면이다. 즉, 돌다리 장면이다. 성진과 팔선녀는 길을 놓고 다투게 된다. 취기가 오른 성진이 시비를 걸고, 고작 여자들과 다투느냐면서 팔선녀도 맞받아친다. 그러자 성진이 복숭아꽃 가지를 주워서 선녀들에게 던지는데, 그것이 구슬이 되어 떨어진다. 여자들이 그걸 하나씩 주워서 하늘로 올라간다. 환상적인 장면이다.

“돌다리 장면은 <구운몽도>를 대표하는 장면으로 가장 많은 그림이 남아 있다.”(p.32)
육관도사의 수제자로 도를 잘 닦고 있던 성진은 이날 이후 회의에 빠진다. 이리 살아서 무엇 하나. 팔선녀의 얼굴만 떠오를 뿐,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그걸 지켜보던 육관대사, 성진을 불러 호통을 친다. 성진이 잘못했다고 말하지만, 육관대사는 마음이 그리 흔들린다면 가라고 말하고 사자들에 이끌려 염라대왕 앞에 간 성진, 지상으로 내처져서 아이(양소유)로 태어난다.

“구운몽은 디테일로 들어가야 재미가 있는 작품이다. 지상에서 새로 태어난 양소유의 행동이 거북살스러운 분이 많다. 여덟 여자와 만나는 것이 소설의 중심이다. 옛날 소설을 보면 아버지는 주인공의 옹호자가 아닌 방해자다. 주인공이 활동하기 위해선 아버지는 없어지거나 죽어야 한다. 양소유 아버지는 양소유가 열 살 때 신선 세계로 가출한다. 양소유는 어쨌든 열다섯 무렵부터 과거를 보기 위해 간다. 공부한 내용은 없는데, 주인공이니까 1등을 한다(웃음).”

정 교수는 이때의 구운몽도를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잇는다. 양소유의 화려한 여성편력(?)이 본격 펼쳐지는 장면이다. 과거를 보러 가는 길, 어느 누각에서 한 여자가 잠에서 막 깬 눈으로 바깥을 내다보다가 양소유와 눈이 마주친다. 두 사람은 첫 눈에 사랑에 빠진다. 진채봉이다. 詩를 주고받고 두 사람의 주변에는 춘정의 상징인 버드나무와 복숭아나무가 그려져 있다. 사랑의 언약을 하는 두 사람. 그러나 전쟁이 나고 전쟁이 끝난 뒤 진채봉이 사라졌다. 진채봉의 아버지가 반란에 부역을 해서 역도로 몰려 죽고, 딸도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는다.

낙심한 양소유, 1년 뒤에 다시 길을 나선다. 역시 이런 이야기를 그린 구운몽도도 있다. 낙양에 이르러 천진교를 건너자, 다리는 새로운 세계에 진입한다는 의미인데, 누각에서 기생과 유생들이 시회를 주고받고 있고, 계섬월이라는 기생이 심판관 노릇을 하고 있다. 마침 양소유가 시회에 끼어들고, 다른 유생들을 누른다. 그런 양소유에게 계섬월이 풍덩 빠진다.

“낙양 천진교 옆 누각에서는 귀공자들이 기생들을 모아놓고 봄 경치를 구경하며 시회를 열고 있었다. 양소유는 그 자리에 참석하여 귀공자들을 제치고 빼어난 시로 모두의 우상인 절대가인 계섬월의 마음을 사로잡는다.”(p.48)
“계섬월은 여느 기생과 다른데, 양소유를 자기 집으로 먼저 가 있으라고 말한다. 그날 저녁 두 사람은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잠자리를 가진다. 계섬월은 기생이기 때문에 양소유와 같은 사람의 부인이 될 수 없음도 자각하고 있다. 조선 사회는 1부1처(다첩)사회였다. 그것 때문에 이 소설을 읽는데 방해가 많이 된다. 중국은 다처사회였다. 『구운몽』은 2처6첩이 되는데, 첩은 어떻게든 상관없으나 2처가 문제다. 계섬월은 스스로 첩이 될 운명임을 안다. 당시 많은 기생들이 바랐던 것은 좋은 사람의 첩이 되는 것이었다. 경제적인, 즉 먹고살기 위해서였다.”

구운몽도의 테마는 스무 개 정도다. 그 가운데 10첩 병풍은 10개, 8첩 병풍은 8개를 뽑아낸 것이다. 계섬월을 만난 이후 테마는 이어진다. 스스로 첩이 되길 자처한 계섬월은 양소유에게 부인이 될 만한 사람으로 정경패를 추천한다. 그러나 한양에 간다고 쉽게 찾을 수가 없다. 내외지분(內外之分)때문에 외간남자가 집을 찾아가도 쉽게 만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구운몽』의 이야기는 현대 여성으로선 용서가 안 되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다다. 그러나 이 소설이 조선의 여성독자로부터 호응을 많이 받은 이유가 있다. 『구운몽』보다 현실이 훨씬 더 엄혹하고 혹독한 상황이어서 여성들이 무리 없이 받아들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역사적 상황이 지금과 과거는 너무 다르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가령 이런 상황도 그렇다. 귀족의 딸 정경패는 양소유의 아내가 되고, 정경패는 자신의 시비를 첩으로 삼으라고 한다. 과거에서 장원급제를 한 양소유는 궁궐에 들어가 옥퉁소로 부는데, 공주와 연결이 된다. 그러다 전쟁이 터지는데, 무술을 배운 적도 없는 양소유는 영웅이 된다. 덕분에 남해 용왕의 딸 백릉파를 만나는 등 양소유는 별별 여자들을 다 만난다. 양소유는 위기도 쉽게 넘기고 부귀영화를 누린 끝에 불도를 닦겠다는 결정을 내린다. 말하자면, 즐길 것은 다 즐기고, 다른 인생을 살겠다고 선언을 한다. 이것에 팔선녀가 동의하면서 함께 불교에 귀의하는 장면이 구운몽도를 통해 펼쳐지기도 한다.

『구운몽』은 일단 읽어봐야 재밌다. 작가에 대해 말하면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김만중. 굉장히 낭만적인 사람이다. 그는 조선의 0.01% 집안이었다. 증조부 김장생은 율곡 이이의 제자이자 송시열의 스승으로 조선 예학의 대가였다. 할아버지는 김반으로 이조참판이었다. 김만중은 1637년 생으로 15세에 진사시에 일등을 했고, 학문과 글로 조선을 제패했다. 김만중에게도 여러 평가가 있다. 『숙종실록』에는 김만중의 인물평이 두 번 나온다. 당파의 주도권에 따라 달라진 거지. 두 평가에서 공통점은 어머니에 대한 효심이 지극했다는 점이다. 『구운몽』은 김만중이 유배를 갔을 때 썼다. 이런 것을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소설을 쓴 것은 스스로 마음의 위로를 얻기 위해서였다. 일장춘몽을 말하기 위해서가 아닌 극악한 환경을 벗어나기 위해 썼다. 어디서 위로를 받겠나. 숨통을 틔우기 위해 쓴 것이다. 『구운몽』은 읽을 때마다 다르다. 여러 층위가 있다. 한 차원에서만 볼 작품이 아니다. 이 책을 가둬두려는 시도들에 휘둘리지 마라. 인생의 깨달음? 이 책이 얼마나 깨달음을 줄지는 모르겠다.”

“관료이자 정치인으로서 늘 숨 가쁘게 전개되는 긴박한 조정 쟁투의 중심에 있었던 김만중이 소설을 창작했다는 것은 뜻밖의 일이다. 하지만 김만중은 일단 붓을 잡자 화려한 환상과 조화의 세계를 꾸며냈다. 그리고 이처럼 작품 속에 자신의 삶을 투영시켰던 것이다.”(p.84)

“『구운몽』이 그린 세계는 작가 김만중이 살았던 현실의 모습과는 전혀 동떨어진 것이다. 김만중의 유배의 고통을 견디며 이 작품을 썼다. 평안도 선천의 벽지에서 언제 사약을 받을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었다. 그런 가운데 불안과 공포를 잊기 위해 『구운몽』을 썼던 것이다.”(p.173)
정 교수가 지적하는 가장 큰 문제는 『구운몽』과 같은 작품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읽었고, 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턱대고 재미없게 생각한다는 것. 그는 책임이 자신과 같은 국문학자들에게도 있다고 반성했다. 충분히 풀어서 만들고, 맥락이 닿고 읽을 만하도록 번역해야 하는데, 그렇게 못함으로써 안 읽히는 책으로 만들었다는 것.

『구운몽』은 글을 읽는 맛이 있다. 이 책이 제시한 메시지는 지친 사람은 쉬는 게 필요하고 그럼에도 목표를 갖고 살아가는, 줄타기를 하면서 사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이다. 서포 김만중이 그렇게 살았거든. 이것이 내가 이해한 『구운몽』이다. 구운몽도도 여러 각도로 볼 수 있다. 가을 무렵 『구운몽』 번역본을 내는데,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 것이다. 기대해 달라.”

“『구운몽』의 중심은 낭만적 사랑이다. 고전으로서 『구운몽』의 위대한 점은 그 불교적 인생철학이 아니라 삶이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를 낭만적으로 보여준 데 있다. 종반부에 있는 육관대사의 의미심장한 불교적 계명은 낭만적 삶을 다시 진지하게 성찰하게 함으로써 소설의 품격을 한층 더 높였다는 의미가 있을 뿐이다.”(p.165)

“『구운몽』을 모르는 사람도 없지만, 제대로 아는 사람도 거의 없다. 더욱이 조금 안다는 사람 중에서 그 고전적 가치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더욱 적다.”(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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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도 정병설 저 | 문학동네
이 책은 「구운몽도」로 소설 『구운몽』을 다시 읽은 책이다. 사람들은 『구운몽』의 사상적 의미에 치중해 왔다. 그래서 『구운몽』은 곧 유불도의 사상이 어우러진 조화로운 소설이라는 이해가 가능했다. 저자에 따르면 한편으로 『구운몽』은 인생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이야기이다. 왜냐하면 『구운몽』의 중심은 낭만적 사랑이기 때문이다. 고전으로서 『구운몽』의 위대한 점은 삶이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를 낭만적으로 보여준 데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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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설 #구운몽 #구운몽도 #김만중
7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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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d1318

2013.07.31

구운몽도..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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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로리

2013.07.30

좋은 기사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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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iokjh

2013.07.26

고등학교때 읽었던 기억은 나는데... 음 이런내용이었던가요? 다시읽어야겠어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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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