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0일(현지시간) 린킨 파크의 보컬 체스터 베닝턴이 세상을 떠났다. 불과 얼마 전 새 앨범
우리에게 린킨 파크는 더욱 각별하다. 아직 인터넷이 세계의 거리를 완전히 없애기 전, 음악계의 변방을 살아가야 했던 우리는 사실상 이들에게서 뉴 메탈(Nu Metal)을 본격적으로 배웠다. 1990년대 한창 부흥하던 얼터너티브 록의 문법에 헤비메탈의 강력한 사운드로 힘을 주고 힙합, 인더스트리얼 등 다양한 장르의 요소를 섞은 생소한 음악 뉴 메탈은 린킨 파크가 데뷔한 2000년에 이미 거대한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콘(Korn), 림프 비즈킷(Limp Bizkit) 등이 밀레니엄 젊은이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은 당대 대표적인 뉴 메탈 스타들이다.
그중 린킨 파크는 대중적으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밴드였다. 강한 메탈 기타 사운드와 유려한 선율의 대비, 랩과 스크리밍 보컬의 절묘한 조화, 불안한 내면에 내려앉는 감성적인 노랫말까지 새 시대의 정서에 정확히 들어맞는 음악으로 록과 거리가 멀었던 사람들마저 사로잡은 것이다. 특히 'In the end'가 수록된 데뷔앨범
강력한 음압과 그 아래 숨겨진 애달픈 감성으로 한 번쯤은 모두의 마음을 빼앗은 밴드. 뉴 메탈의 시대가 저물었음에도 언제나 실험과 진화를 거듭하며 꾸준히 활동해 온 구르는 돌. 그 중심엔 언제나 체스터 베닝턴의 불꽃같은 보컬이 굳건히 서 있었다. 신세대의 격정과 불안을 대변하던 한 뜨거운 목소리의 죽음을 추모하며 영원히 기억될 린킨 파크의 명곡 10곡을 선정했다. (조해람)
One step closer (2000,
데뷔와 전성기를 동시에 시작한 밴드의 묵직한 한 방. 육중한 일렉트릭 기타 톤을 따라 그의 폭발적인 샤우팅이 곡을 끌어간다. 서서히 끓어오르던 감정은 브리지에 이르러서 'Shut up!'이라는 가사에 맞춰 최고조로 폭발한다.
그는 강렬한 사운드와 매끄러운 멜로디의 적정선에서 두 가지를 모두 만족하게 했다. 부드러울 땐 부드럽고, 질러줄 땐 질러주며 밴드를 향한 하드코어와 팝 진영을 하나로 묶었다. 자연스럽게 밴드의 프런트맨 자리에 오르며 그 이상으로 짜릿했던 체스터 베닝턴의 보이스는 이제 뇌리에 박혀 잊히지 않는 영원으로 남았다. (임동엽)
Crawling (2000,
다이내믹이 살아있다. 힙합의 리듬으로 시작한 음악은 곧 거친 메탈의 사운드를 드러낸다. 역시나 그 중심에는 베닝턴이 있다. 그의 주특기인 날카로운 스크리밍이 후렴구에서 일렉트릭 기타와 쌍두마차를 이루며 거침없이 달린다. 거기에 마이크 시노다의 랩과 조 한의 스크래칭이 빈 곳을 채우며 완벽한 합을 이뤘다.
마약 의존성을 노래하는 곡은 과거 힘든 시절을 마약에 기댔던 그의 모습을 투영하며 다소 진지하게 다가왔다. 그냥 소리만 지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진심이 담긴 외침이 음악을 더욱 진정성 있게 만들었다. 마침내 그는 마약을 떨쳐냈지만, 고통은 그리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돌이킬 수 없는 길을 떠난 그가 이제 편히 쉬길 바랄 뿐이다. (임동엽)
In the end (2000,
항상 찬반은 있다. 어떤 잡지는 '뉴 메탈 클래식', '궁극적 뉴 메탈 믹스테이프'라고 추켜세운 반면 <뉴 뮤지컬 익스프레스>는 그 달달한 멜로디가 혐오스러웠던지 '먹이사슬의 밑바닥에서 나온 멍청한 MTV 랩 록의 한 판'이라고 혹평했다. 사실 베닝턴 자신도 2012년에 “난 애초 'In the end'가 끌리지 않았다. 솔직히 앨범에 넣는 것도 싫었다. 잘못 생각했던 것 같다. 이제는 'In the end'를 사랑하며 위대한 곡이라고 생각한다.”며 사고전향을 고백했다. 그게 앨범에서 (마땅찮게) 네 번째 싱글로 내놓은 이유였을 것이다. 하지만 린킨 파크 커리어의 최고히트이자 정점을 찍었고 공연 세트 리스트로도 으뜸 레퍼토리가 됐다. 제목대로 '결국에' 대중의 사랑을 어찌 무시하랴. (임진모)
Somewhere I belong (2003,
소포모어 징크스는 없었다.
Faint (2003,
우리나라에선 게임 <스타크래프트>의 리그 오프닝 곡으로 모두에게 각인된 노래가 아닐까. 2000년도 초반 스타크래프트가 대대적인 열풍을 일으키면서 게임을 즐기지 않던 사람들마저 호기심을 갖고 대회 중계를 보곤 했는데, 이 스타 리그에서 쓰인 곡들은 항상 인기를 구가했다. 수 많은 노래가 대회를 거쳐 갔지만 린킨 파크의 'Faint'만큼 그 시절을 대표할 수 있는 오프닝은 많지 않다. 뉴 메탈을 단숨에 메인스트림으로 끌어올린 그들은 세기말적인 감성과 랩코어, 림프 비즈킷(Limp Bizkit)에겐 없는 멜로디를 선보였고, 'I am a little bit of loneliness', 'Time won't heal this damage anymore' 등 상처와 외로움을 다룬 가사들은 반항기의 청(소)년들을 매료시키기 충분했다. 게임과 음악이 만나 한 세대를 휩쓴 기이한 문화현상이다. 아이옵스 배 스타리그 오프닝에서 체스터 베닝턴의 스크림이 흘러나오며 “임진록(임요환-홍진호 전)”의 두 주인공이 마주 볼 때, 그 감동이란. 적어도 한국에서 'Faint'가 갖는 의미는 단순한 노래 그 이상이다. (정연경)
Numb/Encore (2004,
2003년
정신적 피로와 압박감은 전성기 때나 지금이나 전혀 그 무게가 줄지 않았나 보다. 날이 선 노래가사가 오늘은 더욱 아프게 다가온다. "네가 원하는 사람이 되는 것에 지쳤어. 믿음을 잃고, 표면 아래서 길을 잃은 기분이야. 네가 내게서 뭘 기대하는지 모르겠어. 네 식으로 살라는 압박감에 눌려." (I'm tired of being what you want me to be. Feeling so faithless, lost under the surface. Don't know what you're expecting of me. Put under the pressure of walking in your shoes.) (김반야)
What I've done (2007,
변화의 시작을 알린 곡. 뉴 메탈의 최선봉에서 지휘봉을 이끌던 밴드가 장르의 표식인 랩을 빼버리고 시대의 흐름과 타협점을 찾아냈다. 랩이 빠진 자리는 거침 대신 약간의 모던함과 사회적 시선이 담겼고 그 와중의 특징적인 비장한 멜로디는 과도기적 시점에서 그룹의 색채를 뚜렷하게 유지한다. 래핑이 사라진 시점에서 수문장인 체스터 베닝턴의 보컬은 더욱 빛이 났다. 힘주어 내질러도 갈라지지 않고 풍부한 감정으로 선율을 이끌던 체스터 베닝턴. 장르의 분수령에서 변화를 모색했음에도 외면당하지 않고 오히려 <트랜스포머>의 메인 사운드 트랙으로 선전한 데에는 분명 그의 목소리가 일조했다. (박수진)
Shadow of the day (2007,
뉴 메탈 시대는 한순간의 번뜩임과 메탈의 마지막 부흥기라는 의미를 남긴 채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었다. 시류를 읽고 조망하는 데에 밝았던 밴드는 전작들의 소구력을 과감히 포기한
New divide (2009,
진작 린킨 파크의 팬이라고 밝힌, 영화 <트랜스포머> 감독 마이클 베이는 지난 'What I've done'에 이어 이번엔 직접 영화를 위한 사운드 트랙을 제작하기에 이른다. 속편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의 엔딩 테마로 제작된 이 곡은 린킨 파크 특유의 강렬한 전자음을 바탕으로 기계전쟁의 싸늘한 기운을 은유함과 동시에 체스터 베닝턴의 감성 어린 보컬과 노랫말을 통하여 스토리의 감수성을 극대화시켰다. 영화 주제의식에 알맞춘 감각이 돋보이는 측면이다. 곡의 완성도를 위해 영화 음악계의 거장 한스 짐머와도 협업했다고 전해지는 이 곡은 빌보드 메인 차트 6위를 기록하며 'In the end' 이후 가장 높은 차트 성적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현민형)
Heavy (Feat. Kiiara) (2017,
매번 변화를 즐기던 밴드였다. 불과 두 달 전에 나온 새 음반은 오히려 낯설어서 더 린킨 파크다웠다. 'Heavy'는 부드러운 전자음을 주재료로, 비교적 차분한 혼성 보컬 듀엣이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일렉트로닉 록 트랙. 감정을 발산하고자 함은 여전하나, 외형은 분명 최신의 것이다. 2000년대 초반에 빛나는 시절을 기록했던 그들이 2017년에도 여전히 신선도를 유지하며 유행의 철로를 달리고 있다.
평범하지 않은 유년기를 보냈고 성인이 된 이후에도 몇 번의 고비를 겪었던 체스터 베닝턴은 치열하게 절규하는 음악으로써 현실의 통증을 모두 쏟아내고자 했다. 불안정한 청춘의 기로에 서 있던 많은 이들 또한 밴드에게서 해갈을 맛봤다. 이 곡을 처음 접했을 때 “Why is everything so heavy”(왜 이토록 모든 것이 버거울까)라는 문장이 비관적이지 않게 들렸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홍은솔)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