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먹는 브랜드 디자이너는 어떻게 성공했나!
그는 ‘브랜드(디자인)이 존재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할 수 있고 마음을 나누는 디자인을 할 수 있으면 욕먹어도 좋다’는 심정이었다. 그는 욕을 먹는 것이 좋은 건 아니지만, 욕먹어도 좋다는 것은 책임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책임질 수 있음. 그러한 책임의식 덕분에 그는 디테일을 꼼꼼하게 챙기면서 일을 완성하도록 만들었다.
글ㆍ사진 김이준수
2015.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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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구나, 미쳤어!”
이런 말을 들어도 멈추지 말 것.
집요하게 끝까지, 지쳐도 끝까지..
보이지 않는 본질과 디자인의 이유를 찾아내
보이게 만드는 것.
그것이 디자이너의 역할이다.

 

모든 디자인에는 이유가 있으며 그 이유는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 ‘브랜드 디자이너’가 있다. 그는 한 프로젝트에 5년여를 매달렸고, 마침내 그렇게 출시된 제품은 세계 3대 디자인상 중 하나인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상을 수상했다. 그는 브랜드 디자이너 엄주원이다. 그가 아이덴디티 지자인과 브랜드 전략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이유 있는 디자인』이라는 책을 펴내고, 지난 7월 30일, 서울 서교동의 더 갤러리에서 독자들과 북토크&칵테일 파티를 가졌다.

 

 

스타일은 강한 신념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쓰는 ‘브랜드’는 상징체계와도 같다. 상품이나 정체성을 구분하는 용어로 쓰인다. 그런 브랜드의 어원을 따져보면, 고대 스칸디나비아 목동들이 썼던 ‘Brandr(불로 지지다, 불에 태우다)’에서 나왔다. 가축 등에 불로 지진 낙관을 찍어서자신 소유임을 표시하기 위함이었다. 그것이 지금에는 상품이나 서비스 등을 차별하기 위해 만든 모든 것들의 결합체인 브랜드로 개념화됐다.

 

아이덴티티 디자이너로 시작해 지금은 브랜드 디자이너라고 다소 어색하고 생소한 이름으로 불린다는 엄주원. 시오노 나나미가 언급했던 “스타일은 겉발림과는 반대다. 그것은 강한 신념이다”라는 말을 꺼내며 스타일에 대한 이야기를 건넸다.

 

“스타일은 내적인 강한 의지나 신조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스타일이나 신념을 가지려면 욕을 먹어도 좋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이런 생각이 디자인-디테일-혁신으로 이어진다고 본다.”
 
그는 이것을 ‘디자인 → 디자人’ ‘디테일 → 장인정신’으로 설명했다. 이를 통해 혁신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 좀 더 풀어서 설명하자면 디자인은 사람들의 먹고사는 문제에서 시작했기에 생존을 위해 터득한 인간의 신체에서 진화하고 발전했다는 것. 이어 브랜드에 있어서 장인정신은 나만이 가질 수 있는 독창적인 스토리의 출발점이 된다. 그는 유홍준의 인용했다.

 

“모든 사람이 장인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장인정신은 가질 수 있다. 장인정신은 감동이다. 진실된 자세와 마음이다.”(유홍준, 『우리 시대의 장인정신을 말하다』)

 

 

욕먹는 디자이너 엄주원

 

엄주원은 자신이 주로 듣는 세 가지 욕을 언급했다. 하나가 “무엇 하러 그런 것까지 신경 쓰냐! 작작 좀 해!” 그에게 디자인은 최종 결과물로 나와 소비자의 손에 건네질 때까지 세세한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다.

 

“애플을 보면 제품 자체의 디자인도 훌륭하지만 소비자에게 전달될 상황을 염두에 두고 패키지의 섬세한 부분까지 신경 쓴다. 잡스에 대한 영화(<잡스>)를 보면, 컴퓨터에 들어가는 폰트 하나 때문에 노동자를 해고하는 장면이 나온다. 잡스는 작고 사소한 요소들이 모여 애플을 만든다고 여겼다.”

 

그는 세세한 것에 신경을 써서 좋은 평가를 얻었던 예로 ‘조니워커 블루 5초 패키지’를 들었다. 그는 면세점에서 선물용으로 구입하곤 하는 조니워커 블루 패키지를 단 5초 만에 포장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조니워커 블루에 슬리브 방식의 패키지를 고안함으로써 이 제품의 매출은 이전보다 150% 성장했다. 이 조니워커 블루 5초 패키지의 성공으로 그는 전 세계적인 선물용 패키지 디자인 경쟁PT에 초대됐고, 프랑스, 영국, 대만을 비롯한 국내 디자인 회사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었다.

 

“내 디자인이 해외로 수출되다니, 짜릿하고 벅찼다. 조니 워커 블루 면세점 패키지가 바뀐 후, 매출은 150퍼센터 성장하고, 경쟁 제품군에서 판매 1위를 차지했다. 소비자가 느끼던 문제점과 원하는 답을 정확히 제시했기에 거둔 성과였다.”(129쪽)

 

그가 듣는 또 다른 욕은 “극소심! AAA형”이다. 이것을 언급하면서 그가 설명한 예는 제너럴 밀스의 케이크 믹스. 1950년대 미국 식품회사 제너럴 밀스는 물을 붓고 섞어 오븐에 구우면 케이크가 완성되는 제품인 케이크 믹스를 출시했다. 기대가 컸지만 시장의 반응은 차가웠다. 이유를 알아보니 너무 편했기 때문이었다. 가족에게 정성이 들어간 음식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주부로서의 책임감이 이 간편한 제품을 선뜻 사지 못하게 만들었던 것. 제너럴 밀스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믹스에서 달걀 성분을 빼고 케이크를 만들 때 달걀을 집어넣도록 만들었다. 

 

“브랜드 디자인은 자기의 만족도 있지만 누군가와 소통을 해야 한다. 기업이나 브랜드의 본질, 소통의 핵심 키워드를 먼저 찾아내야 한다. IDEO 브랜드 디자이너 ‘폴 밴넷’은 ‘디테일 안에서 디자인을 발견하기’라는 주제로 TED를 했다. 그는 휠체어에 자전거의 거울을 묶었다. 환자가 의사와 간호사에 의해 보조를 받을 때도 거울을 통해 그들과 대화할 수 있도록 했다. 작은 고안으로 상호작용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는 또 하나의 예를 들었다. 고구마 씻는 세탁기. 중국의 한 가전회사가 세탁기를 농민들에게 제공했다. 그런데 농민들은 고구마를 세탁기에 씻곤 했다. 그러다보니 세탁기는 자주 망가졌고 A/S요청이 계속 들어왔다. A/S기사들은 농민들이 무식해서 그런다며 불평했지만 이 보고를 들은 사장은 고구마 씻는 세탁기를 만들라고 지시했다. 이 고구마 씻는 세탁기는 히트를 쳤고, 농민들 마음을 헤아려줬다며 이 브랜드의 로열티도 크게 상승했다.

 

“고객들의 불만에 대해 무식하고 몰라서라고 생각하지 말고 왜 그랬을까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좋다. 진정한 발견, 진정한 혁신은 소소하게 살아가는 현재에 있다.”

 

그가 듣는 욕에는 이런 것도 있다. “미쳤구나, 미쳤어 때려치워!” 내부적으로 가장 많이 들었던 욕이라고 했다. 한국의 전통주인 ‘화요’의 브랜드를 리뉴얼할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욕이었다. 장장 5년에 걸친 작업이었다. ‘한국에 이런 술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광주요 그룹 회장의 뜻에 함께하고 싶었던 브랜드 디자이너의 미친 작업. 화요 뚜껑만 수천 개, 모법만 수백 개를 만들었다. 햇수로 5년여, 징그럽다며 그만하라는 소리를 숱하게도 들었다. 하지만 멈추지 않고 신념을 끌고 간 덕분에 화요는 ‘레드돗 디자인 어워드(reddot design award) 2013’에서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디자이너로서 화요라는 프로젝트를 만난 것은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화요의 브랜드 리뉴얼을 중요 사안으로 판단, 디자이너와 함께 발맞춰 수많은 아이디어를 내고 고민해준 클라이언트 덕분에 일방적 보고가 아닌 쌍방향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었다.”(102쪽)

 

“작작 좀 해”
“극소심”
“미쳤구나, 미쳤어”


이렇게 세 개의 욕은 그에게 일상다반사였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는 ‘브랜드(디자인)이 존재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할 수 있고 마음을 나누는 디자인을 할 수 있으면 욕먹어도 좋다’는 심정이었다. 그는 욕을 먹는 것이 좋은 건 아니지만, 욕먹어도 좋다는 것은 책임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책임질 수 있음. 그러한 책임의식 덕분에 그는 디테일을 꼼꼼하게 챙기면서 일을 완성하도록 만들었다. 브랜드 디자이너의 중요한 덕목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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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화요 브랜드 디자인을 할 때의 오랜 시간이나 비용 등은 그 모든 것을 감수하면서 한 건가? 브랜드 디자인을 할 때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

 

감수하면서 했다. 대한민국에 이런 술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게 5년을 버티게 했다. 그것도 4년째에는 너무 힘들더라. 그럼에도 여기서 포기하면 한국의 술 브랜드 디자인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다시는 오지 않겠구나 싶어서 그 모든 것을 감수하면서 진행했다. 내게는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될 때까지 가보는 게 중요했다. 또 디자인은 기호이면서도 클라이언트의 성향에 휘둘리기도 하지만 그런 것들을 떠나서 브랜드는 분명 자기 역할이 있기에 태어나는 것이다. 그 역할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표현하고 있는지 스스로 질문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직장을 다니면서도 디자이너의 길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디자인이 분야가 넓어지고 다른 것과 섞이고 있는데 정체성을 어떻게 확립해서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디스커버리아이’라는 회사는 모두가 아는 유명 기업은 아니다. 이 회사도 작은 홈페이지에서 시작했다. 1~2년 차에 회사를 그만 접어야 하나 등의 고민을 많이 했었지만 차곡차곡 일을 진행했다. 나는 아이덴티티 디자이너에서 시작했다. 패키지, 제품 등 한 브랜딩을 할 때 총체적인 모든 것이 들어간다. 전화를 받는 직원의 매너까지도 아이덴티티다. 패키지 디자인이 들어오거나 하고 싶지 않은 일이 들어왔을 때도 아이덴티티를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다. 아이덴티티 디자인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여전히 어려워한다. 심볼 하나를 만들 때도 정말 많은 고민과 생각을 한다. 사회적인 시선은 그저 동그라미 그리고 세모 그리는 것으로만 생각한다. 그럼에도 마음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당신은 그렇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아니야’라고 생각해서다.

 

디자인과 예술,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고 싶다. 디자인을 할 때 예술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디자인과를 나오면 주변에 예술을 하는 친구들이 있기도 하다. 디자이너를 상업적(커머셜)이라며 인정하지 않으려는 예술가들도 있다. 내 생각에 디자인은 철저히 대중과 소통해야 한다. 그게 예술과 디자인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디자인은 온전히 내 것이 아니다. 브랜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중간에서 표현하는 것이 디자이너가 아닐까. 브랜드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보면 좋은 클라이언트는 본인의 성향을 브랜드에 개입시키지 않는다. 개인이 아닌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 철학 등이 확실하면 개인의 취향은 들어가기 어렵다.

 

상품 기획자인데, 디자이너와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좋은 방법이나 접근 방식이 있을까?

 

내부적으로 시안이나 아이디어가 나왔을 때도 여러 기준 설정에 맞춰서 말한다. 어떤 체크포인트를 가질 것인가를 정리해보면 어떨까. 아이디어도 많고 예쁜 것도 많은데, 브랜드와 관련된 생각들의 기준을 맞춰보고 대입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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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있는 디자인 엄주원 저 | 두성북스
삼성화재 서비스 아이덴티티, 조니 워커 블루 면세점 패키지 등 실제 브랜딩 및 브랜드 디자인 사례들이 자세히 실려 있어 브랜드 디자이너를 꿈꾸는 이들에게 실용적인 길잡이 역할을 하기에 손색이 없다. 브랜딩 전략을 세우는 동안 디자이너가 끝까지 끌고 가야 할 원칙은 무엇인지, 브랜드 디자이너는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 실제 현장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이유 있는 디자인』은 꼭 봐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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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