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하게 말해 아이를 키운다는 건, 기쁜 건 더 기쁘고 슬픈 건 더 슬퍼지는 일 같다. 감정의 폭이 넓어지고 알지 못했던 감정의 선까지 보게 된다. 물론 힘들고 피로해지는 것도 많지만, 감정선이 깊어지다 보니 타인의 삶과 감정에 대해 공감하는 폭이 넓어진다.”
-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저자 이기호
34년 인생 가운데 2년을 아이와 보냈다. 태아에 있었던 시간까지 합하면 언 3년. 내 인생 가운데 10분의 1 정도를 엄마로 살았다. 사람들은 말했다. “엄마가 되면 부끄러운 게 별로 없어져.” 과연 다르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당신은 그렇게 살아, 나는 나대로 살게’, 마인드였다. 지금은 괜한 참견이 많아졌고 작은 차별에도 핏대를 세운다. 선배들이 줄곧 말했던 ‘우리 아이가 이런 세상에서 살면 안 될 텐데’를 절로 실감했다.
인터뷰를 하면서는 새로운 버릇이 생겼다. 아빠, 엄마 저자를 만나면 반드시 “부모가 돼서 변한 게 있나요?”를 물었다. 상대는 부모가 된 지 한참이 됐는데, 나는 초보엄마 티를 팍팍 냈다. 과거에도 나는 직구를 잘 던지는 편이었는데, 아이를 낳고 나니 증세가 더 심해졌다. 핀잔을 들어도 대부분 넘겼다. 내 삶에서 너무나 중요한 존재가 등장했으니까. 그것보다 더 중한 건 없으니까, 쓰잘데없는 감정을 버리려고 애쓴다.
소설가 이기호는 세 아이의 아빠다. 사실 ‘참 행복하겠다’보다는 얼마나 힘들지가 궁금했다. 교수 생활에 소설도 써야 하지, 신문에 연재도 하지, 육아도 도와야 하지. 도대체 얼마나 고될까? 또 그의 아내는 얼마나 고단할까? 복닥복닥 알콩달콩 사는 모습을 상상해도 좋을 텐데, 고작 아이 한 명을 키우는 나는 ‘힘듦’을 먼저 떠올렸다. 그에게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전업작가이기 전에 아빠, 남편, 교수다. 이 많은 정체성 속에 어려움이 없지 않나? 그럼에도 장점은 무어냐?”고 물었다.
1초 정도가 지났을까. 그는 마치 늘 생각해온 질문이었던 마냥, 즉답했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기쁜 건 더 기쁘고 슬픈 건 더 슬퍼지는 일 같다.”
엄마가 되면 아빠가 되면 눈물이 많아진다. 평소 같으면 그냥 넘겼을 장면에서 자꾸 울컥한다. 아들에게 ‘엄마’ 소리를 처음 들은 날은 기억나지 않는다. ‘맘마’가 어쩌다 보니 ‘엄마’가 됐고, 발음은 점점 더 정확해졌다. 모든 일을 아이와 연결 짓지는 않으려고 한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해요”라는 말은 진리니까. 다만 세상이, 사람이 더 선명하게 보이고 더 뚜렷하게 느껴진다. 앞모습보다 옆모습, 뒷모습을 더 관찰하게 된다. 말도 섞기 싫은 사람을 대할 때, ‘그도 어렸을 때는 마냥 순수했겠지?’, ‘그의 부모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겠지’ 생각한다. 꼭 봐야 할 것, 꼭 느껴야 할 것,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눈에 보이는 삶. 어쩌면 부모가 되어 받은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엄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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