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병변 장애로 손놀림이 어눌한 정영민 작가는 남들보다 더 오랜 시간 사물과 부대끼며 손은 부드럽게, 삶은 단단하게 만들어왔다. 특별해 보이는 삶이지만 어찌 보면 살아가는 일 전부가 그런 것 같다. 서툴고 어색했던 ‘내’가 매일매일 무언가와 부대끼며 조금씩 성장하고, 숱한 관계 속에서 유연함과 동시에 단단함도 얻게 된다는 점에서 말이다. 많은 독자들이 『애틋한 사물들』 을 읽고 위로받았다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을 것이다. 두려움, 어려움, 불편함, 불행함 등 고단한 감정이 저 혼자만의 것은 아님을, 모두 ‘저마다의 무게’를 견뎌내며 묵묵히 살아내고 있음을 저자는 그만의 섬세한 시선으로 51가지 사물들과의 관계를 통해 전한다. 그래서일까. 이 책을 읽고 있자면 평범하고 보잘것없이 느껴졌던 ‘오늘 하루’, ‘지금 이 순간’, ‘지금의 내’가 꽤 애틋하게 새로이 다가온다.
먼저 작가님 소개 부탁드려요.
『애틋한 사물들』 을 쓴 정영민입니다. 저는 뇌병변 장애인이지만 일상에서 제가 가진 장애를 크게 의식하지 못합니다. 느리긴 해도 제 두 발로 걸어서 어디든 가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이따금 함께 여행을 떠나기도 해요. 그래서 전 제 불편한 몸이나 삶에 불만이 없어요. 어제보다 오늘이 그리고 내일이 더 행복하다고 믿어요. 그러니 몸이 불편하고 말이 어눌한 것은 제겐 큰 문제가 아니에요. 아마 저를 아는 이들은 여기에 모두 동의할 거예요. 그들에게 저는 일상이 조금 느린 사람일 뿐이거든요.
처음으로 글을 써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쓰기 시작한 계기가 있었나요? 그 이야기가 듣고 싶어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어릴 때부터 저를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아주 강했어요. 몸이 불편하고 말도 어눌했지만 하고 싶은 게 아주 많은 아이였거든요. 그런데 제가 놓인 환경에선 혼자 자유롭게 맘껏 할 수 있는 것들이 제한적이었어요. 어릴 땐 그림도 그렸는데 제 마음에 쏙 들게 그리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러다 자연스레 글을 쓰게 되었어요. 재미있었고, 명료한 내 목소리가 생긴 것 같았어요. 내 생각을 분명하고 명확히 드러내기에도 정말 좋은 도구였고, 힘들거나 어렵지도 않았어요. 제 마음대로 쓰면 쓸수록 더 나다운 글이 됐고, 외부적으로 아무런 제약이 없어 자유롭기도 했어요. 내 능력껏 내 마음대로 쓰면 되는 것이어서 부담감 없이 써왔는데, 이렇게 책이 되어 세상에 나왔네요.
『애틋한 사물들』 프롤로그에 '사람과의 관계에서 사회성을 배웠다면 사물과의 관계는 성장통이다'라는 문장이 있는데요. 알 듯 말 듯 한 말인 것 같아요. 작가님께 사물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제게 있어 사물은 소근육을 키워준 일상 속 재활이었어요. 지금은 양손 모두가 비교적 부드럽고 일상생활에도 큰 지장이 없지만, 어릴 땐 아니었어요. 엄마 말에 따르면 늘 양말을 못 신어서 울던 애가 저였대요. 근데 자꾸 하다 보면 익숙해져서 어느 순간 잘하게 되는 것들이 있잖아요. 제 주변에 놓인 사물들이 그런 역할을 했어요. 숟가락, 양말, 가위. 연필, 단추 등 늘 만지다 보니 어느 순간 뻣뻣했던 손이 말랑해지고 조금씩 섬세해졌어요. 사소하다고, 별것 아니라고 치부해버린 사물이 결국 저와 제 삶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어요.
책에 담긴 51가지 사물 중 가장 애틋함을 느끼는 것이 있을까요.
사실 책에 담긴 사물은 제게 애틋하기보단 애증의 사물이라 칭하는 게 더 맞을 것 같아요. 정말 많이 울고 짜증 내면서 사물과 살아가는 법을 배웠거든요. 그래도 그중 가장 애틋한 사물이 있다면 ‘단추’가 아닐까 해요. 맨 처음 쓴 사물은 아니지만, 『애틋한 사물들』 의 밑거름이거든요. 처음 혼자 책을 기획할 때 단추를 떠올리면서 ‘나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뭘까’를 한참 고민했어요. 책에도 나오지만 정말 강렬하게 남아있는 제 유년의 사물이 단추예요.
이 책은 사물을 통한 자기성찰이자 그에 대한 기록이면서 한편으로는 모두 제각기 다른 모양의 삶을 버티고 '자신만의 무게를 들어 올리며'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격려처럼 느껴져요.
누구에게나 내가 견뎌야 하는 혹은 나이기에 견뎌내야 하는 무게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제게 장애가 있어 이 무게가 더 무거울 거라 그렇게 생각진 않아요. 이미 이건 제게 하나의 삶이자 일상이 돼 버렸으니까요. 삶이자 일상을 늘 무겁고 가혹하다고 느끼면 그건 고통이에요. 날마다 어떻게 그 무게에 짓눌려 살겠어요. 그저 내게 주어진 일상이니까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은 오늘을 들어 올리고 또 그만큼의 무게를 모두가 묵묵히 견디는 게 아닐까요.
어떤 특정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서 쓰신 책인 것 같지는 않아요. 혹, 책을 펴낸 후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생겼을까요?
이 질문 좀 어려운데요. 누군가, 무엇을 위해 쓴 글이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읽은 분들이 책을 통해 위로받았고, 어떤 용기나 힘을 얻게 됐다는 말씀을 많이 하세요. 여기에 조금 말을 얹어 볼까 해요. 요즘은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들고 피로하잖아요. 『애틋한 사물들』 이 아주 강력한 응원이나 위안을 주진 못하더라도, 순간순간을 버틸 수 있는 어떤 에너지를 전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애틋한 사물들』 을 꼭 읽었으면 하는 분들이 있다면요? 그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희 어머니가 읽으신 후에, 제게 너무 솔직하게 썼다면서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님들께 연락 많이 받겠다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그런 생각을 하고 쓴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신체 활동이 가능한 장애아동을 키우는 부모님이나 불의의 사고로 오랜 시간 재활 훈련이 필요한 분들이 읽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분들이 자신의 아이나 자기 자신을 전적으로 믿고 지금을 꿋꿋이 살아내면 좋겠어요. 전 기적이란 말을 종종 쓰는데요, 가장 큰 기적은 사람이 사람을 믿어서 번지는 파장이 아닐까요? 내 주변에 놓인 51가지 일상 사물이 『애틋한 사물들』 로 세상에 던져진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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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틋한 사물들 정영민 저 | 남해의봄날
여기 등장하는 51가지 사물 에세이는 같은 사물을 다루고 바라보는 모습에 때론 공감을, 또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한 남다른 시선과 경험에서 놀라움을 선사한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