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부터 현대까지, 조각과 회화 그리고 사진까지
하나의 작품에는 작가의 창의적, 심미적 재능이 절대적으로 작용하며, 미술가가 받은 교육, 시대적 규범, 역사, 정치, 종교, 신화, 사회구조가 종합적으로 담겨 있다. 이 책은 이러한 인문학적 관점에서 미술 작품들을 본 글이다.
글ㆍ사진 신연선
2017.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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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서울대 박물관장을 지낸 김영나 명예교수는 2011년부터 2016년까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가 2년 간 <조선일보>에 연재한 ‘김영나의 서양미술산책’의 글을 확장해 묶은 『김영나의 서양미술사 100』은 미술과 신화, 미술과 종교, 미술과 정치, 그리고 권력 등을 입체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김영나 교수는 시대와 조응한, 혹은 시대를 배반한 미술 작품을 살피며 한 장의 이미지가 놀랍도록 풍성한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음을 알려준다. 덕분에 어렵게만 느껴지던 미술이 한층 가까이 다가온다. 


지난 10월 28일 『김영나의 서양미술사 100』 출간을 기념해 독자와 만난 자리에서 김영나 교수는 서양미술사를 고대부터 현대까지, 조각과 회화에서 사진 작품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시간에 따라 인간에 대한 시선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미술 작품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고, 받아왔는지를 지켜보았다.

 

하나의 작품에는 작가의 창의적, 심미적 재능이 절대적으로 작용하며, 미술가가 받은 교육, 시대적 규범, 역사, 정치, 종교, 신화, 사회구조가 종합적으로 담겨 있다. 이 책은 이러한 인문학적 관점에서 미술 작품들을 본 글이다.(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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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즘의 시작, 고대 그리스


서양 미술은 기본적으로 ‘인간’이 중심이라는 점을 짚은 김영나 교수는 따라서 인간이 어떻게 표현되어 있는지를 보면 미술 그 자체뿐 아니라 시대적인 특징 그리고 시대의 인간관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간을 표현하려는 거의 최초의 예였던 고대 벽화는 기원전 약 15,000년 내지 13,000년이다. 벽화란 대개 주술적 의미였기 때문에 인간이 전면에 드러나지는 않았다. 그러던 것이 문명의 시작과 함께 점차 달라진다. 이집트 파라오의 모습을 그린 작품을 보여주며 김영나 교수는 “이집트는 역사가 3천 년 지속이 되는데 파라오를 표현하는 방법이 그동안 거의 변하지 않아요. 이상화된 신체로 표현이 됐고요. 보통 사람들은 훨씬 키가 작게 표현이 됐어요.”라고 설명했다.

 

이집트의 회화는 그리스에도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어느 문명도 그리스만큼 “평범한 인간을 훌륭하게 표현한 문화”는 없었다.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개념이 고대 그리스의 핵심적인 요소라고 김영나 교수는 설명했다.

 

“이전에는 신이 엄청난 힘이 가진 것으로 표현이 됐지만 고대 그리스에서는 그렇지 않죠. 신은 인간과 똑같이 어리석고, 사랑에 빠지고, 실수도 해요. 다만 다른 점은 신은 죽지 않는다는 것이고요. 따라서 서양 미술, 특히 유럽의 미술은 그리스에 기초하며 인간 중심 사상, 즉 ‘휴머니즘’이 여기서 시작되었다고 얘기를 합니다.” 

 

좀 더 이상적인 인간상을 고민한 것 역시 고대 그리스의 특징이다. 미술 양식도 조금씩 달라진다. 딱딱하고 긴장된 형태의 조각상이 점차 움직임이 있고, 편안한 모습으로 표현된 것이다. 경직된 표정에서 “고상하고, 품위가 있고, 온기가 있는 것 같은” 표정으로 변화한다. 이상적인 나이라고 생각한 20대, 성숙한 젊음을 주로 표현한 것도 이 시기의 특징. 나이 많은 노파나 어린이, 여성을 표현한 작품이 거의 없다는 점을 짚으며 김영나 교수는“고대 그리스가 민주주의의 나라일지는 몰라도 남녀평등의 나라는 아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우수한 시민은 역시 남성이었어요. 그래서 당시의 조각된 여성은 다 옷을 입고 있죠. 누드로 나오는 건 전부 남성이고요. 예외적으로 여신, 비너스는 누드로 표현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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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재탄생, 르네상스


유럽 문화가 기독교로 옮겨간 이후 인간상은 다시 변화한다. 중세의 인간은 원죄가 있는 존재, 억제해야 하는 존재다. 인간을 표현한 조각품 등에서 이러한 의식을 확인할 수 있다.

 

“중세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은 열심히 믿고, 구원 받는 거예요. 육체, 신체라는 것은 욕망이 있는, 죄악의 근원이 되는 것이죠. 때문에 신체의 아름다움은 지극히 억제를 하고요. 대신에 강조한 것이 정신적인 아름다움입니다. 고대 그리스, 로마의 아름다운 신체에 대한 것은 완전히 잊힌 채 앞으로 천 년 동안 이런 방식으로 인간이 표현되죠.”
 
인간에 대한 관심이 다시 회복되기 시작한 것은 르네상스에 가까워지면서부터다. ‘영원한 진리’를 상징하는 황금색이 모든 중세 그림의 배경색이었다면 르네상스에 가까워지면서는 배경색이 파란색 하늘로 바뀐다. 이 시기가 되면 작가의 이름이 등장하고, 점차 인간의 개별성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다.

 

“1,300년경에 굉장한 화가가 나타났어요. 조토(Giotto di Bondone)예요. 베니스의 ‘아레나 예배당’에 가면 프레스코가 있어요. 죽은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마리아와 천사들이 그려져 있는데요.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감정을 갖고 있음이 보인다는 거예요. 천사의 얼굴, 몸짓이 하나하나 다 달라요. 이렇게까지 표현한 그림은 이전까지 없었어요. 다시 말해 르네상스가 가까워지면서 중세 동안에 잊고 있던 개인에 대한 관심이 다시 돌아오게 된다는 거예요. 중세의 종교적인 주제는 그대로 가지고 가지만 훨씬 인간적인 측면에서 보기 시작했습니다.”

 

르네상스의 또 다른 특징은 과학적 시선이다. 원근법과 음영의 사실적 묘사가 이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김영나 교수가 보여준 것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암굴의 성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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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굴의 성모>

 

“이 사람은 과학자이기도 하기 때문에 암굴 속에 비치는 빛이라든지 암굴 속의 습기 찬 분위기를 잘 그렸어요. 왼쪽 아기가 세례 요한, 오른쪽 아기가 아기 예수인데요. 성모 마리아의 몸짓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오른쪽 아기 예수의 손짓은 세례 요한에게 축복을 내리는 동작이에요. 세례 요한은 그걸 받아들이는 손짓을 하고 있고요. 또한 이들은 완벽한 삼각형의, 안정감 있는 구성을 갖고 있죠.”

 

한편 17세기가 되면 종교의 힘은 점차 약화된다. “종교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거의 서민적인 사람들”로 변화한다. “주름이 가득하고, 손톱 밑에 때가 끼어 있고, 찢어진 옷을 입은” 사람들, 이들을 등장시킨 카라바조(Caravaggio)와 같은 화가들의 작품을 보면 이러한 특징을 잘 알 수 있다.

 

“종교개혁의 시대였죠. 실제 카라바조 자신도 서민이던 예수나 베드로를 그대로 표현하려고 했어요. 그러나 이렇게 방향을 바꾸는 사람들은 항상 논란의 대상이 되죠. 카라바조는 더구나 성격에 문제가 있었다고 하는데요. 어쨌든 결국 이후부터는 종교화가 많이 변화하게 됩니다. 그 영향을 받은 사람 중 하나가 렘브란트(Rembrandt) 같은 사람이에요.”

 

현대미술과 검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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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08 5월 3일>

 

근대가 되면 주문을 받아 그림을 제작하던 근대 이전에 비해 그림의 언어가 확연하게 달라진다. 대표적인 것이 고야(Francisco Goya)다. 「1808년 5월 3일」은 화가가 직접 겪은 일을 그린 그림으로, 작가의 목소리가 그대로 담겨 있다.

 

“고야가 살던 당시의 스페인은 무능한 왕 때문에 혼란을 겪고 있었어요. 마드리드 시민 사이에 프랑스 국민들이 스페인 왕자를 볼모로 데려가려고 한다는 소문이 돌았거든요. 그러다가 폭동이 일어난 거죠. 그게 1808년 5월 3일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검거 되었고 밤새 총소리가 들렸다고 해요. 고야는 6년 후에 엄청나게 큰 캔버스에 이 그림을 그립니다. 똑같은 자세와 유니폼의 군인들과 다양한 모습을 한 시민들의 대비가 확연하죠. 고야는 이런 일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그림으로 비판했어요. 시대를 초월한 호소력이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렇게까지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은 이 그림을 누구를 위해 그린 것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근대에 들어서면 작가의 생각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이후 산업혁명을 거치고, 새로운 직업군이 생겨나고, 작가의 화법이나 태도가 변화하면서 이전까지 “무엇을 그렸느냐”가 중요했던 것에 비해 이제부터는 “어떻게 그렸느냐”가 굉장히 중요해진다. 그리고, 반 고흐(Vincent van Gogh)가 등장한다.

 

“당시 사람들은 반 고흐의 그림을 ‘어글리(ugly)’라고 표현했어요. 그런데 이 사람은 왜 원색을 칠하고, 잘 보이지도 않게 덧칠하기를 했을까요. 이 시기는 미술이 급변하는 시기예요. 이때 중요한 역할을 한 게 카메라예요. 19세기 카메라가 나오면서 화가는 카메라가 못하는 영역을 그리게 된 거고요. 또 이 시기는 주문이 다 없어지고 화랑을 통해 유통을 하게 됐잖아요. 그러니까 작가들은 자신의 특성이 나타나는 그림을 그려서 내놓았던 거예요. 이때부터 사람들 입에서 ‘도무지 현대미술은 알 수가 없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해요.”

 

안목 있는 콜렉터가 나타난 것도 이 시기다. 국가나 교회가 아니라 그림을 좋아하는 개인이 그림을 사기 시작하면서 미술과 대중 사이의 간격이 벌어지게 되기도 한다. 피카소 (Pablo Picasso),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미술은 점차 추상적인 표현이 주를 이루게 된다. “사람들은 거의 없어지고 추상 미술이 확대된” 것을 20세기 미술의 특징이라고 김영나 교수는 말했다.

 

“그 시기 많은 예술가들이 1차 대전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했어요. 낡은 서양의 문명이 파괴되고 새로운 문명이 나와야 새로운 생명이 생긴다고 생각한 거죠. 문명에 대한 위기감이 미술 속에 표현된 거예요.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너무나 참혹한 경험을 했잖아요. 이때 나온 게 소비에트, 러시아고요.”

 

그렇게 한동안 사라진 것 같았던 인간에 대한 관심은 1960년대 팝아트로 다시 부활한다. 광고와 만화 등을 미술 작품 안에 들여오고, 인간 그 자체를 석고로 떠서 작품으로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 시계는 현재를 가리킨다. 마지막으로 김영나 교수가 보여준 것은 로버트 메이플소프(Robert Mapplethorpe)의 사진 작품이었다.

 

“이 사진은 이 작가의 가장 온화한(웃음) 작품이에요. 사실 이 사람은 동성애자들의 여러 모습을 사진으로 찍은 것으로 유명한데요. 저는 여기에서 검열에 대한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하려고 해요. 이 작가의 작품을 미국 코코란스 갤러리(Corcoran's Gallery)에서 전시하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몇 사람이 문제를 삼아 결국 전시가 취소된 일이 있었어요. 당시 미술가들이 굉장히 항의를 했는데요. 결국은 이런 작품은 앞으로 국가가 지원하면 안 된다는 법까지 통과되기까지 했죠. 이 전시를 강행했던 신시내티 미술관 관장은 감옥에 가기까지 했고요. 물론 나중에는 풀려나긴 했지만 도대체 음란한 것과 아닌 것, 외설과 예술은 누가 결정하느냐, 하는 문제가 남아요. 故마광수 교수의 경우도 생각이 납니다. 예술의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인가, 등 여러 문제가 로버트 메이플소프(Robert Mapplethorpe)의 작품으로 제기된 것입니다.”


 

 

김영나의 서양미술사 100김영나 저 | 효형출판
말을 타고 늠름하게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의 초상화와 대통령 선거 포스터의 공통점은? 피카소가 디자인한 입체주의 발레의상은 무용수들을 꼼짝 못하게 했다는데? 번개 치는 들판의 모습도 작품이 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역임한 공신력 있는 저자의 서양미술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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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나의 서양미술사 100 #서양미술 #고고미술사학과 #김영나의 서양미술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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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kuloku

2017.11.16

기사로 좋은 강연 한편을 들은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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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선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