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는 때때로 선하지 않을 수 있는 법을 배워야 한다
김경희 교수(성신여대)의 ‘『군주론』 다시 읽기’ 강의는 두 개의 의문에서 출발했다. ‘과연 마키아벨리는 권모술수의 대가인가? 그의 저서 『군주론』은 진정 악의 저서인가?’ 하는 것이다. 그 해답을 찾는 과정에 ‘생각하는 십대를 위한 고전 읽기 강연회’에 참여한 200여 명의 학생들이 함께했다. 그리고 마지막 강연이 있었던 지난 8월 31일, 그들은 마침내 『군주론』의 참 모습과 마주했다.
2013.09.06
작게
크게
공유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기회가 필요하다
지난 8월 31일, 김경희 교수(성신여대)의 ‘『군주론』 다시 읽기’ 마지막 강연이 숭실대학교에서 열렸다. ‘생각하는 십대를 위한 고전 읽기 강연회’의 출발을 알리며 8월 24일 시작된 본 강연은, 두 차례에 걸쳐 ‘『군주론』 이 쓰여질 당시의 역사적 배경’과 ‘『군주론』 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본격적으로 『군주론』 안의 이야기들을 파고 든 마지막 강연회에서 김경희 교수는 ‘리더십의 관점에서 군주론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중점을 두고 학생들과 함께 『군주론』 을 읽어나갔다.
마키아벨리는 정치의 방법에 대해 설명하며 ‘관계맺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상황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고 적절한 방법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관계 파악에 능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마키아벨리는 폐결핵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유하고 있다. ‘초기에는 치료하기 쉬우나 진단하기 어려운 데 반해서 초기에 발견해서 적절히 치료하지 않으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진단하기는 쉬우나 치료하기는 어렵다’. 이 말의 핵심은 선견지명을 가지고 사태를 제대로 파악해서 개입해 들어가야 된다는 이야기다. 관계의 핵심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국가의 일도 똑같다고 얘기한다. 반면에 당시의 피렌체는 그걸 하지 못했다”
또한 마키아벨리는 국가를 공동체 구성원의 관계 속에서 바라보고 이해했다. 귀족과 인민, 두 세력 간의 관계 속에서 국가가 구성된다는 것이다. 그 안에서 지도자가 되기 위해 갖춰야 할 조건으로 마키아벨리는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들이 없이는 지도자가 될 수 없고, 지도자라면 모름지기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는 지도자가 필요로 하는 것으로 ‘자신의 힘을 기반으로 한 군대’ ‘인민의 지지’와 함께 ‘능력과 기회’를 꼽았다.
“모든 국가나 모든 통치체는 공화국 아니면 군주국입니다. 군주국은 세습 군주국이거나 신생 군주국입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제1장에서, 마키아벨리는 신생 군주국의 형태를 ‘새롭게 탄생한 군주국’ 혹은 ‘정복당하여 새로 편입된 군주국’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 때 영토를 획득하는 방법으로 제시한 ‘행운’ 또는 ‘역량’이 『군주론』 의 핵심 개념 중 하나라는 것이 김경희 교수의 설명이다.
“마키아벨리는 초인적인 역량이나 능력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기회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모세, 키로스, 로물루스, 테세우스와 같이 자신의 역량으로 군주가 된 인물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들의 행적과 생애를 검토해 보면 질료를 자신들이 생각한 최선의 형태로 빚어낸 기회를 가진 것 이외에는 그들이 행운에 의존한 바가 없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역량이나 능력은 그것을 발휘할 시기가 있었을 때에만 빛을 발한다는 이야기다. 그 반대도 가능하다. 기회가 오더라도 능력이 없으면 발휘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계속해서 자신을 연마하고 실력을 키워서 다가오는 기회를 잡아야 하는 것이다”
이어서 김경희 교수는 “그러한 기회를 가지지 못했더라면 그들의 위대한 정신력은 탕진되어 버렸을 것이고 그들에게 역량이 없었다면 그러한 기회가 무산되었을 것입니다”라는 마키아벨리의 말을 빌어, 그가 얼마나 기회와 능력 사이의 조화를 강조했는지 설명했다.
지도자는 때때로 약속을 지키지 말아야 될 필요가 있다
『군주론』 에서 마키아벨리가 제시하는 성공적인 지도자의 모습 중 가장 핵심적인 인물은 ‘체사레 보르자’라고 할 수 있다. 마키아벨리의 분류에 따르면 그는 순전히 자신의 역량만으로 군주가 된 인물이라기보다는, 행운의 도움을 받아서 군주의 자리에 오른 인물에 속한다. 교황( 알렉산드르 6세)의 아들로 태어나 20대 초반에 교황국의 사령관이 된 이력만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타고난 행운에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길을 개척해 나갔다.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자 교황국의 영토를 넓히기 시작했고, 자신의 군대를 만들었으며, 인민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체사레 보르자는 세니갈리아 지역에서 정적들을 암살하고 그들의 용병을 자신의 군대로 흡수하였는데, 마키아벨리는 『군주론』 에서 그와 같은 행위를 칭송하고 있다. 김경희 교수는 바로 이 부분 때문에 사람들이 마키아벨리를 ‘권모술수의 대가’로 오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한 가지 단서를 달아 놓았다. ‘자기의 마을을 지켜야하는 지도자는 자기의 힘이 미약할 때 때로는 약속을 지키지 말아야 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 에서 얘기한 것은 한 국가의 지도자라고 하는 공적인 인물에 대한 것이다. 공동체와 국가를 유지해야 된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을 때, 개인적으로는 비도덕적인 행위라고 하더라도 해야만 하는 순간들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 ‘세니갈리아 사건’ 자체는 비도덕적인 행위이지만, 그 후에 공인으로서 무엇을 했느냐 하는 것이 마키아벨리에게는 중요했던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비도덕적인 행위를 옹호하는 악의 교사가 아니라는 사실은 다음과 같은 대목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동료 시민을 죽이고, 친구를 배신하고, 신의가 없이 처신하고, 무자비하고, 반종교적인 것을 덕이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그런 행동을 통해서 권력은 얻을 수 있을지언정 영광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이는 아가토클레스와 올리베르토처럼 악덕한 행위를 통해서 권력을 얻은 자들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평가다. 폭력을 사용해서 성공한 사람들을 향해 ‘힘은 얻을지언정 명예는 얻을 수 없다’고 일갈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폭력이 필요한 순간이라면 ‘잔인한 극형은 짧고 단시간에, 반면에 시혜는 길게’ 해야 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역설적이지만 『군주론』 이 ‘악의 저서’로 불리는 이유는, 지금까지도 사람들이 그 내용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이유와 같다. 사람의 본성, 그리고 사람들이 맺는 관계의 속성을 꿰뚫어 보는 마키아벨리의 통찰력이 무섭도록 예리하고 정확하기 때문이다. 그는 도덕적인 관념이나 행동 방식이 인간 세계에 투입되었을 때는 (도덕적인 것과는) 다른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군주론』 안의 일반적인 도닥과 배치되는 이야기들은 그와 같은 생각에서 쓰여진 것들이다.
“마키아벨리는 인간이 선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나 선하게 행동할 것을 고집하는 사람이 선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면, 그의 몰락은 불가피합니다. 따라서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군주는 상황의 필요에 따라서 선하지 않을 수 있는 법을 배워야만 합니다’ 라는 그의 말은, 때에 따라서는 선하지 않을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바꿔 말하면 선할 땐 선해야 된다는 얘기다. 이 구절을 제대로 읽지 않은 사람들이 마키아벨리는 비도덕론자라고 말하는 것이다. 『군주론』 을 읽어보면 필요할 때는 도덕적이어야 된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덧붙여 김경희 교수는 ‘일견 미덕으로 보이는 일을 하는 것이 자신의 파멸을 초래하는 반면, 일견 악덕으로 보이는 일을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고 번영을 가져오는 경우가 있다’는 말 역시, 세상에는 악한 자들도 있기 때문에 선한 행동을 하는 자가 반드시 살아남는 것은 아님을 지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이야기는 국가나 단체를 책임지고 있는 공인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군주론』 의 마지막 장에서 마키아벨리는 군주를 향해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 조국 피렌체를 잃지 않도록 지탱해 달라는 당부를 잊지 않는다. 인민들에게 잠재되어 있는 많은 능력들을 일깨워주는 지도자의 역할이 부족함을 지적하면서, 지도자가 바로 서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능력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들과 함께 갈 수 있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군주론』 을 통해 제시한 일부 방법들이 도덕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을지라도, 그것들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목표들까지 비도덕적이라고 매도할 수만은 없는 이유다. 바로 이 점이 ‘『군주론』 다시 읽기’ 강의를 통해 김경희 교수가 학생들과 함께 발견하고자 했던 『군주론』 의 참 모습이다.
EBS가 공동기획하고 예스24와 서울시교육청이 후원하는 숭실대학교의 ‘생각하는 십대를 위한 고전 읽기 강연회’는 9월에도 계속된다. 철학자 강신주와 함께하는 고전 『장자』의 강연회가 7일과 14일, 두 번에 걸쳐 진행된다.
- 군주론 니콜로마키아벨리 저/강정인,김경희 공역 | 까치(까치글방)
수많은 정치지도자들, 혁명가들, 그리고 자국의 권력자의 실체를 시민들에게 폭로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지침서로서 수세기 동안 읽힌 니콜로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을 마키아벨리를 전공한 전공자가 이탈리아어 원본을 가지고 번역한 책이다. 이 책은 조국 통일과 외세축출을 열망하던 이탈리아의 정치가 마키아벨리가 가지고 있던 염원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으며, 정치 행위가 종교적 규율이나 전통적인 윤리적 가치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근대 현실주의 정치사상을 담고 있기도 하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0개의 댓글
추천 상품
필자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