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 속 좋은 가사를 찾아서
운율을 품은 노랫말은 시가 되기도 하고, 편지가 되기도 하며, 하나의 서사를 이뤄 짤막한 소설이 되기도 한다.
글ㆍ사진 이즘
2017.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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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는 음악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운율을 품은 노랫말은 시가 되기도 하고, 편지가 되기도 하며, 하나의 서사를 이뤄 짤막한 소설이 되기도 한다. 가사의 문학적 가능성은 이미 밥 딜런을 통해 입증된 바 있다. 동시에 가사는 현실을 반영한다. 희로애락이라는 지극히 보편적인 감성부터 시대를 향한 통렬한 비판까지. 사람들을 위로하고, 때로는 행동을 이끌어내는 말의 힘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오로지 가사에 의한, 가사를 위한 2000년대 이후의 가요 25곡. 우리의 기억을 휘감은 그 또렷한 언어를 음미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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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 - 인터넷 전쟁 (2000)

 

은퇴 선언과 번복 후 2000년 돌아온, 단지 가수 아닌 우리의 '사회적 리더'는 지지자들에게 교주와 같은 절대 지존이었다. 지켜주고 찢어주고 닦아준다는 표현이 소외와 억압당하고 있는 젊음에게 그가 당대에 어떤 위상의 위인이었던가를 말해주고도 남는다. “H.O.T와 젝키의 기획사는 들어라!!” 아이돌을 쏟아내며 거대해진 기획사의 음악 산업 독점시대를 겨냥한 한 '음악가'의 맹렬하고도 속 시원한 카운터펀치. 한사코 아버지가 싫어하는 음악만을 추구한 그의 당시 사운드 선택은 '하드코어'였지만 불변의 파워는 언제나 세대를 관통하는 시의적 노랫말에서 나왔다.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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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진 - 편지 (2000)

 

연이 끝에 다다른 것 같으니 이제는 그만 돌아서겠노라는 한 사람의 고별은 담담하기 그지없다. 이별에 응당 따를 법한 비애의 낱말들은 편지가 끝내 봉해질 때까지도 옮겨지지 못했다. 그 대신, 잠시나마 함께 해주었음에 대한 감사, 앞날의 미래를 향한 축언이 인연이길 바랐던 이에게 바치는 마지막 인삿말로 들어섰다. 이 덤덤한 문체 앞에서 슬퍼지는 사람은 정작 우리가 되어버린다. 울어야 할 단 한 사람은 노래가 끝나는 순간에 이르기까지도 애감을 표하지 않는다. 그 어디에도 슬픔을 적시하지 않은 구절들은 상대가 부디 행복하길 바란다는 기도, 마음을 접겠다는 다짐이 삼킨 아픔을 우리의 몫으로 떠넘긴다. 다른 어떤 이별 노래보다도 애절함이 거대하게 밀려오는 것은 어쩌면 이 때문이리라. 헤어짐을 겪은 이가 눈물 자국을 감추고 써 내린 담백한 소회. 이 평온한 편지는 4분 40초 만에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이제 나는 돌아서겠소'라는 두 문장을 2000년대 가요사에서 가장 애달픈 이별사로 만들었다. (이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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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범 - 너를 위해 (2000)

 

사랑을 하다 보면 종종, 스스로 누군갈 사랑할 자격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어두운 단면이 생성해내는 불안정한 마음은 상대방과의 끊임없는 반목을 불러일으키고 이는 미안한 감정으로 결집된다. 사랑하는 이에게 온전한 사랑을 줄 수 없음을 깨달을 때쯤이면 '너를 위해' 떠나야 함을 직감한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임재범'이기에 더욱 처절히 들려오는 노랫말. 처음엔 그저 멜로디가 좋아 따라부르던 나는 철들 무렵, 사랑의 진액(津液)을 맛보고 나서야 진정으로 이 노래를 이해했다. (현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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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러코스터 - 힘을 내요 미스터김 (2000)

 

아직 인생의 목표도 찾지 못했건만, 취직하라는 소리에 등 떠밀려 시작한 사회생활. 어느새 꿈은 마음 한구석에 접어두고, 통일된 무채색 정장에 서류가방을 든 채 이름 없는 회사원1이 되어 쳇바퀴만 도는 미스터 김. 결코 낯설지 않은 우리네 삶이다. 하고 싶었던 일, 아직 늦지 않았다니. 일탈을 부추기는 아주 위험하고, 반항적인 노래다. 그렇다면 기꺼이 따라주는 것이 인지상정! (정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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샵 - 내 입술... 따뜻한 커피처럼 (2001)

 

작사가 원태연의 서정적이고 웹 소설같은 노랫말은 신승훈을 비롯한 여러 히트곡에서 만날 수 있지만, 래퍼만 3명이었던 샵의 노래에서 더욱 생생한 대화체로 전달됐다. 이는 이지혜의 애절한 보컬과 대비되어 이별을 설득하는 이와 관계를 이어가려는 여성의 구체적인 상황으로 끌어당긴다.

커피를 사이에 두고 마지막 말을 나누는 연인, 그사이 식어가는 커피는 끝을 앞둔 두 사람의 관계를 감성적으로 묘사한다. 곡의 분위기와 달리 서지영의 통통 튀는 랩도 귀여웠다. 그 시절 라임다운 '기리~위리~'는 숨겨진 중독 포인트다. 이별의 과정을 담담하고도 부드럽게 표현해 지금 들어도 세련된 노래다. (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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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 - 챔피언 (2002)

 

싸이의 노랫말은 언제나 귀 기울여 듣게 하는 매력이 있다. 영화 '베벌리 힐스 캅(Beverly hill cop)'의 수록곡 'Axel f'를 샘플링한 '챔피언'에는 해학과 통렬한 사회의식이 고르게 배어 있다. 집회 문화부터 분단된 현실까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온갖 것을 그의 시선으로 아우르며 '모두의 축제'로 인도한다. 재생하는 순간만큼은 계층도 대립도 없는 유토피아를 부르짖으며 그저 잘 노는 사람이 '챔피언'이라는 해답을 외칠 뿐이다. 가벼운 라임과 입에 감기는 익숙한 단어 그리고 인류애를 향한 메시지까지! 신라의 고승 원효가 부처의 가르침을 대중에게 전파하기 위해 지은 '무애가'와 닮았다! 흥 많은 민족에게 제대로 놀 줄 아는 법을 명문화하여 몸소 알린 싸이 표 가사의 기원이 아닐까. (노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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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 Never ending story (2002)

 

김태원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기타리스트이며 뛰어난 작곡가임과 동시에 가장 정확한 단어를 쓰는 훌륭한 작사가이기도 하다. 부활의 침체와 개인적인 아픔 속에서 탄생한 'Never ending story'의 노랫말은 그의 수많은 명가사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헤어짐을 받아들이기 싫은 마음은 떠나면서도 '마치 날 떠나가듯이' 손을 흔드는 연인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상실감과 지독한 그리움은 떠난 이의 빈자리에 '같은 모습의 바람'으로 나타난다. 영화 같은 기적을 바랄 수밖에 없는 모든 실연 남녀의 마음을 처연한 은유로 담아낸 한국 발라드의 보석과도 같은 노랫말. 군더더기 없이 유려한 선율과 무너질 듯 여린 이승철의 애절한 목소리도 곡의 호소력을 높였다. (조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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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 이발관 - 울면서 달리기 (2002)

 

언니네 이발관의 방향성이 새롭게 수립된 작품 <꿈의 팝송>. 타이틀에 걸맞게 드림 팝적인 면모가 두드러지는 '울면서 달리기'는 환상적인 분위기 덕분에 이별이라는 상황이 실제인지 꿈속인지 분간할 수 없게 만든다. 당신 없는 이 거리에서 달리는 나는 정말 현실 속 존재일까. 나를 잊은 거리는 과연 환상일까. 꿈에서라도 그대를 볼 수만 있다면. (정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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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 - No. 1 (2002)

 

'달'은 역시 동서고금을 통틀어 최고의 소재다. 'No. 1'에서 달은 소녀와 그의 사랑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오랜 친구이자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슬픔을 모른 척 가려줄 수 있는 존재이며 그에게 못다 전한 사랑을 비춰주는 촛불이다. 밝고 신나는 곡의 분위기와 아련한 가사의 대비에서 달빛 아래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소녀의 뒷모습이 수채화처럼 번진다. (조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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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자두 - 대화가 필요해 (2002)

 

활동 시절 김과 밥처럼 달랐다는 둘은 커플 사이의 차이를 직관적이고 재치 있는 가사로 표현해왔다. 상대가 다정하길 바라는 자두와 무관심한 강두, 노랫말 속 캐릭터가 실제 가수와도 닮아 더 공감이 갔다. 팀의 곡 대부분을 써준 제작자 최준영은 명료하고 쉬운 이야기와 멜로디로 자두에게 여러 유행가를 선물했고, 후에는 노래 제목과 동명인 개그 프로의 삽입곡으로 사랑받았다. 대화 대신 티브이에 빠져있던 일요일 저녁 이 노래 뒤엔 늘 같은 대사가 나왔다. “밥 묵자.” (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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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 - 하늘을 달리다 (2003)

 

제목부터 고대 그리스의 이카로스 신화를 떠올리게 한다. 이적과 이카로스에게 하늘이란 통과해야 할 어려움이자 구원, 즉 '나를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다. 둘 사이에 다른 게 있다면 이적이 조금 더 거침없다는 점. 그에겐 두려움이 없다. 금방이라도 증기를 내뿜을 것 같은 전자 기타, 잘게 부서지는 드럼으로 만든 록 사운드가 이 무모한 선전포고를 돕는다. 그의 행동이 터무니없어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런 순수한 치기가 종종 이적(異蹟)을 일으키곤 한다. (강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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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 스파이스 - 고백 (2003)

 

여기에는 숨겨진 사연이 있다. 우선 가사의 모티브, 야구의 탈을 쓴 순정 만화

에는 4명의 남녀 주인공이 등장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김민규가 부른 덕분에(?) 사람마다 다른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친구를 좋아하지만 먼발치서 지켜본 이들과 열병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마음을 전달한 이들이 공감했던 '청춘 송'이자,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을 불러오는 곡. 만화를 보고 노래를 들으면 비로소 '고백'의 진가를 알게 된다는 솔깃한 후문도 있다. (정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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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라 - 바람이 분다 (2004)

 

시와는 달리 노래 가사에는 주로 구어체가 쓰이는데, 이 곡은 독특하게도 몇몇을 제외한 문장 대부분을 '-ㄴ다'의 어미로 끝맺은 것이 특징이다. '나'의 시점에서 말하고 있긴 하지만, 관조적인 어투로 쓴 풍경 묘사가 선행해 마치 '나'의 이야기가 아닌 듯 짐짓 차분하고 고요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추억을 다르게 적히”게 하는 짝사랑은 그 사랑 자체로 폭력이 된다. 그걸 깨달은 이는 마침내 그에게서 떠나 먼 곳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것이 버림받은 이의 마지막 배려일 테다.

사랑에 실패해 한없이 침잠하는 '나'의 우주와는 달리, 바깥은 따스한 공기와 재잘거리는 소리로 가득하다. '내'가 없는 곳에서 그의 오늘은 어제와 같이 평화롭다. 고백하건대 나는 이소라를 즐겨 듣지 않는다. 이소라를 듣고 있으면 내 세상도 무너진다. 슬픈 음악이 나를 위로해줄 수 없다는 걸 그를 통해 배웠다. (홍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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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Mot) - 날개 (2004)

 

이카로스가 좀 더 똑똑해진다고 해서 날기를 포기했을까. 함께하는 세상이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을 것임을 알고서도 둘은 굳건했다. 그저 나와 같은 모습을 한 이를 부여잡고, 제 날개가 다 타버리도록 높고 뜨거운 곳으로 오른다. 이이언(eAeon)이 써 내려간 그리 길지 않은 문장 안에는 생의 마지막 사랑인 양 어떤 결말이든 받아들이겠다는 평온한 자세, 그리고 첫사랑처럼 맹목적인 태도가 공존한다. 체념한 후가 이토록 간절할 수 있다는 아이러니. (홍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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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 - 빙고 (2004)

 

('빙고'의 가사를 놓고 가로가 아닌 세로로 읽어보자. 터틀맨의 재치가 숨어있다.)

곡 자체는 가볍고 신나지만, 가사는 복무 신조와 십계명만큼이나 귀중하다. 쓸데없이 진지하지 않아 더 좋다. 듣기 편하고 따라 부르기 쉬운, 그야말로 대중적인 선율과 사운드를 만들어냈던 터틀맨은 매 곡마다 희망을 품은 공익적인 가사를 넣어 대중들을 고양했다. '사계'나 '비행기' 등 상당수의 가사들이 좋지만, 특히 '빙고'의 가사를 좌우명으로 삼고 살아간다면 정말 마지막 순간에 웃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요즘 따라 늘 좋은 노랫말을 부르던 거북이가 그립다. (이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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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요정역정만루홈런 - 절룩거리네 (2004)

 

이 노래에 울컥해보지 않은 사람은 실패를 해보지 않은 사람이 아닐까. 막다른 골목 그러니까 가장 비관적이고 상처를 감당하기 힘들 때 찾아보게 되는 노래다. 타인의 따뜻한 위로가 아무 소용이 없을 때 그저 주저앉아 한없이 울게 만드는 가사. 구구절절 내 얘기라고 들릴만큼 그 몰입력이 크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 세상을 떠난 지도 벌써 7년이 되었다. 그래서 더욱 씁쓸하고 소중해져버린 노래. (김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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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 하이- Fly (2005)

 

사실 굳이 한두 문장을 뽑을 것도 없이 구구절절 마음에 드는 가사다. 안타까운 나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펼쳐내고 어른스러운 위로가 아닌 젊은이의 강단 같은 어조로 '너는 날 수 있다!' '세상이 뭐라고 말해도, 너는 날 수 있다'는 외침에 가슴 뜨거운 에너지를 얻은 건 나뿐만이 아니리라! 2005년 발매로 벌써 세상에 나온 지 12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노래의 가치는 생생하다. 지치고 힘든 날, 외롭고 고된 날. 몇 번이고 에픽 하이의 'Fly'를 꺼내 듣는다면 당신은 그때도 지금도 젊고 그때도 지금도 날 수 있는 존재다. '때론 낮게 나는 새도 멀리 본다' 하지 않던가? (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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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스(EX) - 잘 부탁드립니다 (2005)

 

"아시다시피 장기화된 경기 침체로 인해 청년실업 40만 명에 육박하는 이때 미래에 대한 철저한 준비 없이 어떻게 살아 남을 수 있겠습니까? 제발 좀 조용히 해 주십시오!"

시트콤 '논스톱 4' 만년 고시생 '앤디'의 대사가 유행할 무렵, 취업난이 그 당시보다 더욱 악화할지 예상했을까. '취준생'이 40만을 넘어 100만까지 돌파하며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지금,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던 유행어와 이 노래의 가사가 맞물려 떠오른 건 우연은 아닐 것이다. 2005년 MBC 대학가요제 대상을 받은 익스의 '잘 부탁드립니다'에는 입사 면접에 떨어진 날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셨던 실제 에피소드가 노랫말로 담겨있다. 취중에 토로하는 씁쓸함과 어리광은 구어체로 표현되며 구직에 실패한 심정을 있는 그대로 대변한다. 후렴구에 이르러 선 야속함을 넘어 초연함까지 보인다. 불확실한 미래를 앞둔 젊은이들의 출구는 좁은 취업 틈새가 아닌 '욜로'였다. 12년이 지난 2017년, '인생은 한 번뿐이다'를 외치는 젊은 날의 초상은 그저 '웃는 광대'일지도 모르겠다. (노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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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나믹 듀오 - 고백 (Go Back) (Feat. 정인) (2005)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랩 구절이 아닐까 싶다. 속되게 말하면 '나한테 까불면 X 돼'와 '나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XX놈'을 적확하고도 쉬운 비유를 얹어 표현했다. 가벼운 멜로디의 인트로 직후 날카롭게 치고 나오는 개코의 래핑과 이에 실린 무지막지한 구절은 대중에게 강력한 인상을 새겼고, 이후 힙합에서 등장하는 트럭은 온통 8톤짜리라는 재밌는 공식을 만들어냈다. 이 이후로 수많은 특유의 '힘겨루기' 가사들이 등장했지만, 그 아무리 속되고 센 표현이 가미되었어도 이만큼의 임팩트를 남기진 못했다.

사실 8톤 트럭의 첫 운전수는 개코가 아닌 은지원이다. 역사 깊은 8톤 트럭은 타이거 JK가 작사하고 은지원이 부른 '8t. Truck'에서 '브레이크가 고장 난 8톤 트럭'이란 구절로 처음 등장했고, 이후에 타이거 JK가 '60 Percenta Zen'에서 직접 8톤 트럭을 운전하기도 했지만 대중적으로 히트한 건 역시 다이나믹 듀오의 '고백'이 결정적이었다. 이젠 힙합 가사의 클리셰가 된 8톤 트럭은 이후 빈지노가, TK가, 아이콘(iKON)의 바비가 그 운전대를 잡기도 했다. (이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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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B - 나는 나비 (2006)

 

'아주 작은 애벌레'에서 '상처 많은 번데기'를 거쳐 '아름다운 나비'가 되기까지.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성장 드라마를 나비의 일생에 빗대 참신함을 획득했다. 인고 끝에 나비가 되었다고 마냥 행복할쏘냐. 거미줄 피하랴, 사마귀 피하랴, 꽃을 찾아 날아다니랴. 기대했던 나비의 삶도 순탄치는 않다. 그럼에도 나비가 아름다운 것은 세상을 자유롭게 날기 때문 아닐까. 우리 사회의 애벌레, 번데기, 나비 모두가 마음 깊이 공감하며 위로를 얻었다. 이 노래로 YB가 국민 밴드의 자리를 다시 한 번 공고히 한 것은 물론이다. (정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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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잉 넛 - 룩셈부르크 (2006)

 

마이크를 테스트하는 동료 뮤지션을 보고 만든 유쾌한 노래. 세계 평화를 지향하는 가사에 따라 다양한 나라의 특징을 잘 살렸다. 그중 압권은 '전쟁을 많이 하는 아메리카' 이 한 줄이다. 모두가 알지만, 함부로 말하지 못했던 그 속을 크라잉 넛이 과감하게 질러버렸다. 여행처럼 신나는 분위기의 내용과는 다르게 직설적으로 표현한 비판임에도 위화감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특히 미국과 우리나라의 깊은 우호적 관계를 생각하면 그리 평범한 가사가 아닐 수 없었다. 결국, KBS에서는 이 곡을 출연 금지곡으로 선정했다. (임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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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하 - 비밀번호 486 (2007)

 

삐삐 세대의 은어가 휴대폰 세대로 넘어왔다. '사랑해'의 글자 획수로 만들어진 번호 '486'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의미를 확장했다. '하루에 네 번 사랑을 말하고/여덟 번 웃고 여섯 번의 키스를 해줘/날 열어주는 단 하나뿐인 비밀번호야'로 작사를 한 휘성은 단순한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며 삐삐 세대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또한, 사랑을 전하던 방식이 숫자에서 문자로 변한 것처럼 사랑하는 방식도 바뀌고 있음을 '비밀번호 486'으로 잘 표현했다. 정작 노래의 주인공인 윤하는 자신의 취향과 맞지 않아 부르기를 꺼렸지만, 이 곡을 통해 그는 확실하게 이름을 알렸다. 많은 이들이 음악을 듣고 추억을 떠올리거나, 가사 때문에 오글거렸다. 숫자든 문자든 형태가 변하고, 아무리 유치해도 사랑 앞에서는 달콤할 뿐이다. (임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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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 - 기억을 걷는 시간 (2008)

 

잊었다고 생각했으나 문득 예고 없이 떠오르는 게 있다. 내겐 '기억을 걷는 시간'이 그렇다. 당시 아이돌도, 발라드 가수도 아닌 밴드가 지상파 가요 프로그램 1위를 차지한 곡이면서 동시에 대중에게 그리고 나에게 보인 '넬'의 첫인상이기도 하다. 보컬 김종완의 시적 표현, 중의적인 단어로 이어진 이야기와 마치 바스러질 듯한 그러나 이내 담담한 가성이 극대화되는 끝부분은 오래도록 여운을 남겼다. 그것도 아주 긴긴 기억의 잔상으로. (정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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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콜리 너마저 -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2008)

 

이만큼 음악과 가사 사이에 틈이 벌어진 곡이 있을까. 듣는 사람의 마음을 산들거리게 만드는 찰랑이는 멜로디와 꾸밈없는 보컬, 명랑한 사운드 덕에 이 노래는 7년 전 '국민 남동생' 유승호가 누나(들)에게 고백하는 CF 배경에 놓이기도 했다.

하지만 가사는 보편적 일상어로 씁쓸한 진실을 말한다. 바로 타인이 나의 고통에 무지한 것처럼 나 역시 그의 쓰라림에 무감한 사람일 수 있다는 것. 누군가를 마음에서 보내는 과정이 이웃에게는 '방해'가 될 수 있고, 나에게도 '출근'은 찾아온다. 마음껏 슬퍼할 수도 없는 시대. 이 노래가 옆에 남아 위로를 건넨다. (강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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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드 폴 - 고등어 (2009)

 

고등어를 소재로 선택한 신선한 시선은 물론이고 사고와 재고의 기회를 준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다. 자칫 난해한 가사와의 첫 만남을 뒤로하고 '튼튼한 지느러미로 잡아먹히기 위해 나를 원하는 곳으로 헤엄친다'고 반복해 말하는 고등어를 보며 생각하게 된다. 희생당하면서도 '날 골라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고등어를 보며 고민하게 된다. 대체될 수 있는 화자는 누구일까. 그건 어쩌면 부모님, 또 어쩌면 선생님, 또 어쩌면 모든 것을 거리낌 없이 내어주는 누군가일 수도 있다. 잔잔한 멜로디와 나긋한 루시드 폴의 보컬과 어우러져 따뜻하고 포근한 울림을 주는 노래. (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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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하와 얼굴들 - 달이 차오른다, 가자 (2009)

 

달이 무엇이기에. 도대체 어디로. 소년의 행동을 재차 되새김질해보지만 밀려드는 것이라곤 그저 무의미뿐이다. 장기하의 가사가 발휘하는 힘은 기이하고 또 대단하다. 당위만이 존재하는 코러스, '달이 차오른다, 가자'를 곡의 초입에서 주문처럼 뱉어내 관객을 끌어들이고서는, 풍성하게 긁어모은 어휘와 세밀하게 얽어낸 묘사,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서사를 동원해 별 의미 없는 이야기에 충직하게 따라오게 만든다. 심지어 연유와 종착지 모르는 이 여정, 주변에 말을 해봤자 아무도 못 알아들을지 모른다는 지점에서 장기하는 소년의 처지나 우리의 처지나 피차일반으로 만든다. 결국 가야 하는 곳은 아무도 알아내지 못한 채, 달을 보고는 왜 떠나야 하는 지도 모른 채, 소년과 우리는 기어코 맥거핀으로 가득한 유랑 `길에 오르기로 마음먹는다. 기묘한 가사는 너무나 떨리도록 차오르는 저 달에 모두가 홀리게 만들어버렸다. (이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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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 #가요 #음악 #노랫말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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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k327

2017.07.11

정말 노래한곡 한곡 듣고싶어지네요...내 마음의 잊고있었던 감성을 자극하는 멘트가 가슴에 다가오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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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