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 공연으로 처음 무대에 오른 창작뮤지컬 <빨래>. 서점에서 일하는 나영과 몽골 이주노동자 솔롱고를 중심으로 팍팍하고 고된 서민들의 모습을 담아낸 이 작품은 지난 2005년 1차 프로덕션을 시작으로 서울과 지방은 물론 일본, 중국 등에서도 무대를 이어오며 꾸준히 사랑받고 있습니다. 지금껏 4,200회가 넘는 공연을 통해 64만여 명의 관객들을 만나온 <빨래>는 지난해 연말부터 20차 프로덕션으로 관객들을 만나고 있는데요. 이 무대에서는 새로운 나영이, 김주연 씨가 눈에 띕니다. 조금은 어리고 서툰 모습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극중 나영이만큼이나 실제로도 고군분투하고 있을 김주연 씨를 공연이 시작되기 전 인근 카페에서 직접 만나봤습니다.
“한 개만 말해야 되나요(웃음)? 정말 좋아하고 하고 싶었던 작품이라 참여하게 돼서 기쁘지만 우선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고, 연기나 노래도 힘들고, 캐스팅이 바뀌면 제 감정선도 바뀌니까 그런 부분을 좇아가는 것도 힘들고, 나만의 나영이를 만들기가 가장 힘든 것 같아요.”
2015년 연극 <택시 드리벌>의 화이 역으로 데뷔한 뒤 뮤지컬 <인터뷰>의 조안, <페스트>의 잔, <위대한 캣츠비>의 선 등으로 무대에 서왔으니 김주연 씨에게는 <빨래>의 나영이가 가장 비중 있는 역할인 셈입니다. 그만큼 부담도 클 터. 가장 어려운 점이 뭐냐고 물었더니 역시 술술 힘든 점을 털어놓는군요(웃음).
“이래저래 힘들고 극을 끌어간다는 게 어렵지만, 재밌기도 하고 많이 배우고도 있어요. 어떻게 해야 이 장면이 정확히 끝나서 다음으로 넘어가고, 이 장면에서 어떻게 등장해서 다른 사람들과 균형을 맞출까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되고요.”
가장 힘들었다는 ‘김주연만의 서나영’은 만들었을까요?
“모든 캐릭터에는 결국 자신의 성격이 반영된다고 해요. 목표는 같지만 선택하는 방법이 다르니까요. 저는 실제로 두 명의 오빠와 함께 자라서 아무래도 여성스러운 나영이보다는 씩씩하고 털털한 면이 두드러지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많이 대범한 나영이였는데 지금 좀 줄인 거거든요(웃음). 무엇보다 주인공답지 않은 주인공이었으면 좋겠어요. 누군가의 친구 같은, 주위에 있음직한 나영이, 그래서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나영이요.”
씩씩하고 털털한 나영이로는 보입니다(웃음). 그런데 객석에 가족단위, 10대 관객들도 많아서 공연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는데, 김주연 씨도 새해 들어 26살이 된 거잖아요.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팍팍함, 서러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싶더라고요.
“집이 제주라서 안양예고 때부터 8년째 자취를 하다 보니 나름 고생도 많이 하고, 서러운 경험도 많은데(웃음), 제가 지금까지 나영이를 맡았던 배우들 중에 두 번째로 어리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좀 더 나이 들어서 나영이를 만났으면 어떨까 생각해요. 그때는 27살의 나영이를 더 잘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극중 엄마와 통화하는 장면에서 제주도 사투리랑 섞인 거군요? 객석에서 다들 어디 사투리냐고 하던데요(웃음).
“아니에요, 강원도 사투리 배운 건데. 큰일 났다(웃음)! 연기하면서 사투리를 하려니까 힘들더라고요.”
러닝 타임이 150분에 달하는 데다 등퇴장도 많고 소극장이라서 정신없을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있을까요?
“일단 배우들의 바지가 많이 찢어져요. 여러 회 공연을 하면서 옷도 오래 입으니까요. 저 같은 경우는 무대 뒤에 옷이 8벌인데 너무 급박해요. 특히 마지막 장면은 퇴장하자마자 갈아입고 나와야 해서 제대로 못 갈아입은 적도 있어요. 의상을 따로 봐주는 사람도 없거든요. 나영이 대사는 의외로 많지 않은데 무대 위에 계속 있는 편이라 1막에서는 분장실에 아예 못 들어가기도 하고요. 정신없죠.”
빨래들은 어떻게 관리되나요? 장면마다 빨래로 뭔가를 해야 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맞아요, 처음에는 빨래를 어느 정도 짜야 하는지 조절하기 힘든 거예요. 어떤 날은 와이셔츠를 널었는데 물이 뚝뚝 떨어져서 바닥이 물바다가 된 적도 있어요. 노래 부르면서 빨래를 짜고 빨래집게로 집기도 해야 하니까 힘들더라고요. 연출님이 저더러 빨래 좀 예쁘게 널라고도 하셨어요(웃음). 또 잘 개기도 해야 하는데 막 쑤셔 넣고 있어요. 빨래는 건조대가 있어서 공연이 끝나면 나영이들이 말려놓고 가요. 여름에는 냄새가 좀 나기도 해서 주기적으로 따로 세탁을 맡긴다고 해요.”
<빨래>는 주조연 따로 없이 여러 인물의 이야기가 나오지만, 그래도 나영이는 솔롱고와의 호흡을 무시할 수 없겠죠? 두 솔롱고는 많이 다른가요?
“많이 달라요. (조)상웅 오빠와는 <인터뷰>, <위대한 캣츠비>에 이어 3번째 작품이라 거의 친남매 같은데, 무대에서도 그게 보인다고 하더라고요. 상웅 오빠는 워낙 탄탄한 배우라 저한테도 잘 알려줘요. 무척 밝고요. (노)희찬 오빠는 이번 작품하면서 반했어요. 상웅 오빠가 에너지 있게 간다면 희찬 오빠는 호흡이 느려요. 그래서 한번은 희찬 오빠와 계속 공연하다 상웅 오빠랑 무대에 선 적이 있는데, 맞추기가 너무 힘들더라고요. 지금은 그 다름이 재미있어요.”
이 작품에서는 사람들이 힘들고 지칠 때 빨래를 하는데, 김주연 씨는 어떻게 하나요?
“사람들이 저더러 새침하거나 차갑게 생겼다고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다 표현하고 문제가 있으면 해결하고. 까불대고 사람도 좋아하고요. 그런데 작년에 작품이 생각대로 안 되고, 뭔가 안 맞아서 좋은 작품을 놓치기도 하면서 이래저래 힘들더라고요. 밤에 잠이 안 오고, 성격이 많이 바뀔 정도로요. 예전에는 수영을 좋아했는데 지금은 하기 힘들어서 좋은 영화 보고 맥주 한잔 하는 걸 좋아해요. 학교 때는 술을 많이 마셨는데, 요즘은 사람 만나는 것도 감정적으로 소모하는 부분이 크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마음 따뜻해지는 시를 읽거나 집 앞 카페에서 혼자 책을 읽기도 하고요.”
보기와는 다른 김주연 씨의 성격처럼 뮤지컬 <빨래>에는 이색 성격을 지닌 배우들의 특별한 모임이 있다고 하는데, 영상으로 직접 확인해 보시죠!
<빨래> 역시 힘들고 지칠 때 위로가 되는 작품일 텐데, 배우로서 직접 참여해 보니 어떤가요?
“작품 안에서 정말 행복해요, 모두 가족 같거든요. 관객들도 많이 웃고,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라 공감하시고. 우리 삶과 가까운 작품이잖아요.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주는 힐링극이에요.”
연기를 전공하셨으니까 꼭 해보고 싶은 작품, 캐릭터도 있겠죠?
“꿈이 있어요. 명동예술극장에서 연극 <갈매기>를 꼭 해보고 싶어요. 노래 실력이 많이 는다면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도 해보고 싶고요. 연극을 전공했고 처음에는 뮤지컬에 관심이 별로 없어서,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아무 것도 모르고 <인터뷰>를 했는데, 하다 보니까 정말 재밌어요. 물론 알면 알수록 어렵고요. 연극만 하기에는 제가 욕심도 많고 뮤지컬에 좋은 작품도 많아서 노래 레슨을 받고 있거든요. 뛰어난 가창력보다는 저만의 매력을 가진 배우가 되고 싶어요.”
아직 1월이니까 2018년의 희망을 마지막으로 들어볼까요?
“지치지 않는 것, 그리고 배우로서 계속 공부하는 것이요. 이렇게 인터뷰를 하다 보면 다시 한 번 느끼게 돼요.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고 무엇을 놓쳤는지. 부족한 점이 많지만 벌써 다 잘한다면 배우로서 재미없을 것 같아요. 언니, 오빠들이 좀 고쳐보라고 얘기해 주는 것도 저는 정말 좋거든요. 지금보다 늘 수 있는 게 많다는 거니까. 무엇보다 <빨래> 공연하는 4월까지 체력관리 잘 해서 좋은 공연 보여드리고 싶고요.”
누구나 ‘사는 게 참 힘들다’ 생각될 때가 있을 겁니다. 무대 위에 있는 배우들도, 객석에 있는 관객들도 말이죠. 그래서 뮤지컬 <빨래>는 배우와 관객이 더 공감하고 위로를 얻는 작품이 아닐까 싶은데요. 조금은 서툴지만 무대 위에서 달리고 넘어지고 땀 흘리는 김주연 씨의 모습도 27살의 서나영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아 마구 응원하고 싶어집니다. 겉모습과 달리 털털하고 명랑한 김주연 씨가 앞으로 또 다른 작품에서 어떤 캐릭터를 만나게 될까도 궁금하고요. 그전까지는 빨래를 널고 개며 하루하루 더 나은 나영이로 무대에 서겠죠? 뮤지컬 <빨래> 20차 프로덕션은 4월 29일까지 대학로 동양예술극장 1관에서 공연됩니다.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