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서 겨울로, 제주 따라비오름
체력이 남아 있다면 주변에 주변에 위치한 큰사슴이오름과 갑마장길도 걸어보기를 추천한다. 따라비오름만큼 아름답고 따라비오름보다 적막한 길을 걸을 수 있다. 갑마장은 조선시대 최고 등급의 말을 기르는 목장이다.
글ㆍ사진 최경진
2019.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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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꽃이 만발한 따라비오름

 

 

다랑쉬오름과 더불어 또 하나의 ‘오름의 여왕’을 만나러 간다. 그곳은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에 위치한 따라비오름이다. 다랑쉬오름(표고 382m, 비고 227m)보다는 따라비오름의 고도(표고 342m, 비고 107m)가 조금 낮지만 굼부리의 아름다움은 오히려 능가한다. 가시리사거리에서 1136도로로 접어들자마자 좌회전해서 좁은 일차선 산길로 접어든다. 길이 좁아서 맞은 편에서 차가 오면 난감하다. 10여분을 조심스럽게 달리면 따라비오름 입구에 도착한다. 주차장부터 따라비오름에 이르는 산책로는 비교적 평탄하다. 사방을 둘러싼 은빛 억새가 벌써부터 황홀하다. 이 빛은 해질 무렵이면 황금색으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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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비 주차장 부근에서 바라본 따라비오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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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비오름으로 가는 길의 억새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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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비오름 정상으로 가는 길은 거칠다

 

 

따라비오름 입구에 도착해서 오르는 길은 의외로 가파르다. 계단 경사가 만만치 않다. 서늘한 날씨지만 땀을 뻘뻘 흘리며 오르막길을 한참 오르다 보니 어느 순간 드넓게 펼쳐진 따라비오름이 한눈에 들어온다. 생김새가 일반적인 오름과는 확연히 다르다. 봉우리처럼 생긴 게 여러 개라서 어디가 정상인지 가늠이 쉽게 안 된다. 오름 전체 둘레가 2,633m, 봉우리끼리의 총 둘레는 1,200m나 되고, 커다란 분화구 안에 세 개의 작은 분화구(굼부리)가 또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오름 전체를 가득 채운 하얀 억새꽃이 바람에 휘날리자 거대한 파도가 사방에서 움직이는 착시 현상이 생긴다. 굴곡진 경사는 산세가 험하지 않고 부드럽다.

 

이제부터 능선을 따라서 비교적 쉽게 걸을 수 있다. 능선은 모두 부드럽게 연결되어 있다. 하늘에서 보면 따라비오름의 능선길은 8자 모양이다. 중간에 어느 방향으로 걸어볼까? 잠시 행복한 고민을 하다가 좌측 길로 발걸음을 옮긴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땀을 식혀준다. 저 멀리 한라산 정상 부근은 벌써 하얀 옷으로 갈아 입었다. 내가 서 있는 이곳은 아직 가을이지만, 1,950m 백록담의 저곳은 이미 겨울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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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꽃이 만발한 따라비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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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배경으로 풍력 발전기가 힘차게 돌아간다

 

 

굼부리를 가로지르는 산책길로 걷는다. 안쪽으로 들어가자 그렇게 불던 바람이 자취를 싹 감춘다. 이 와중에도 굼부리를 가득 채운 억새는 부드럽게 물결을 이루며 춤을 춘다. 가만히 보니 바람의 지휘를 받는 오케스트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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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선 및 굼부리를 따라 다양한 산책로를 걸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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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억새

 

 

제주 오름의 억새는 보통 10월부터 꽃을 피우며 장관을 이룬다. 11월말이면 꽃이 지지만 억새 줄기는 사라지지 않고 이듬해 봄까지 생명을 이어간다. 하지만 6월 장마 시즌부터 8월까지는 햇볕을 피할 곳이 없어 오름 트레킹이 고난의 시간이 될 수 있으니 유의하자. 오름을 내려와서 아직 더 걸을 수 있는 체력이 남아 있다면 주변에 주변에 위치한 큰사슴이오름과 갑마장길도 걸어보기를 추천한다. 따라비오름만큼 아름답고 따라비오름보다 적막한 길을 걸을 수 있다. 갑마장은 조선시대 최고 등급의 말을 기르는 목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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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가을은 억새와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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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굼부리를 가로 질러 걸을 수 있다

 

 

오후 다섯 시 넘어 공기의 온도는 차가워지지만 따라비오름 능선 서쪽에 설치된 의자에 앉아 가만히 한라산을 바라 본다. 잠시 후면 한라산 너머로 해가 질 것이다. 올해도 이렇게 저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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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하늘 아래의 따라비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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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비오름 능선길은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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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비오름의 오후

 

 

◇ 접근성 ★
◇ 난이도 ★★★
◇ 정상 전망 ★★★★

 

 

 

오름에 가져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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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모드』
 랜스 울러버 저/모드 루이스 그림/밥 브룩스 사진/박상현 역

 

제주 독립서점에서 발견한 보석 같은 책이다. 영화 <내 사랑>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모드 루이스는 남보다 불리한 신체와 환경 속에서도 오두막집 창가에 앉아서 아름답고 행복한 그림을 그렸다. 그의 그림에서는 이미 고인이 된 가수 ‘거북이’의 따뜻한 가사가 떠오른다.

 

 

찾아가는 방법

 

따라비오름


지도 앱이나 내비게이션에서 '따라비오름'으로 검색하면 된다. 주차장이 협소하다. 제주공항에서 차로 70분 소요된다. 대중교통으로는 사실상 따라비오름까지 이동하기 어렵다.
◇ 주소 :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산63

 

 

주변에 갈만한 곳

 

정석비행장


매년 봄이면 제주도 중산간 도로인 녹산로에 꽃이 흐드러지게 핀다. 도로 양쪽이 유채꽃과 벚꽃이 신비한 조화를 이루며 수많은 여행객과 제주도민을 유혹한다. 유채꽃 축제 당일에는 도로 체증으로 오가기도 힘들 정도이니 가급적 축제일을 피해서 가자.
◇ 주소 : 서귀포시 표선면 녹산로 679-11

 

산굼부리


지금은 제주 억새꽃 명소로 잘 알려졌지만 오래 전부터 장동건과 고소영이 출연한 영화 <연풍연가>의 배경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사계절 언제 가도 좋지만, 가을부터 초겨울까지 드넓은 오름 대지에 하얀 억새꽃이 장관을 이룬다.

◇ 주소 :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 166-2
◇ 전화 : 064-783-9900

 

 

봄부터 시작한 ‘제주 오름을 걷다’ 칼럼을 이번 회로 종료합니다. 보다 많은 제주의 오름을 소개하고 싶었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겠습니다. 제주에 방문할 일이 있다면, 368개의 오름 중 한 곳이라도 꼭 방문해보세요. 지금까지 모르던 제주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 동안 한 번이라도 이 칼럼을 읽은 모든 독자 여러분에게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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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진

지구에 춤을 추러 온 화성인입니다. 여행과 영화 감상을 좋아하며, 책을 사보는 것도 좋아합니다. 잘 읽지는 못하고 쌓아만 둡니다.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춤을 추는 게 삶의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