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만 했다. 우리의 20대는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서른만큼은 그렇게 맞고 싶지 않았다. 늘 다른 곳을 꿈꾸고 여행 프로그램을 챙겨 보던 아내는 어느 날 툭, 남편에게 세계여행을 제안했다. 떠나지 않겠느냐고. 고등학교 동창인, 가장 친한 친구였던 김미나, 박문규 부부는 그렇게 스물아홉 가을에 3천만 원을 들고 세계로 떠났다. 823일의 여정이었다. 아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히말라야 트레킹과 터키에서의 일 년, 산티아고 순례길까지 시간은 여유로운 듯 빠르게 흘렀다. 그 시간을 쌓아놓은 『메밀꽃 부부 세계일주 프로젝트』에는 이들 부부의 여정이 꼼꼼하게 담겨있다. 떠나기 전 준비해야 할 사항들, 세계 각지에서 지출한 경비 내역까지 모두 담았다. 이들은 말한다. “생각보다는 돈이 많이 들지 않더라, 내가 금수저가 아니라도 할 수 있더라, 이렇게 세계여행 하는 사람도 있더라, 라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현재 제주에 살고 있는 부부는 내년이면 다시 멕시코로 떠날 계획이다. 아직 가보지 못한 곳도, 다시 가봐야 할 곳도 많이 남았다. 여행 자체가 삶이 된 부부의 얼굴이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초록빛으로 기억되는 평화롭고 작은 마을, 스리랑카의 하퓨탈레. 립톤이 앉아서 차를 마셨다던 립톤 싯
서른은 외국에서 나보자
막연하게 꿈꾸던 세계여행을 ‘가자!’고 결심한 그 순간, 어땠을까요? 조금 특별했을지도 모르겠어요. 자세히 들려주세요.
김미나: 20대에 힘든 일이 많았어요. 저희는 일을 일찍 시작했는데요. 돈을 모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어요.가정환경이나 여러 일들 때문에요. 그때 유일한 낙은 여행이었어요. 국내 여행을 진짜 많이 했죠. 그러다가 제가 먼저 말을 꺼냈어요. 2년 반 정도 돈을 모아서 그 돈이 얼마가 됐든 다 쓰고 온다 생각하고 가보자고요. 그렇게 모은 돈이 4천만 원 정도 됐었어요.
박문규: 저희는 고등학교 동창이에요. 27살에 결혼을 했는데요. 저희가 21살부터 일을 했지만 둘 다 집으로 돈이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라 결혼할 때 통장에 모은 돈이 딱 5백만 원 있더라고요. 회사에서 5백만 원을 빌려 작은 원룸을 구해 신혼생활을 시작한 거예요. 세계여행을 가자고 하고 이것저것 다 정리하고 나니 돈이 그 정도 되더라고요.
2년 동안 4천만 원이면 많이 모으셨는데요!
김미나: 그렇죠?(웃음) 정말 열심히 모았는데요. 그마저도 사정 때문에 3천만 원만 들고 가야 했어요. 이 돈 다 쓰면 돌아오겠다, 했는데 여행하면서 벌기도 하고 그래서 여행 기간이 조금 늘어났어요. 작년 12월 말에 돌아왔죠. 저는 매일 퇴근하고 오면 여행 프로그램을 봤어요. 계속 꿈을 꿨어요. 저희가 매주 국내 여행을 했잖아요. 그런데 이 짧은 여행만 하다가는 죽을 때까지 유럽을 한 번도 못 가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대로라면 계속 회사를 다닐 거고, 월급이 조금 오를 수도 있겠지만 말이에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저희 둘 다 20대에 너무 일만 했어요. 이런 이야기를 신랑이랑 하다 툭 얘기를 꺼냈죠. 그런데 신랑도 여행 생각이 마음에 있었던 거예요. 그때부터는 “진짜 해보자”면서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어요.
여행 계획을 세운 것만으로도 일상이 많이 달라졌을 것 같아요.
김미나: 그때부터는 일하는 것도 기쁘더라고요. 이렇게 일하고 번 돈으로 여행을 갈 거니까요. 어느 정도 날짜를 세워두었거든요. 29살 가을에 떠났는데요. 서른을 한국에서 맞고 싶지 않았어요. 20대에 열심히 일했으니까 서른은 외국에서 나보자, 그렇게 생각했어요.
박문규: 저는 결심하고 다음날 가서 회사 사람들한테 말했거든요. 2년 후에 세계여행을 갈 거고, 그때 퇴사할 거다, 라고요. 당시에는 다 미쳤다고 했어요.(웃음) 막상 시간이 다가오고 진짜 갔다 오는 걸 보니까 그제야 반응이 많이 달라졌죠. 지금은 저희가 제일 잘 살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책에 아주 꼼꼼하게 지출 경비 내역을 적었잖아요. 앞부분에는 떠나기 전 준비한 내용도 자세히 적었고요. 책의 쓰임에 대해 생각하셨던 것 같거든요.
박문규: 물론 저희보다 힘들고 어렵게 사시는 분들도 많지만요. 저희도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아내가 많이 말을 했어요.
김미나: 여행 중에 일기도 매일 쓰고, 가계부도 매일 썼기 때문에 그걸 정리하기는 어렵지 않았는데요. 책을 쓰면서 그 부분에 공을 많이 들였어요. 사람들은 건물을 갖고 있거나(웃음) 부모님 잘 만난 사람들이 세계여행을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생각보다는 돈이 많이 들지 않더라, 내가 금수저가 아니라도 할 수 있더라, 이렇게 세계여행 하는 사람도 있더라, 라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인상적인 구절이 ‘여행이 길어지면 결국 이것도 생활이라 먹고 살기의 연속이 된다’(295쪽)는 부분이었어요. 먹고 살기의 연속이기 때문에 겪은 어려움은 뭐였어요? 미처 생각 못했던 어려움도 있었나요?
김미나: 여행을 짧게, 휴가로 가면 볼 건 많은데 시간이 짧아서 항상 아쉽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시간이 많으니까 보고 싶은 것 보고, 더 오래도 보고 그랬거든요. 마음이 조급해지지 않았어요. 어느 날은 아예 안 나가기도 하고요. 그런 생활이 여유롭고 좋은 부분도 있는데요. 어느 순간 설렘이 조금 떨어지더라고요. 생활이 되니까요. 뭐가 여행이고 뭐가 일상인지 약간 구분이 흐려지는 거죠. 특별히 어려움이라면 매번 숙소를 바꾸는 것도 그렇고요. 이동해야 하는 게 생각보다 힘들었어요. 계속 찾아야 하는 게 어렵더라고요. 또 가다가 내 마음대로 안 되기도 하고, 갑작스런 상황도 생기니까 그런 것들이 힘들었죠.
박문규: 여행 마지막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어요. 아내가 그동안 여행 준비나 길 찾기를 다 했거든요. 저는 따라만 다녔고요. 근데 순례길을 걸으면서 아내가 지도를 안 봐도 된다는 것에 되게 편안해 하더라고요. 순례길은 노란 화살표가 인도를 해주니까 어디까지 갈까, 저녁에 뭐 먹을까, 이것만 걱정하면 됐거든요. 그게 은근히 스트레스가 됐던 것 같아요.
두 분이 전해줄 수 있는 ‘어디에도 없는 꿀팁’이 있다면요?
박문규: 보통 장기 여행을 준비하실 때 유럽이나 미국 쪽을 먼저 가려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저희는 아시아 쪽을 먼저 여행했잖아요. 그게 좋더라고요. 물가도 저렴하고요. 똑같이 사기를 당한다고 해도 유럽이나 미국 쪽이 비용이 더 크니까 고려할 만한 부분인 것 같아요.
사기 당할까봐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박문규: 사기 당한 분들을 진짜 많이 봤어요. 한국 사람들이 현금이나 좋은 카메라를 많이 들고 다니는 걸 알기 때문에 표적이 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터키에 일 년 살면서도 너무 많이 봤죠. 제일 많이 당하는 사기가 술 사기예요. 보통 혼자 오는 분들이 표적이 되는데요. 자기도 혼자 여행 왔다고 하면서 접근을 해서 이곳저곳을 데리고 다녀요. 레스토랑에서 식사도 하고, 차도 마시고, 구경도 하고요. 그리고 저녁에 아는 바에서 파티를 한다고 데리고 가서는 술을 먹다가 사라지는 거죠. 뒤늦게 명세서를 받아보면 그게 2천 유로 정도 되는 거예요. 그런 경우를 진짜 많이 봤어요.
김미나: 위험한 일은 대개 밤에 술을 먹다가 많이 일어나더라고요. 조심하는 게 좋겠죠. 다행히 저희는 술을 안 해요. 해가 지면 항상 숙소로 돌아가 하루를 정리했어요.
아시아와 유럽 각지를 다녔잖아요. 누구에게 추천해도 실망하지 않을 지역도 꼽을 수 있을까요? 포르투를 ‘정말 좋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고 적었죠.
박문규: 여행지가 사람의 기분에 따라 완전히 달라지잖아요. 추천하기가 어려운데요. 제가 좋았던 곳은 네팔이에요. 그 중에서도 포카라요. 그곳에서 굉장히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고, 좋은 기운도 많이 받았어요. 포카라에서 한 달 정도 지냈는데요. 저는 정말 머리 아픈 게 하나도 없었어요. 스위스도 가고, 여러 산을 가봤지만 네팔의 그 산은 영험함이 있는 것 같아요.
김미나: 마케도니아의 오흐리드라는 호수도시가 있어요. 그곳은 가는 분들도 많지 않고요. 저희도 큰 기대를 하고 간 게 아니었어요. 그런데 막상 가보니 정말 예쁜 거예요. 사람들도 상냥하고, 물가도 저렴하고, 호수도 정말 크고 빛나고요. 호수변을 데크 따라 산책하는데 정말 좋았어요. 원래 그곳에 며칠 안 있으려고 했는데 계속 연장을 해서 오래 있었는데요. 그곳에는 한 달 렌트를 하는 집들이 좀 있거든요. 저도 거기에 계속 있고 싶었어요.(웃음) 언젠가 다시 갈 곳으로 꼽아두고 있어요.
또 어떤 일이 생길까
글 쓰는 아내와 사진 찍는 남편, 한 권의 책이 되기에 참 좋은 상황이었어요.
김미나: 제가 글 쓰는 걸 좋아하는지 잘 몰랐어요. 신랑도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지 잘 몰랐는데요. 국내 여행을 하면서 시작한 거예요. 하다보니까 신랑도 사진 찍는 게 진짜 재미있다는 거죠. 점점 카메라도 좋은 걸로 바꾸고요. 저는 그 사진들이 아깝고,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니까 블로그를 시작했죠. 그러면서 또 재미가 든 거죠. 그게 모여서 좋은 기회가 됐던 것 같아요.
박문규: 확실히 블로그로 저희 인생이 많이 바뀌었어요. 신의 한 수였던 것 같아요.(웃음)
블로그를 통해 새로운 인연도 많이 만났죠.
김미나: 저희가 터키 안탈리아에서 일 년을 있을 수 있던 것도 블로그를 통해서였어요. 그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친구를 블로그로 처음 알게 됐거든요. 블로그로 알게 된 친구를 우연히 인도에서 만나 한 달 동안 같이 지냈고, 그 인연으로 지금도 엄청 친하게 지내거든요. 블로그가 중요한 매개체가 됐던 거예요.
뿐만 아니라 여행 동반자라는 면에서도 서로가 잘 맞았던 것 같아요. 대개 여행하면 싸운다고 하잖아요. 그런 게 없어요.(웃음)
김미나: 서로 비슷한 점이 굉장히 많아요. 감정도 비슷하게 느끼고요. 저희는 잘 안 싸우거든요. 신랑이 착하기도 하고요. 연애 전에도 제일 친한 친구 사이였는데요. 그래선지 싸울 일도 별로 없고 그래요.
박문규: 마인드가 서로 그냥 잘하는 것 잘하자, 예요. 아내가 요리는 진짜 못해요. 저는 요리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요리를 같이 하면 꼭 안 맞더라고요. 여행할 때도 각자 잘하는 걸 했죠.
서로 여행 전과 후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얘기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네요.
박문규: 제 경우, 좀 바보가 된 것 같아요.(웃음) 벌써 회사 그만 둔지 3년이 넘었으니까 그 시간 동안 하루도 떨어진 적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아내가 잠깐 외출한다고 해도 걱정이 돼요. 주변 사람들은 아내가 외출하면 좋다고 하는데 저는 안 그래요. 없으면 심심하기도 하고요. 저희는 서로가 배우자이자 친구이기도 하니까요.
김미나: 항상 붙어있으니까 없으면 허전하고, 걱정되고, 심심하고 그렇죠. 제일 친한 친구예요. 다른 부부가 평생 할 대화를 저희는 지난 3년에 다 한 것 같다고 얘기했었거든요. 그게 좋았어요. 저는 여행 후에 엄청 긍정적으로 변했어요. 원래 예민한 편이었거든요.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잘 울고 그랬는데요. 여행하면서는 바뀌었어요. 지금은 일어나지 않은 일은 아예 걱정 안 해요. 여행하면서 워낙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많이 생기니까 그 과정을 겪으면서 바뀐 것 같아요.
예상하지 못한 일들의 연속이었죠. 위기의 순간들이라고 할까요.
박문규: 그러니 긍정적이 될 수밖에 없었어요. 스위스 여행을 하다 벌금 50만원을 냈거든요. 여행 당시 어떤 블로그에서 불법 유턴 벌금으로 75만원이 나왔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저희는 100만 원은 나오겠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50만원만 나온 거죠.(웃음) 그렇게 긍정적으로 바뀌게 되더라고요.
여행 전에 기대했던 것과 실제 가서 경험한 것이 많이 다르던가요?
김미나: 사실 여행 전에 여행 이후의 삶을 기대하지 않았어요. 지금까지 너무 힘들게 살았으니까요. 여행은 우리에게 주는 휴가니까 진짜 재미있게 놀자, 나중은 걱정하지 말자, 이렇게 생각했어요. 여행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오히려 여행을 하다보니 다른 기회도 생긴 거예요. 제주에서 살 기회도 생기고요. 이런 건 전혀 예상을 못한 거잖아요. 그래서 지금은 더 재미있어요. 다음은 또 어떤 일이 생길까, 기대하게 되고요.
몬테네그로 한 시간동안 헐떡대며 올랐던 코토르 성벽에서
뷰 포인트에서 한참 동안이나 오들오들떨면서 기다렸던 카파도키아 벌룬
늘 여행하는 것처럼 살겠다
여행 하면서 서로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눴잖아요. 라오스 여행 중에 걸으면서 어떻게 사는 게 행복한 것인지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고 적었거든요. 답을 찾으셨나요?
김미나: 저는 여행하면서 답을 찾은 것 같아요. 여행 전에는 잘 몰랐는데요. 돈이 있으면 편리하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행복하다고 생각하진 않거든요. 그걸 일단 여행하면서 많이 느꼈어요. 돈에 끌려가지 말자는 얘기를 서로 많이 했죠. 적게 벌면 적게 쓰고, 우리가 가진 것에 만족하며 살자고요. 대신에 하고 싶은 걸 하며 살자고 생각했어요. 사진을 찍고, 글을 쓰고, 여행을 하고, 좋은 사람을 만나 맛있는 걸 먹는 게 가장 큰 행복의 조건이라고 생각했어요. 여행을 하는 동안 앞으로도 이렇게 살자고 얘기를 했죠. 삶의 방향이 바뀐 거예요. 여행 전에는 돈이 떨어지면 다시 돌아와서 일을 하면 되지, 이렇게 생각했다면 여행하면서는 계속 여행하는 삶을 살자, 이렇게 된 거죠. 어느 곳에 정착하는 게 아니라 늘 여행하는 것처럼 살겠다는 쪽으로 마음이 바뀌었어요.
박문규: 저희는 말의 힘을 믿어요. 하루에도 수십 번 내뱉어요. 우리는 잘 될 거야, 라고요. 제주에서 내년 3월까지 살고 이후에는 중미로 여행을 하려고 계획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내년 3월에 멕시코를 갈 거야, 이렇게 매일 얘기를 해요. 말을 하면 진짜 그렇게 되더라고요.
김미나: 진짜 그랬어요. 세계여행을 떠나기 전에도 ‘우리는 스물아홉 가을에 무조건 갈 거야’라고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자꾸 말해야 가능하도록 우리가 움직이는 면도 있는 것 같고요. 상황도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늘 여행하는 것처럼 살기, 이 말이 낯설고 아름답게 들리네요.
김미나: 여행하면서 만난 사람들이 있어요. 20년 넘게 여행하는 분들도 계셨고요. 뉴스에서 본 노부부는 30년 넘게 여행을 하다가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요. 할아버지의 유언이 할머니에게 ‘당신은 계속 여행을 해’라는 거였대요. 실제로 여행을 하다보면 몇 년씩 여행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여행하면서 일도 하고요. 그걸 보면서 우리도 저렇게 살 수 있겠다고 생각한 거예요.
지금 제주에서 지내고 있잖아요. 제주행은 어떻게 하게 된 거예요?
박문규: 한국에 돌아올 때 정확히 수중에 3백만 원 남았더라고요. 고민을 진짜 많이 했어요. 이제 어떻게 할까, 하고요. 돈을 벌어야 할 것 아니에요. 그런데 아내가 먼저 제주로 가자고 말을 꺼냈어요. 제주에서 1년 살기가 저희 버킷리스트에 있었는데 지금이다 생각한 거죠. 돈을 벌더라도 제주에 벌 데 없겠어, 했어요. 그때 블로그에 제주에 간다고 올렸는데요. 블로그를 보고 마침 세계 일주를 준비하는 50대 부부가 연락을 주신 거예요. 6개월 간 세계여행을 할 예정이니 우리 집에서 지내라고요. 지금 그 집에서 살고 있어요. 그분들은 지금 인도에 계세요.
김미나: 그분들은 저희에게 여행하시면서 궁금한 점이나 어려운 점들을 물어 오시죠. 최근에는 저희가 인도 비자도 받아드렸어요. 좋은 사람을 만나거나 새로운 기회가 생기거나 이런 것들이 그냥 회사만 다녔다면 안 생겼을 것들이라서 무척 소중한 거예요. 제주에서의 일 년이 버킷리스트에 있기도 했지만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지내는 곳이 서울이 아니었으면 했거든요. 제주에서 커뮤니티를 만들어 다시 여행을 하고 돌아와도 제주로 오고 싶은 마음이고요. 그래서 제주에서 모임도 많이 하고,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있어요.
두 분의 선택이 어떤 면에서는 다소 이상적으로 느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말 멋진 삶의 태도라고 생각하면서도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면도 있거든요. 현실적인 어려움 같은 것도 있겠고요. 이에 대해서는 어떤 답을 해주실 수 있나요?
김미나: 그런데 정말로 지금 저희가 가지고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집도 없고, 살림도 없어요. 몸과 배낭만 있죠. 저희는 짐을 더 이상 늘릴 생각이 없거든요.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상태로 살자고 얘기를 많이 하는데요. 이상적으로 들릴 수 있을 거예요. 대개는 저희처럼 하지 못하는 이유가 지금의 삶을 놓아야 하고, 이후의 삶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일 텐데요. 저희는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이렇게 살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계속 여행을 할 수도, 여행을 그만두고 일을 하며 살 수도 있지만 그것은 나중 일이잖아요. 아직 우리는 어리고, 건강하니까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일단 하고 싶은 대로 살아보자고 생각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박문규: 저희 짐이라고는 부모님 댁에 있는 조그만 상자가 전부예요. 결혼 앨범 같은 게 들어있어요.(웃음) 아내와도 많이 얘기했는데 저희는 이렇게 가진 게 없어서 떠날 수 있는 용기가 더 난 게 아닐까 싶어요.
정말로 걱정 안 되세요?
박문규: 세계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올 때는 진짜 걱정이 되더라고요. 순례길을 다 걷고 통장에 3백만 원밖에 없을 때는 정말 걱정이 많았어요. 작년 12월에 돌아왔는데 그때 한국에 미세먼지가 엄청 심했잖아요. 오자마자 감기 몸살이 걸렸거든요.(웃음) 비 맞으면서 순례길을 걸어도 감기 한 번 안 걸렸는데 말이에요. 그때 걱정 끝에 내린 결론이 제주행이었고요. 제주에 와서는 다시 걱정이 조금 줄어들었어요.
김미나: 걱정은 항상 돼요.(웃음) 불안감이 있긴 하죠. 노후를 생각한다거나 하면 걱정이 막 돼요. 그런데 걱정을 하다보면 걱정이 꼬리를 물어서 되게 우울해지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그것에 대한 생각을 너무 하지 않으려고 해요. 지금, 오늘을 재미있게 살면 내일 더 좋은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고요. 안탈리아에서 일 년을 살게 될지 몰랐던 것, 책을 내게 될지 몰랐던 것, 제주에서 일 년 살게 될지 몰랐던 것처럼 또 다른 일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요. 이게 정답은 아닐 수 있어요. 하지만 저희는 후회할 때 후회하더라도 일단은 이렇게 살아보려 해요. 만약 이렇게 지내다가 다시 일을 하게 된다고 해도 그렇게 우울하거나 슬프지는 않을 것 같고요.
박문규: 또 하나 저희의 자부심이 있는데요. 지금까지 보험비를 밀린 적이 없어요.(웃음) 저축은 못해도 보험비는 잘 챙겼어요. 빚도 없고요. 지금은 이 정도면 된 거라고 생각해요.
이제 버킷리스트에는 무엇이 남았나요?
박문규: 공동체 마을을 만들고 싶어요. 한 팀은 게스트하우스를 하고, 한 팀은 커피숍을 하고, 한 팀은 음식점을 하고, 이런 식으로요. 그래서 한 팀이 여행을 가면 서로 봐주는 거죠.
김미나: 그것은 꼭 같은 장소가 아니어도 돼요.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을 수도 있죠. 그래서 서로 집을 바꿔가며 산다거나 할 수 있잖아요. 이런 이야기를 지인들과 많이 하고 있어요. 그 밖에도 버킷리스트는 너무 많아요.(웃음)
지금, 우리가 여행하는 이유를 한 마디로 정리한다면 어떨까요?
박문규: 행복. 아내가 최근에 해준 얘기가 있어요. 행복은 결핍에서 온다는 말이었는데요. 거기에 동감해요. 결핍이 있기 때문에 더 행복한 것 같고요. 앞으로도 계속 결핍으로부터 행복을 얻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직 못 가본 곳이 너무 많아요. 가볼 데가 너무 많아서 더 행복한 것 같아요.
김미나: 살아있으니까. 살아있는 한 계속 여행할 것 같아요. 제게는 삶이 여행이고, 여행이 삶이에요. 이런 삶은 항상 부족하고, 불안하고, 결핍이 있겠죠. 그렇지만 그것에서 오는 행복이 있다고 생각하고요. 지금처럼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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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꽃 부부 세계일주 프로젝트 김미나 저 / 박문규 사진 | 상상출판
네이버 블로그 연재 포스트 ‘메밀꽃 부부의 세계일주 프로젝트’를 책 한 권으로 담았다. 매일 여행하며 사는 메밀꽃 부부가 직접 걷고 만나고 느낀 여행 감성 에세이이며. 뚜벅이 여행자들의 세계일주 각종 경비자료 전격 공개했다.
신연선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