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스트가 ‘가지 않은 길’을 노래했다면, 시인 박상순은 ‘가지 말라는 길’을 노래하는 시인이랄까. 그의 시에는, 남들이 가지 말라는 길을 택하곤 하는 반항심 가득한 소년이 있다. 한국문학번역원이 주최하는 <2016 서울국제작가축제>의 시작이 멀지 않았다. 작가축제의 참가작가로 함께하는 시인 박상순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하였지만, 졸업 후 시인으로 등단하셨잖아요. 회화보다 시가 가진 어떤 힘에 주목하신 건가요?
번역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사실 회화라는 장르는 언어보다 훨씬 보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시를 하게 된 것은 시가 가진 힘에 주목한 부분이 있어서였어요. 회화가 세상을 보는 방식과 문학이 세상을 보는 방식은 약간 다른데, 문학은 음악, 미술, 무용 등에 비해 조금 더 설명적이라고 할 수 있죠. 어떻게 보면 잔소리가 더 많은 거랄까(웃음). 즉 사람들의 목소리가 많이 개입되기 때문에 사람들의 내면의 소리를, 내 목소리를 옮기는 데에 시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 거죠. 그렇지만, 그래서 회화가 시보다 부족하고 부적합하다는 뜻은 전혀 아닙니다. 한편으로 저를 말할 때, ‘100% 시인이며 0% 화가’라고 딱 말할 수는 없어요. 사실 제 시에는 문학적인 변형을 거친 회화적인 구성방법이 많이 들어 있거든요.
그렇다면, 시인 박상순을 ‘회화적인 시’를 쓰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그렇다고도 볼 수 있죠. 사실 저는 시인이나 화가의 어느 한 범주에 있다기보다는 '아트워커(Art worker)'에 속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백남준’ 같은 예술가는 처음에는 어떤 한 장르에 귀속시키기 어려운 예술가였지만, 훗날 비디오아티스트라는 이름을 지어 준 경우죠. 백남준 같은 예술가를 우리는 '아트워커'라고 부르는데, 저도 그런 아트워커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회화 쪽에서 완전히 짐 싸서 이사 왔다고 할 수는 없어요(웃음). 저는 집 뛰쳐나가기를 한결같이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집 뛰쳐나가기요?(웃음)
고등학생 때 저는 이과생이었어요. 어릴 적부터 예술가를 꿈꾸었던 사람은 아니었죠. 그런데 제가 갑자기 예술 쪽에 발을 디디게 된 것은, 제게 너무 무난한 길만을 가라고 하는 사회의 억압을 견디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술을 택하게 되었는데, 미술이라는 정규교육을 받고 나서 그대로 ‘화가’의 길을 택하는 것은, 어찌 보면 저의 기질과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는 거죠. 그래서 일종의 ‘집 뛰쳐나가기’를 또 한 번 단행한 겁니다. 어딘가에 오래 머물면서 그곳의 최고점에 서서 만족하고, 어떤 과실을 누리고자 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 시점이 되면 내가 불편해져요. 그 때가 되면, 저는 가방 하나를 싸서 또 다른 길을 가게 되요(웃음).
아트워커적인 발언이십니다(웃음). 그렇다면 시인 박상순이 생각하는 예술가는 어떤 길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자기는 힘이 들더라도 끊임없이 변혁할 수 있는 사람! 성공과는 거리가 멀어도, 새로운 시도를 향해 걸음을 멈추지 않는 사람! 새로운 방법과 새로운 내용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 예술가는 그런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위안’이나 ‘즐거움’을 주는 예술보다, 모험으로서의 그리고 새롭고 낯선 것을 만들어주는 것으로써의 예술을 지향합니다.
이과생이 미대에 진학하고, 졸업 후 화가의 길이 아닌 시인의 길을 선택하고. 또 발표하는 시마다 쉽게 이해 받지 못할 난해한 시들을 발표하고 계세요(웃음). 대중적이지 않은 예술을 추구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느끼고 친숙하게 받아들이는 대중음악을 만드는 사람과 소수의 마니아들만 좋아하는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 있다고 친다면, 저는 당연히 후자이고요. 그런 후자의 사람이 된 배경에는, 경험과 인습에 의해 제도화된 것들이 저에게 굉장히 강압적인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사회적인 메시지가 풍부하면서도 예술성을 두루 갖춘, 모두를 무난하게 만족시킬 수 있는 예술. 우리 사회가 ‘좋은 예술’이라고 정의를 내리는 예술을 할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을 테지만 제가 한결같이 제 자신에 대해 말하듯이, 저는 낯선 것을 일부러 택하는 경향이 있는 거죠. 시에서도 일부러 친숙하지 않은 용어를 더 많이 사용하구요. 예술은 조금 더 자기 멋대로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험적이고, 실험적으로 가야 한다는 의식이 강해요.
한국사회의 사회, 문화적 구조는 아직도 사람들을 보편화하려 드는 것 같아요. 우리 사회는 사회가 규정한 소위 ‘좋은 사람’, ‘착한 사람’, ‘성공한 사람’이 되는 지름길을 강요하고, 그렇지 않은 길에 대해서는 그 길로 아예 발도 들이지 못하게 하죠. 그런 사회에서 성장해 왔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반발의식이 싹 튼 것 같아요. 저는 뒷골목 깡패한테 덤비면 백전백패할 그런 사람이지만(웃음). 그러니까 가급적 얌전하게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지만, 그런 깡패를 맞닥뜨려서 얻어터진다 해도 사회가 대신 선택해주는 무난한 길 말고, 저 뒷골목으로 가보고 싶은 반항의식이 강한 사람인 거죠. 소수적인 생각, 소수의 언어. 혹은 소수와도 교류하지 못할 제 멋대로의 길을 제가 선택한 겁니다. 물론 제가 옳다고만은 생각하지 않아요.
선생님의 시에는 유독 ‘소년’ 혹은 ‘어린 아이’가 자주 등장합니다. 특별했던 유년기의 정서적 경험이 있으신 건가요? 아니면 ‘소년의 순수성’에 주목하시는 건가요?
유년기의 경험은 모두 특별한 것이지, 저의 경험만 특별했다거나 제가 유별난 유년기를 겪었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똑같은 상황을 겪었다 해도, 가령 같은 담임선생님과 똑같이 한 해를 보냈다고 해도, 그 담임선생님에 대한 기억은 모두에게 다를 수밖에 없죠. 제가 특별했던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특별해지는 어떤 지점 같은 것이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제가 저의 작품들에 소년을 빈번하게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는 경향은 있는 것 같아요. 보통 영화에서 어린 아이들의 순수한 시선과 어른들의 참혹하거나 어두운 세상을 대립시키는 구도를 많이 등장시키곤 하는데, 제가 그런 구성을 의도적으로 취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결론적으로 그런 분위기를 풍기게 되는 경향은 있는 것 같네요.
작가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쓸 수 있으니, 부럽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선생님은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많이 쓰시는 편이신가요?
나의 이야기일수도 있고, 타자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나의 이야기로 재구성된 타자의 이야기 일수도 있고(웃음). 그런데 많은 작가들은 어찌 보면, 자신의 이야기보다 ‘평범한 옆집 아저씨’의 삶, ‘오래 전 알았던 사람들’의 삶도 깊이 들여다보면서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삶을 대변해주는 사람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갖고 있는 문제들을 깊게 들여다보는 사람이기도 하죠. 여기서 작가가 관심을 가지는 ‘그 인간’에는 물론 나 자신도 포함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모르는 사람까지 포함하는 겁니다.
작가들은 소소하고 평범한 일상에 대해서도, 예민한 관찰력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요즈음 시인 박상순의 예민한 관찰력이 작동하는 대상은 무엇인가요?
특별히 없어요(웃음). 단지, 소년이나 소녀의 시선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적 구성이 20년 동안 변하지 않는 구성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고요. 덧붙여 위에서 말한 ‘나의 이야기 일수도 있지만, 나의 이야기가 아닌’ 개별화자들의 이야기일 수 있는 그런 구성에 대해서도 여전히 관심을 가지고 있죠. 저의 시적 구성 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사람들 각각이 가지고 있는 어떤 문제들. 즉 ‘문제적 인간’에 대해 관심이 있다고 해야 할 것 같아요. 모든 인간들은 다 문제가 있죠. 비극의 주인공들도 다 문제가 있잖아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극적인 과정을 거쳐나가지만 끝내 해결하지 못하고 불행하게 끝을 낼 수도 있고,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릴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 그 자체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문제’, 그리고 ‘문제적 인간’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제가 휴머니스트라는 의미는 절대 아닙니다(웃음). 이 세상 누구든 인간에게는 인간이 가장 소중한 법이니까, 그런 최광의의(웃음) 의미에서 휴머니스트가 아닌 사람은 없을 거예요. 저도 그렇죠. 그렇지만 인간의 권리회복에 대해 사회적 발언을 시에 담으려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에서 휴머니스트는 아닙니다.
선생님의 시는 ‘해독이 불가능한 암호’처럼 난해한 측면이 있고, 우리의 현실 그대로를 보여주지도 않지만, 오히려 그런 태도에서 일종의 위로를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아요.
저의 작품이 힘든 일상을 치유해 줄 수 있는, 따뜻하고 친절한 시들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저의 시에서 그런 위로를 받았다고 하는 독자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누군가에게 털어 놓기 어려운 사연을 가진 사람들, 그런 답답한 감정에 사로잡힌 사람 가운데 저의 시를 보고 꼭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는 이야기를 해주는 독자도 있기는 했어요. 그렇지만 저는 저의 시가 누군가에게 꼭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목표를 가진 시인도 아니고, 힘든 사연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고 진상을 파헤쳐 일을 해결하려 드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지도 않아요. 그냥 계속 옆에 있어줄 뿐이죠.
시인이자 출판인으로서, 한국문학의 세계화에 대한 관심도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시인 본인께서도 영, 프, 독에 편중된 번역물의 폭을 넓혀나가기 위해 생소한 언어권의 문학 소개를 위해 노력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반대로 한국의 시가 더 많은 언어로 번역되어 더 많은 해외독자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시의 번역작업은 더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시뿐만 아니라, 모든 번역의 과정에서 분명 의미의 차이는 생기게 되겠죠. 어떤 문화에는 없는 개념을 이 문화에서 저 문화로 옮기는 과정에서 의미의 손실이라든가 분명 의미의 차이는 발생하게 되겠지만, 저는 차이에서 비롯되는 긍정적인 측면도 분명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인류는 보편성을 가지고 있고, 시라는 것도 결국에는 인간의 생각. 인간이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생각을 담는 것이기 때문에 충분히 공유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우리가 쓰던 리듬이 아니기 때문에 낯설게 느껴지는 점은 존재하겠지만, 그러한 이질감은 계속 반복해서 접하면서 극복 되어질 수 있죠. 예를 들면 국악이 아름답기는 하지만, 국악의 선율을 처음 접하는 외국인들이 한 두 번 들었을 때는 그 매력을 모르다가, 점차 익숙해지면서 깨달아 갈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낯선 사람과 만날 때, 자신과 공통점을 발견하면 반갑지만, 시간을 들여 서로가 다른 점을 확인하는 과정 자체도 매우 중요하잖아요. 차이를 줄이는 것 보다, 차이를 알아가는 과정 자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회 작가축제에는 기획위원으로 참가하셨고, 14년 작가축제에 이어 16년 작가축제에도 참가하시게 되셨습니다. <서울국제작가축제>에 더 남다른 애정이 있으시겠어요?
시 쓰고 소설을 쓰는 사람들끼리 모이면, 가령 단편소설 한 페이지만 딱 읽어도 이 친구가 어떤 것에 관심이 있겠구나 하는 것을 바로 느낄 만큼 공통점을 많이 가지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차이점에 대해 더 즐거워할 것이고, 일종의 차이를 통해 새로움을 경험하는 것이 우리를 더 성숙하게 할 것입니다. 새로운 동네로 집 뛰쳐나가기를 계속하는 기질이 다분한 나로서는 매일 만나 온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한 번만 만나고 영원히 이별하더라도 새롭고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경험이 우리 사회와 문화에 더 강하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작가축제에 거는 기대도 크고, 애정도 큽니다.
서울국제작가축제
'2016 서울국제작가축제'가 9월 마지막 주, 대학로에서 그 막을 연다. 축제 준비가 한창인 8월의 어느 날. 설렘으로 잠을 설치는 소풍 전야처럼, 9월의 작가축제가 문득 궁금해진다. 작가축제에서 만나 볼 작가들의 릴레이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iuiu22
2016.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