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아침에 일어나서 회사에 같이 출근하고, 가급적이면 아니 필사적으로 여섯 시에 퇴근해서 일곱 시 이전에 집에 들어가려고 노력 합니다. 아이들도 아침에 학교에 갔다가 보통 네 시 전후해서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평균에 비해 비교적 집을 오래, 많이 사용하는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집에서 철저히 좌식 혹은 와식 생활을 합니다. 책을 읽을 때도 거의 누워서 읽고 텔레비전을 볼 때도 거의 누워서 봅니다. 물론 그런 자세는 학교에서 배울 때 절대적으로 금기시했던 자세이긴 하지만, 제게는 가장 능률이 잘 오르는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앉은뱅이책상에 등받이가 있는 좌식의자를 놓고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도면을 그리며 동시에 아이들과 텔레비전을 보거나 혹은 책을 읽습니다. 보편적인 집의 모습은 아니지만 제게 가장 맞는 방식입니다.
집에서 우리 식구들은 주로 모여 있습니다. 한곳에 모여서 책을 읽고, 모여서 공부와 일을 하고, 모여서 텔레비전을 봅니다. 꼭 어떤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냥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그리 큰 불편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어떨 때는 우리 집에는 그냥 큰 방 하나만 있으면 되는 것 아닐까 하는 어이없는 생각도 해봅니다.
안방이나 아이들 방은 방대로, 주방이나 화장실은 고유한 기능이 있다 보니 늘 사용이 되는데, 그다지 쓰임새도 없이 집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거실입니다. 사람들은 거실에 앉을 때 소파에 앉는 것이 아니라 소파에 등을 기대고 바닥에 앉습니다. 우리에게 입식도 아니고 좌식도 아닌 곳, 거실은 참 엉거주춤한 공간입니다.
지금까지의 주거 양식에서 거실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해왔고, 보통 집의 중심이 되는 곳에 배치되었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주택에서 거실은 반드시 필요한 공간이었습니다. TV를 놓아야 했으니까요. 일일연속극, 주말연속극, 출근하기 전에 보는 아침 6시나 7시 뉴스, 혹은 저녁 9시 뉴스, 야구나 축구 중계, 가요 순위 프로 등등, 그런 것들을 꼬박꼬박 챙겨 보기 위해 우리는 거실에 모였습니다.
그렇게 보면 거실이라는 공간은 집의 중심이지만, 굉장히 공적인 공간이기 때문에 공간의 주인이 따로 없는 부분입니다. 식구들이 모두 자신의 공간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나면 거실은 늘 머쓱하게 홀로 남습니다. 큰 텔레비전과 큰 소파, 그리고 여러 가지 집안의 개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장식들과 함께.
몇 년 전 어떤 신문사에서 거실을 서재로 만들자는 운동을 한참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전문가들과 사회적인 명망가들이 참여하여 진행한 운동인데, 이후 그 서재들이 어찌 되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거실이라는 공간이 어떻게 쓰였기에 본연의 기능을 포맷해버리고 서재로 만들라고 하는 걸까 내심 궁금했습니다.
거실은 문이 없이 늘 열려 있습니다. 거기에 사람들이 지나가고 지나가고 지나갑니다. 어찌 보면 그냥 집 안에 정물화처럼 앉아 있습니다.
거실이란 공간이 언제부터 우리의 생활로 들어왔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우리의 주거가 서양식 주거를 받아들이면서, 한옥이 배척되고 한옥과 관련된 모든 것이 전 근대적이라고 싸잡아 비난받던 당시가 아니었을까요? 근대화 혹은 나아가서 현대화된 생활양식의 상징은 소파에 앉아서 신문을 읽는 가장과 세련된 입식 부엌에서 차를 끓여 내오는 부인과 거실에 놓인 피아노를 연주하는(기껏해야 ‘소녀의 기도’ 정도지만) 아이들, 혹은 거실에서 파이프 담배를 피우는 아버지와 뜨개실을 무릎에 얹고 평화롭고 유순한 표정으로 그 정경을 지켜보는 자애로운 어머니, 그런 식의 약간 ‘키치(kitsch)’스러운 광경이 우리의 주거, 특히 모던 리빙을 주도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 가정마다 마치 집안에 붙여 놓은 ‘가화만사성’ 액자처럼 거실들이 배급되었는데, 그것이 이제 부정되고 있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거실은 잘못 수입된 병균이 득실거리는 수입 과일 같기도 한, 정체성도 없고 한국적이지도 않으며 또한 결정적으로 죽은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거실이 점점 그 위상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이유는 달라진 생활 패턴에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집이란 약간은 사회적인 성격이 강한 곳이었습니다. 외부인들이 많이 찾아오고 혹은 대가족이 살아야 했고, 그러다 보니 거실 공간과 같은 공적 영역이 아주 요긴했습니다.
결혼하거나 새로 이사를 하면 주변의 친구나 동료들을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는 ‘집들이’가 거의 강요 내지 의무사항처럼 이루어졌습니다. 주로 거실에 큰 상이 놓이고 직접 한 요리든 주문 배달한 중국요리든 한상 가득히 차린 음식을 둘러싸고 사람들이 앉아 집에 대한 품평을 안주 삼아 거하게 치러지는 행사였죠. 집들이뿐만 아니라 어른의 생신이라든가 제사, 반상회 모임 등등이 거실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말하자면 거실은 한옥의 대청과 같은 기능을 하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거실에는 남들의 시선을 의식한 요소들이 곳곳에 배치되었습니다. 화려한 전등, ‘아트 월’이라 부르는 보조 조명이 달린 장식 벽에 놓인 커다란 TV, 오디오 세트, 전집이 보기 좋게 꽂힌 튼튼한 책장, 실물 크기에 가까운 가족사진, 값비싼 가죽 소파…….
그러나 알다시피 요즘에 와서는 거실의 공적인 기능이 많이 약해졌습니다. 이제는 그런 식으로 많은 손님들을 집에 초대하는 일은 거의 없고, 그런 걸 요구하는 건 심지어 실례에 가까운 일입니다. 집안 행사는 호텔이나 대형 식당에서 치르고, 제사에 참여하는 인원도 많이 줄었고, 결정적으로 각종 스마트한 IT기기들이 보급되면서 가족끼리 단란하게 모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줄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거실은 집에 꼭 필요한 공간일까요? 얼마 전 들어보니 50평 이상의 아파트에 살던 사람들, 주로 자식이 진학하거나 분가하면서 가족 수가 줄어든 사람들에게 아파트 면적을 줄여 이사할 생각이 있느냐는 설문을 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이사할 생각은 있으나 30평형대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된다면, 30대 때 살았던 방 3개가 있는 구조 대신 방 개수를 줄이더라도 부엌과 거실의 면적은 50평형 아파트와 같은 구조였으면 한다는 답이 많았답니다. 남들이 볼 때 집을 줄여 이사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이었고, 집을 줄인다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일종의 실패처럼 여겨진다는 의미겠지요.
세상의 변화와 유행에 그토록 민감하면서도 집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왜 여전히 과거에 머물고, 남의 눈을 의식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 사람을 살리는 집 노은주,임형남 공저 | 예담
집을 짓기 전에, 이사를 가기 전에, 인테리어를 바꾸기 전에, 집에 대한 기본적인 물음으로 돌아가길 권하는 책이다. 노은주ㆍ임형남 부부 건축가는, 〈KBS 해피선데이 ‘남자의 자격’〉에 멘토 건축가로 출연하고, 〈SBS스페셜 ‘학교의 눈물’〉에서 ‘소나기학교’의 기획을 맡는 등, 대중과 소통하는 건축가로도 유명하다. 저자들은 집이 가족의 관계를 존중하고 있는지, 아이들의 정서에 도움이 되는지, 단열과 환기에 대한 오해는 없는지 등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이 과연 사람을 살리고 있는지를 돌아봐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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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은주,임형남
노은주
1969년 원주에서 태어났다. 홍익대 건축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했고, 월간 플러스, 공간사에서 건축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다 수목건축에서는 건축기획을, 서울포럼에서 웹진기획을 했다. 리빙TV의 「살고 싶은 집」, 교보웹진 「Pencil」 등을 통해 비평 활동을 했으며, 1999년부터 함께 가온건축을 운영하고 있는데 ‘가온’이란 순우리말로 가운데·중심이라는 뜻과, ‘집의 평온함(家穩)’이라는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다. 가장 편안하고, 인간답고, 자연과 어우러진 집을 궁리하기 위해 이들은 틈만 나면 옛집을 찾아가고, 골목을 거닐고, 도시를 산책한다. 그 여정에서 집이 지어지고, 글과 그림이 모여 책으로 엮이곤 한다.
홍익대, 중앙대 등에서 강의를 하고, ‘SALUBIA Time capsule’, ‘외침과 속삭임’(프로젝트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 ‘환원된 집’(이루 갤러리) 등의 전시회를 열었다. 2011년 ‘금산주택’으로 공간디자인대상을 수상했고, 2012년 한국건축가협회 아천상을 수상했다. 2012년 에 멘토 건축가로 출연했으며, 그 외 <명사들의 책읽기> 등에 출연했다. 저서로 《집주인과 건축가의 행복한 만남》 《서울풍경화첩》 《이야기로 집을 짓다》 《나무처럼 자라는 집》 《작은 집 큰 생각》 등이 있고, <세계일보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임형남
196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홍익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주)간삼건축, (주)삼우설계에서 대형 프로젝트를 다루다가 (주)SF도시건축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했다. 1999년부터 함께 가온건축을 운영하고 있는데, ‘가온’이란 순우리말로 가운데·중심이라는 뜻과, ‘집의 평온함(家穩)’이라는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다. 가장 편안하고, 인간답고, 자연과 어우러진 집을 궁리하기 위해 이들은 틈만 나면 옛집을 찾아가고, 골목을 거닐고, 도시를 산책한다. 그 여정에서 집이 지어지고, 글과 그림이 모여 책으로 엮이곤 한다.
홍익대, 중앙대 등에서 강의를 하고, ‘SALUBIA Time capsule’, ‘외침과 속삭임’(프로젝트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 ‘환원된 집’(이루 갤러리) 등의 전시회를 열었다. 2011년 ‘금산주택’으로 공간디자인대상을 수상했고, 2012년 한국건축가협회 아천상을 수상했다. 2012년 에 멘토 건축가로 출연했으며, 그 외 <명사들의 책읽기> 등에 출연했다. 저서로 《집주인과 건축가의 행복한 만남》 《서울풍경화첩》 《이야기로 집을 짓다》 《나무처럼 자라는 집》 《작은 집 큰 생각》 등이 있고, <세계일보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공우민
2013.08.31
그래도 각자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 있으니 그 또한 취향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새라새
2013.08.16
tvfxqlove74
2013.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