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되돌아 보면 매년 그랬지만 올해는 더욱 힘이 들지 않았나 싶다. 여파가 상당했기에 어려운 환경일 수 밖에 없었다. 음악계도 악전고투했다. 순간을 채우고자 노력한 많은 작품들이 그 결과물이리라. 이 중에서도 의미가 더욱 남다른 2014년의 가요 음반 열 장을 이즘에서 꼽았다. 순서는 아티스트 이름 가나다 순이다.
눈뜨고코베인 - 스카이랜드
부진을 면치 못했던 인디 시장에서 굳건함을 보여준 건 이미 잔뼈가 굵어있던 눈뜨고코베인이었다. 아마추어의 무모함에 괴악한 이야기로만 승부를 보는 듯했던 이들은 어느새 풍부한 사운드로 무장하고 있었다. 「스카이워커」의 기타솔로나 「캐모플라주」의 익살맞고 다채로운 코러스에서 이미 맘을 빼앗는다. 음악적으로 매력을 드높이는 방법을 본능적으로 터득한 뒤 이들은 여전히 주효한 능청과 날카로운 가사로 다시 한 번 마음의 가장 약한 부분을 깨부순다. 이미 모든 것을 보여준 줄 알았던 밴드가 또 다른 진화의 불씨를 당겼다.
2014/12 이기선(tomatoapple@naver.com)
박재범 - Evolution
'그가 2PM을 나간 것은 신의 한수'라고들 하지만 박재범은 치열했다. 그게 더 직접적이다. 즐거움과 자유분방을 동반한 노력 4년 차, 본격적으로 비범해졌다. AOMG와 < Evolution >이 증명한다.
열정으로 꽉꽉 채워진 앨범이다. 실력을 쌓아서 이젠 설득력도 생겼다. 산뜻한 「So good」, 스타일리시한 「메트로놈」과 무식하게 신나는 「미친놈」까지, 본인의 다양한 매력을 한 방에 어필한다. 박재범 '비긴즈'를 마무리 지었다. 실력으로 증명했고 이젠 다음 행보가 궁금해지는 플레이어로 진화했다.
2014/12 전민석(lego93@naver.com)
서태지 - Quiet Night
'90년대의 아이콘'이 한 번 더 시동을 걸었다. 1990년대 복고 열풍의 정점에 있는 인물이건만, (그리고 늘 그래왔지만) 괜한 추억 팔기나 답습을 구사하지 않는다. 근래 많은 아티스트들이 소재로 사용하는 신스 팝을 토대로 다양한 색감을 부여하며 서태지는 다시 한 번 자신이 훌륭한 창작자임을 밝혀냈다. 아이유를 보컬로 내세우기도 했던 「소격동」과 타이틀 트랙 「Christmalo.win」 뿐 아니라 일렉트로니카 넘버「90s icon」, 빈티지한 사운드의 「숲 속의 파이터」 등에서 재기 넘치는 터치가 드러난다. 반향도 상당했다. 예의 서태지 신자들은 물론이거니와 새 세대의 어린 친구들에게도 충분히 어필했다. 작품 내외를 아우르는 성공이다.
2014/12 이수호(howard19@naver.com)
아시안 체어샷 - Horizon
< Horizon >의 주 무기는 제각각 터져 나오는 소리 조합의 유기적인 산물이다. 귀곡(鬼哭)에 가까운 황영원의 보컬과 국악의 타악기를 상기시키는 둔탁하고 육중한 박계완의 드러밍, 싸이키델릭 사운드를 가지고 노는 손희남의 기타에 기인한다. 이들의 출사표는 만족에 차고 넘치는 약진이다.
2014/12 신현태(rockershin@gmail.com)
에픽 하이 - 신발장
전작의 불명예스러운 남루함이 싹 잊힐 만큼 이번에는 특유의 명석함과 서정성, 강도를 회복했다. 타블로와 투컷이 주도해 제작한 비트는 힙합의 여러 장르를 섭렵하면서 에픽 하이의 전통이 된 부드러운 양식까지 커버해 다채로운 멋을 보유해 보인다. 또한 인생사, 이성 간의 사랑, 청년의 공상, 불만스러운 사안과 인물을 향한 맹렬한 태도 등을 편안하고 재치 있게 풀어내 가사로도 즐거움을 준다. 객원 뮤지션의 인지도와 장기를 두루 감안한 영악한 게스트 섭외도 앨범의 튼실함을 성공적으로 뒷받침했다. 에픽 하이스럽고, 에픽 하이다운 괜찮은 음악을 들려줬다. 이런 복귀를 기다려 왔다.
2014/12 한동윤 (bionicsoul@naver.com)
이규호 - 세상 밖으로
'15년만의 솔로작'이라는 이유만으로 박수를 쳐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그를 대표하는 '하나음악' 내지는 '푸른곰팡이'라는 브랜드를 배제하고도, 이 작품은 올해의 앨범 감으로 손색이 없다. 누가 빨리 잊혀지나를 겨루는 듯한 소모전 속에서, 흔들림 없이 한발 한발 꼿꼿하고도 오롯이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모습은 그를 장인으로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모던 록의 색채가 존재했던 전과 비교해 좀 더 담백해진 인상이지만, 감상이 거듭될수록 다가오는 화자의 강한 의지는 전작보다도 훨씬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인다. 그만큼 이 작품이 담고 있는 감정과 문제의식의 밀도가 높다는 뜻이다. 개인의 건재를 알렸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건만, 한발 더 나아가 음악 자체의 힘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했다는 점에 그 의의가 크다. 그의 '기다려줘서 고마워요'라는 수줍은 고백에, 도리어 고마운 것은 우리다.
2014/12 황선업(sunup.and.down16@gmail.com)
이승환 - Fall To Fly 前
그야말로 몸을 던져 대작을 만들어냈다. 심플하면서도 세심한 편곡, 공을 들여 쌓아올린 사운드는 그가 25년 동안 쌓은 집념의 결과기도 하다. 어설프게 트랜드를 따르지도 본인의 고집을 피워 정체되지도 않았다. 본인의 색깔을 그대로 고수하면서도 장인의 손길로 한땀한땀 박음질해 불로(不老)의 이승환표 팝을 견고하게 했다. 대형 공연장부터 홍대 클럽까지 종횡무진하는 부지런함도 올해 그를 더욱 건강하게 만든다.
2014/12 김반야(10_ban@naver.com)
이장혁 - Vol. 3
'자기 색과 신념을 유지하면서 성숙으로 변화하는 것'의 예를 제시하는 앨범이다. 이장혁 음악은 세상과 불화한 듯 여전히 헐벗어 있고 고립되어 있지만 연주의 비중이 늘고 사운드가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노래가 호흡할 공간이 마련된 결과일까, 질식할 듯한 어둠의 습도가 적절히 조절되어 음악의 품이 이전보다 한결 넓어진 느낌이다. 어느 곳 하나 지나친 부분도 모자란 구석도 없다. 듣고 또 들어도 견딜 만하고 거듭 들을수록 멜로디와 더불어 끝없이 젖어들게 된다.
노래들은 애써 덮어 둔 고통을 들추고 그 통각의 감각을 날렵하게 곧추세운다. 언제나 그랬듯, 앨범에는 아파해야 할 것을 외면하지 않고 용감하게 아파하는 음악이 주는 어떤 '각성'이 있다. 때문에 그의 어둠은 결코 불온하지 않다.
2014/02 윤은지(theothersong@naver.com)
크러쉬 - Crush On You
이 신예의 데뷔앨범은 놀라울 정도로 매끄럽고 유려했다. 멜로디를 만드는 능력이나 프로듀싱이 벌써 앨범을 서너 장 낸 중견 뮤지션처럼 완숙하다. 블랙뮤직이 주는 느낌을 온전히 전달하겠다는 목표로 알앤비, 뉴 잭 스윙, 디스코 등 할 수 있는 흑인음악을 이 한 장에 모두 펼쳐놓았다. 꽉 차게 편곡을 하다 보면 중간에 한 번 쯤 처지는 트랙이 나올 법도 하지만, 크러쉬는 끝까지 완성도를 유지한다.
무엇보다 농밀한 가사 속 감성을 표현하는 재능이 출중하다. 단단하면서 때로는 살랑살랑한 목소리,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힘을 가져 이제는 힙합 밖에서도 그를 찾는다. Crush on you, 모두를 완전히 빠져버리게 할 새로운 알앤비 대세의 등장이다.
2014/12 정유나(enter_cruise@naver.com)
한승석, 정재일 - 바리abandoned
버려진 이들의 이야기. 비극이면서도 희극이고, 고난의 길이면서도 즐거이 노래부른다. 한승석과 정재일의 음악 세계에선 온 우주 삼라만상이 평화롭게 공존을 이룬다. 국악이냐, 퓨전이냐, 현대 음악이냐를 구분짓는 장르 논쟁은 무의미하다. 그들이 빚어낸 세상은 지극히 현실적인 우리의 모습이 담겨있고, 그 거울에 비춰진 우리의 모습은 울고 있기도, 웃고 있기도, 절망하기도 행복하기도하다. '있는 이야기'를 세상에 「없는 노래」로 만들어낸 < 바리abandoned >의 소중함을 2014년이 잊어선 안된다.
2014/12 김도헌(zener1218@gmail.com)
2014/12 IZ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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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앙ㅋ
2015.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