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서 “소설 『파리 빌라』, 예쁜 감성의 책은 아니에요”
붉은색 표지에는 ‘파리 빌라’라는 제목과 함께 ‘윤진서 소설’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찍혀 있다. 작가 윤진서는 “내게 글을 쓴다는 것은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을 이제 보게 하는 일”이라고 했다. 배우 윤진서는 이제 소설이라는 또 하나의 창작물에 매료된 듯 보였다.
글ㆍ사진 엄지혜
2015.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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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산문집 『비브르 사비』를 펴냈던 배우 윤진서가 소설 『파리 빌라』로 독자들에게 두 번째 인사를 청했다. 『파리 빌라』는 이별 후 여행을 떠난 한 여자와 그녀의 친구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파리, 뉴욕, 아테네 등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도시는 실제 윤진서가 여행했던 곳이다. 10여년 전부터 글을 써왔다는 윤진서는 “글 쓰는 일에 어떤 의미나 이유는 없다. 배우라는 직업을 갖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너무 좋아하니까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글쓴이로서의 책임감 느껴


“처음부터 소설을 써야겠다는 마음은 아니었어요. 워낙 글을 쓰는 게 취미에요. 여행을 다닐 때나 평상시에도 글을 많이 쓰는데, 글이 모아지면 하나로 이어지게 편집도 하고 그래요. 저에게 글은 취미이자 놀이에요. 『파리 빌라』를 쓰게 된 건, 어느 날 제가 돌아다녔던 공간에 대한 생각들을 글로 적다 보니 제 경험만으로는 소재가 조금 부족하다 싶었어요. 그래서 허구의 인물을 집어넣고 내가 실제로 느끼진 않았지만 느꼈을 법한 이야기들을 담았어요. 소설을 쓰면서 별별 생각을 다 했어요. 내가 왜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지, 내가 왜 힘들자고 이런 일을 시작했나. 그런데 어느 날 마음에 드는 문장을 쓰면 기뻐서 미칠 것 같았어요. 또 어느 날은 재능도 없는 내가 왜, 이런 걸 쓰기로 했나 싶기도 했고요.”

 

1년 반 동안 『파리 빌라』를 붙들고 있었던 윤진서는 “결국 죽을 것 같을 때, 살아야 하니까 소설이 끝이 났다”고 했다. 산문집을 썼을 때는 내 경험만 잘 전달하면 그만이었지만, 소설은 달랐다. 한 명이라도 공감하지 못하면 책을 내는 데 의미가 없었다.

 

“산문은 결국 제 경험이나 느낀 것만 쓰면 되니까, 누구도 딴지를 걸 수 없잖아요. 내가 쓴 건데 누가 뭐라고 하겠어요. 하지만 소설은 허구니까 공감이 되지 않거나, 누군가 ‘이렇지 않아?’라고 했을 때, ‘몰라’라고 말할 순 없는 거고요. 글쓴이로서 책임도 져야 하니, 이것저것 만질 게 많았어요. 수정을 정말 많이 했어요. 버전이 몇 가지 있을 정도였어요. 어떻게 연애를 마무리 지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두 달마다 계속 다른 버전의 책을 주니까 편집자가 ‘정말 힘드시겠어요’라고 했어요.”

 

수십 번의 수정이 있은 후 『파리 빌라』가 탄생했다. 소설 속 주인공은 혼자 여행을 떠났고 또 다시, 둘이 아닌 혼자로 존재했다. 일찍이 완성된 소설을 읽은 그녀의 친구는 “윤진서스럽다”는 평을 남겼다.

 

“친구가 보는 내가 그렇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글로써도 저는 방황을 한 거죠. 이런 저런 버전을 쓰다가 결국 스스로 읽기에 자연스러운 버전으로 온 거니까요. 밝게 끝내고 싶었던 욕심도 있었어요. 에너지를 줄 수 있고 용기를 얻을 수 있는. 해피 엔딩도 많이 생각했어요. 실제 연애도 그렇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소설에는 윤진서가 직접 찍은 사진이 곳곳에 실렸다. 글과 적합한 사진을 꼼꼼히 골랐을 법한데, 윤진서는 “사진에 신경을 쓸 만큼의 여력이 없었다”고 했다. 소설을 출간한 달 출판사 이병률 대표의 감각으로 사진은 선택됐다.

 

“글에 민감해서 토시 하나만 틀려도 편집자랑 몇 날 며칠을 이야기했거든요. 그런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 없었어요. 표지 사진은 파리에 사는 아는 지인한테 받은 건데, 예전 표지는 제가 생각했던 이미지가 아니었어요. 제가 생각하는 감성이 아닌 예쁜 표지였거든요. 『파리 빌라』가 예쁜 감성의 책은 아니잖아요.”

 

여배우가 쓴 소설. 누군가는 예쁜 이야기를 기대할지 모르지만 소설은 꽤 건조하고 적나라하다. 감정을 숨긴 듯하지만 발가벗은 듯하기도 하고, 주인공의 방황에 퍽 저자의 갈등이 비치는 것 같다.

 

“소설에 나오는 모든 여자들, 그게 다 저인 것 같아요. 제가 공감한 거니까요. 친구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도, 한 인간으로서 한 여성으로서 궁금했던 것들을 스스로 묻고 답했던 것 같아요. 그 부분만이 아니라 다른 부분들도 제가 고민했던 부분들인 것 같아요. 책을 쓰면서 좋았던 건 이해의 폭이 많이 생겼다는 거예요. 소설은 한 쪽 입장만 쓰지 못하고 다른 쪽 입장에 대해서도 써야 하잖아요. 산문과 소설의 다른 지점이 그게 아닐까 해요. 내가 보았던 것들이 결국은 여러 개가 되는 지점들이 생기면서, 조금 더 멀리서 보게 되니까. 그런 게 결국 자신한테 성장이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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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에서 새로운 것을 찾는 능력


『파리 빌라』를 읽다 보면 윤진서가 실제로 좋아하는 공간들을 발견할 수 있다. 윤진서는 “레스토랑 이름도 친절하게 써 있으니 꼭 한 번 가봐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평소 여행이 일상인 윤진서는 여행지에서 새로운 것을 찾는 일이 습관이자 특기다.

 

“누구보다 잘해요. 저를 따라올 사람이 없기 때문에 여행 정보 같은 건 누구한테 묻지 않아요. 장담하건대, 제가 낫더라고요(웃음). 여행을 가면 현지에서 사람들과 잘 놀아요. 적응이 빠른 것 같아요. 그래서 여행을 계속 다닐 수 있는 것 같고요.”

 

촬영 스케줄이 없는 날, 윤진서는 혼자 여행을 떠난다. “우리나라 고속버스 노선도를 꿰고 있다”는 그는 모자를 쓰고 버스를 타면 아무도 자신을 알아채지 못한다고 했다.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자연인 윤진서로 돌아가 여행에 집중할 때, 그저 행복하다.

 

『파리빌라』의 주인공은 “원래부터 나란 인간은 척을 잘한다. 초연한 척, 관심 없는 척, 괜찮은 척. 사실 그렇게 척을 하다보면 스스로도 그렇게 믿게 되는 순간이 온다.”(133쪽)고 했다. 세상에 ‘척’이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윤진서에게 “당신이 잘하는 ‘척’도 있지 않냐?” 물었더니, 이내 부정했다.

 

“요즘 사람들은 척을 하느라 잘 사랑에 빠지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쿨해지는 것 같아요. 남들 눈치를 본다는 것에 꼭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저는 전혀 그런 인간이 아니에요. 그런 게 필요한 인간이죠.”

 

소설 속 나는 ‘척’을 잘하는 사람이었지만 여행을 시작한 이후로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것 마냥 자주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 내가 알아왔던 척을 잘하는 여자는 사라지고 최소한의 슬픔도 숨길 수 없는 여자가 되어버렸다.”(133쪽)고 썼다. 스스로에게 솔직한 것, 주저하지 않는 것. 아마 윤진서가 여행을 통해 배운 것일지도 몰랐다.

 

최근 윤진서는 시인 윤희상의 『소를 웃긴 꽃』, 박민정의 소설 『유령이 신체를 얻을 때』, 윤고은의 『알로하』를 재밌게 읽었다고 했다. “작가와 나이의 갭이 있으면 얻게 되는 게 많은데, 젊은 여성 작가들의 책을 읽으면 고민하는 지점이 비슷해서 공감하고 싶을 땐 또래 작가의 책을 많이 읽는다”고 했다. 작가의 출생년도까지 알고 있는 윤진서에게 “그런 것도 알아보고 읽어요?”라고 물으니, “당연한 일 아니냐”며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보통 한 권의 책을 끝내면 모든 저자들이 쉬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윤진서는 달랐다. “아직 젊어서 그런가 봐요”라며 “소설? 산문? 둘 다 생각하고 있는데, 뭔가 더 진전이 빨리 되는 쪽으로 쓰고 싶다”고 말했다.

 

“시나리오나 영화 연출, 생각도 항상 많이 하죠. 그런데 뭔가 미칠 듯이 ‘이건 꼭 만들어야겠어’ 이런 건 아직 없었어요. 아직은 안 생기더라고요. 만약에 생긴다면 해보고 싶고, 해볼 것 같아요. 생기느냐의 문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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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빌라윤진서 저 | 달
배우 윤진서가 소설 『파리 빌라』를 펴냈다. 작가는 찬란한 사랑의 순간과 그 사랑이 지난 후의 아픔, 여행한 도시에서 마주한 감정의 입자들을 사랑에 대해 다른 정의를 내리는 두 여자의 이야기를 통해 건조하고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가상과 실제, 과거와 현재, 꿈과 현실, 사랑과 사랑 사이에서 소설은 수많은 경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다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인간에 대한 애정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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