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이 네팔을 휩쓸고 간 지 얼마 안 되던 그날,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던 독자의 마지막 밑줄 낭독이 끝나자, 사회를 보고 있던 조병준 시인은 지진으로 고통 받는 네팔 사람들을 위해 잠시 묵념을 하자고 제안했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이 모여 자신이 책을 읽으며 밑줄 그었던 부분을 낭독하고, 자연스레 자신만의 속 깊은 이야기까지 나누던 자리, 그 기운들이 시인의 가슴을 울리고, 그것은 다시 시인의 마음을 통해 네팔로 이어졌다.
지난해 가을, 조 시인은 일주일 동안 네팔의 한 시골 마을에 묵었다고 했다. 그는 그 마을을 찾은 첫 번째 외국인이었단다. 젊은 사람들은 도시로 나가고 어르신들밖에 없던 그 마을에서 그는 있는 것 없는 것 살뜰하게 챙겨주는 어르신들과 깊은 정을 쌓았다. 그런데 그 마을이 지진으로 초토화됐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묵념을 마치고 그는『우주는 네가 시작하기만 기다리고 있어』의 한 구절을 낭독했다.
“기적이 일어나길 기다리는 것보다 기적을 만드는 것이 훨씬 더 신날 거야.”
기적을 기다리는 것도 좋지만 기적을 만드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느냐며 작게라도 함께 ‘네팔의 기적’을 만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시인의 제안에 사람들은 환한 웃음과 고갯짓으로 답했다.
우주는 지난 4월 28일의 봄밤이 이렇게 흘러가리라 예측했을까? 굳이 네팔까지 거론하지 않더라도, 서로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던 각각의 사람들이 한 권의 책을 매개로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작은 기적’이 일어나리란 걸 우주는 알고 있었을까? 『우주는 네가 시작하기만 기다리고 있어』 출간 기념으로 샨티출판사가 서울 대흥동 숨도아카데미에서 마련한 ‘밑줄 낭독회’ 이야기다.
이 책은 지독한 우울증과 만성 건초염을 앓으며 무기력증에 빠져 있던 저자 샬롯 리드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글과 그림을 매일 페이스북에 올린 것을 묶은 것이다. 이날 자리에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이 책의 번역자이기도 한 가수 최고은과 시인이자 여행가로 많은 젊은이들이 멘토로 삼는 조병준이 함께했다. 최고은은 이 책을 번역하면서 한 구절 한 구절 되씹어 읽고 복기를 하다 보니 저자와 자신 사이에서 여러 모로 공통점도 발견하게 되고 그러면서 치유도 되고 용기도 얻게 되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따로 그었던 밑줄, 낭독을 하자 하나의 울림이 되다
이 자리에 함께한 독자들은 마음 가는 구절에 밑줄을 그은 자신의 책을 들고 왔다. 출판사에서는 책 속 한 구절을 써 넣은 쪽지도 따로 마련해 놓았는데, 독자들은 입장을 하며 글귀가 적힌 쪽지를 하나씩 집어 들었고, 마치 포춘 쿠키 속 문구를 펼쳐보듯 조심스레 쪽지를 펼치며 그 안에 담긴 구절을 우주가 주는 사인sign처럼 여기기도 했다.
사람들은 어떤 글귀에 밑줄을 그었을까? 그 구절이 자신의 무엇을 건드렸던 걸까? 처음 만난 사이임에도 사람들은 자신의 속 얘기를 마치 오랜 친구 앞인 듯 털어놓았다. 그리고 그런 솔직함이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최고은의 밑줄 낭독과 소감 나누기를 시작으로 독자들의 이야기가 자연스레 이어졌다.
“넌 이미 무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되고 싶은지 다 알고 있고, 네 문제에 대한 답도 알고 있어… 네가 영혼을 가진 이유가 그거 말고 달리 뭐가 있겠어?”(153쪽)
“‘영혼을 가진 이유’라는 말이 와 닿았어요. 영혼에게도 힘이 있구나 싶었죠. 저는 내향적이라서 쉽게 상처받거나 절망하는 편이에요. 스스로를 괜찮다며 다독이지 못하고 슬퍼만 하는 캐릭터인데, 영혼을 가진 이유가 있다면 영혼에게 기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참 좋았어요.”
“나쁜 말들을 자꾸 되뇌면, 네 마음은 그걸 믿기 시작할 거야.(다행히도 좋은 말을 할 때도 같은 효과가 있어!)”(69쪽)
“어제 저녁 가슴이 많이 아픈 일이 있었는데, 아침이 되었다고 금방 회복이 되진 않더라고요. 그런 상태에서 학교로 출근했는데 중학생 남자아이 셋이 와서는 내게 “여전히 아름다우세요”라고 해요. 너희들 엄마한테도 그렇게 하느냐고 묻고는, 그 말을 엄마에게 그대로 하는 과제를 수행하면 과자를 주겠다고 했어요. 아이들이 농담처럼 던진 말이 제 아픔을 내려놓게 하고 웃음꽃을 피게 했죠. 그렇게 나쁜 말은 상처로 남고 좋은 말은 사람의 생명을 회복시키는 것 같았어요. 이 구절이 바로 이런 얘기를 그대로 들려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넌 선택할 수 있어. 다른 누군가의 방식을 따를 수도 있고, 너만의 방식을 만들 수도 있어.”(25쪽)
“전 이 책을 알지 못했는데 아내가 이 자리에 제 아이디로 신청을 했어요. 출판사에서 전화가 와서 깜짝 놀랐죠. 지금 저는 재취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남중ㆍ남고ㆍ공대를 나왔고 공대에서도 건축공학을 전공했어요. 시공사에서 현장 관리를 했는데 삶이 각박하고 말도 거칠어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싶어 쉬다가 아이가 생겨서 재취업을 했습니다. 다시 들어간 곳이 건설사 AS관련 팀이었는데 현장보다 더 힘들더군요. 아내와 다시 상의해서 또 쉬게 됐습니다. 이게 옳은 선택인지, 잘못 생각한 것은 아닌지 고민하던 차인데, 아내가 응원을 해줘서 이 자리에 왔어요. 이 구절이 정말 가슴에 와 닿았는데, 내가 생각한 대로 옳다고 믿고 가고 싶습니다. 이런 자리를 오게 해준 아내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네요.”
“꿈을 살아라, 꿈을 꾸지만 말고…”(205쪽)
“딸이 먼저 읽고 내게 건네줘서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읽으면서 이게 다 내 얘기 아닌가 싶었어요. 모범생이던 아이가 대학을 안 가겠다며 고2 때 자퇴를 하겠다고 했어요. 뭘 할지 인생 계획을 일주일 안으로 짜 오라고 하니 하루도 안 돼서 가지고 오더군요. 가수가 되고 싶대요. 그때 마침 세월호 참사가 터졌던 때인데, ‘그래, 하고 싶은 일 하며 살아야지’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아이의 결정을 존중하기로 했어요. 지금은 아이가 보컬 학원을 다니고 학교 대신 콘서트장을 쫓아다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무척 행복해해요. 이런 사실을 받아들이고 ‘꿈을 살라’고 이렇게 말할 수 있기까지 사실 제 자신과의 싸움이 치열했습니다. 과거에 저는 정말 극성스러운 엄마였거든요. 그런 내가 아이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기까지 쉽지 않았죠. 지금은 아이가 행복해해서 참 좋고 고마워요. 자기가 뭔가를 하겠다는 꿈이 있다는 게 감사하고요.”
함께 온 아이가 엄마 뒤를 이어 말을 꺼냈다. “제 꿈이 음악을 하는 건데요, 무대를 볼 때마다 꿈을 더 다지게 돼요. 그러나 꿈을 이루기 위해선 해야 할 것이 많은 것 같아요. 때로는 그게 귀찮아질 때도 있어요. 핑계를 대고 게으름 피운 적도 있고요. 저도 이 책에서 이 구절을 읽고선 꿈을 살기 위해서는 의지를 갖고 더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요. 이 책을 보면 이 구절이 제일 먼저 떠올라요.”
“받아들임은 끝내주는 진통제다.”(33쪽)
“아들이 열 살인데, 이 책을 아들에게 한 장씩 읽어주는 것이 요즘의 재미입니다. ‘받아들임은 끝내주는 진통제다.’ 이 구절이 꽝하고 머리를 쳤어요. 끝내주는 진통제, 정말 마음에 와 닿더라고요. 오늘은 사실 제겐 특별한 날이에요. 남편이 떠난 지 6주기 되는 날이거든요. 그러나 이날이 슬픈 날이 아니라 그냥 이별한 날이라고 사실 자체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어요. 훨씬 편안해지고 행복해졌죠. 이 책은 내가 처한 상황을 간단하게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멋진 책이란 생각이 듭니다.”
“존재함이 행함보다 훨씬 더 만족스러워.”(162쪽)
“이 구절을 보면서 혼자 많이 울었어요. 유치원생 딸 둘을 키우고 있는데, 성숙하지 못한 영혼이 아이를 낳아 기르다 보니 아이가 내 정신줄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경우가 참 많이 생겨요. 아이들이 예쁘고 좋긴 한데 내 자신이 없어지는 것 같아 힘들었어요. ‘나는 누군가?’라는 질문도 많이 하게 되고, 심지어 집을 나가고 싶은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지금 역할에 충실해야 하니 질문을 잊고 삶으로 돌아가곤 하는데, 가끔씩 그런 과정을 통해 내 자신이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 구절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어요.”
“진정한 자유를 맞보려면 상황을 컨트롤하려고 하지 마!”(63쪽)
“어제 이사를 해서 비로소 독립을 하게 됐어요. 이사 준비를 하면서 모든 계획을 철저히 짜놨는데, 어제 완벽하게 어그러졌지요. 설상가상 청소를 하다가 밖으로 나왔는데 문이 안에서 잠겨버린 거예요. 열쇠도, 핸드폰도 아무것도 없는데 말예요. 하는 수 없이 옆집 사람을 찾아갔는데 적극 도와주었어요. 그러면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는데, 이야기가 너무 잘 통해서 나중엔 문이 잠겼다는 상황은 잊고 세 시간 넘게 우리가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세 살 위 언니였는데 좋은 이웃을 만난 겁니다. 사람 일은 한 치 앞도 모르기도 하고, 해석하는 것에 따라서 정말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경험이었습니다. 내가 어떻게든 상황을 컨트롤하려고만 했다면 생길 수 없는 일이었죠.”
“베티, 뭐하고 있어?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 현대 사회는 뭔가 ‘하는 것’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 같아. 그래서 난 그냥 ‘존재하는’ 중이야.”(229쪽)
“지금 휴직중이에요. 지인들이 전화를 걸어 뭐 하냐고 많이 묻는데요, 하루는 그런 질문에 ‘숨 쉬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가 되어야 하고 보여줘야 하고, 그것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야한다고 하는데, 저는 그런 것에 지쳐 있는 것 같아요. 이 구절이 그래서 크게 와 닿았습니다. 잔인한 4월이 지나가고 있는데, ‘그동안 난 뭐했지?’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내가 잘 존재하는 것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지금은 해요. 지구 다른 곳에는 지진으로 연기처럼 사라진 사람들도 있는데, 이 자리에 내가 있어서 고맙다, 잘 존재하는 것이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겠다 싶습니다.”
조병준 시인도 책의 한 구절을 인용해 자신의 이야기를 나눠주었다. “세상에 그냥 뚝 떨어지는 일은 없더라고요. 미처 예상치 못한 멋진 일들이 일어나는 순간은, 이 책에서도 말하듯이 우리가 계획한 것들이 잘못되고 있을 때인 것 같아요. 뭔가 잘못될 때 멋진 만남도 생겨나요. 여행을 하다 보면 그럴 때가 참 많죠. 가령 기차를 놓칠 때 훨씬 재미난 일이 생깁니다. 이 책의 저자는 원하거나 계획했던 일이 잘 안 됐을 때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잘됐네. 돌아가면 되지. 늦게 가면 되지’ 그렇게 생각하자고 우리에게 말을 합니다. 이런 내용이 빤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그럼에도 우리에게 진실하고 힘있게 들리는 건 아마도 이 친구가 아팠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살면서 몸으로, 마음으로 아프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이 젊은 저자는 그것을 깊이 들여다보면서 삶 속에 제대로 승화시킨 것 같아요. 그래서 한 마디도 허투루 들리지가 않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어서 참 고맙습니다.”
최고은도 가수가 꿈인 젊은 친구에게 이렇게 한 마디 했다. “많은 사람들이 직업으로 꿈을 삼는데, 저는 오히려 태도, 책임감을 갖는 것, 어떻게 살 것인가가 무엇이 되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직업이 곧 나는 아니니까, 그 직업을 갖고 있는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가 더 중요한 꿈인 것 같습니다. 음악을 하면서 나는 어떤 사람으로, 어떤 태도를 지니며 살고 싶은가를 많이 생각해요. 하나를 깨달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고민이 찾아오고, 그것을 해결하고 나면 또 다른 고민이 찾아오고…… 그러니까 내가 무엇이 되는지 보다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지가 더 중요할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러면 용기를 잃지 않고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메시지가 이 책에 담겨 있고요.”
밑줄낭독회의 마지막은 올해 발간된 <제비다방 컴필레이션 2015> 음반에 수록된 최고은의 <로자>라는 노래를 들으며 막을 내렸다. “나는 아주 밑바닥도 아주 위에도 가봤는데, 거기에는 항상 로자라는 아이가 있었어. 그 애가 항상 너를 안전한 곳으로 이끌어줄 거야……” 곡을 쓰던 중 이 책의 긍정적 에너지에 탄력을 받아 완성했다는 노래였다. 우주는 우리가 결단하고 시작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이 책의 메시지가 최고은의 멋진 음색과 겹쳐 더욱 힘 있게 다가오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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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는 네가 시작하기만 기다리고 있어 샬롯 리드 저/최고은 역 | 샨티
이 책의 원 제목은 영화 스타워즈의 “포스가 너와 함께 하기를”(May the force be with you)이란 말을 차용한 “좋은 생각들이 너와 함께 하기를”(May the thoughts be with you)이다. 책 제목처럼 발랄하고 톡톡 튀는 115개의 긍정 메시지들이 독자들의 영감을 자극한다. 짧고 힘 있는 문장과 저자가 직접 그린 삽화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읽는 이들로 하여금 얼굴에 미소를 머금게 할 뿐 아니라 책을 쥐는 순간 단숨에 읽어 내려가게 될 만큼 흡입력도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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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