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3년 발표 이후 영화와 드라마 등으로 잇달아 변주된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 이 연극으로 제작돼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공연되고 있습니다. 소설 출간 200주년을 맞아 지난 2014년 영국에서 초연된 작품인데요. ‘익히 알아서’, 또는 ‘지금의 시대상과는 맞지 않는 이야기를 굳이 공연장까지 찾아가서 봐야하나’라는 생각은 이 작품이 혼성 2인극이라는 점에서 강렬한 호기심으로 바뀝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을 단 두 명의 남녀 배우가 말끔히 소화한다는 거죠. 도대체 어떻게? 그래서 객석에서 직접 지켜봤습니다. 얼마나 기발한지, 보고 듣고, 관객들이 나눴을 법한 이야기까지 더해 각색해봅니다.
C구역 5열 1번 : 난 이런 독창적인 공연이 정말 좋더라. 도저히 예상이 안 됐는데, 막상 무대를 보니 너무나 멋들어지게 구현하잖아. 색다름에 목마른 관객들에게는 최고의 연극이야.
C구역 5열 2번 : 그러게. 20명이 넘는 등장인물을 어떻게 2명이 다 소화하나 궁금했는데, 진짜 극이 흘러가네. 게다가 러닝타임이 인터미션 빼고 무려 150분이야. 공연 끝나면 배우들 실려 가는 거 아닐까? 잘 짜인 대본과 배우들의 열연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C구역 5열 1번 : <오만관 편견>은 학창시절에 읽었던 책이라 엘리자베스(리지)나 제인, 다아시 등 등장인물이 몇 명밖에 기억이 안 나서 사실 초반에는 조금 산만했는데, 나중에는 다 알겠더라고. 국내 프로덕션을 이끈 박소영 연출이 ‘관객들이 이 공연을 본 후에 한 권의 책을 읽었다는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잊힌 책 내용이 다 떠오르는 기분이야. 목소리, 자세, 모자, 옷의 단추를 풀고 닫는 것으로 그 모든 인물을 표현할 수 있는 배우들이 정말 대단해. 그게 가능하도록 만들어낸 창작진은 존경스러울 정도고.
C구역 5열 2번 : 이렇다 할 등퇴장도 없고, 의상 전환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물론 그럴 시간도 없고 말이야. 걸어가면서, 방향을 틀면서 순식간에 바로 다른 인물로 바뀌어야 하니까 연습을 정말 치열하게 했겠구나 싶어. 자다가도 장면을 얘기하면 자동으로 나올 수 있을 정도여야지, 까딱 놓치면 소품은 바꿨는데 목소리는 직전 인물일 수도 있는 상황이잖아.
C구역 5열 1번 : 그럼 정말 큰일나겠다(웃음). 혹시 머릿속이 하얘지고 딴 생각이 들더라도 동작과 대사는 자동으로 나올 정도까지 연습했을 것 같아. 특이하게 배우들이 내레이션도 하잖아.
C구역 5열 2번 : 작가 제인 오스틴에 대한 영국인의 사랑과 존경심이 묻어나는 장치라고 해. 영국 배우이자 작가인 조안나 틴시가 각색했는데, 원작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책에 가장 가깝게 무대에 올린다는 프라이드가 있었다는군.
C구역 5열 1번 : 어찌 보면 이런 연극을 만들겠다는 생각 자체가 참 오만한 건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 코를 납작하게 눌러줬지 뭐야. 정말 감탄이 절로 나온다고. 기발함뿐이야? 코믹하기까지 하잖아. 개인적으로 이 작품의 가장 큰 변수는 ‘웃음’이 아닐까 싶어. 2명의 배우가 모든 캐릭터를 확실하게 표현해야 하니까 아무래도 과장된 부분도 있고, 특히 성(gender)이 뒤바뀌는 경우도 있잖아. 예를 들어 남자배우가 다아시를 연기하면서 엘리자베스의 언니 제인을, 여자배우가 엘리자베스를 연기하면서 제인을 좋아하는 남자 빙리도 연기하는 식으로. 객석에서 봐도 순간적으로 너무 웃길 때가 있는데 연기하면서는 서로 얼마나 웃기겠어.
C구역 5열 2번 : 나도 윤나무 배우 보고 몇 번 ‘빵’ 터졌어. 윤나무 씨가 목소리 깔고 표정 서늘하게 하면 오만해 보이는 다아시에 제격이잖아. 그러다 갑자기 주책없는 키티나 이상한 동작으로 춤을 추는 미스터 콜린스로 돌변할 때는 자지러지겠더라고.
C구역 5열 1번 : 김지현 씨도 웃음 못 참는 거 봤어. 두 사람은 <카포네 트릴로지>를 비롯해 여러 작품에서 호흡을 맞춘 만큼 서로의 특징을 잘 알 거 아냐. 서로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진짜 웃길 것 같아. 나는 몇 차례 윤나무 씨를 인터뷰한 적이 있어서 그런지, 언니 제인을 연기할 때가 가장 오글거린다고 해야 하나. 표정이 너무 뇌쇄적이지 않아(웃음)?
C구역 5열 2번 : 그거 청순한 표정 아닐까(웃음)? 윤나무 씨가 ‘상남자’라는 말을 많이 듣는 편이라 제인 캐릭터가 마음속에 들어오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고 하더라(웃음). 작품 전체적으로 보면 원작의 배경이 200년 전이잖아. 신분의 격차가 있고, 그것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여성에 대해 남자와는 다른 잣대가 있고, 스물 살 안팎의 여성들이 지참금을 내고 좋은 집에 시집가는 것이 목표이던 시절. 21세기의 관객들이 이해하거나 공감하기 쉽지 않은 시대상인데, 그걸 참 유쾌하고 기발하게 풀어낸 것 같아.
C구역 5열 1번 : 원작의 깊이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말이야. 작품의 배경은 불편하지만, 사실 그 안에서 담아내려던 이야기는 제목처럼 ‘오만과 편견, pride and prejudice’잖아. 시대를 앞서갔던 당찬 여성과 그 여자를 사랑할 수 있었던, 역시 시대를 앞서간 멋진 남성의 로맨스를 너무 가볍지도, 또 너무 심각하지도 않게 그려냈어. 하긴 <오만과 편견>이 로맨틱 코미디물의 원조라고 할 수 있지.
C구역 5열 2번 : 그러게. 그러고 보면 200년이 지나 세상이 바뀌었어도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오만과 편견은 쉽게 바뀌지 않는 것 같아. 지금 읽고 봐도 재밌고 그 심리에 공감할 수 있잖아. 그래서 명작 고전이겠지? 이번 연극은 거기에 현대적인 기발함을 얹어서 새로운 즐거움까지 준 셈이지.
C구역 5열 1번 : 그야말로 작가가 만들고 연출이 연결해서 배우가 완성한 놀라운 공연이야. ‘웬만한 공연은 다 봐서 이제 새로운 무대는 없다’고 속단한 오만한 관객들의 편견을 제대로 깨부순 작품이라고! 우린 김지현-윤나무 페어로 봤지만 다른 배우들의 공연도 매우 궁금하다. 다들 연기 잘하는 배우니까 물론 능숙하게 소화하겠지만,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의외의 모습을 발견하는 게 더 큰 재미일 것 같거든(웃음). 그나저나, 내가 작년에 김지현 씨 인터뷰하면서 드레스 입는 공연은 안 하느냐고 물어봤는데, 이번 무대를 드레스로 인정해야 하나? 곧 개막하는 <스위니 토드>의 러빗 부인도 그렇고.
C구역 5열 2번 : 음, 좀 더 기다려 보자고. 여배우의 드레스라 함은 이른바 공주 옷이잖아. 예쁜 색깔에 하늘거리는 재질과 허리 아래로 좀 더 퍼지는 디자인... 이것도 편견인가?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그 편견의 드레스를 입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웃음)!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