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엔 벌써 올해 최고의 소설이라고 추천해버렸다. 이런 말은 가급적 피하는 게 좋다. 최고야, 라고 말하고 나면 우기는 일만 남게 된다. 그런데 말을 거두어 들이려니 뭔가 아쉽다. 미련이 남는다. 결국 한 번 더 읽었다. 이제는 더 생각할 여지 없다. 말끔하다. 역시 멋진 소설이다. “올해 최고”라는 표현을 “최근 몇 년간 최고”이라 고쳐야지 생각해 본다. 하루 빨리 뒷이야기를 읽고 싶다.
1992년 데뷔해 지금까지 얼굴과 본명을 공개하지 않은 정체불명의 이탈리아 작가. 엘레나 페란테는 릴라와 레누라는 두 여자의 평생에 걸친 우정 이야기를 4권에 걸쳐 썼다. 나폴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나폴리 4부작>이라 불린다. 2011년 이탈리아에서 출간된 이래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전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다. 영미권에서는 “페란테 열병(ferrantefever)”이라는 말이 유행했을 정도로 인기였다고 한다. 아마존 편집장 사라 넬슨은 “미국의 여성에게 페란테의 존재는 마치 어린이들에게 해리 포터 정도의 존재”라고 했을 정도니 열광과 극찬의 정도가 얼마나 어마어마 했는지 쉽게 감이 잡힌다.
<나폴리 4부작>의 첫 편인 『나의 눈부신 친구』는 릴라와 레누의 유년기와 사춘기 시절 이야기다. 제목과는 달리 이들의 우정은 눈부시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정이라는 친밀한 감정 아래 내밀하게 뿜어 나오는 두 소녀의 질투와 견제, 경쟁심 등을 아주 흥미롭게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릴라와 레누의 우정은 결코 평탄하지 않다. 1950-60년대 남부 이탈리아의 분위기 속에서 릴라와 레누의 인생은 점차 다른 방향으로 접어들게 되고, 삶의 외양이 확연히 달라지는 것만큼 우정의 토대도 점점 부실해지는 것만 같다.(사실 어린 시절의 우정이란 서로 다른 학교에 진학하기만 해도 옅어지기 쉬운 것 아닌가)
하지만 둘의 인생이 이제는 충분히 다른 방향으로 벌어진 게 아닌가 싶은 시점에도 릴라와 레누는 서로에 대한 특별한 감정을 지켜 간다. 둘이 점점 다르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마음 속에 안개가 드리우다가, 둘이 여전히 이어지는 장면을 보면 마음 속에 햇살이 뜬다. 이들의 우정이 눈부시다면 인생의 물리적 거리를 무화시키는 바로 이 점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인데, 아직 단언하기는 이르다. 후속편에서는 ‘우정’이라는 단어로 삶의 간극을 메워 가는 건 점점 더 어려워 질 것만 같다. 나는 굉장히 안타깝다. 특별히 슬픈 색조를 띄지 않고 매력적인 캐릭터와 이야기로 가득한 이 소설이 신기하게도 이런 감정을 자아낸다.
세상이 인생을 밀어대고, 그 속에서 이리저리 흩어진 친구들. 이제는 추억으로만 남는 관계에 대해 우리는 가끔씩 떠올린다. 『나의 눈부신 친구』를 읽어 나가면서 그런 얼굴들이 슬며시 아니 거세게 솟구친다. 해외에서 이 소설이 큰 반향을 얻은 건, 우정이라는 이 연약한 관계에 대한 보편적인 감정을 건드려서가 아닐까. 우정은 단지 두 사람의 의지만으로 이어갈 수 있는 게 아니지만, 누구나 어떤 상황에도 결코 흩어지지 않은 친구를 하나쯤 옆에 두고 싶어 하니까. 한길사는 부지런히 후속편을 내주어야 한다. 릴라와 레누는 흩어지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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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눈부신 친구 엘레나 페란테 저/김지우 역 | 한길사
『나의 눈부신 친구』는 이탈리아 나폴리 폐허에서도 빛나는 두 여자의 우정을 담은 이야기다. 우정을 다룬 이야기는 진부하다. 그러나 60여 년에 걸친 두 여인의 일생을 다룬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은 아름답지만 냉혹하고 그들의 삶은 맹렬하다.
김성광
다행히도, 책 읽는 게 점점 더 좋습니다.
민재씨
2016.09.13
ting203
2016.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