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은 아니지만 둘이 살아요』 는 일간지 기자인 김용운 작가가 고양이와 함께 ‘두 명은 아니지만 둘’로 살면서 느끼는 평범한 날들의 감상을 담은 책이다. 작가는 시장 떡볶이와 혼자 걷기를 즐기고, 홍합탕 재료를 사다가 요리해서 한 끼를 해결할 줄 아는 ‘현실남’의 일상 이야기를 에세이로 풀어 놓았다. 저자는 좀 더 나답게 살라거나, 결혼 따윈 필요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멋있어 보이거나 센 척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그저 나이가 좀 더 든 평범하지만 때로는 여린 감정을 지닌 사람의 모습을 보여준다. 현실과 궁상을 오가면서도 결코 유머를 잃지 않는 생활밀착형 에세이를 출간한 김용운 작가를 만나 보았다.
‘혼자 사는 생활’을 주제로 책을 출간하셨어요.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이십 대 후반 언론사 입사 준비 스터디를 하며 만났던 지인들에게 “마흔 넘으면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내겠다”고 술자리에서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습니다. 세월은 흘렀고 주변에 말해놓은 게 있다 보니 책을 내야겠다는 나름의 강박을 갖고 마흔을 맞이했습니다. 사실 ‘두 명은 아니지만 둘이 살아요’를 내기 전에 두 권의 책을 내서 면피는 했습니다. 하지만 앞서 냈던 두 권 중 한 권은 공저였고 또 한 권은 초등학생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위인전이었다보니 아쉬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음 브런치에 ‘독신 공감’이라는 주제로 연재했던 글이 조그만 상을 받았고 이를 계기로 에세이집을 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책을 내는 과정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더구나 언론사에서 일하면서 남의 책을 평하는 입장에 있다가 직접 저자가 되는 과정을 겪다 보니 그간 내가 참 교만하게 세상을 본 면이 있었구나 반성도 하게 되었습니다.
‘혼자 사는 생활’을 주제로 한 이유는 제가 직접 겪고 있는 일상이기 때문입니다. 또 최근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혼자 사는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30%에 육박할 정도로 혼자 사는 삶은 이제 한국사회의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습니다. 시대의 변화를 앞서 맞이하는 출판계의 특성상 1인 가구와 혼자 사는 삶에 대한 책들도 이미 많이 출간된 상황이구요. 그런데 평범하게 직장생활하면서 혼자 사는 일상의 내부를 들여다본 책은 많지 않은 듯했습니다. 더구나 혼자 사는 남성 1인 가구의 이야기는 거의 없더군요. 여기에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야기들도 반려동물과의 에피소드에만 집중된 채 생활과의 연결고리가 촘촘한 글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그 지점에 대한 글을 더 써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에세이 형식에 있어서는 이른바 ‘웃픈’글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너무나 세세하게 개인의 내면을 드러내거나 타인의 이야기를 가져오기보다 혼자 살면서 겪는 일상의 아이러니한 상황을 포착해 읽는 분들이 피식 웃거나 큭큭거릴 수 있는 글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여기에 내심 베스트셀러에 대한 욕심도 글을 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뻔한 월급을 받는 상황에서 책으로나마 가욋돈을 마련해 지금보다 넓은 집으로 이사가 송이에게 방 한 칸 따로 마련해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책이 나오기까지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 듯합니다.
꾸준히 기록하는 습관이 있으실 것 같은데, 작가님은 하루 중 언제 글을 쓰시는지 궁금합니다.
책 속의 저자 소개 중에 ‘보고 듣고 읽고 묻고 쓰는 게 취미이자 생업’이라고 할 만큼 저는 글을 쓰는 게 일상이기도 합니다. 다만 에세이 같은 글은 주로 밤에 쓰긴 합니다. 하지만 밤에 쓴 글은 늘 그렇듯이 아침에 제정신으로 보면 민망하기 이를 데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글을 다듬을 때는 해가 떠 있는 낮에 하려고 애를 씁니다. 사실 꾸준히 기록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진 않습니다. 꼼꼼한 성격이 아니다 보니 덤벙거리는 경우도 많고 꾸준히 무엇을 해본 경험도 드뭅니다. 그저 남이 시키지 않아도 나를 위해 글 쓰는 일을 근근이 이어온 게 일상의 에피소드나 느낀 점을 세심하게 담아내는 밑바탕이 된 듯합니다. 개인 페이스북이나 닉네임으로 운영하는 블로그 같은 곳에 그야말로 손 가는 대로 글을 올려놓고 나중에 이를 다듬은 경우도 많습니다. 스마트폰이 있으니 출퇴근 중에 떠오른 짧은 감상들은 스마트폰 메모장 같은 앱에 적어 놓기도 합니다.
살림은 사람이 성장하고 살아가는데 갖춰야 할 기본이므로 ‘살림능력시험’이 필요하다는 대목이 재미있었는데요, ‘살림능력시험’을 만든다면, 어떤 능력을 강조하고 싶으신가요?
살림에서 대체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정리정돈’ 능력입니다. 음식을 하고 설거지를 하거나 빨래를 하고 다림질을 하는 건 기능적으로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 혹은 사 먹을 수 있고 세탁소에 빨래를 맡길 수도 있습니다. 또 그런 살림을 도와주는 여러 가전 기구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리정돈만은 대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설령 누가 와서 정리정돈을 해준다 해도 집안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야 살림에 써먹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리정돈은 살림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능력이 과거에는 별로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최근에 주목받고 있습니다.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는 책들의 주제가 바로 정리정돈에 있습니다. 정리정돈은 결국 ‘버리기’와 연결이 됩니다. 무엇을 버릴지를 파악하고 미련 없이 버려 공간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살림능력시험’에서 가장 고난도 문제로 내고 싶단 생각이 듭니다. 이것은 또 구매와도 연결이 됩니다. 결국 필요한 것만 사는 능력이 지금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림의 경쟁력이기도 하니까요.
혼자 살면 ‘결혼은 언제 하냐, 혼자 살면 외롭진 않냐’ 같은 원치 않은 질문을 받게 되기도 합니다. 그런 어려움에 대처하는 작가님의 노하우는요?
상황에 맞게 대처합니다. 사내에서는 아직 미혼이신 선배들을 예로 들어 피해갑니다. 일종의 물귀신 작전입니다. 또 저보다 나이 많은 유명 남자 미혼 연예인들을 예로 들기도 합니다. “저 분들은 뭐가 부족해서 결혼을 안 하겠냐”면서 넌지시 그분들과 저를 동급에 놓습니다. 혹은 30%에 육박한 1인 가구 비중을 예로 들어 ‘트렌드 세터’임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가끔은 역공을 합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부처님 말씀을 방패 삼아 “혼자 살 용기가 없어 둘이 사는 게 결혼”이라고 받아칩니다. 또는 “둘이 산다고 외롭지 않으면 왜 이혼들을 하냐”고 되묻기도 합니다.
무언가 석연치 않다는 표정을 지으면 다음과 같은 사지선다를 제시합니다. 1번 [결혼하고 싶은데 결혼해서 행복하게 산다] 2번 [결혼하고 싶어 했는데 외롭게 산다] 3번[결혼하고 싶은데 결혼하지 못하고 있다] 4번[결혼에 대한 생각 자체가 없어 혼자 마음 편히 산다] 이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꼽으라 하면 다들 1번을 꼽습니다. 그 다음이 중요합니다. 그럼 가장 불행한 걸 꼽으라고 하면 2번이나 3번으로 의견이 갈립니다. 이때가 타이밍입니다. “거봐요 4번은 안 고르잖아요. 제가 지금 4번입니다. 불행한 것보단 낫죠.” 제가 지금 부모님의 결혼 압박을 방어하고 있는 논리기도 합니다.
요즘 같은 여름, 혼자여서 할 수 있는 피서법을 추천해주신다면요?
혼자 사시는 분들은 집에서 ‘원시 상태’로 지내는 게 가능합니다. 특히 집에 돌아와 샤워 후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시원함은 혼자 사는 사람들이 누리는 진정한 호사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한 피서가 없더군요. 물론 창문과 베란다에 커튼이나 블라인드는 항상 점검하시고 감행하셔야겠지요.
평양냉면 먹는 것도 나름의 피서법입니다. 평양냉면을 20대 후반부터 줄곧 혼자 가서 먹고 오곤 했습니다. 평양냉면을 파는 노포들의 특징이 혼자 오시는 어르신 손님들이 많다는 점이었습니다. ‘혼술’, ‘혼밥’은 이미 평양냉면 가게에서는 오래전부터 어색하지 않은 일이었거든요. 제육 반 접시에 평양냉면 한 그릇. 거기에 소주 한 병 마시고 오면 기분이 시원해집니다. 그리고 요즘 주로 하는 피서법은 집에서 에어컨 켜놓고 아무 곳도 가지 않기입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 쐬면서 책 읽고 음악 듣다가 졸리면 자는 것만큼 좋은 피서 방법을 현재로서는 찾기 어렵더군요. 번잡한 수영장보다 동네 목욕탕 가서 냉탕 전세 내고 있는 것도 한때 저의 피서법이긴 했습니다.
고양이 송이가 작가님의 일상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아요. 작가님에게 반려동물과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다른 생명을 책임진다는 의미가 가장 큽니다. 그리고 그 책임감이 바로 우리의 일상을 성실하게 살아가게끔 하는 가장 중요한 감정적 토대가 아닌가 싶습니다. 책임감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조금은 더 성숙한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송이와의 일상은 각별합니다. 송이를 입양해오는 과정에서 가장 고민한 것이 ‘과연 내가 저 생명을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가?’ 였습니다. 입양하기 전 고양이 관련 인터넷 동호회에 가입했고 유기동물 입양 앱도 다운받아서 얼추 2년 정도를 알아보면서 준비를 했습니다.
어느덧 거의 3년 가까이 송이와 함께 지내면서 생명을 키우는 데는 그만큼의 보살핌과 희생과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덕분에 그저 머릿속으로 알고 있던 생명의 소중함이 더 피부에 와 닿았습니다. 그런 경험이 없었더라면 타인을 이해하는 폭이 더 넓어지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나 또한 부모님을 비롯해 누군가의 보살핌으로 성장했다는 사실 역시 송이와 함께 살지 않았더라면 깊이 파악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말로는 의사소통할 수 없는 송이와 살면서 말없이도 나눌 수 있는 정서적 교감의 중요성을 체감하고 말로 의사소통이 가능함에도 정작 정서적 교감을 나누지 못해 불행한 커플들의 사연들을 보면서 이른바 ‘현자의 시간’을 가끔 갖는 것도 의미라면 의미인 듯합니다. 고양이를 키우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고양이들은 그 자체로서 이미 인생의 의미를 깨달으신 분들이기도 합니다. 세상 걱정 없이 집안에 널브러져 있는 송이를 보면 누가 더 행복하고 현명한 인생을 사는지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평범한 날들의 감상을 담은 ‘생활밀착형 에세이’를 통해 작가님이 하시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나요?
책에서는 하는 일을 자세히 적지 않았지만 저는 경제일간지 <이데일리>에서 일하고 있는 15년 차 기자입니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여러 분야를 취재했는데 그중에는 방송과 영화 등 연예 분야도 있었습니다. 덕분에 대중이 선망하는 자리에 올라 명성과 부를 얻는 연예인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분들은 다 얻은 거 같았지만 막상 평범한 일상의 소소한 기쁨과 행복을 놓친 경우가 많았고 그것이 스트레스가 되어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한 분들까지 계셨습니다. 그런 과정을 취재하고 기사로 쓰면서 평범한 일상이 주는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이후 주변 지인들에게 일상의 소소한 일에 감응하고 소박한 것에 만족하고 소탈하게 사는 게 인생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것 같다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범한 날들 속에 숨어 있는 행운과 행복과 기쁨의 순간을 발견하는 눈이 있어야 하겠지요. ‘그런 안목을 키우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 같은 고민을 자주 하다 보니 결국 ‘생활밀착형 에세이’를 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와 같은 고민을 하시는 분들이 제 책에서 조금이나마 힌트를 얻어 가시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름 고품격 자학(?)유머를 선보이고 싶은 욕심도 있었습니다. 남을 깎아내려 웃음을 자아내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낮춰 웃음을 끌어내는 게 실은 ‘아재’들이 갖춰야 할 덕목이라 생각했습니다.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사실 ‘생활밀착형 에세이’보다 ‘청승자학개그형 에세이’라는 게 제 지인들의 주된 평가입니다. 적잖이 우스운 책입니다. 여기에 깔끔하고 세련된 일러스트와 한 손에 잡히는 사이즈 덕에 어디에 가지고 다녀도 센스가 돋보일 수 있는 책이라고 소심하게 자부하고 있습니다.
*김용운
원빈과는 전혀 다른 그냥 아저씨. 보고 듣고 읽고 묻고 쓰는 게 취미이자 생업. 유기묘 송이의 보호자. 월급 생활자이자 간헐적 여행자. 살림하는 이들을 존경하며 장래 희망은 담담하고 소탈하게 사는 것. 앞으로도 결혼생활 무경험자로 살겠다는 목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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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은 아니지만 둘이 살아요김용운 저/박영준 그림 | 덴스토리(DENSTORY)
일간지 기자인 남자가 ‘두 명은 아니지만 둘’이 함께 살면서 느끼는 평범한 날들의 감상을 담았다. 여기서 ‘둘’이란 남자와 고양이이다. 남자는 반려자 아닌 반려묘 송이 덕분에 인생이 한층 풍성해지고 깊어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김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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