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범준이라는 이름은 어느새 고유 브랜드가 되었다. 1989년생이지만 음색이 예스러워 대학 동아리방에 둘러앉아 두런두런 노래를 불러주는 느낌과 외모에서 풍겨 나오는 동네 청년 같은 친근함도 갖고 있다. 그리고 그가 결성한 버스커 버스커의 음악은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여 세대를 뛰어넘는 공감을 주었다.
버스커 버스커의 활동을 중단한 뒤에는 가정을 꾸려 한 아이의 아빠가 되었고 홀로 앨범을 냈다. 장범준이 곡을 쓰고 노래를 부르기에 전체적으로 버스커 버스커의 연장선이란 느낌이지만 그동안 느껴온 고민을 반영한 변화의 기운이 스며있다. 포크 팝을 내세웠던 이전과 달리 사운드 운용에서 록 트랙들이 많아졌으며 심심한 연주력을 보강하기 위해 몰아붙이는 편곡이 더해졌고, 따뜻함을 떼어낸 공격적인 보컬도 새로움의 증거다.
이렇게 탄생한 < 장범준 1집 > 은 음악 동료들과 이전에 만들어놓은 곡을 프로듀싱하여 내놓은 작품이다. 서로 다른 이들이 쓴 곡이지만 이것이 「낙엽엔딩」인지 「사말로도」인지 구분해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만큼 각 수록곡을 구별하는 파급력 있는 멜로디도 없고 장범준의 가창은 그 선율을 무디게 만들고 있다. 음색의 성격이 강한 목소리는 그 색깔에 밀착하지 못한 노래를 만났을 때 오히려 몰입을 방해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결국 장범준의 앨범에서는 '가수가 곡을 얼마나 잘 소화하느냐' 보다는 '얼마나 보컬에 녹아드는 좋은 곡을 선택하느냐'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바로 여기서 후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버스커 버스커의 결과물에서 나타난 곡을 선택하는 안목이 솔로 앨범에서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흐릿해졌다. 타이틀곡 「어려운 여자」는 경쾌하고 기분 좋은 리듬 위에 가사 동어반복을 활용하지만 치명적인 매력은 증발했다. 과거의 곡과 견주기에 멜로디 파괴력도 모자란다. 시원하게 뻗는 보컬과 뒤를 받치는 기타의 조합이 잘 어울리는 「신풍역 2번 출구 블루스」와 다이내믹하게 몰아붙이는 「무서운 짝사랑」은 직설적이고 걸러내지 않은 가사 역시 젊음의 패기를 설정하며 밴드의 색깔을 내지만 더 좋은 선율과 단조로움을 보완해주는 연주 센스가 아쉽다. 또한 한쪽은 신파로, 다른 쪽은 방방 뛰는 곡으로 선을 긋고 있는 음반의 전체적인 건조한 분위기 역시 낯설고 불편하다.
앨범의 방향성뿐만 아니라 창작의 번뜩임도 흐릿해졌다. 「벚꽃엔딩」처럼 노래를 통해 머릿속에 장면을 떠올리게 만들겠다는 발상, 하나의 단어에 감각적인 멜로디를 결합해 보편적으로 공감케 하는 장범준의 재능은 대중의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이처럼 버스커 버스커의 음악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전자음이 최소화되고 아날로그 악기의 질감이 좋아서라기보다 오랫동안 가사를 곱씹어 보는 긴 호흡의 감상, 즉 음악을 진지하게 향유했던 그 시절의 분위기를 추억하기 때문이다.
「주홍빛 거리」나 「낙엽엔딩」과 같이 시각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제목의 수록곡들이 있긴 하지만 차별화를 논할 정도로 상상력이 들어갈 공간은 좁아졌다. 제목의 첫 음절을 축약한 줄임말 타이틀은 소박함과 정겨움이 아닌, 연출의 과잉으로 느껴지는 약점으로 작용했다.
방송 노출, 싱글 활동 없이 오로지 정규 앨범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태도 또한 버스커 버스커의 행보와 유사하다. 1분 듣기와 음원 중심의 소비시대에 등장한 이 방법론은 음악에 대한 자존심이었다. 바로 그 아날로그 감성이 젊은 날을 감성적으로 포착해낸 청춘백서에서 저물어버린 자신의 청춘에게 보내는 아빠의 송가가 되었다. 그것도 아주 빨리.
글/ 정유나(enter_cruis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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