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강물에 버려진 이들 - 《화차》, 미야베 미유키
우리보다 앞서 일어난 일본 사회의 카드 버블은 수많은 개인 파산자를 양산했다. 어떤 이들은 빚에 시달리다 자살하거나 가족이 뿔뿔이 헤어져 야반도주를 하는 등 수많은 비극이 일어났다. 가즈야의 약혼녀 쇼코가 자신의 원래 이름인 신조 교코의 이름을 버리고 세키네 쇼코의 삶을 살고자 했던 것도, 신조 교코의 새로운 삶을 위해 자신의 이름을 내어주고 사라져야 했던 실재 세키네 쇼코도 모두, 신용사회가 만들어낸 피해자이자 비극이었다.
글ㆍ사진 리듬
2013.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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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숨겨야 하기 때문에 위험한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런 ‘버려진 이들’이 이삼십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도저히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죠.
참 오랜만에 미야베 미유키의 책을 읽었다. 그녀의 소설은 읽고 나면 찾아오는 불편함 때문에 연달아 읽기가 힘들다. 무거운 주제와 미미 여사 특유의 으스스한 분위기 때문에 읽으면서도 긴장감을 놓을 수 없지만, 읽고 나서도 그 주제의식 때문에 한동안 그런 기분이 이어진다. 《모방범》도, 《이유》도 읽고 나서 꽤 오랜 기간 후유증에 시달렸기에 한동안은 그녀의 작품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러다 잊고 있었던 그녀의 작품이 다시 떠올랐던 건 영화 소식 때문이었다. 소설 《화차》가 곧 영화로 개봉한다고 했다.

《화차》는 1992년 발표한 작품으로 그녀의 작품 중에서도 초기작에 속한다. 1987년 단편으로 추리소설 신인상을 받으며 데뷔했고, 《화차》는 1993년 제 6회 야마모토 슈고 상을 수상한 작품이니 데뷔 6년 만에 최고의 작가가 된 것이다. 이후 미미 여사의 대표작인 《이유》와 《모방범》이 탄생하는데 《이유》는 1999년 제 120회 나오키 상을, 《모방범》으로는 2001년 마이니치 출판문화상 대상을 받는다. 대부분의 일본 추리소설 작가들이 그렇듯 미미도 다작을 하지만, 단연 그녀의 최고의 작품은 《이유》와 《모방범》이며 아직 그 작품을 뛰어넘는 작품은 탄생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 책 《화차》는 《이유》와 《모방범》을 탄생하게 한 발판이 된 작품이다. 그 주제와 문제의식이 《이유》나 《모방범》과 상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내용은 대충 이렇다. 사고로 다친 다리 때문에 휴직 중인 형사 혼마에게 어느 날 가즈야가 찾아온다. 가즈야는 사고로 죽은 아내의 친척이었는데 사라진 자신의 약혼자를 찾아달라며 도움을 청해왔다. 그녀의 이름은 세키네 쇼코. 1여 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을 약속한 그들은 함께 결혼식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편의를 위해 쇼코의 이름으로 신용카드를 발급해줬는데 문제가 생겼다. 그녀에게는 파산을 신고한 전적이 있고, 그 사실을 알게 된 가즈야가 쇼코에게 확인을 하기 위해 묻자 다음 날 그녀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연락도 없다가 갑자기 불쑥 찾아와 이런 부탁을 하는 친척이 얄밉기는 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이 사건은 묘한 흥미를 끄는 구석이 있었다. 혼마는 그 사건을 수락하고 쇼코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그런데 그녀의 파산신고를 도왔다는 변호사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던 중 파산신고를 한 쇼코와 가즈야가 약혼한 쇼코가 동일인이 아님을 알게 된다. 가즈야에게서 건네받은 사진을 보여 주자 변호사는 처음 보는 사람이라고 말한 것이다. 대체 사라진 쇼코는 어디로 갔고, 파산신고를 한 쇼코는 누구란 말인가? 이때부터 그 의문을 풀기 위한 본격적인 탐문이 시작된다.

앞서 《화차》가 《이유》나 《모방범》의 밑바탕이 된 소설이라고 한 것은, 《화차》의 주제가 바로 ‘신용사회’에 대한 고발에 있기 때문이다. 《화차》의 그 문제의식은 《이유》에서 가장 따뜻해야 할 가족의 보금자리를 자본주의의 도구로 탈바꿈시킨 부동산 문제로 이어졌고, 《모방범》에서는 인간의 선과 악에 대한 문제로 확장되었다. 《화차》는 신용카드와 무분별하게 이루어진 신용대출로 인해 망가진 선량한 사람들의 삶의 문제를 고발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신용불량자를 단순히 개인의 무절제한 삶으로, 사치스러운 소비행태로 치부해 그들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으며 그들은 오히려 기업과 정책, 제도로 인해 만들어진 피해자라는 것이다.

이 부분은 혼마가 파산신고를 도운 변호사를 찾아갔을 때 더욱 극명화된다. 갖가지 수치로, 수많은 상담사례를 통해 보여주는 그의 이야기는 암울한 현실을 투영한다.

영화 <화차>
“지금 상황은 완전히 ‘정보파산’이란 생각이 들어요. 이렇게 하면 돈을 왕창 벌 수 있다. 입는 옷은 이게, 차는 저게 좋다……. 제도와 법률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업자들은 너나없이 돈을 빌려주겠다고 설쳐대고. 그것이 성실하고 소심한, 그리고 나이 어린 소비자들을 움직여 다중채무의 빚더미에 올려놓죠.”
우리보다 앞서 일어난 일본 사회의 카드 버블은 수많은 개인 파산자를 양산했다. 어떤 이들은 빚에 시달리다 자살하거나 가족이 뿔뿔이 헤어져 야반도주를 하는 등 수많은 비극이 일어났다. 가즈야의 약혼녀 쇼코가 자신의 원래 이름인 신조 교코의 이름을 버리고 세키네 쇼코의 삶을 살고자 했던 것도, 신조 교코의 새로운 삶을 위해 자신의 이름을 내어주고 사라져야 했던 실재 세키네 쇼코도 모두, 신용사회가 만들어낸 피해자이자 비극이었다.

세키네 쇼코도, 신조 교코도 모두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어느 순간 이 사회에서 신용불량자가 되었고, 빚쟁이로부터 쫓기는 도망자가 되었다. 버는 족족 빚을 갚지만 빚은 줄기는커녕 눈덩이처럼 불어만 갔고, 평범한 직장인이나 평범한 가정주부가 되는 것마저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 그들의 극단적 선택에 그 누가 돌을 던지고, 그 누가 비난의 말을 내뱉을 수 있단 말인가!

《화차》도 역시 미미 여사의 명성에 걸맞게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던 작품이다. 쇼코가 한 시간을 기점으로 두 명의 사람으로 나뉘고, 사건의 끈이 하나둘 밝혀질 때마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짜릿했다. 쇼코와 교코가 한 장의 사진 속에서 나란히 발견되었을 때, 신조 교코를 만나기 위해 커피숍에서 대기하고 있는 순간, 그리고 다모쓰(쇼코의 친구)가 신조 교코의 어깨에 손을 얻는 순간은 나 역시 숨을 죽이며 읽어내려 갈 정도로 긴장됐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더더욱 영화가 원작을 뛰어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이 행간의 긴장감을 스크린으로 옮겨 올 수 있을지,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감정 변화를 연기로 표현할 수 있을지, 작품 전반에 심어놓은 문제의식을 진부하지 않으면서도 의미 있게 영화에서 나타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글을 쓰고 몇 달 뒤 나는 영화관을 찾았다. 이미 모두가 알고 있듯이 변영주 감독의 《화차》는 240만을 동원하며 나쁘지 않은 흥행 성적을 거뒀다. 각본도 영화에 맞게 잘 변주했고,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다. 그래도 여전히 난 소설이 더 좋다. 아직까지 그 어떤 영화도 소설 이상의 만족감을 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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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밤산책 리듬 저 | 라이온북스
어떻게 살고 사랑하고 꿈꾸며 일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네이버 파워블로거 ‘리듬’의 독서 에세이. 그녀는 [달콤 쌉싸름한 일상]이라는 블로그를 통해 지금까지 500만 명 이상의 사람들과 자신의 책 이야기를 나눴다. 책에 대한 짧은 감상과 자신만의 생각을 덧붙여 놓은 그녀는 책을 어떻게 읽고, 어떻게 내 안에 남겨야 하는지에 대한 독서 팁도 꼼꼼히 챙겨준다. 잠도 오지 않는 헛헛한 밤에 읽기를 권하는 《야밤산책》은 마치 책의 정원 한가운데 서 있는 듯 당신을 고요하고도 명랑하게 위로할 것이다.

 



사회파 추리소설의 대가,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 세계

모방범
낙원
솔로몬의 위증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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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 #미야베 미유키 #리듬 #야밤산책
3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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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렁각시

2014.11.12

저도 아직 책을 뛰어넘는 영화를 만나보지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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즌이

2013.08.31

저도 스크린으로만 보고 원작을 보지 못했는데 그 불편함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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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우민

2013.08.31

화차, 스크린으로만 접하고 아직 원작은 못읽었어요.
사실 마음이 너무 울먹해질까봐 못읽은게 사실인데, 작가에 대해 궁금해져서
꼭 읽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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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

6년 전 어느 날 누군가가 버리고 간 책 무더기에서 《리듬》이란 책을 발견하고 그 책에 감명 받아 그날부터 ‘리듬’이 되기로 했다. “나는 변하지 않는 것이 좋다. 바람처럼 하늘처럼 달처럼…… 변하지 않고 있어주는 것이 좋다”는 책 속 구절처럼 변하지 않고 늘 그 자리를 지켜주는 책의 매력에 빠졌고, 그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1년에 단 한 권의 책도 제대로 읽지 않았지만, 흔들리던 20대 중반 책으로부터 큰 위로를 받아 출퇴근길 지하철을 독서실 삼아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 읽은 책은 꼭 블로그에 기록을 남겼고, 그렇게 남긴 기록이 차곡차곡 쌓여 이제 5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다녀간 유명 블로거가 되었다. 애서가이기는 하나 장서가는 아니라 소장한 책이 1,000권을 넘은 뒤로는 적정량의 책을 유지하게 위해 읽은 책은 과감하게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중어중문학을 전공했으며, 중국 22개 성 모두를 여행하는 게 꿈이다. [대학내일] 인터뷰와 [우먼센스], [쎄씨] 등에서 책벌레로 소개되며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4년 연속 네이버 책 분야 파워블로거로 선정되었다. 지금은 제이 콘텐트리엠앤비에서 기획자로 일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잘나가는 회사는 왜 나를 선택했나?》(공저) 등이 있다.
<리듬의 달콤 쌉싸름한 일상 블로그> nayana0725.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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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

일본 최고의 미스터리 작가 중 한 명. '미미여사' 라는 닉네임이 있다. 1960년 도쿄의 서민가 고토 구에서 태어나 자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속기 전문학교와 법률 사무소에서 일했으며, 2년 동안 고단샤 페이머스 스쿨 엔터테인먼트 소설 교실에서 공부했다. 27살이 되던 1987년, 3번의 투고 끝에 『우리들 이웃의 범죄』로 올요미모노추리소설 신인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그 후 미스터리 추리소설을 비롯하여 사회비판 소설, 시대소설, 청소년소설, SF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그녀의 작품들은 출간되는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그녀는 일본 최고의 인기 작가라도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독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실제로 일본 월간지 [다빈치]가 매년 조사하는 '일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 순위에서 에쿠니 가오리와 요시모토 바나나 등을 물리치고 7년째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미야베 미유키는 현대 일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여성 작가이다. 그녀의 글은 대중적이면서도 작품성을 겸비하고 있고, 사회의 모순과 병폐를 날카롭게 파헤치면서도 동시에 그 속에서 상처 받는 인간의 모습을 따뜻하고 섬세하게 그려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89년 첫 책 『퍼펙트 블루』를 발표한 이래, 『마술은 속삭인다』(1989)로 제2회 일본추리서스펜스대상을, 『용은 잠들다』(1992)로 제45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1992)로 제13회 요시카와에이지 문학신인상을, 『화차』(1993)로 제6회 야마모토슈고로상을, 『가모우 저택 사건』(1997)로 제18회 일본 SF대상을, 『이유』(1999)로 제120회 나오키상을 수상했고, 『모방범』(2001)으로 마이니치출판대상 특별상과 제5회 시바료타로상, 제52회 예술선장 문부과학대신상을 동시 수상했다. 2007년에는 『이름없는 독』으로 요시가와 에이지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계속해서 『이름 없는 독』(2006)으로 요시카와에이지 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추리소설, 시대소설, 게임소설, 미스터리, SF, 호러 등 장르를 불문하고 왕성한 집필 활동을 펼치며 평단의 찬사와 함께 독자들의 사랑을 꾸준히 받고 있다. 최근에는 글쓰기뿐만 아니라 영화 프로듀서, 게임 시나리오 작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직원들에게 온라인 게임 금지령을 받을 정도로 게임을 좋아하는 '게임 폐인'이기도 한 그녀는, 게임을 바탕으로 한 소설 『ICO』와 게임의 영향을 받은 SF판타지 소설 『드림버스터』를 쓰기도 했다. 또한 그녀는 2006년 [대항해시대] 공식 이벤트의 시나리오를 쓰기도 하였는데, 이 게임 안에는 『드림버스터』의 주인공들이 실명으로 등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현재는 하드보일드 소설가 오사와 아리마사(大澤在昌), 추리 소설가 교고쿠 나츠히코(京極夏彦), 미야베 미유키(宮部みゆき) 세 사람이 모여 각자의 성을 딴 사무실 '다이쿄쿠구(大極宮)'를 내고 활동하고 있다. 그 밖의 작품으로 『벚꽃 다시 벚꽃』, 『금빛 눈의 고양이』, 『안주』, 『낙원』, 『희망장』, 『레벨 7』, 『R. P. G.』, 『브레이브 스토리』, 『누군가』, 『이코―안개의 성』, 『인질 캐논』 등이 있고, 2012년 국내에서 영화화된 『화차』 외에도 『대답은 필요 없어』, 『스나크사냥』, 『크로스파이어』, 『모방범』, 『이유』, 『고구레 사진관』『솔로몬의 위증』 등 다수의 작품이 영화화되거나 드라마화되었다. 최근에는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의 책임 편집을 맡았고, 『메롱』과 『구적초』, 『그림자밟기』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