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내부 모습.
지방에 사는 작가를 만날 때면, 서울에 일부러 와 주신다는 말씀을 들을 때면, 늘 좀 더 좋은 곳에 모시고 싶어진다. 이번에 만난 김홍철 작가 역시 지방에서 오신다기에 생각이 많았다. 어딘가 좋은 데를 가야하지 않을까, 이왕이면 건축과 관련이 있는 곳으로 정하면 좋을 듯한데 고민하는 사이 김 작가가 먼저 한 장소를 지정했다. 충정로 역 근처에 새로 문을 연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에 가자는 이야기였다.
어렸을 때는 모험을 즐겼다. 어디에 무슨 커피가 맛있더라 하는 말을 들으면 찾아가기도 했지만 요즘엔 그런 일이 없다. 마포에 가면 마포원조떡볶이나 김만수키친에 들렀다가 경성커피나 프릳츠에서 커피를 한 잔 하거나 원두를 구입한다. 요즘엔 이 코스에 푸른약국 안 ‘아직 독립 못한 책방’을 들르는 일이 추가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허용범위 내의 이야기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은 모험을 떠나는 듯한 기분이 든다. 김 작가를 만나는 날 역시 그랬다.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내부 모습.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은 충정로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다. 가는 동안 비가 부슬부슬 왔다. 올해 들어 칼럼을 쓰며 여러 명의 저자를 만났다. 희한하게도 저자를 만나는 날마다 비가 왔다. 저자들을 만나는 날마다 비가 오니까 비 오는 날이 좋아졌다. 이 날도 시작은 기분이 좋았으나 목적지에 도착했다가 당황했다. 문제의 박물관 건물이 없었다. 그냥 공원만 있었다. 이게 어찌된 영문인가 어리둥절해 하며 김 작가를 따라가다 보니 알았다. 지상은 공원, 지하에 박물관이 있는 구조다. 김 작가는 이런 박물관의 기본 정보를 잘 알고 있었다. 미리 와서 주변을 체크했다는 말에 와, 이것이 건축가의 자세인가 감탄하며 어떤 건축물을 지으셨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건축가가 아니라 기획 전시를 주로 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뿔싸, 이런 착각을. 건축과 관련된 책을 썼기에 당연히 건축가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김 작가의 책 『건축의 탄생』 은 세계의 유명 건축가들에 대한 만화다. 4년이란 시간을 들여 15명의 건축가가 지은 161개의 건축물에 대한 이야기를 그려냈다. 이 책에 등장하는 건축가들은 생존한 이들도 있지만 죽은 이들도 다수다. 책이 출간된 지난 4월까지는 생존했다가 최근 작고한 이도 있을 정도다. 르 코르뷔지에나 안토니 가우디, 김수근의 이름은 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뛴다. 이런 책을 썼으니 당연히 건축가일 줄 알았다. 저자의 책과 SNS, 유튜브와 브런치 등을 꼼꼼히 살펴 나름 공부를 했는데 한참 부족했나보다.
서소문성지박물관은 건축물로써 상당히 독특한 구조를 띄고 있었다. 하늘을 그대로 올려다보는 듯한 광장, 그 중앙에 선 선교자들의 상징들과 십자가 형태의 기둥들. 이런 구조를 보자니 김 작가의 책에서 봤던 무수한 건축물들이 떠올랐다. (알고 보니 이 박물관은 2019년 서울시건축상 최우수상을 수상한 건물이었다.) 나는 작가의 책에 실린 유럽 곳곳을 비롯하여 전 세계에 걸친 유명 건축물들을 떠올리며 물었다.
“그 많은 곳을 다 가보셨나 봐요?”
“아닌데요.”
아뿔싸, 또. 대체 왜 이렇게 이번엔 헛발질을 하는 건지 속으로 계속 진땀을 흘렸다. 그러면서 새삼 비 오는 날에 감사했다. 비가 와서, 날이 흐려서, 나의 당황한 표정이 보이지 않았을 거라며 자기암시를 계속 걸었달까.
작가와 헤어지고 집에 돌아가는 길, 김 작가가 페이스북에 날 만났다는 인증샷을 올렸다. 무척 유쾌한 분이라며 다음 번에 만나면 피자를 사주시겠다는 말에 당황한 내 표정은 들통이 안 났구나 하며 히죽거렸다. 귀갓길, 들리지 않을 대답을 해보았다.
“작가님, 해 뜨는 날 다시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가요!”
* 건축의 탄생 소개 유튜브
https://youtu.be/i2xSbJVGZ8A
* 건축의 탄생 브런치
https://brunch.co.kr/@hongf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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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탄생김홍철 저 | 루비박스
전 세계의 도시 풍경을 바꾸어버린 세계 현대건축의 역사를, 건축과 건축가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화 형식으로 소개한다. 현대건축가 15인의 일생을 통해 세계 현대건축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조영주(소설가)
별명은 성덕(성공한 덕후). 소설가보다 만화가 딸내미로 산 세월이 더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