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알고 싶다>, <어쩌다 어른> 등 TV 프로그램에서 미스터리한 사건을 이야기하고, 법의학 관련자문을 하고 있는 서울대 법의학교실 유성호 교수의 월요일은 부검으로 시작된다. ‘매주’ 시체를 보러 가는 그는 지난 20년 간 1,500여 건의 부검을 담당하면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죽음을 꼼꼼히 살펴왔다. 시체가 말하고 있는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애쓰다 보면 “그 사람 인생의 압축판이라고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기록들을 보게 된다.”(22쪽)는 유성호 교수. 그는 이를 통해 이 세상의 진짜 맨얼굴, 우리 삶의 민낯을 마주해왔다. 그리고 그 일은 필연적으로 죽음을 숙고할 수밖에 없게 했다.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는 유성호 교수가 서울대학교에서 진행한 ‘죽음의 과학적 이해’라는 교양 강의를 기반으로 한 ‘죽음’ 강의다. 책의 저자 소개글에는 ‘죽은 자에게서 삶을 배우는 법의학자’라고 적혀있는데 다소 역설적으로 들리는 이 말은 그러나 자살, 고독사처럼 “대부분은 급작스러운 죽음”을 마주해왔던 유성호 교수에게는 더 없는 진실이었다. 살아 있는 동안 더 깊이 죽음을 숙고하고, 준비함으로써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 이것은 노련한 법의학자가 쌓아온 삶의 지침이자 죽음의 지침이다.
다양한 죽음을 경험한다는 것
처음으로 대중서를 내셨어요.
아시다시피 전문 논문에 대한 요구가 많으니까요. 대중서는 쓸 엄두를 못 냈어요. 이 책을 쓰게 된 것도 출판사 덕분이에요. 간신히 냈어요.(웃음) 학교에서 하는 ‘죽음의 과학적 이해’라는 교양 강의 내용을 기반으로 썼기 때문에 그나마 빨리 쓸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연구하시는 입장에서는 별도의 대중서 작업이 부담스러울 수 있겠지만 관심 있는 대중에게는 이런 책이 더 많아지면 좋을 거예요. 실제로 이 책의 배경이 된 교양과목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도 예상 외로 좋았다면서요?
저도 놀랐던 건데요. 강의를 처음 개설할 때 죽음에 대한 이야기인데 누가 들을까 싶었거든요. 학교의 요구가 있었기 때문에 개설은 하면서도 많이 들을 거란 생각은 못했어요. 60명 규모로 하면서도 폐강되진 않을까 조심스러웠는데 정원이 꽉 차서 정말 놀랐어요. 게다가 학생들이 수업을 굉장히 재미있어 하더라고요. 법의학이 기본적으로 재미는 있죠. 아무래도 쉽게 접하지 못하는 것을 엿본다는 느낌이 있으니 재미있어 하는데요. 제가 더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죽음’에 대한 것이었어요.
책도 크게 두 부분, ‘법의학’과 ‘죽음’으로 나눌 수 있잖아요. 그 가운데 교수님이 더 하고 싶으셨던 이야기는 죽음 쪽이었군요?
우선 제가 법의학을 시작한 건 이윤성 교수님의 강의 때문이에요. 너무 재미있었어요. 또 누군가 해야 한다면 내가 해보자는 생각도 있어서 시작한 거죠. 그런데 이 학문이 나를 성숙시키고 발전시킨다고 느꼈어요. 단순히 죽은 사람을 관찰하고, 부검하고, 감정하는 걸 떠나서 그걸 통해 제가 살아온 환경이나 제 지식의 범위를 넘는 다양한 삶과 죽음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그러면서 제 스스로가 성숙해지는 걸 느꼈어요. 평범한 사람이었는데 이 직업을 하다보니까 제가 인격적으로 성숙해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이런 발전은 과연 어디서 왔는지 생각해봤어요. 결국 남들은 흔히 관찰하지 못하는, 죽음에 대한 경험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대개 죽음의 경험은 지인이나 가족에 한정되잖아요. 다양한 죽음을 경험한다는 것 자체가 내 삶에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했고요. 그러면서 이것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꽤 오래 전부터 한 거죠.
다양한 죽음을 보다 보니 삶이 성숙해졌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게 들리거든요.
죽음 때문에 삶이 성숙해진다는 말이 그저 구호가 아니에요. 진실로 그래요. 삶의 종착역이 죽음이잖아요. 그 죽음을 인식하는 순간 보다 성실해지는 것 같아요. 단적인 예로 ‘워너원’이라는 그룹이 있어요. 이들이 시한부 그룹이었잖아요. 아마 끝을 분명히 알고 시작했기 때문에 더 충실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우리 삶은 분명히 유한해요. 그런데 가끔 보면 천년만년 살 것처럼 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러면서 주변에 상처를 주고, 나쁜 짓도 하죠. 우리 삶이 유한하다는 걸 인식한다면 짧은 기간 동안 더 열심히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 책을 통해서 그런 뜻을 전달하고 싶었어요. 제가 법의학을 한다고 하면 대부분은 재미있는 사건을 물어보시는데요. 역설적으로 법의학을 오래 하신 분들은 인생에 대해, 삶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시죠. 그러면서 조금씩 성숙해지는 걸 제 자신이 느끼니까요. 이걸 더 잘 전달하고 싶었어요.
삶의 마지막 챕터, 죽음
“죽음 그 자체에 대한 숙고만으로도 우리의 삶이 갖는 의미의 지평은 훨씬 넓어질 것”(167-168쪽)이라고 하셨죠.
훌륭한 사람의 죽음이라면 그의 일생을 반추하면서도 우리가 배울 수 있고요. 악인의 죽음이라면 교훈으로써 배울 수도 있어요. 타인의 삶은 우리에게 항상 교훈을 주잖아요. 우리가 다른 사람과의 교류를 통해서 배운다면 그 사람의 마지막 챕터인 죽음을 보고 배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해요. 죽음과 삶을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데요. 삶과 죽음을 연장시켜서 보면 다르겠죠. 대부분의 사람은 죽음을 꺼려 하지만요. 죽음을 직접 마주하는 제가 어떻게 보면 행운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요. 그러니까 그런 제가 얘기를 해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인상적이었던 문장이 “죽음을 당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맞이하는 쪽으로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142쪽)이었어요.
태어난 건 우리의 결정이 아니었죠. 하지만 태어난 후에는 대부분 자기의 삶을 살아요. 더구나 성인이 된 후에는 독립적인 삶을 살죠. 그리고 죽음이라는 것은 우리 삶의 대미(大尾), 마지막 페이지, 나의 마지막 작품이에요. 독립적인 인생의 끝인 거죠. 그렇게 본다면 왜 죽음을 내 자녀, 내 지인, 내 배우자 등 타인에게 맡기고 부담을 줘야 할까요. 물론 죽음이 늘 뜻한 바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내 죽음을 준비했느냐 하지 않았느냐의 차이는 어마어마해요. 중환자 의학이나 연명의료 결정은 그런 의미에서 다룬 건데요. 모두 내 삶의 끝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와 연결되는 문제예요. 100명의 삶이 있다면 100개의 죽음도 다 다를 수 있을 텐데 왜 다 똑같아야 하는지 함께 생각해보고 싶어요. 건전한 삶 속에서 죽음을 준비하고 숙고하는 것은 성숙하고 독립적인 성인이라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말씀을 듣고 보니 그간 우리가 죽음을 아주 소극적으로 대해 왔다는 생각이 드네요.
죽음, 하면 다들 얘기 꺼내기 싫어하시죠. 제가 교양과목을 개설할 때도 젊은이에게 무슨 죽음이냐고 하는 반응이 있었어요. 당연해요. 사회적으로는 죽음을 얘기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니까요. 하지만 죽음을 숙고할 필요가 있거든요. 우리가 시험공부를 한다고 시험을 꼭 잘 보는 건 아니지만 공부 안 하면 망하잖아요. 그것처럼 죽음도 반드시 대비를 하고, 숙고해야죠.
교수님께서는 연명의료계획서도 작성해두셨다고요?
이건 옵션이에요. 꼭 쓸 필요는 없어요. 마지막까지 심폐소생술 등을 유지하고 싶으신 분들도 당연히 있겠죠. 이걸 꼭 하자고 얘기하는 건 아닌데요. 저는 오랫동안 의사한테 너무 지나친 책임을 물어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사실 의사는 질병을 예방하고, 질병을 치료하는 직업이지 죽음을 관장하거나 죽음을 어찌할 것인가에 대해 조언하는 직업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만약 내가 연명의료를 끝까지 받고 싶다면 당연히 그런 결정을 할 수 있겠지만 회복 가능성이 없는 상태에서 그 의료행위가 자신의 존엄성을 해친다고 생각한다면 연명의료를 과감히 중단해달라고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연명의료계획서는 자신의 의지를 명시적으로 밝혀두는 아주 중요한 결정이 아닐까 싶어요.
앞서 밝혔듯이 나는 아내와 함께 연명의료 거부 의사를 밝혀놓았고 죽음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끝에 우리 부부가 죽기 전까지 해야 할 일들을 뽑아보기도 했다.(중략)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자각한다면 반드시 버킷리스트를 작성해 이것저것 소망을 실현해보는 삶을 살아볼 것을 권유한다. 거기에다 내 삶의 종언을 구상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 같다.(243-244쪽)
대비하지 못한 죽음들
언제부터 죽음에 대해 지금과 같은 생각을 하셨어요?
법의학자가 하는 부검 가운데 살인사건은 많지 않아요. 대부분 다루는 것은 갑작스러운 죽음입니다. 대비하지 못한 죽음이죠. 이 경우 법의학 실무를 하다보면 죽음에 대한 아주 다양한 층위를 바라보게 돼요. 물론 처음에는 밝혀지지 않은 살인사건이 있다면 내가 밝혀야겠다, 하는 식의 생각을 한 적도 있는데요. 법의학 실무를 하다 보니 대부분은 평범한 사람의 죽음이었고요. 이들의 죽음이 너무나 황망하고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았어요. 가령 요양병원 등에서 돌아가신 분들을 보면 생각보다 좋지 않은 환경에 계셨던 분들이 많아요. 그럴 때 과연 이분들이 이런 죽음을 원하셨을까, 생각하게 되죠. 법의학이란 죽음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요. 매년 100건 이상 부검을 하다보면 이런 생각이 자연스레 진행되는 거죠.
법의학자가 마주하는 죽음이 흔히 생각하는 미스터리한 사건은 아니군요? 오히려 그런 사건은 드문 편이라고요?
국내에서 1년에 약 28만 명이 사망하는데요. 그 중 타살은 500명이 되지 않아요. 2017년에는 약 370-380명 정도였죠. 전국에 40명의 법의학자가 있거든요. 그렇다면 법의학자가 1년에 10건 정도만 하느냐? 그렇지 않아요. 대부분은 급작스러운 죽음이죠. 우리나라에서 가장 심각한 죽음 중 하나인 자살, 사회적 맥락에서 많은 생각을 일으키게 하는 고독사, 이런 것들을 저희가 다루게 됩니다. 사실 한국에서 준비된 죽음은 그다지 많지 않아요. 작년부터는 연명의료중지가 가능해졌으니까 그나마 하나의 방편이 마련됐을 뿐이죠. 우리에게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제도가 뭐가 있겠어요. 그러다보니 법의학자들은 준비된 죽음은 거의 보지 못한다고 보면 돼요.
책에서 자살의 사회적 맥락을 길게 다루기도 하셨잖아요. 이에 대한 교수님의 경험도 남다를 것 같네요.
자살이 너무 많아요. 정부도 자살에 대해 꾸준히 노력을 하고 있어요. 다만 근본적은 부분은 해결이 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자살률이 너무 높죠. 10대, 70대 등 층위도 너무 다양해서 가끔 좌절을 느낄 때도 있어요. 그중 노인 자살은 지금 우리 사회의 큰 숙제인데요. 노인세대에 대한 사회안전망이 너무 부족해서 더 이상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너무 많이 자살하세요. 보통 자살을 10만 명 당 20명 정도 한다고 하는데요. 노인 분들은 10만 명 당 100명씩 자살해요. 그건 어마어마한 거예요. 또 젊은 여성의 자살이 상대적으로 높죠. 남성 자살률도 높긴 한데요. 사회적 좌절이라는 것을 경험하는 세대가 젊은 여성인 거예요.
더불어 언론이 자살에 대해 지나치게 구체적으로 보도하는 것을 문제 삼기도 하셨잖아요. “심리적으로 허약한 사람에게는 확실전염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189쪽)고요.
언론의 책임도 분명히 있어요. 자살은 원래 부추기거나 자세히, 반복해서 보도하면 안 돼요. 지금은 누군가 사망했을 때 장례식장을 지나치게 많이 보여주고 오열하는 모습을 보여주잖아요. 또 원인을 단순화시켜요. 유명배우가 가정폭력이나 배우자의 외도로 자살을 했다고 보도를 하면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과 배우를 동일시할 수 있거든요. 언론 보도가 SNS와 결합이 되면 파괴력이 더 커지잖아요. 분명히 문제가 있죠.
워낙 자살률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니까 이 심각성을 깊이 체감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좀 무뎌진다고 할까요. 그 다음에 대한 논의도 더 많이 있어야 하는데 말이죠.
그래도 많이 줄고 있어요. 하나 중요한 것은 음주량 감소예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왜냐하면 알코올이라는 게 우울할 때 먹으면 방아쇠나 다름없어요. 술을 마셨을 때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는 내가 억제하던 이성이 이완되기 때문이거든요. 처음에는 그런데 실제로는 전반적으로 기분을 다운시키는 거라서 더 우울해지죠. 혈중 알코올 농도가 소주 한 병 마셨을 때 0.1정도 되는데요. 자살하는 사람들은 0.03정도에서 많이 발견돼요. 술이 깰 때죠. 음주량 감소가 자살 감소와 관련이 있다고 봐요. 점차 줄고는 있죠. 하지만 여전히 너무 자살이 많으니까 같이 조금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얘기하고 싶어요.
과연 어떻게 자살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할지 고민이 많이 되는데요.
저는 자살을 경험할 수 있는 삶의 다른 부분을 누리지 못하고 하는 안타까운 선택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개인에게 조금만 버텼으면, 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사회적으로 답지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많다고 보거든요. 다른 답지를 찾았다면 자살하지 않았을 사람들도 너무 많아요. 적어도 사회가 보지 못한 답지를 보여주려고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전문가를 만나 초기에만 관리할 수 있어도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사소한 약물만 복용해도 정말 좋아지거든요. 그런 문턱이 조금 낮아진다면 훨씬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해요. 우선 저는 의사니까 이쪽에 대해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국가에서 정신의학 약물에 대한 인식의 문턱을 낮춰야하지 않을까요. 1%는 조현병에 걸릴 수 있고요, 100명 중 5명은 주요 우울장애에 걸릴 수 있는 거니까요.
결국 우리 삶을 지탱하는 것은
<그것이 알고싶다> 출연도 그렇고요. 교양 강의도 하시고,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와 같은 출판활동도 하셨잖아요. 대중에게 법의학을 좀 더 알리고자 하는 마음도 크신 거죠?
네, 국내에 법의학자가 적어요. 게다가 대부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계세요. 공무원이죠. 또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법의학자의 모습은 단편적 사실이거든요. 저는 법의학자가 무엇을 하는 직업인지에 대해 알려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많이 해야 할 직업은 아니에요. 의과대학을 졸업하면 임상의학을 하는 게 맞습니다. 질병을 고치고 생명을 조금 더 건강하게 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게 의과대학 취지에 맞아요. 다만 그 가운데 몇 명쯤은 법의학을 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거죠. 그렇다면 누군가는 얘기를 해줘야 하는데요. 저의 동료인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계신 분들은 공무원이라 나올 수가 없어요.(웃음) 저는 대변인 정도라고 생각해주면 좋겠어요.
인력부족 문제도 있을 것 같아요.
늘어나야 해요. 실제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도 정원을 늘렸어요. 공무원 정원 늘리기가 어렵잖아요. 그런데 정원 미달이 됐어요. 못 뽑은 거죠. 5급 공무원 뽑는데 미달 됐다는 얘기 들어본 적 있으세요? 그런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어요. 이 일을 하려면 어느 정도 개인이 희생을 감수하기도 해야 하는데 그걸 요구할 수는 없는 거니까요. 그래서 미국도 해외 인력을 많이 채용하고 있어요.
교수님도 법의학자가 되겠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대도 있었잖아요. 그럼에도 계속 하신 이유도 궁금하네요.
약간 자만심인데요. 내가 아니면 어떻게 하겠느냐(웃음) 하는 마음도 있었던 것 같아요. 일단 자전거에 올라탔고, 여기서 멈출 수 없으니까요. 내가 아니어도 아마 누군가는 하겠지만요. 나 아니면 안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계속 했어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고 제목에 쓰셨는데요. 교수님의 일주일은 어떻게 흘러가는지 들려주세요.
월요일은 보통 부검이 있어요. 저희가 여덟 개 경찰서 관할이기 때문에 그곳에서 오는 부검을 받아요. 헤드 타워는 국과수고요. 국과수에서 연락을 받아 저희한테까지 오는 거죠. 부검이 생각보다 힘들어요. 예전에는 부검을 일주일에 두 번 했는데요. 그땐 너무 힘들었어요. 다행히 함께 하는 교수님들이 계셔서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만 부검을 하게 됐고요. 맡고 있는 강의도 몇 개 있어서요. 수요일과 목요일에 수업을 보통 몰아서 해요. 화요일과 금요일에는 계속 연구를 하죠. 논문을 계속 써야 하거든요. 그밖에 법원, 검찰, 경찰에서 의뢰가 정말 많이 와요. 사망 원인을 판단해야 하는 송사나 의료분쟁이 많죠. 지금도 책상에 백 개쯤 쌓여 있어요. 항상 망연자실이죠.(웃음)
일상과 일을 잘 분리하는 것도 아주 중요한 일일 것 같아요.
그건 의외로 쉽게 돼요. 사실 일상으로 가져가면 삶을 영위할 수가 없어요. 한 번은 이런 적이 있었어요. 147회를 찔린 시체가 왔어요. 그걸 하나씩 다 셌죠. 바깥에서만 센 게 아니라 어디로 들어갔는지 봐야 하잖아요. 안까지 들여다보고 하는데 3-4시간이 걸렸어요. 이런 일을 집에 가지고 간다? 있을 수 없죠. 끔찍한 기억, 마음 아픈 순간은 그 자리에 두고 와요. 그럴 수밖에 없어요. 잊지는 않지만 분리는 분명히 해요.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일 거예요. 누구나 할 수 있을 거고요. 많이들 물어보세요. 괜찮으냐고요. 안 미쳐요.(웃음) 괜찮아요.
그럼에도 잊히지 않는 죽음도 있을 테죠? 시간이 지나도 기억에 남아 있는 사건도 있나요?
끔찍한 사건은 오히려 잘 안 남아 있는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2015년 의정부 화재 사건이에요. 그때 사망하신 분 중에 아이를 끌어안고 있던 분이 계셨어요. 싱글맘이었는데요. 전신화상을 입고 결국 일주일 후에 돌아가셨죠. 그때 그분이 끌어안고 있던 아이는 거의 다치지 않았고요. 그분을 부검했는데요. 너무 마음에 남는 거예요. 사랑하는 아이를 끌어안고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싶은 거죠. 그건 정말로 오랫동안 남았어요. 사실 아동학대 사건도 많이 보기 때문에 회의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세상에 왜 이렇게 나쁜 사람이 많을까, 저도 많이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런 경험이 더 쌓이다보니까 사회를 지탱하는 건 그렇듯 가장 평범한, 사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아파요. 부검하면서 많이 울기도 했던 사건이에요.
법의학에게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법의학자가 꿈인 학생도 있을 거예요. 그렇다면 지금 최선을 다하는 게 우선이죠. 관심이 있다는 학생에게 꿈이 바뀌는 것도 자연스러운 거니까 늘 관심은 갖되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를 하거든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의과대학에 들어올 수도 있고, 생명과학을 공부한 후에 이 일을 할 수도 있어요. 법의학이나 법과학이라는, 국가가 하는 정의나 인권에 관심이 있으시면 생명과학, 공학, 화학 등을 통해서 기여할 수 있는 방법도 있거든요. 또 성인 분들 중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문국진 교수님의 책이나 제 책을 찾아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문국진 교수님은 인세를 전액 법의학계에 기부하시거든요. 저도 이 책 인세를 학교에 기부하기로 했어요. 이 책으로 시작해서 문국진 교수님 책으로 관심을 이어가시면 좋겠어요. 여러분이 많이 지지해주시면 관련해서 책이 많이 나올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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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유성호 저 | 21세기북스
법의학자의 시선을 통해 바라보는 ‘죽음’은 어떤 것인지 다양한 사례와 경험들을 소개하며, 모호하고 두렵기만 했던 죽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제시한다.
신연선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