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쯤 음악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매일 기계적으로 신보를 모니터링해야 하는 일상은 잠시라도 음악을 배제하고 싶은 욕망을 품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노래라도 평론을 작성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몇 번이고 들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음악이 물리는 순간이 부정기적이지만 반드시 당도하곤 한다. 직업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이 부족하며 사치스럽고 맹랑한 발상이란 것을 안다. 이처럼 나름대로 반성을 하긴 해도 음악에서 격리되고자 하는 마음은 늘 좀스럽게 꿈틀댄다. 직업 탓이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계속되는 청취에 진력나 투덜거리면서도 기분 전환을 위해 항시 또 다른 청취를 갈구한다는 것이다. 이때 위로를 구하려는 대상은 음악이 아닌 소리다. '머리를 맑게 해 주는', '힐링', '휴식' 같은 표현을 타이틀로 소유한 '자연의 소리' 음반을 찾는다. 창작자의 예술적 만족감이나 감상자들의 기호 등을 감안한 가공된 퍼포먼스, 체구를 키우고 일정한 높이로 마스터링된 음악보다 오히려 계산되지 않은 소리에서 모종의 해방감을 느끼곤 하기 때문이다. 이런 느낌을 받는 것도 직업 탓일 테다. 또한 자연에 나가 있다는 생각도 들면서 마음이 편안해진다. 자연의 소리는 그야말로 쉼으로 다가온다.
믹스클라우드의 <웨더 리포트> 1회 페이지. 방송은 총 13회까지 진행됐다.
작년 8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된 뮤지션 김지연의 방송 <웨더 리포트(Weather Report)>(아카이브 페이지)는 반가움과 쉼을 모두 만족했다. 김지연은 2014년 3월 '십일(11)'이라는 예명으로 데뷔 EP <11>을 발표한 바 있다. 이 앨범에서 노랫말과 편곡으로 화자의 심정이나 어떠한 정경을 부각했던 그녀가 이번에는 특정 지역의 소리를 전하는 스트리밍 방송으로 자연의 풍경을 전달했다. 이 방송은 청각 체증을 호소하며 산천초목의 배경음악을 탐내는 음악 평론가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화제가 됐다.
그녀의 방송은 매주 금요일 새벽 다섯 시에 송출됐다. 하지만 부지런함이 생방송 시간에 상응하지 못하는지라 밤, 정확히는 자정을 넘기고 잠들기 전에 지난 방송의 녹음본을 듣곤 했다. 청취 형태는 음원사이트에 등록된 '자연의 소리'를 취침용 BGM으로 틀어 놓을 때와 동일한 셈이었다. 고즈넉한 가운데 울리는 새소리, 풀벌레들 울음소리, 빗방울이 지면과 잎사귀에 떨어지는 소리, 개 짖는 소리 등은 한적한 시골 마을의 전경을 선사한다. 때문에 도시 한복판에 있다가 한순간에 한산한 곳으로 이동한 듯한 기분이 든다. <웨더 리포트>가 담아내는 자연 속 소리는 안락함을 형성했다.
모든 방송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먼저 받아들인 정보가 감각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듯 6회 'Graveyard at dawn'은 송출 위치를 묘지 앞으로 잡았다는 사항 때문에 벌레들이 내는 소리가 평소와 달리 스산하게 느껴졌다. 7회 'Wind by window'에서 불규칙하게 나타나는 바람 소리는 적막함을 공유하며 긴장감을 자아낸다. 이는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의 영화에서 접할 법한 불길한 사운드를 연상시켰다. 12회 'Urban hiss: Interval ear training'에서 밀물과 썰물처럼 들어섰다 빠지기를 반복하는 기차 소리는 도시의 차가움, 동일한 모습을 반복하는 현대사회의 무미건조함 같은 인상을 머릿속에 들어서게 한다. <웨더 리포트>가 채록한 일련의 소리들을 통해 우리가 듣는 음(音)은 지역, 정보, 개인의 경험 등과 연관을 맺으면서 깊고 다변화되는 감상을 유도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김지연은 방송을 준비하면서 쓴 글과 촬영한 사진들을 엮어 소책자를 발간하기도 했다.
자연, 혹은 일상에서 들리는 소리의 그런 기능 및 효과는 대중음악에서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푸른하늘의 '겨울 바다' 도입부에 자리한 바람 소리는 청취자에게 겨울 바다의 차가운 공기를 전달해 주며, 여행스케치의 '별이 진다네'에 시종 깔리는 개구리, 귀뚜라미 울음소리는 지난 연인에 대한 그리움을 증대한다. 동물원의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에 흐르는 기차 소리는 노래 속 남녀 주인공들의 만남을 구체화하는 동시에 결국 서로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사정을 암시한다.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Money'와 'Time'은 각각 금전출납기를 열고 닫는 소리와 괘종시계, 초침 소리를 통해서 노래의 주제를 압축해 표현했다. 이렇듯 주변의 소리는 음악의 운치를 더하거나 노래가 지닌 논점, 심상을 선명하게 연출하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서 이런저런 물음이 든다. 그렇다면 동물이나 곤충, 기후, 생활에 존재하는 크고 작은 물체들이 내는 소리는 음악에서 부대 장치로서의 임무만 수행할 뿐인가? 소리가 주체가 되는 음악은 나올 수 없는 것일까? 이런 소리들이 서로 어울림으로써 우연적으로 멜로디, 화성, 리듬을 만든다면, 또는 이에 준하는 요건을 충족한다면 음악으로 규정할 수 있을지 하는 의문이 피어오른다. 개인적으로 현재로서는 확답을 내리기가 어렵다. 이 질문들에 대해서는 더 지켜보고 고민해 봐야 할 듯하다. <웨더 리포트> 같은 필드 레코딩 작업이 현재보다 더 많아지고 사람들의 관심도 증가한다면 새로운 인식이 차츰 생겨날 것이다.
김지연의 방송은 통상적인 음악 규범에서 벗어난 색다른 음의 행렬이며, 주변 환경의 소리를 특별하게 마주하는 청각 체험관이었다. 더불어 어떠한 공간을 간접 경험하는 매개, 특정 지역의 풍광을 연상하게끔 하는 색다른 형태의 앰비언트 작품으로서도 독자성을 띤다. 실시간으로 제작물을 선보이는 방식은 작품 활동의 대안적 포맷으로도 가치를 갖는다. 많은 이에게 생소한 사운드아트의 전파자로서도 <웨더 리포트>는 분명 흥미로운 공작이었다.
2016/05 한동윤(bionicsoul@naver.com)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