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뮤지컬 <틱틱붐>의 제목을 보자. tick, tick...BOOM! 두 개의 단어와 세 개의 문장부호, 단 다섯 개의 문자에는 긴장, 초조, 침묵, 그리고 폭발이 있다. <틱틱붐>은 젊은 예술가로 꼽히지만, 여전히 ‘유망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뮤지컬 작곡가 존을 주인공으로 한다. 일인칭으로 쓰인 작품에는 그의 심리가 고스란히 담겼다. 자기연민과 자조, 불안과 회피, 질투와 슬픔. tick, tick...BOOM!은 서른을 앞두고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사실 앞에서 느끼는 인간의 막막함을 표현한 제목인 셈이다. <틱틱붐>이 창작자 조나단 라슨이 <렌트>로 메가 히트를 하기 전, 무엇보다도 그가 살아있을 때의 고통과 희열의 이야기임을 떠올릴 때 제목의 힘을 더욱더 강렬하게 느끼게 된다.
<틱틱붐>은 존을 중심으로 그의 주변 일상을 담은 작품이다. 존이 어떻게서든 꿈을 지키고 싶어 하는 인물이라면, 그의 친구 마이클과 연인 수잔은 현실과 타협한 인물로 그려진다. 하지만 <틱틱붐>이 존의 1인극으로 시작해 3인극으로 확장되었다는 점에서, 마이클과 수잔은 온전한 캐릭터이기 전에 존의 마음에 자라는 또 다른 가능성에 가깝다. 마이클의 BMW와 수잔의 그린 드레스는 경제적 성공과 심리적 안정을 향한 존의 욕망을 상징한다. 인간의 내면에서 펼쳐지는 혼돈과 같이, 그들은 언제나 존이 손을 뻗으면 닿는 자리에 있고 그가 가장 불안할 때 존재감이 커진다. 룸메이트였던 마이클은 이사 가기 전 존에게 광고 회사 일을 제안하고, 수잔은 존이 미처 완성하지 못한 워크숍 작품을 회피할 때마다 등장한다.
마이클과 수잔 중 어느 쪽이 존에게 더 유혹적인가를 질문한다면, 당연히 수잔의 승이다. 배우였던 마이클은 연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광고 마케팅으로 회사의 임원이 됐다. 반면 수잔은 꿈과 현실의 경계에 있다. 존이 아무리 수잔을 “돈은 많은데 재능은 없는 꼬맹이들”을 가르친다고 설명해도, 수잔은 여전히 무용이라는 끈을 놓지 않은 인물이다. 존 역시 한 작품을 8년간 개발하는 동안, 수잔과 같은 선택을 고민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존은 자신의 불행과 타인의 인정, 결과 자체에 매몰되어 있다. 어떻게서든 유의미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존의 강박은 수잔과 마이클의 고민을 외면하고 이들을 제 식대로 판단하는 오류로 이어진다. 존은 뉴욕을 떠나고 싶어 하는 수잔에게 무용수가 되려면 뉴욕에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때 수잔은 힘주어 대답한다. “나 지금도 무용수야.” 어쩌면 존은 발레 강사에 머물러있으면서도 스스로를 무용수로 말하는 수잔의 태도를 자기합리화라고 여길지 모른다. 그러나 공연장 무대에 오른 사람만이 무용수의 자격이 있는 걸까.
수잔은 춤추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무용수라고 믿는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이라면, 자신의 예술은 한 발짝 나아갔다고 믿는다. 한발 한발 쌓아 올린 궤적의 힘을 믿고, 춤추는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익숙해 보이는 일상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다. 스스로를 믿는 수잔은 기꺼이 뉴욕을 떠나 지방 댄스 컴퍼니의 강사로 자신의 예술을 이어간다. 수잔의 선택으로 존은 알게 된다. 자신이 판단한 ‘포기’가 각자의 불안과 두려움을 뛰어넘는 새로운 ‘용기’임을, 자신의 현실과 한계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것 역시 궁극의 이상만큼 중요한 것임을. 예술의 범위는 무한대이며,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한 행동 역시 나의 기쁨과 예술이 될 수 있음을.
우리는 언제나 뛰어난 재능과 빛나는 실력의 예술가에 열광한다. 그런 예술을 뒤따라온 존은 예술가가 되지 못한 자신을 오래도록 무가치하게 여겼을 것이다. 스스로를 향한 응원보다 자책이 먼저일 그에게 수잔은 말한다. “Breathe.” 아마도 수잔은 예술가 이전에 인간이 있음을 존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소중한 이들과의 관계, 두려움을 나누는 시간, 서로를 향한 응원, 삶의 작은 성취들이 모여 예술이 된다고. 그리고 무엇보다 살아있어야 완성할 수 있다고. 세상의 기준이 버겁고 나의 속도가 더디게 느껴진다면, 숨 쉬라는 수잔의 말을 떠올려보자. 나만의 깊은숨이 지금의 나를 다독이고 더 높이 뛰어오를 추진력을 만들어낼 것이다.
장경진(공연 칼럼니스트)
엔터테인먼트 웹매거진 <매거진t>와 <텐아시아>, <아이즈>에서 10년 동안 콘텐츠 프로듀서와 공연 담당 기자로 일했다. 공연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무형의 생각을 무대라는 유형의 것으로 표현해내는 공연예술과 관객을 잇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