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일의 시 수업의 마지막 원고다. 여태껏 과거에 했던 수업과 미래에 하고 싶은 수업을 소개했으니, 지금 하고 있는 수업을 보고하면서 연재를 마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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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일이 여러분 앞에서 시를 씀
제 꿈은 매일 무대에 올라가서 사람들 앞에서 시를 쓰면서 사는 것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소재를 떠올리고, 형식을 고민하고, 직접 쓰면서 구절 하나하나 다 설명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이번에 해보고 싶습니다.
단순히 앞에서 시만 쓰는 수업은 아니고, 제가 15년 동안 수업에서 제안했던 시 창작 방법들을 직접 적용하면서 되짚어보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앞에서 몇 편의 시를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최소한 세 편은 쓰고자 합니다. 많이 쓴다면 8편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쓰는 과정에서 참고할 만한 다른 시인들의 시나 각종 작가들의 작품을 읽어보고, 그림도 보고, 영상도 보고, 제가 과거에 썼던 시도 분석하려고 합니다.
많은 일을 할 생각이기 때문에 수요일 현장 강의를 포함, 매일 저녁 7시 30분, 하루에 30분씩 줌으로 수업하려고 합니다. 매일 참석하시면 좋겠지만, 매 강의를 다 듣지 않아도 됩니다. 항상 진행 상황을 되짚으면서 시작할 것이기 때문에 종종 놓쳐도 상관없습니다. 참여형 수업이기 때문에, 브레인스토밍이 필요할 때 여러분이 도움을 주실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도움으로 완성한 시에는 원하신다면 피처링 명목으로 여러분의 이름을 게재하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여러분도 시를 써서 온라인 카페에 올립니다.
하지만 이번 강의는 제가 시를 완성하는 것을 보는 것이 주목표이다 보니, 코멘트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댓글로 진행할 것 같습니다. 처음으로 강의 계획서를 쓰면서 걱정이 되는군요. 제 꿈을 이뤄주세요. 시 쓰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시 쓰는 일을 더 사랑할 수 있도록, 제가 아는 것을 최대한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2025년 7월 2일에 시작한 수업. 아직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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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앞에서 시를 쓰는 건 오래전부터 해보고 싶던 수업이지만 이렇게 빨리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이 수업은 무료로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매일 최적의 컨디션으로 멋진 시를 쓸 수 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정말이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서, 사람들의 시간을 낭비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돈을 받지 않고 죄책감 없이 낭비하고 싶었다. 하지만 사정상 미루기만 하다가 평생 못 해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너무 하고 싶었다. 그래서 하고 있다.
25년 7월 2일에 시작했으니 이제 한 달이 다 되어가는데 시는 한 편도 완성하지 못했다. 일요일을 제외하면 거의 매일 사람들 앞에서 시를 썼다. 하지만 실제로 시를 쓴 날은 5일 정도 되는 것 같다. 나머지 날에는 뭘 쓰고 싶은지, 어떻게 쓰고 싶은지에 대해서 떠들었다. 내 사유를 두서없이 죽 늘어놓다 보니 종종 개똥철학을 설파하는 사이비 철학자나 종교인이 된 것 같아 부끄러웠다. 몇 분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수강을 철회했는데, 다른 수업에서도 종종 있는 일이지만, 괜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아마도 언젠가는 사람들 앞에서 시만 쓰면서 여생을 보내고 싶기 때문인 것 같다.
어떤 학생들은 응원을 많이 해준다. 시를 쓰다가 막히면 아이디어도 준다.
“솔직한 사람이 이기적으로 느껴지기도 해요. 솔직하게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이 매력적이잖아요? 근데 그런 인간들은 남의 감정을 헤아리지 않고 뭐든 직설적으로 말하기도 하죠. 요구도 많고요. 아, 그런데 자백은 좀 다른 것 같아요. 자백은 자기에게 불리한 사실을 말하는 거잖아요. 자백하는 사람이 화자로 등장하는 시를 쓰고 싶어요. 그 화자는 은퇴를 앞두고 있어요. 그리고 자백의 시간입니다. 근데 누가 은퇴하죠? 으, 어떻게 써야 할지…….”
내 고민이 길어지자, 한 학생이 <김승일이 여러분 앞에서 은퇴함: 은퇴하는 시 쓰기>라는 제목으로 강의 계획서 형식의 시를 써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너무 훌륭한 아이디어라 바로 채택했다. 그 시는 아마 다음 주에 쓰게 될 것 같다. 제목 옆에 학생 이름을 넣고, 그 시가 어디서 상을 타거나 상업적으로 이용되면 상금이나 보수도 나누기로 했다.
이렇게 신나는 일도 많았고, 학생들도 하루 강의가 끝날 때마다 재밌었다고 말해줬다. 그래도 점점 자신감이 없어진다. 쓰고 싶은 걸 찾아내서 기뻐하는 모습을 더 자주 보여주고 싶은데, 내가 학생들에게 보여주는 건 완전히 그 반대이기 때문이다.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된다.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다. 편집증적으로 온 세상을 배제하기. 네거티브의 왕이 된 것 같다.
“이건 저번에 해봐서 안 한다. 다 지워야겠다. 시를 써야 하는데 시론을 쓰고 있는 것 같다. 어감이 마음에 안 든다. 시제가 과거형만 있다. 미래형이랑 섞어야겠다. 일단 지워야겠다. 할 얘기가 없으니까 첫 번째 연을 반복하고 있다. 전부 지워야겠다. 시에 대한 시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이러면 안 된다. 어미가 통일되어 있다. 화자가 한 명이면 안 될 것 같다. 이것으로도 충분하지만 시 한 편을 더 써서 마지막 연에 붙여야겠다.”
물론 이렇게 단순히 호불호만 늘어놓는 것은 아니고, 내 모든 선택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 왜 지우고, 왜 싫은지 설명하면서 쓰고는 있다. 하지만 그건 어쨌든 내 선택일 뿐인데. 매일 실패하는 나를 보면서 학생들이 시 쓰는 일을 괜히 더 어렵게 여길까 봐 걱정되곤 한다. 이게 다 돈을 받고 강의를 하기 때문인 것 같다. 외계인이 나랑 내 아내랑 고양이를 납치해 주면 안 되나? 그래서 매일 밥을 챙겨주고 카메라 앞에서 시 쓰라고 하는 거다. 그러면 사람들의 시간을 낭비하면서도 죄책감이 없을 텐데.
만약 부채감이 없다면, 훨씬 더 과감하게 실패를 상연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이 수업에서 보여주고 싶은 것이 사실은 그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사람들 앞에서 지우기만 하면 어쩌지? 오늘도 실패하면 어쩌지? 그렇게 걱정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뭘 자꾸 지우고, 뭘 엉망으로 써내고, 처음부터 다시 쓰는 일을 내가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다. 나는 시를 쓸 때 걱정을 하지 않는다. 걱정은 옛날에 처음 시를 쓸 때나 하던 거다. 시가 안 풀릴 때도 나는 항상 웃고 있다. 시 쓰는 게 너무 재밌기 때문이다. 내가 멍청하게 느껴지는 게 좋다. 곧 스스로를 천재라고 착각하게 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수업 시간에 억지로라도 더 많이 웃어야겠다. 웃긴 얘기를 더 많이 해야겠다. 나는 지금 즐겁습니다. 그게 내가 하고 싶은 얘기고, 이 수업을 만든 이유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의심할 것이다. 거짓으로 웃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당신의 생각도 맞다. 그렇다면 내가 당신을 웃기는 데 실패한 것이겠군. 당신이 나를 비웃기를 바란다. 비웃음도 웃음이니까. 아, 비웃음도 웃음. 시 제목으로 쓰면 좋을 것 같다.
남은 수업은 앞으로 한 달. 더 많이 들통나고 싶다. 난 정말 어쩔 수 없는 관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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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일
2009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으로 데뷔. 시집으로 『에듀케이션』, 『여기까지 인용하세요』, 『항상 조금 추운 극장』, 산문집으로 『지옥보다 더 아래』가 있다. 2016년 현대시학 작품상. 2024년 박인환 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