툴루즈 로트렉, <침대에서 : 입맞춤>, 1892년
미국에서 한 동성커플이 결혼식을 앞두고 빵집에 웨딩 케이크를 주문하려 했으나 거절당한 사례가 있다. 제빵사는 자신의 종교적 신념으로 동성애자의 결혼식을 위한 웨딩 케이크를 구워줄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해당 커플은 이 문제를 법원으로 가져갔다. 종교적 신념과 인권 사이에서 법적 투쟁이 이어졌다. 나아가 빵을 만드는 일을 창작의 영역으로 볼 때 이 예술가의 표현의 자유를 어디까지 봐야 하는지 논의가 시작되었다.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방식은 종교적 신념, 표현의 자유, 자신의 사업을 침해받지 않을 권리 등의 명목으로 나타난다.
콜로라도 주와 캘리포니아 주 등 미국의 각지에서 관련 사건이 벌어졌다. 인권위에서는 이 사건을 문제 삼고, 성소수자 운동 단체도 이를 차별로 문제제기 했다. 콜로라도 주의 경우 웨딩 케이크를 거부한 제빵사에게 유죄판결을 내렸다. 이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서 진행 중이다. 그러나 캘리포니아 주 법원은 결국 종교적 신념에 기반해 제빵사가 동성커플의 웨딩 케이크 굽기를 거부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로 보호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법적으로’는 이런 판결이 가능할 수 있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기에. 이처럼 동성커플의 결혼식에 사용할 케이크를 둘러싼 ‘표현’은 하나의 정치적 의제가 되었다.
미국은 2015년 모든 주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되었다. 법적으로 동성결혼이 보장되는 사회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 1989년 덴마크가 세계 최초로 동성 간의 ‘동반자법’ 제도를 만들었다. 파트너쉽이 인정되자 그 후 네덜란드, 프랑스 등의 여러 유럽 국가를 비롯하여 미국 캐나다 등에서 점차 동성결혼이 법적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2017년 대만은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종교적 신념을 언급하며 벌어지는 차별은 횡행한다. 유엔 세계 인권 선언 제 1조에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 평등하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러한 보편적 인권에 대한 침해는 ‘다수의 기분과 통념’에 의해 종종 정당하게 일어난다.
법원의 판결을 지켜보며, 또 여러 입장에서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 사건에서 제빵사의 ‘거부’를 유죄로 볼 것인가 아닌가에 대한 내 의견은 잠시 보류한다. 나는 도덕적으로 이를 비판하는 입장인데 법적으로도 유죄가 될 수 있는지는 조금 더 들어볼 생각이 있어서다. 다만, 신념에 기반한 거절의 범위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신념, 표현, 자유, 뭔가 그럴듯한 개념으로 둘러싸인 이 차별적 문화 속에서 형성된 법의 틀은 실상 많은 한계를 드러낸다.
제빵사 입장에서 웨딩케이크는 다른 빵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실력을 필요로 한다. 동성커플의 웨딩케이크를 거부할 권리를 옹호하는 입장은 그렇기에 창작자의 선택과 표현에 대한 자유에 비중을 둔다. 또한 불특정 다수에게 판매하는 빵이 아니라 특정 대상에게 주문 받는 상품인 웨딩케이크를 동성 커플을 위해 만들어 파는 것은 곧 동성결혼을 지지하는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거부할 권리도 있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표현을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라는 명목으로 차별적 문화에 암묵적으로 동의한다.
이처럼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빵집에서 상품을 거부하듯이 꽃집, 사진관, 미용실 등이 동성커플의 예식을 위한 상품을 판매하거나 서비스하기를 거부하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 이를 과연 차별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차별은 대체로 차이를 기반으로 발생한다. 그렇기에 성차별 사회는 성별간, 성애간의 차이를 필요로 한다. 이 차이는 정상성과 비정상성을 구성하며 정상의 범주에 있는 사람들은 비정상으로 규정된 방식을 거부하거나 배척할 권리를 획득한다. 반대로 비정상으로 규정된 사람들은 아주 기본적인 권리 행사나 표현을 위해서도 이 정상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감정과 입장을 고려해야만 한다.
한국의 경우, 결혼식 후 폐백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두고 굳이 가부장제의 신념에 기반한다고 하진 않는다. 과거에는 이 폐백이 시’댁’에 인사 드리는 밥상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은 나름 ‘평등’을 위해 신부측 가족도 앉아 신부와 신랑에게 절을 받는다. 마찬가지로 웨딩 케이크의 의미도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고 올라가면 ‘남성에 의한 여성 지배’를 상징한다. 주로 신부 측에서 준비했던 하얀 웨딩 케이크는 하얀 드레스와 짝을 맞춰 순결을 뜻하며, 귀한 흰 설탕을 다량 사용할 수 있는 신부 아버지의 재산을 과시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오늘날은 더이상 이런 의미로 웨딩 케이크를 대하지 않으며 신부 측에서 준비하는 목록도 아니다. 의미는 시대마다 변형되니 꼭 본래의 의미에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폐백상은 여전히 신부 측에서 준비한다. 얼마나 근사하게 (비싸게) 준비했는지 남성의 가족들이 요리조리 살펴보고 친척들에게 음식을 나눠준다. 가부장제의 유산이라고 이를 거부하기는커녕 음식을 만들어 주는 대행업체들이 있다. 가격별로 고르면 된다. 이게 바로 문화의 힘이다. 요즘은 점차 사라지는 걸로 아는 이바지 음식도 성차별의 잔재다. 여자는 결혼으로 맺어진 가족들에게 음식으로 인사를 드려야 제 도리를 다한 셈이 된다. 이를 두고 성차별로 인식하기 보다 전통으로 보는 경향이 더 강하다. 차별의 잔재가 사라지는 모습을 때로 전통의 소멸로 받아들이는 씁쓸한 시선은 얼마나 흔한가.
결혼은 물론이고 결혼식은 많은 부분 성차별을 문화적으로, 산업적으로 다듬어 이 사회에 안착시켰다. 여전히 많은 결혼식장에서 신부는 제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입장해 신랑의 손을 잡는다. 이는 너무도 뻔히 드러나는 가부장제 순결 이데올로기의 행진이지만 자연스러운 관습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를 성차별 문화라고 표현하면 오히려 ‘꼴페미’가 된다. 결혼식은 그 자체로 많은 차별을 포장하고 있다. 이러한 차별적 문화 속에서 성별에 따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신념과 무관한 인간의 도리지만, 이 차별적 문화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하면 그때부터 문제가 생긴다.
이처럼 어떤 차별은 관습으로 뿌리내려 산업이 되어 다양한 형태로 우리 일상에 스며든다. 나아가 어떤 차별은 종교적 신념이나 표현의 자유로 둔갑하기 쉽다. 성소수자 차별은 이성애 가족주의를 유지하는 중요한 자원이다. 얼마 전 원희룡 제주도지사 예비후보는 “가치관과 철학이 있는데 저는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을 반대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동성애를 찬성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애(愛)’를 어떻게 찬성하고 반대할까. 한국 정치인들은 동성결혼은커녕 동성애의 개념에 대해서도 여전히 찬성과 반대의 입장에서 헤매고 있으니 갈길이 멀다.
이라영(예술사회학 연구자)
프랑스에서 예술사회학을 공부했다. 현재는 미국에 거주하며 예술과 정치에 대한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다. 지은 책으로 『여자 사람, 여자』(전자책), 『환대받을 권리, 환대할 용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