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상하는 것.
고기압, 벚꽃, 누군가의 부음.
남하하는 것.
황사, 파업, 쓰레기.
지난 한 주간 가장 빠른 속도로 움직인 것은 부음 소식이었다. 발인이 지나면 효력을 잃어버릴, 유통기한이 짧기에 신속한 것. 소식이 시작된 곳은 경남 진해였다. 하필 벚꽃의 발원지와도 같은 곳. 어느 오후의 거대한 쓰나미 아래서, 그곳의 모든 생활들이 갑자기 점. 점. 점. 으로 끊어졌다. 꽃 마중을 갔던 사람도, 걷던 사람도, 일광욕을 하던 건물도, 해변의 가로등도, 모두 점. 점. 점. 난파당했다. (『밤의 여행자들』9~10쪽)
모든 것이 파괴된 재난지역
그 곳의 사람들은 점. 점. 점. 으로 파편화된다
일상 깊숙이 침투한 자본의 모습을 재기 발랄한 소재로 다뤘던 윤고은.(혼자 식당에 들어가서 식사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학원.-『1인용 식탁』, 지하철에서 책을 보는 척하며 책을 홍보하는 아르바이트.-「요리사의 손톱」 술을 마시고 편하게 전화할 수 있는 음주 전화 서비스.-「해마,날다」) 이번 장편『밤의 여행자들』에서는 재난으로 인해 폐허가 된 지역을 상품으로 만드는 '재난여행상품'이 소재로 등장한다. 이미 2008년 출간된 『무중력증후군』에서 퓰리처가 떠난다던 '에코여행'으로 언급된 바 있는 바로 그 '상품'이다.
재난여행 전문 여행사 '정글'의 수석프로그래머 '요나'는 회사에서 퇴출 위기에 놓이고, 그 일로 인해 베트남의 한 섬 '무이' 라는 곳으로 출장을 간다. '무이'는 화산이 폭발했고, 싱크홀이 생겼고, 부족간의 살육이 있었던 재난의 공간이다. '무이'는 '정글'의 여행상품이고, 요나가 할 일은 여행객 신분으로 '무이'를 여행하고 재난여행상품으로써의 존폐를 결정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무이' 는 화산이 폭발하지 않고, 싱크홀엔 물이 고여 호수가 되어 버렸고, 부족간의 살육은 옛일이 되어버렸다.
더 이상 재난상품의 가치가 없어진 '무이'를 확인한 '요나'는 섬을 떠나게 되지만 예기치 않은 일로 다시 '무이'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진짜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예전의 재난여행지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재난을 계획하고 스토리를 만드는 '폴', ‘폴’은 오래전부터 가림막을 쳐놓고 인공 싱크홀을 만들고 있다. ‘폴’은 시체를 사들이고 재난을 철저히 계획한다. 지역 주민들에게 대사를 쥐어주면서까지…
‘무시무시한 굉음이 들려서 나가보니 모든 게 무너져 버렸어요. 발아래가 뻥 뚫려 있었어요. 언니가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게 보였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순식간이었어요.’
‘요나’가 ‘정글’에서 하나의 부속품에 지나지 않았던 것처럼, ‘폴’을 거역할 수 없는 지역 주민들도 ‘남자3’, ‘여자7’이라는 이름으로 전체그림은 알지도 못한 체 부여 받은 임무에 충실히 실행할 뿐이다. 재난지역이 사람을 파편화시키듯이, 재난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폴’은 사람들을 그렇게 파편화시킨다. ‘폴’의 지배가 곧 재난인 듯이. 물론 ‘정글’ 그 곳도 마찬가지이다.
‘폴’의 모든 계획을 알게 된 요나. 그리고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몇 개 안되는 선택지. 그리고 예기치 않은 진짜 재난... 그렇게 찾아온 재난을 파편화된 사람들 사이에서 찾아온 재난은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미 그곳은 재난지역이기 때문이다. '이곳' 역시도. 강유정의 말처럼 개인의 선택이 운명을 지어 가는 게 아니라 주어진 역할이 운명을 결정하는 것. 운명을 결정하는 보이지 않는 손, 그게 바로 『밤의 여행자들』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라면 말이다.
- 밤의 여행자들 윤고은 저 | 민음사
재난으로 인해 폐허가 된 지역을 관광하는 ‘재난 여행’ 상품만을 판매하는 여행사 ‘정글’의 10년차 수석 프로그래머인 주인공 ‘고요나’. 직장에서 밀려날 위기에 처한 그녀가 이번에 향한 곳은 사막의 싱크홀 ‘무이’다. 요나는 뜻하지 않게 여행지에서 고립되며 엄청난 프로젝트에 휘말리게 된다. 작가 윤고은은 어딘지 불미스럽게 재난과 여행을 한데 모아 놓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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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희경
자목련
2014.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