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으로 완전한 문장을 만들기 전엔 외국어로 말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지겹게 외운 대로 “만나서 반갑습니다”까지는 하겠는데 그다음이 문제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과거형인가 미래형인가, 전치사는 뭘 써야 정확할까, to 부정사 이렇게 쓰는 게 맞나 하며 머릿속이 엄청나게 복잡해진다. 쪽팔리게 괜히 헛소리하느니 입을 다문 채 눈만 껌뻑껌뻑하고 마는 식.
20년쯤 전에 형부를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다. 형부는 미국 사람인데, 언니를 만나고 연애하며 한국어를 조금씩 배웠다. 바짝 긴장해선 언제나처럼 딱딱한 교과서 말투로 첫인사를 하고, 고르고 고른 문장으로 어렵게 대화했다.
그런데 실은, 당시에도 이미 나는 영어에 꽤 자신이 있었다. 뉴스나 영화를 보고 책을 읽는 데 큰 문제가 없으니 뭐, 그 정도면 괜찮은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말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형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입이 떨어지지 않아 듣기만 하고 내 이야기는 거의 하지 못했다. 가족이 될 사람인데, 궁금한 게 무척 많았는데… 아휴, 답답해.
어느 날 형부가 한국어로 말했다.
“예희, 나 한국말 잘 못해요. 내가 바보 같아요?”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어디서 누가 무슨 시비라도 걸었나! 깜짝 놀라 절대 그렇지 않다고, 왜 그런 말을 하느냐고 되물으니 형부가 다시 말했다.
“예희도 그래요. 그러니까 그냥 영어 해도 돼요.”
‘완벽하기’란 과연 가능한 일일까? 완벽이란 게 존재하기나 할까? 아닐 거다. 그런데도 그 불가능한 것 때문에 스스로 쿡쿡 쑤시고 괴롭힌다. 결혼할 사람이 아니라면 애초에 시작도 하지 않겠다며 가벼운 데이트, 부담 없는 대화에도 철벽을 친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다며, 어차피 다 치우지 못할 거라며 잔뜩 쌓인 쓰레기를 애써 외면한다.
이런 사람이 의외로 많다. 완벽하게 하지 못할 거라면 애초에 시작도 하지 않겠다는 것. 노래도, 그림도, 춤도, 연설도, 글도, 영영 내 것을 내놓지 못한다. 스케치북을 펴고 펜 뚜껑을 열었지만 일단 점 하나를 콕 찍고 나선 ‘으- 이게 아니야!’라며 부욱 뜯어버리고는 다시 텅 빈 페이지를 펼친 다음 망설이는 식이다.
하지만 그 점에서부터 시작해도 좋다. 작은 점을 덧칠해 크게 만들어도 좋고, 가늘거나 굵은 선을 똑바로, 혹은 구불구불하게 그려 나가는 것도 재미있다. 나는 그게 좋다. 새 종이에서 시작하든, 헌 종이를 재활용하든, 내가 하려는 것은 어차피 점을 찍고 선을 그어 면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그림도, 글도, 노래도, 요리도, 모든 것은 그렇게 시작된다.
나는 여러 권의 책을 썼고, 영어 책을 번역했다. 뭐든 다시 펼쳐보면 어이구야, 싶게 민망한 부분이 튀어나온다. 그 시기에 주로 쓰던 말투와 철 지난 유행어에 몸이 배배 꼬인다. 직접 찍고 그린 사진과 일러스트레이션도 다시 보니 마음에 들지 않기도 한다. 야, 이땐 내가 이랬구나 하며 하하하 웃은 다음 다시 책을 덮어 책꽂이에 꽂아두고 그다음 일을 한다. 앞으로도 이럴 것이다. 영원히 서툴 것이고, 뭘 하든 새로울 것이고, 어리버리할 것이다. 완벽하지 않을 것이다. 그 사실을 마음속에 받아들이면 좀 편안해진다.
일하는 과정을 좋아하지만, 작업물에 너무 커다란 의미를 두는 걸 경계한다. 과정을 즐기되, 결과에 대해선 어느 정도는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이고, 의뢰인이 존재하며, 그의 요구에 맞추어 작업한 것이니 내 쪽에서 지나치게 작가적인 고집을 부리는 건 소모적이며 불필요하다. 작가의 의도를 전달하되, 집착하지 않는다. 내가 만든 걸 내 새끼, 내 자식이라 부르며 그 안에 자신을 지나치게 담아버리면 곤란하다. 그럼 정말이지, 아주 금방 지쳐버릴 것이다. 말은 쉽지만, 노력이 필요하다.
순수예술 장르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독자든 비평가든, 누군가는 그것을 소비한다. 각자의 시선으로 보고 느끼고 평할 자유가 있다. 그들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그건 왜곡이에요, 저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요’라는 소리를 해 봤자다. 물론 의도적으로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도 있으나 내가 이야기하는 건 일반적인 비평과 의견 개진이다. 어쨌든, 내 손으로 만든 것이 이제 나를 떠나 다른 이에게 간 것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잘 떠나보내자.
떠나보내는 의식은 중요하다. 이걸 제대로 치르지 않으면 그다음 일에도 영향을 미친다. 좋은 평가는 좋아서, 나쁜 평가는 나빠서 내가 이리저리 흔들린다. 지난번처럼 잘해야 하는데, 혹은 지난번처럼 또 말아먹으면 안 되는데, 라며 모든 기준이 그놈의 ‘지난번’이 되어버린다.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자꾸 발목을 잡힌다. 계속 꺼내 보며 머리를 쥐어뜯는다. 내가 이런 색을 칠했네, 이런 문장을 썼네, 이런 맛을 냈네. 그런데 지금은 왜 안 될까? 난 쓰레기야. 앞으로도 계속 이 모양일 거야… 안 되죠, 안 됩니다. 그 어두운 상상이 실제가 되지 않도록,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갑시다.
나는 이럴 때 햇볕을 쬐는데, 동네를 두 바퀴쯤 돌며 산책하는 걸 좋아한다. 달콤한 걸 사서 집에 돌아와 커피나 홍차를 준비한다. 평소보다 조금 더 정성 들여 차를 만들고,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잔에 담아 마신다. 리셋 버튼을 눌러, 한 번 껐다 켜는 것이다.
그리고 내 안의 열정이 어느 순간 식을 수도 있다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한다. 배우고 일하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온종일 그 생각만 나고, 밥 먹고 잠자는 시간마저 아까울 때도 있지만 그게 언제까지나 쭉 이어지진 않는다(이어져도 곤란하다). 영원히 절절 끓지 않는다. 위로 쭉쭉 치솟던 열정 그래프의 각도가 어느 순간부턴가 완만해져 수평에 가까워지는데, 때론 땅 아래로 내려갈 수도 있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거칠게 말하자면 20대엔 열정이 버글버글 끓고, 30대엔 그 열정의 원석을 캐어 잘 다듬어 값을 올린다. 그리고 40대로 접어들면… 슬슬 더는 예전 같진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 인생 이제 끝이냐, 내 세계가 와르르 무너지는 것이냐, 나는 이제 가치 없는 인간이냐, 전혀 아니죠. 슬슬 또 새로운 재밋거리를 찾아가야 하는 때가 온 것입니다. 그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위해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고요.
하던 걸 그만두는 게 곧 패배와 실패를 뜻하진 않는다. 그동안 쏟아부은 열정, 노력, 시간, 돈이 아깝고 억울해 억지로 계속하는 게 오히려 어리석다. 내가 내 발목을 잡는 셈이다. 고냐 스톱이냐, 누구도 대신 결정해주지 않는다. 내가 나와 합의를 봐야 한다. 그동안 할 만큼 했고 이제는 됐어, 라는 생각이 들면 거기서 끝낸다. 끝을 내야 그다음을 시작할 수 있다.
혹은 하던 걸 계속하되, 내 자세가 달라진 것을 받아들인다. 20대, 30대에 거친 파도를 짜릿하게 타고 달렸다면 이젠 잔잔함을 즐길 때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잔잔하게, 꾸준히 내 페이스로 가겠다는 것. 결국 우리는 길게 가야 한다. 굵으냐 가느냐 하는 건 그다음 문제다. 길게 가기 위해선 탄력과 복원력이 필요하다. 손으로 꾸욱 누른 자국이 다시 쑤욱 솟아올라야 한다. 푹 자고 일어나, 어제의 기분에서 벗어나 새로운 날을 시작해야 한다.
완벽을 추구하며 자신을 괴롭히는 대신 내 속도를 스스로 정하는 사람이 좋다. 그렇게 되기 위해 오늘도 마음을 잡는다.
신예희(작가)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한 후 현재까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는 프리랜서의 길을 걷고 있다. 재미난 일, 궁금한 일만 골라서 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30대 후반의 나이가 되어버렸다는 그녀는 자유로운 여행을 즐기는 탓에 혼자서 시각과 후각의 기쁨을 찾아 주구장창 배낭여행만 하는 중이다. 큼직한 카메라와 편한 신발, 그리고 무엇보다 튼튼한 위장 하나 믿고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40회에 가까운 외국여행을 했다. 여전히 구순기에서 벗어나지 못해 처음 보는 음식, 궁금한 음식은 일단 입에 넣고 보는 습성을 지녔다. ISO 9000 인증급의 방향치로서 동병상련자들을 모아 월방연(월드 방향치 연합회)을 설립하는 것이 소박한 꿈.
저서로는 『까칠한 여우들이 찾아낸 맛집 54』(조선일보 생활미디어), 『결혼 전에 하지 않으면 정말 억울한 서른여섯 가지』(이가서), 『2만원으로 와인 즐기기』(조선일보 생활미디어), 『배고프면 화나는 그녀, 여행을 떠나다』(시그마북스), 『여행자의 밥』(이덴슬리벨)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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