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을 치료한다는 의사 입에서 “우리는 누구나 죽잖아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뜨끔한 건 왜였을까. 병원이라는 공간이, 병이라는 것이, 환자의 삶과 보호자의 고됨이 나와, 평범하고 건강한 일상과는 유리된 별도의 영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을지대 병원 가정의학과 김정환 교수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사람아, 아프지 마라』를 가만히 읽어 내려가다 보면 이것은 역시 당신과 나의 이야기고, 우리는 누구나 아프고, 아프지만 꿋꿋하게 살아가는 생활인이라는 사실이 새삼 떠오른다. 그 위태롭고도 단단한 삶을 엿보는 것으로 놀라운 삶의 내밀한 속살을 발견하게 되는 역설, 그것이 한 의사가 애를 써서 환자들의 삶에 더 관심을 갖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기록한 이유라는 생각을 했다.
“너희가 만나는 것은 병이 아니라 사람이다. 너희들은 과연 사람에 대해 얼마큼 관심을 가지고 있느냐.”라며 도끼 같은 질문을 던진 은사의 말 한 마디에 누군가에게 가장 필요한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의사의 삶을 선택한 김정환. 그의 따뜻한 시선과 환자에게 건네는 애정의 말이 더 멀리, 더 넓게 퍼져 더 많은 사람들이 아프지 않기를 기대한다.
이 이야기는 가족 이야기
기록해야 할 작고, 소중한, 아름다운 이야기였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의 한 구절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가 떠오르기도 했어요. 무엇보다 글을 시작하게 한 장면이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하더라고요.
책을 낼 생각으로 썼던 건 아니에요. 맨 처음 썼던 글은 책에는 안 실렸는데요. 그림처럼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장면이 있었어요. 건강 검진을 받고 결과 상담을 하러 부부가 함께 왔는데 부인이 위암에 걸렸어요. 이야기를 하는 동안 말을 전달하는 저도 굉장히 힘들지만 듣는 사람도 사실 힘들잖아요. 그런데 남편이 곁에서 부인에게 계속 용기를 주는 거죠. “너도 알잖아, 별 거 아니야, 그렇죠?” 하면서 저한테 계속 동의를 구하고, 저도 “수술 하시고, 치료 잘 하시면 괜찮으실 거예요.”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그렇게 상담을 마치고 딱 일어서서 나가는데 부인이 먼저 나갔거든요. 그런데 남편이 나가질 못하고 있는 거예요. 문을 붙잡고 제 쪽을 향해 서있었어요. 그리고는 울기 시작하시는 거예요. 눈물을 겨우 닦고, 자기 말에 동의를 해줘서 고맙다고 말씀을 하고 나가셨죠. 그때 그 장면을 그림처럼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저 혼자 알고 있기엔 정말 그림 같아서요. 글도 잘 못 쓰지만 아주 건조하게 그 장면만 묘사해서 페이스북에 올렸죠. 그걸 사람들이 되게 좋아하더라고요. 위암이 어떻고, 치료가 어떻고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병에 걸린 사람들, 그들이 겪는 그 순간의 표정이나 모습을 말이에요. 그래서 주절주절 쓰기 시작한 거죠.
그 같은 장면은 이전에도 있었을 텐데, 그 순간 발화가 됐던 거네요.
별로 생각이 없었다가 진짜 우연히 한 번 글을 썼고, 그걸 사람들이 공감해준다는 걸 알았어요. 저는 의사니까 사람들이 당연히 의학적 지식을 전달하는 걸 좋아할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거죠. 소통이란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요. 그건 공감에서 오지 않으면 안 되잖아요. 공감대가 형성되는 접점이라는 건 전문적 지식이 아니라 그냥 평범하게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 가족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에서부터 나온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병원에서 일어난 일이긴 하지만 사실 병 얘기는 거의 쓴 게 없어요. 어떤 분이 ‘이 이야기는 가족 이야기’라고 하셨는데 맞는 말인 것 같아요. 이야기의 90%는 엄마와 아들, 며느리와 시어머니, 할아버지와 손자, 이런 가족 사이에서 일어난 이야기예요. 가족이란 울타리가 공감대가 가장 잘 형성되는 집단인 것 같아요. 사실은 가족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걸 수도 있어요.
거의 대부분의 글에서 ‘관계’ 안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이 나와요. 여기에 저자가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역시 그랬던 것 같군요.
정확한 지적이신데요. 어떤 질병의 발생 과정에서 치료 과정까지는 그 사람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운 경우가 굉장히 많아요. 당뇨병만 해도 그렇죠. 그건 약 잘 먹으면 낫는 병이 아니고 평소에 관리를 해야 해요. 그러려면 가족들의 도움이 있어야 하고요. 먹는 음식, 운동, 주위의 환경 모든 것들이 적절하게 잘 형성됐을 때 가장 좋은 치료효과를 기대할 수 있거든요. 다이어트만 해도 그렇잖아요. 식구들은 밤만 되면 뭐 먹는데 나 혼자 안 먹으려면 너무 힘들잖아요. 아무도 운동 안 하고 나 혼자 운동하려고 나가기 너무 힘들고요. 가족이 다 같이 동참하는 분위기가 되면 편한데 질병도 그런 부분이 무척 커요. 저는 그런 걸 많이 물어보는 편이에요.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이런 이야기를 남기고 싶었던 이유도 있었을 것 같아요. 어떤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하는 욕구가 있었던 건가요?
누가 읽었으면 좋겠다 보다 제일 읽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게 두 그룹 있어요. 하나는 의사예요. (웃음) 솔직히 말하면 창피한 게 좀 있어요. 쑥스럽기도 하고요. 너무 잘난 척하는 것 같아서요. 의사들 다 비슷해요. 표현하지 못했을 뿐인데 마치 혼자 그런 걸 느낀 양 쓴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해요. 또 하나는 너무 힘든, 몸이 너무 아픈 사람들과 보호자들은 읽지 않았으면 했어요. 적당히 아픈 사람들에게는 이 ‘아프지 마라’라는 말이 도움이 되겠지만 너무 힘든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상처가 될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도 이 정도만 아팠다면 이럴 수 있었을 텐데 우린 너무 아프잖아, 이런 것도 불가능해, 한다면 그게 더 상처가 될 수 있잖아요. 그런데 그 생각이 좀 바뀌게 된 계기가 있어요. 페이스북에 아버지가 갑자기 위독해져서 경황없이 중환자실에 들어가고 밤새 병간호를 하다가 이 책을 문득 보셨다는 분이 있었어요. 보면서 너무 위안을 얻었다고 하시는 거예요. 정말 고마웠어요. 제발 읽지 말았으면 했던 분이 읽었는데 오히려 위안을 얻었고 고마웠다고 하시는 걸 보고서 생각과 다를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그러게요. 참 뜻밖이고, 감동적이네요.
환자는 언제나 의사 생각보다 강한 것 같아요. 독자도 마찬가지 같고요. 그래서 조금 달리 생각해야겠다 싶었어요. 많은 분들이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거든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들에 대해 공감하고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어요. 그것은 이 책을 내면서 가졌던 가장 큰 목표 중 한 가지고요.
스스로 갖고 있던 편견을 깨닫는 장면도 많이 나오고, 공감 능력도 말씀했는데 이것들은 사람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애정이 없으면 알아채기 힘든 것들이잖아요.
휴머니즘인간, 이런 건 아니에요. (웃음) 말씀처럼 박애정신이 투철하거나 이런 사람은 아니고요. 다만 적어도 제게 오는 환자니까 그 사람만큼은 잘 해주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가정의학과를 지망하게 된 큰 이유 중 하나가 스승님의 말씀 때문이었는데요. 학교 다닐 때 진짜 공부 못했거든요. 주변인, 학교 주변에만 있고 학교는 안 가고 하는 식이었어요. 그러다 본과 3학년 때 은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너희들이 배우는 것은 다 병에 관한 것이다. 너희는 병에 대해 자세히 알고 후에 환자를 치료한다고 생각하지만 너희가 만나는 것은 병이 아니라 사람이다. 너희들은 과연 사람에 대해 얼마큼 관심을 가지고 있느냐.”라고요. 그때까지 저는 왜 의사가 되어야 하는지도 잘 몰랐거든요. 그 얘기는 뒤통수를 딱 때리는 이야기였어요. 가정의학과 교수님이었는데 저런 생각을 가진 의사가 돼야겠다고 하고 가정의학과를 선택했어요. 사람에 대해 관심 갖고, 그를 파악하지 않으면 질병이 대체 무슨 소용이냐는 거죠.
의사는 질병이 아니라 사람을 고치는 것
의사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할 때 진료하고, 처방 내리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겠죠. 환자에 대한 관심, 이것이 의사에게 얼마나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하나요?
의사가 해야 하는 건 질병을 고치는 게 아니라 사람을 고치는 거거든요. 눈이 나빠서 안경을 쓰잖아요. 근시는 병이지만 안경을 써서 생활이 불편하지 않으면 더 이상 병이라고 인식 안 하잖아요. 암 환자를 치료한다고 했을 때 사람을 고치는 거라고 생각하면 다른 접근이 가능해요. 말기 암 환자라서 병을 치료 못 합니다, 가 아니라 아픈 걸 덜 아프게 만들고 다른 사람과 관계 맺고 지낼 수 있도록 할 수 있어요. 죽을 때까지요. 우리는 누구나 죽잖아요. 죽을 때까지 어쨌든 편안하고, 하고 싶은 일을 다 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으면 그게 치료라고 봐요. 저는 만성질환, 당뇨병이나 고혈압, 고지혈증, 갑상선 질환 등 평생을 안고 가는 질환들을 주로 치료하는 의사예요. 그 병을 완치시킬 자신은 없어요. 하지만 병 때문에 힘들지 않도록, 일상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한다면 그게 제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아마 모든 의사들이 다 똑같을 거예요. 저처럼 책을 내지 않으셨을 뿐이지 마음은 다 똑같아요. 이 병을 다 고쳤으니 내 할 일은 끝났다가 아니라 이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고 싶다는 관점에서 치료하고 있을 거예요.
의사에 대해 오해도 좀 있었던 것 같아요. 어떤 면에서는 ‘의사도 사람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듯했어요.
그런 생각을 하시는 데에는 정보의 편중도 있지만 입장의 차이가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나는 치료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고, 이 순간만큼은 의사가 절대적인 위치가 되잖아요. 저 사람 입에서 무슨 얘기가 나올까, 나는 어떻게 치료될까에 대한 약간의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위축되기 마련이죠. 의사인데 저도 병원에 가면 똑같아요. 치과 가면 바들바들 떨어요. (웃음) 다 똑같아요. 그럼 의사는 환자와 마주쳤을 때 정말 절대적으로 강자의 위치에 있겠는가. 사실 그렇지 않아요. 여러 가지 이유로 의사들도 근엄한 표정으로 잘난 척하고 있겠지만 마음속으로는 굉장히 갈등하면서 힘든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거든요. 티를 내서는 안 되는 상황도 많고요. 티 내지 않을 뿐인 거죠. 어떤 치료를 했을 때 과연 그에게 도움이 되는가, 이건 너무 과한 것 아닐까 계속 갈등해요. 처방했을 때 보험 급여에 맞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것까지 여러 가지 복잡한 고려 사유가 있으니까 결정하거나 환자에게 설명하는 모습이 딱딱할 수밖에 없기도 해요. 그렇지만 마음속으로는 갈등하고, 고민하죠.
시선을 자신이 아닌 자신 바깥에 두고 다른 것에 관심을 두는 것은 어쩌면 글을 쓰는 욕구와도 닿아있을 것 같아요. 의사가 바쁜 건 워낙 잘 알려진 일인데 틈틈이, 꾸준히 글을 썼단 말이죠. 원래 글을 계속 써왔던 건가요?
아니요, 저는 지금도 글을 잘 쓴다고 생각 안 해요. 사람들이 잘 못 보던 이야기를 썼기 때문에 공감을 얻은 거지 글을 잘 썼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잘 쓰는 사람들의 글을 많이 보니까 글을 잘 쓰고 싶은 욕망은 생기더라고요. 책을 많이 보는 건 아닌데요. 페이스북 친구들 중에 작가들도 많아서요. 그 사람들이 쓰는 걸 보고 있으면 정말 놀라요. 제일 친한 사람은 황종권 시인, 류근 시인, 김도언 작가, 임태주 시인, 이런 분들인데요. 이분들 글 보고 있으면 장난 아니죠. (웃음) 정말 다르구나 느껴요.
그분들과의 친분이 다 SNS 통해서 이루어진 건가요?
다 페이스북에서 만났어요. 정말 신기하죠? 희한한 일인데요. 2011년에 학회 일 때문에 페이스북을 시작했어요. 그땐 어떻게 하는지도 몰랐죠. 그러다가 동창들과 친구를 맺다 보니 친구의 선배들과도 친해지게 됐어요. 제가 뭐라고 썼는데 그걸 한 선배가 보더니 시인과도 친하게 지내보라고 하면서 류근 시인을 소개해줬어요. 그 후 단국대 오민석 교수님, 박호민 시인 등 몇몇 친구들이 모여 첫 번개를 할 때 불려가게 됐죠. 술도 엄청 먹었어요. (웃음)
아무래도 집중하게 되고, 기억에 남는 건 슬픈 장면들이에요. 이런 장면에서 특히 배우게 되는 것들이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이것은 환자와 가족들의 이야기지만 또한 우리 모두의 이야기기도 하고요. 저자는 이런 장면에서 좀 더 특별한 감상을 갖고 있을 것 같아요.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존경이죠. 그가 살아온 길, 업적에 대한 존경이 아니고 그 순간에 보게 되는 존경이 있어요. 그 존경은 사실 오해에서 비롯된 것 같아요. 잘 모르는 상황에서 섣불리 판단했는데 알고 보니 정말 존경스러운 거죠. 노부부 이야기가 많은데요. 그들을 보면서 왜 존경을 생각하느냐면 ‘나도 과연 저들처럼 늙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 때문이에요. 그런 생각을 하면 정말 존경심이 일죠. 그냥 그 살아가는 모습 자체가 너무 존경스럽다는 거예요. 우리는 서로 존경할 만한 삶을 사는데도 불구하고 그걸 깊게 보지 못했을 뿐이라는 감상이 있어요. 또 하나는 다들 이유가 있다는 사실이에요. 한 할머니가 있어요. 딸의 아이를 키워주는데요. 손자 키우는 할머니들은 육아 스트레스 때문에 자기 자식들 욕 엄청 하거든요. 얘 때문에 운동도 못 하고, 외출도 못 한다고요. 그런데 이 할머니는 그런 말씀을 안 하셨어요. 나중에 보니 몸이 불편한 딸이더라고요. 그 장면을 보고 스스로 너무 미안했어요. 오해하면 안 되는 삶의 또 다른, 각자의 내면이라는 게 있구나 생각했어요.
많이들 바쁘고, 다른 삶에 별 관심 없고, 냉소적인 채로 살아가요. 그런데 이 책에 담긴 이야기들은 그런 냉소를 좀 덜어주는 이야기란 생각이 들어요. 그 뜻깊은 발견을 아이러니하게도 몸이 아프거나 상황이 좋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얻을 수 있다는 점도 의미심장하고요.
가장 냉소적이거나 차가울 것 같은 순간인데요. 그것도 사실 오해죠. 그것도 오해예요. 가슴이 뜨거운 사람끼리 앉아있는 거거든요. 의사도, 환자도 가슴이 뜨겁죠. 서로가 차갑게 보이지만 말이에요. 그러니 그 안에서는 얼마든지 뜨거운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아요.
좀 더 특별한 노력
환자를 통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것이 의사의 특권 중 하나라 생각한다고 적었는데요. 몇 년간 이야기를 적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변화한 부분도 있을 것 같아요.
기본적인 글 쓰는 마인드에서는 바뀐 게 별로 없어요. 앞으로 쓰는 글들도 그럴 텐데요. 누군가에게 어떻게 읽히길 바라고 쓰는 건 지금도 아니에요. 조심스러운 부분은 많이 생긴 것 같아요. 보는 눈이 많아지니까요. 환자 이야기니까 조심스럽죠. 그가 이 책을 볼 수도 있어요. 환자분들에게는 책 냈다고 얘기 안 했거든요. 그렇지만 우연히 볼 수도 있잖아요. 보면 자기 얘기라는 걸 아실 테고요. 그러다보니 표현을 조심스럽게 해야겠다고 생각해요.
저자 개인적인 삶 측면에서는 어떨까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고, 잘한다고 하니까 자꾸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환자 이야기를 책으로 쓰려면 환자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잖아요. 그렇지 않으면 얘기가 안 들려요. 내가 필요한 정보만 얻어갈 뿐이죠. 그 안에서 환자 삶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건 좀 더 특별한 노력이 필요해요. 생활 패턴을 파악하기 위해 묻는 거지만 저녁 식사는 어떻게 하는지, 밥은 누가 차려주는지 묻다 보면 가족 이야기가 나오죠. 오지랖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제게는 필요한 환자정보기도 하고요. 사람에게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하는 변화가 있었던 것 같아요. 페이스북에 글을 쓰고 책을 내는 과정 전체가요.
혹시 댓글에도 영향을 받나요?
별로 안 받아요. 잘 썼다, 재미있었다, 그렇게 써주시면 좋긴 하죠.(웃음) 이런 이야기 쓰길 잘했구나 생각하고요. 사실 그냥 쓰지 않거든요.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루 종일 고민하다가 쓰고 지우고 하는데요. 그렇게 쓴 글에 잘 썼다, 공감된다, 하시면 기분이 좋은 거죠. 김도언 작가가 제 책을 보고 ‘이렇게 기름기 없고, 담백한 산문은 참 오랜만이다’라고 해서 댓글로 제가 뭐라고 했느냐면 ‘담백하게 쓰려고 한 게 아니라 기름칠하는 법을 몰라서 못한 거’라고 했어요. (웃음) 정규 교육 이후 글쓰기를 배운 적이 없으니까요.
책을 계획한 것도 아니었고, 시인들과도 SNS를 통해 친구가 됐고, 살면서 겪은 의외의 일들이 참 흥미롭네요.
좋기도 한데요, 사실 좀 부담스러워요. 저는 앞으로도 글 쓰는 작가는 아니에요. 운이 좋아서 책을 한두 권 더 낼 수는 있겠죠. 그런데 앞으로도 작가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고요. 그냥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은 의사로 평생 살 거예요. 지금 이 순간은 제게 잠깐 스쳐가는 일인 것 같아요. 계속 환자 만날 거고요. 이런 일들이 환자들에게는 이 의사가 공부하고, 치료하는 것엔 관심이 없고 글 쓰고, 책 내고, 사람들 만나는 것만 좋아한다고 생각하실까봐 조금 부담스럽긴 해요. 오해는 없으셨으면 좋겠어요. 어차피 저는 의사할 거고, 학생들 가르치는 일도 계속할 거예요.
개인적으로 보면 영광스러운 일이죠. 대한민국에서 책 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 책을 내고야 세상에 이렇게 많은 책이 있다는 걸 알았는데요. (웃음)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책을 내고 싶어 하지만 못 내잖아요. 그런데 일생에 한 번 책을 냈다는 건 개인적으로는 끝없는 영광이에요. 아마 평생 제게는 두고두고 영광이겠죠.
책에 이스터 에그(영화, 책, CD, 소프트웨어, 비디오 게임 등에 숨겨진 메시지나 기능)가 있다고 해요. 멋진 아이디어예요.
출판사에서 내준 아이디어예요. 페이스북에 출판사 팬클럽이 있어요. 거기 책 제목에 대해 투표를 받았어요. 1등한 게 제목이 됐고요. 출판사에 아이디어가 많은 것 같아요. 이스터 에그도 아이디어를 주셔서 알아서 해달라고 했는데요. 이렇게 민망한 이스터 에그가 나올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어요. 그렇지만 그것대로 찾는 재미가 있을 것 같아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의사
마지막으로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이 얘기는 꼭 하고 싶었어요. 사진이요. 책에 실린 사진이 좋단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요. 이 사진을 제공하신 분은 학교 선배예요. 재활의학과 의사고요, 미국에 오래 계시다가 한국에 들어오신지 1년 정도 된 분이에요. 미국에 계신 동안 페이스북에서 알게 됐는데요. 보니까 대학에서 주민들을 위해 연 강좌에서 사진을 2년 동안 배우셨더라고요. 사진이 이 책과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안면도 없는데 다짜고짜 페이스북으로 연락을 드렸어요. 당돌하게요. 이런 사정으로 책을 내게 됐는데 선배님 사진을 책에 싣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했더니 바로 승낙하시더라고요. 그 선배님께 너무 감사한 마음에 여러 번 인사를 했는데도 인터뷰 할 때마다 이 얘기를 하게 돼요. (웃음) 글만 줄줄 있었다면 이만큼 재미있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놀라워요. 또 페이스북이잖아요. 이것으로 굉장히 많은 것들이 만들어졌네요.
저도 놀라워요.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운이 좋았던 것 같고요. 항상 도움 주시려고 하는 분들이 곁에 있었고요. 실력 없고, 공부 못했던 의대생이 대학 교수가 될 때까지도 많은 분들이 옆에서 지원을 많이 해주셨어요. 책 내는 과정도 그랬고요. 하다 보면 옆에 참 좋은 분들이 많구나 하고 많이 생각해요.
의사로서의 꿈은 뭐예요?
환자가 돌아가실 때까지 저한테 왔다가 돌아가시고 나면 자녀분이 오셔서 부고를 들려줄 만한 의사가 됐으면 좋겠어요. 가정의학과가 갖고 있는 취지, 제가 의사가 되려고 했던 취지를 생각한다면 환자가 죽을 때까지 평생 지켜주는 의사가 되고 싶어요. 어떤 의사라는 표현보다는 누군가에게 가장 필요로 하는 의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의사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면 참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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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아, 아프지 마라김정환 저 | 행성B잎새
《사람아, 아프지 마라》는 평범한 우리 이웃과 저자가 진료실에서 만나 울고 웃으며 서로의 어깨를 다독이며 나눈 인생 이야기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그다지 즐거울 일 없는 일상을 사는 우리 마음까지 다정하게 위로받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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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선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