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동네서점이 된다
망원동의 간판들은 심심찮게 모습을 바꾼다. 어제까지만 해도 분식점이었던 곳이 오늘은 쌀국수집이 되어있는 일이 부지기수다.
글ㆍ사진 조영주(소설가)
2019.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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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2018년) 6월 27일, 이사를 온 날의 일이다. 읍사무소에 들러 전입신고를 마치자마자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괜히 읍이 아니다. 엔간한 건 집을 중심으로 5분 거리에 모두 있었다. 빵집, 카페, 도서관, 우체국, 분식점, 마트 등을 비롯해 교회에 치킨집, 피자가게, 설렁탕집 등 없을 게 없는 듯했건만 딱 한 가지 빠진 게 있었다.

 

서점이었다.

 

있어야 할 건 다 있고 없을 건 없는 화개장터 같은 마을에 왜 서점이 없나, 좀 의아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서점만큼 망하기 쉬운 장사도 없으니까.

 

내가 지금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망원동 ‘카페 홈즈’에는 언제나 갑작스레 손님이 찾아 든다. 지난 3월 21일도 그랬다. 최근 재미있게 읽은  『태도의 말들』 을 펴낸 유유출판사 대표님의 아내분이 오셨다. 그 분은 파주에서 땅콩문고를 운영하셨던 분인데, 첫인사가 남달랐다.

 

“안녕하세요, 망한 땅콩문고 사장입니다.”

 

나는 이 말을 듣자마자 아, 하고 몇 년 전 일을 떠올렸다. 땅콩문고에서 찰리브라운과 스누피로 대표되는 만화 『피넛츠』 크리스마스 선물 세트(정확한 명칭은 아니지만)을 구입한 적이 있었다.

 

빈스 과랄디. 이름을 모르는 이는 있어도 선율을 모르는 이는 없으리라. 피넛츠, 우리나라에서는 스누피로 먼저 떠올리게 되는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메인 테마 연주곡 “따라 따따다 따라따”(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본문 하단에 유튜브 링크를 건다)가 바로 빈스 과랄디 트리오의 소리다. 땅콩문고에서는 이런 빈스 과랄디 트리오의 앨범 중 크리스마스 에디션을 책과 묶음으로 판매했다. 『PENUTS 아트 오브 피넛츠』와 이 만화를 그린 작가 찰스 슐츠의 에세이  『찰리 브라운과 함께한 내 인생』 , 그리고 빈스 과랄디 트리오의 ‘A CHARLIE BROWN CHRISTMAS’ 앨범을 팔다니 이건 내게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인가 싶었다. 바로 오프라인 서점에 전화를 걸어 온라인 서점에서 하듯 주문을 했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상자 안에 땅콩 그림이 그려진 캔버스백이 담겨 왔다.

 

 

 


그해 크리스마스는 따듯했다. 특히 빈스 과랄디 앨범 커버로 스누피의 집을 만들 수 있는 게 마음에 들었다. 나는 스누피 집을 접어 세운 후 크리스마스 소원을 빌었다. 오래오래 있어주세요, 땅콩문고. 결과적으로 소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나는 착한 아이가 아니라 나쁜 어른이었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SNS를 통해 땅콩문고가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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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인연이 카페를 찾아왔다. 내가 만든 음료를 마시며 담담하게 자신을 망한 서점 사장이라고 말하다니, 나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생긴 지 얼마 안 된 한 작은 서점 한 곳을 떠올려버렸다.

 

망원동의 간판들은 심심찮게 모습을 바꾼다. 어제까지만 해도 분식점이었던 곳이 오늘은 쌀국수집이 되어있는 일이 부지기수다. 작년 10월 2일 망원동 안쪽 골목에 서점이 생겼다. 이름은 '그렇게 책이 된다'. 10명 안팎이 앉으면 가득 찰 작은 책방이다. 우연히 서점이 오픈한 날 들른 이후 꾸준히 가고 있다. 땅콩문고 사장님을 뵙고 나니 이곳이 떠올랐다. 2월에 책을 많이 사서 3월에 책을 안 사겠다고 호기롭게 선언했는데 갑자기 염려가 됐다. 후다닥 서점으로 달려가 책을 두 권 구입하고, 마침 카페를 찾은 작가님 두 분 역시 한 권씩 강매(?)시킨 후 회원가입까지 완료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알아서 책을 팔자니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동네서점이란 이런 것이 아닐는지, 안부를 염려하는 단골이 하나 둘 늘어날 때 그곳은 그렇게 ‘동네서점’이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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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주(소설가)

별명은 성덕(성공한 덕후). 소설가보다 만화가 딸내미로 산 세월이 더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