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자의 하인』 , 『프랑켄슈타인 가족』 , 『어두운 숲 속의 서커스』 등 치밀하고 기발한 트릭과 중독성 강한 스토리텔링을 선보인 강지영 작가. 『페로몬 부티크』 는 그녀가 야심차게 선보이는 장편소설이다. 연쇄살인범을 쫓는 경찰과 오로지 체취만으로 모든 걸 파악해내는 천재적인 조향사 등 다양한 능력을 가진 캐릭터들의 치밀한 두뇌싸움과 미스터리, 로맨스, 액션수사물의 흥미로운 조합을 즐기다 보면 장르 드라마 한 편을 보는 듯한 흥미진진함을 느끼게 된다. 강지영 작가를 만나 작품에 대한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연쇄살인범을 잡으려는 ‘기억을 쫓는 자’와 ‘체취를 쫓는 자’의 공조. 소재와 발상이 굉장히 독특합니다. 이 소설을 떠올리게 된 계기가 따로 있나요?
처음에는 미각에서 출발했어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다섯 가지 미각 외에 한 가지 더, 요리사의 맛까지 감지하는 일종의 사이코메트리를 주인공으로 만들고 싶었죠. 그러다 보니 취재가 상당히 많이 필요했고, 음식과 미각, 후각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구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장벽에 부딪혔어요. 그래서 소재 중 ‘후각’ 하나만 남긴 것이 천재 조향사 타신이 되었고, 캐릭터를 축소해 흔적처럼 남긴 역할이 작중 안제니입니다.
기억과 체취를 연결시키는 건 자연스러웠어요. 제 향수 컬렉션 대부분은 어린 시절의 기억에 생기를 심어주는 향이거든요. 저희 집 과수원 원두막에 누웠을 때 바람결에 실려 오는 농익은 과일과 야생화 향기를 떠올리며 하나씩 모으기 시작했죠.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찰나의 순간을 냄새나 소리, 맛과 같은 관능으로 기억한다고 생각해요.
주인공 ‘타신’의 설정이나 서사 전개, 표현이 ‘영상을 보는 듯하다’ ‘시각적인 소설이다’라는 평이 많습니다. 기존의 작품들과 다르게 작가님이 이 소설에서 신경 쓰신 부분이 있다면요?
타신과 같은 불온한 캐릭터는 모든 작가들이 다 욕심내봤을 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선뜻 쓰지 못하는 건 이런 ‘다크히어로’는 서사 전개를 가로막는 역할이 되기도 하거든요. 사실상 타신이 가진 재능과 금력 같은 능력치를 극대화하면 먼치킨에 가깝기 때문에 경찰도 적대자도 대적이 안 되겠죠. 때문에 작품 후반부에 타신의 역할을 최소화하며, 우리 주변의 평범하지만 열심히 사는 ‘현실히어로’들의 활약에 공을 들였습니다.
페로몬부티크가 시각적이다, 라는 평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기획 단계부터 시각화를 염두하고 작업했어요. 웹소설, 가벼운 장르소설 독자 연령대가 10대와 20대가 주를 이루다 보니 단순히 의미의 전달에 목적을 두지 않고 읽는 동시에 등장인물의 표정과 동작, 공간 등을 이미지화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재경이 합기도로 악당들을 제압하거나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 등은 직접 무도인의 감수를 받기도 했습니다.
네이버에 장편으로 연재하실 당시부터 드라마, 영화 제안이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타신, 재경, 두현, 이매력, 제니 등 주요 인물들을 가상 캐스팅해보신다면 어떤 배우들이 있을까요?
특히 드라마 제안이 잦았습니다. 아무래도 로맨스 스릴러라는 장르적 이점 때문이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원작자로서 이 작품의 가상캐스팅을 해본다면, 타신 역엔 주지훈과 김재욱(사심 가득)을, 재경 역엔 김지원을 떠올렸습니다. 두현은 뇌섹남 하석진, 제니는 이하늬, 그리고 매력은 변정수 어떨까요? 독자 분들도 같이 상상하며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작가님 소설을 보며, 기존의 장르소설과 웹소설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듯한 신선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기존의 작품보다 좀 더 마니아적이면서 (매체 오락에 최적화된) 좀 더 가벼운 소설을 쓰시게 된 계기가 있나요?
문예창작과를 졸업했고, 장르, 순문학 가리지 않고 다작을 한 편이라 많은 분들이 신춘문예나 문학상을 받고 등단했을 걸로 짐작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장르소설 카페에서 취미 삼아 괴담을 쓰다 정식 출판까지 하게 되었고, 매체에 투고해볼 겨를 없이 10년이 흘렀습니다. 작가는 독자의 요구를 수용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책을 읽어주시는 독자들의 취향과 기호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편입니다.
경계 이야기를 하자면, 처음 소설을 시작했을 때 순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 포지션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또 전작인 『하품은 맛있다』 를 연재했을 때는 장르문학과 웹소설의 경계 지점이라는 평을 들었고요. 늘 어중간한 위치에 있는 게 아닌가 걱정도 했지만, 지금은 꼭 어딘가에 속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장르를 쓸 수 있고, 매번 독자에게 낯선 모습으로 인사할 수 있어 좋습니다.
킬러, 사이코패스, 뱀파이어, 좀비.. 그리고 이번 책의 연쇄살인까지. 다크하면서도 호기심이 일지 않을 수 없는 소재들을 써오셨는데요. 이런 독특한 발상은 어디서 오는 건가요?
다른 작가들과 비슷할 겁니다. 친구나 가족과의 대화, 사회면의 사건사고 소식,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온 기이하거나 섬뜩한 체험담 같은 것에서 영감을 얻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늘어놓자면 『엘자의 하인』 은 엘리자베스 바토리 이야기에서 착안했고, 『어두운 숲 속의 서커스』 는 서울코믹스를 관람하다 좀비 아포칼립스 상황에서 오타쿠들은 무얼 할지 상상하며 작품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심여사는 킬러』 는 왜 킬러는 항상 건장한 남자인 데다 꼭 고독한 총잡이일까, 그럼 가장 킬러에 안 어울리는 계층은? 이런 여러 의문을 통해 캐릭터라이징을 했고요. 『신문물검역소』 는 벨테브레의 기록을 좇다가, 『하품은 맛있다』 와 『프랑켄슈타인 가족』 은 집필 당시 시달렸던 불안과 불면, 우울을 형상화 했습니다.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고 있는데, 요즘은 그 둘의 관계를 보면서도 소재를 떠올리고 있어요. 내년에 선보이도록 하겠습니다.
『페로몬 부티크』 는 로맨스와 추리 장르의 만남인데요, 이 두 장르의 생소한 결합이 큰 즐거움을 준다는 평도 많았습니다. 작가님께서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으신 장르의 결합이 있다면요?
여덟 명의 젊은이가 살해되고 당장 내 목숨조차 위태로운 데다 직장마저 불안정할 때 과연 연애가 될까? 현실에서라면 불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설이니 그 희박한 가능성을 실현시킬 엄두를 냈던 것 같습니다. 함께 비를 맞은 사람만이 같이 무지개를 볼 자격이 있을 거라 생각하며 러브라인을 만들어나갔어요. 어찌 보면 첫 로맨스인데, 새로운 욕심으로는 무협과 로맨스를 결합해보고 싶어요. 제겐 가장 생소한 장르가 무협입니다. 물론 아직 자신이 없어서 엄두를 못 내고 있죠. 하지만 언젠가는 꼭 한 번 여성향 로맨스 무협을 써보고 싶습니다.
“독자와 이상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여행하는 단짝이고 싶다”라는 표현을 쓰신 적이 있습니다. 시나리오 작가, 웹소설 작가 등 요즘 스토리텔러를 희망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이분들에게 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요?
소설가가 되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는 거였어요. 곡절 많은 인생 이야기부터 판타지, 로맨스, 성공이나 실패담 같은 거죠. 때때로 간절히 죽이고 싶거나 살려내고 싶은 사람들에 대한. 그런데 정작 그걸 원고로 옮기는 사람은 극소수예요. 재능이 없다는 핑계로 자신의 원천스토리와 비슷한 장르의 책을 고르거나 영화표를 예매하죠. 조금 더 용기를 냈으면 좋겠어요. 요즘엔 필력이 조금 모자라도 좋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세일즈가 가능해졌어요. 과거엔 출간을 위해 출판사에 투고하거나 그도 여의치 않으면 자비로 출판을 했지만 지금은 스토리 에이전시도 늘었고, 시놉시스만으로 응모 가능한 공모전이 다양해졌으니까요.
저는 앞으로도 이상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여행할 겁니다. 당신이 누구이든 함께 손잡고 걸으며 소곤소곤 떠들고 싶어요. 만약 작가를 꿈꾼다면 제가 보지 못한 또 다른 세계로 초대해도 좋습니다. 발밤발밤, 따라 걷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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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로몬 부티크강지영 저 | 씨네21북스
다양한 장르를 종횡무진하는 작가의 장기답게, 미스터리와 기묘한 로맨스, 흥미진진한 액션수사물이 한껏 버무려져, 마치 장르 드라마 한 편을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