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경쾌한 발걸음이었다. 크로스백의 줄을 살짝 잡은 채로 스튜디오로 들어섰다. 두 번째 소설집 『화이트 호스(White Horse)』를 막 퇴고한 강화길은 ‘작가의 말’을 평소대로 한 문장으로 정리할지, 길게 쓸지 고민 중이었다. 작가는 구구절절 말을 길게 하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날렵하고 명쾌한 글을 선호하기에 이번에도 장문의 해설을 보태지 않으려 하지만, 한번쯤 긴 글을 써볼까도 싶다. 며칠 후 완성된 ‘작가의 말’을 전해 받았다. 글의 마지막 두 문장은 바로 “다시는 작가의 말을 이렇게 길게 쓰지 않을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내게는 소설로 충분하다.”였다.
나 자신을 위해 쓴 작품
이번 소설집 『화이트 호스(White Horse)』는 전작들과 살짝 분위기가 달라요. 우선 표지 느낌부터요.
『괜찮은 사람』, 『다른 사람』이 다른 출판사에서 나왔는데 표지 사진을 찍은 작가가 같은 사람이에요. 저도 나중에 발견했어요. 신기했죠. 이번 소설집의 표제작이 「화이트 호스」인데 「오물자의 출현」과 고민 끝에 결정했어요. 표제작이라는 건 이 작품집을 소개하는 인트로의 인상이 있잖아요. 「오물자의 출현」은 조금 매니악한 측면이 있는 것 같아 「화이트 호스」로 정했어요. 이 작품을 쓰고 제가 약간은 자유로워졌거든요. 평소 제목을 나중에 짓는 편인데 「화이트 호스」는 제목을 먼저 정하고 쓴 소설이에요.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서 새로웠어요.
두 번째 단편소설집이라 첫 소설집과의 차별성을 고민했을 것 같아요.
많이 했죠. 아마 「서우」를 읽고 「화이트 호스」를 읽으신 분들은 굉장히 상반된 기분을 느끼실지도 모르겠어요. 『괜찮은 사람』의 연장선으로 기본적인 「손」과 「서우」를 썼는데 계속 이 기조로 쓸 순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독자들은 다양한 작품을 원할 것이고 저 역시 그러하니까요. 서스펜스가 강한 소설을 쓰고 싶은 마음은 계속 있지만, 색깔적으로 변별력이 있는 작품을 써야겠다고 다짐하고 쓴 작품이 「화이트 호스」예요.
「화이트 호스」라는 제목은 테일러 스위프트의 동명의 노래 제목에서 가져왔어요. 소설에서는 시어로도 등장하죠. “하늘에서 내려온 영적 존재, 혹은 구원이나 선물”(202쪽). 이 작품은 어떻게 출발한 소설인가요?
3년 전에 가족들과 미국 시애틀로 여행을 갔어요. 어머니랑 어릴 때부터 친한 친구분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셨거든요. 그때 기억이 참 좋았어요. 어머니 친구분이 미국인과 결혼을 하셨는데, 그 분이 컨트리 음악을 좋아하셨어요. 저도 음악에 관심이 많다고 하니 이런 저런 노래를 들려주셨는데, 영어로 대화를 했으니 제대로는 못 알아들었죠. 그러다 음악을 잘 아는 친구와 테일러 스위프트의 이야기가 나왔는데,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테일러 스위프트는 ‘화이트 호스’를 밥 딜런과 완전히 다른 의미로 해석했다고요. 아, 그때 미국인 아저씨가 해준 말이 이제야 제대로 이해되면서, 이 제목으로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여러 가지 의미로 변주되지만, 자기만의 ‘화이트 호스’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삶에 대해서요. ‘소재를 잡고 소설을 쓸 수 있구나’, 이런 것도 얼마든지 소설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죠.
「화이트 호스」의 주인공은 ‘소설가’입니다. 독자들이 흥미롭게 읽을 이야기가 잔뜩 나와요.
실제로 이 소설을 쓸 때 이런저런 비평에 시달릴 때라서 여러 가지 감정이 혼재된 상태였어요. 평가를 받는 일에 계속 시달리는 게 부당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비평적 언어와 내가 가진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제가 쓴 소설을 보호하고 싶기도 했고요. 개인적인 경험에서 쓰기 시작한 소설이지만 쓰는 과정에서 깨달은 건, 저만 겪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었어요. 여성작가들이 여성문제를 다루면 유독 혹독한 비평에 시달려요. 결국 자기검열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요. 결국 글쓰기란 무엇인가?, 계속 평가를 받는 일은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소설을 완성하고 나니, 이런 물음이 생겼어요. ‘비단 소설가뿐만이 아니라 굉장히 많은 여성들이 이렇게 살고 있지 않나?’ 저 자신을 위해 쓴 작품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제목만 읽고 소설로 들어갔을 때, 조금은 생경한 느낌이 들어요.
좀 추상적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의미가 전달이 된다면 명확한 제목이라고 생각해요.
바로 뒤이어 쓰신 작품이 「오물자의 출현」이에요. ‘오물자’는 전라도 말로 ‘인형’이란 뜻이고요.
소설을 쓸 때 영감이 되는 말들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전주 출신이거든요. 휴일에 집에 내려가서 TV를 보는데 너무 귀여운 아이들이 나오는 거예요. “엄마, 애들 너무 귀엽지 않아?”라고 했더니, 엄마가 “그렇네, 진짜 오물자처럼 생겼네”라고 하시는 거예요. “아니, 엄마는 어떻게 애한테 이런 말을 하냐”고 했더니 ‘오물자’의 뜻이 ‘인형’이라는 거죠. 그래서 검색을 해보니까 정말 맞더라고요. 예전에는 인형을 헝겊 같은 걸로 오므려서 만들었잖아요. 어원을 찾아보니 흥미로웠어요. 이질감도 느껴지고요. 내가 생각하는 어떤 인물이 누구에게는 좋은 사람으로 평가 받지만, 또 다른 누구에는 반대인 경우가 있잖아요. 「오물자의 출현」도 「화이트 호스」처럼 제목에 먼저 영감을 받은 소설이에요.
풍부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소설
『문학동네』 2019년 가을호에 발표한 「음복(飮福)」으로 ‘제11회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하셨어요. 2017년에도 「호수―다른 사람」으로 본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지만 ‘대상’은 더 기뻤을 텐데요.
‘젊은작가상’이 등단 10년 이하의 작가들을 대상으로 주는 상이잖아요. 곧 등단 10년이 되기도 하고, 작년 즈음부터 상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았거든요.. 2017년에 상을 받았기 때문에 앞으로 못 받아도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도 충분히 좋았거든요. 그런데 대상을 받으니까, 좋긴 좋더라고요. (웃음) 하지만 연차가 쌓이면서 상에 대한 마음, 어떤 기대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요. 소설을 쓰는데 방해가 될 수 있으니까요.
「음복」은 한 집안의 ‘제사’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음복은 ‘제사를 지내고 난 뒤 제사에 쓴 음식을 나누어 먹는 일’을 뜻해요.
예전부터 제사라는 소재로 소설을 써보고 싶었어요. 어릴 때 친가에서 제사를 지냈는데, 지금까지그 풍경이 인상적으로 남아 있어요. 당시 저는 소도시에서 살았는데 제사를 드리러 간 큰집은 시골이었어요. 한옥이었고요. 제가 경험한 것과는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이동한 기억이었는데, 막상 소설로 쓰기가 쉽진 않았어요. 가족사 소설은 아무래도 거리 두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쓸 때마다 못 쓰지 않을까? 안 쓰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완성했어요.
주인공은 ‘세나’라는 여성입니다. 시댁에 제사를 지내려고 갔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요. 시댁에는 비밀이 하나 있어요. 하지만 남편 ‘정우’는 모릅니다. 시어머니가 남편에게는 이야기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고요. 세나, 시어머니, 고모, 이 세 명의 여성 캐릭터는 굉장히 입체적입니다.
「음복」은 지금까지 제가 쓴 소설 중에 인물이 가장 많이 나오는 편이에요. 100매 안에서 써야 했는데, 세나가 고모와 시어머니를 통해 자기 남편을 보잖아요. 두 사람이 가장 중요했어요. 시아버지의 분량은 이 정도가 딱 옳았다고 생각해요. 집안에서 시아버지의 역할이 딱 그만큼이었으니까요. 시아버지나 남편의 서사가 적은 건, 이 가족의 지분을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퇴고 과정에서 오랫동안 생각한 부분이고요.
“너는 아무것도 모를 거야.” 이 문장으로 소설이 시작됩니다. 세나의 독백이죠. 섬뜩한 이 문장은 세나의 캐릭터를 잘 보여줍니다.
퇴고하면서 나온 문장이에요. 초고와 비교하면 많이 다른 결말이 나왔죠. ‘세나’라는 인물은 적당히 통찰력이 있는 것으로는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본인의 경험을 통해 뭔가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세나예요. 세나는 다정하고 해맑은 남자를 좋아할 거라고 상상했어요. 쉽게 말하면 심각한 고민이 없고 부정적이지 않은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정우’였고요. 캐릭터를 만들 때 연쇄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 부분들을 고려했어요.
‘여성주의 가족 스릴러’라고 표현하더군요.
사실 『괜찮은 사람』을 썼을 때부터 스릴러 장르를 의식하고 쓴 건 맞아요. 「음복」도 스릴러라고 생각하고요. 저는 서스펜스가 깊은 작품을 좋아해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어떤 가족 안에 있는 비밀이 폭발함으로 피가 흐르는 호러보다 더 긴장감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한국 가족들을 볼 때 그런 면이 있다고 생각하고요. 세나가 나중에 자신의 아이를 상상해보잖아요. 아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가족사의 역사에 대한 주름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왜 시댁의 비밀을 아들이 아닌 며느리가 알아야 하는가? 그런데 ‘세나’는 자신, 그리고 남편의 행복을 위해 비밀을 말하지 않아요.
이런 소설을 쓰는 건 저도 세나와 다르지 않다는 인정이 있어서이기도 해요. 하지만 어느 순간 말하게 될 거예요. 남편이 알아야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언젠간 터지겠죠. 다만 「음복」이 첫인상에 관한 소설이기 때문에 지금의 세나는 남편을 많이 사랑하니까요. 비밀을 받아들이는 것이 나에게도 평화를 가져다 줄 거라는 순간적인 생각이 있었겠죠.
「서우」는 2018년 1월에 발표한 작품이에요. 괴담의 진원지인 ‘주현동’에 사는 주인공이 여성 운전자가 모는 택시를 타며 소설이 시작돼요.
「서우」는 「손」 다음으로 쓴 소설이에요. 「손」을 쓰면서 만족스러웠거든요. 하지만 「손」 같은 톤으로 계속 쓸 순 없지 않나? 고민했어요. 그러다 이왕 스릴러를 쓸 거면 쫀쫀하게 써보자고 생각했어요. 진짜 살인 사건도 나오고 등장인물은 다 여성으로 하고, 가장 짧은 시간 동안 가장 서스텐스가 높은 걸 써보자는 마음이었어요. 굉장히 몰입해서 쓴 소설이고, 맥락을 이해해야 나올 수 있는 제목이 「서우」였어요.
「화이트 호스」에 “타인에 대한 판단을 끝낸 사람에게는 이런저런 설명을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는 문장이 나와요. 그리고 「서우」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람에 대한 선입견이 한번 생기면 거기서 벗어나기가 어렵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두 문장이 저는 크게 와닿더라고요. 두 작품 모두 2018년에 발표된 소설이니 이 시기에 작가님이 많이 생각한 문제가 아니었나? 싶었어요.
제 삶에 대한 고민이었을 거예요. 여성들만 유독 처해지는 상황들이 있잖아요? 제가 관심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여성들에게 갖는 편견이 너무나 부조리해서 생각이 많았던 것 같아요. 요즘은 나이를 잘 먹는 일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는데요. 자신은 없어요. 하지만 진짜 어른이라면, 내 생각이 틀렸을 때 인정할 수 있지 않을까? 다른 사람에게 어떤 태도들을 배울 수 있어야 진짜 어른이 아닌가? 싶어요. 아마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생각보다 어른이 많지 않기 때문일 거예요. 그런 기회를 못 갖는 것 같기도 하고요.
단편집을 읽을 때, 유독 기억에 남는 인물이 한둘은 꼭 있어요. 이번 작품에서는 「음복」의 ‘세나’, 「화이트 호스」의 주인공 ‘나’, 「오물자의 출현」의 ‘김미진’. 이 세 명에 가장 이입이 많이 됐어요. 인물을 만들 때, 어떤 생각을 가장 많이 하나요? 조심하고 신경 쓰는 부분이 있을 것도 같고요.
최대한 입체적으로 그려야겠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 소설을 읽을 때, 어떤 인물에 꽂히면 마음을 주게 되니까요. 가장 원하는 것 중 하나는 풍부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인물을 만드는 일이에요. 제 소설을 읽은 분들은 “여성의 입장이 정말 다양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음복」을 발표했을 때, 세나의 남편 ‘정우’를 굉장히 싫어하는 독자들이 많았죠. (웃음) 싫어하는 농도가 많이 달라 인상적이었어요.
이번 소설집에서 가장 애착이 많은 작품은 무엇인가요?
항상 마지막에 쓴 작품이에요. 지금은 「가원(佳園)」이요.
다양한 언어로 말하는 일
어릴 때부터 소설가가 꿈이었나요?
고등학교 때부터 소설을 쓰고 싶었어요. 기자를 생각하기도 했었는데 그보다 글을 쓰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제가 정보가 많았다면 문예창작학과를 가야했는데 글을 좋아하니까 고전적으로 (웃음) 국문과를 간 거예요. 그래서 대학원에 가서 본격적으로 소설 쓰기를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죠. 3학년 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서울에 가서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졸업 후 한예종에 입학했어요. 그런데 대학원에 들어와보니 뛰어난 친구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대학문학상에 후보로 올라도 최종심에서 떨어지고 하다 보니, 될만한 재능은 아닌가? 싶더라고요. 한예종에 입학하긴 했지만 등단은 전혀 다른 문제였어요. 글을 잘 쓰는 애들 사이에서 위축이 많이 됐죠. 등단이 안 됐으면 취직하려고 했는데 덜컥 된 거예요. 준비도 없이 정말 덜컥. 이후에 청탁이 없는 시기가 있었는데, 저 스스로 준비가 안 되어 있었으니까요. 등단 이후에 방황을 좀 했죠.
그런데 서사창작 석사를 마치고, 동국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 박사까지 수료하셨어요.
대학원을 마칠 때쯤 취직과 공부 사이에서 고민을 하는데, 부모님이 공부를 더 하고 싶으면 박사까지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서울에 와서 고생하면서 등단까지 했는데 그만하라고 하기가 좀 그러셨나 봐요. (웃음) 동국대학교에서는 현대문학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1년 후에 문예창작과 합평 수업에 들어가서 박상영, 송지현 작가를 만나 친해졌죠.
올해부터 『Axt』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계세요.
단편 발표도 했던 잡지라 내적으로 친밀했어요. 제안을 해주시니 좋았죠. 잡지를 만들어본 경험이 한번도 없어서 배워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손보미, 김유진 작가님과 함께 1월부터 함께 하고 있어요.
최근 출간된 소설집 『나의 할머니에게』에 「선베드」를 수록하셨어요. 『사랑을 멈추지 말아요』도 그렇고 앤솔로지 참여를 활발하게 하시는 것 같아요.
기획이 되게 많아졌거든요. 청탁이 많이 들어와요. 짧은 소설도 그렇고요. 「선베드」는 예전에 <웹진 비유>에서 발표했던 소설인데 좀 아쉬웠어요. 어떻게 보면 제가 쭉 써왔던 소설과는 많이 달라요. 『괜찮은 사람』에 수록된 「당신을 닮은 노래」와 가장 가까운 톤인데, 좋은 기획을 제안해주셔서 분량을 좀 늘려서 써봤어요.
소설가로서 가장 듣기 좋은 칭찬은 무엇인가요?
솔직히 말해서 잘 쓴다는 말이 제일 좋아요. 이 작가는 글을 참 잘 쓴다, 이보다 더 큰 응원이 없는 것 같아요. 작가가 잘 쓰지 못하면 소설을 계속 쓸 수 없으니까요. 가장 기분이 좋은 말이죠.
그럼 반대로 못 견디는 상황이 있나요? 싫은 말이나 힘들어하는 사람이나.
그건 그때마다 다른 것 같아요. 어릴 때는 제가 좋고 싫은 게 확실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요. 사람은 변할 수 있고 적응하기도 하고요. 그러면서 누군가를 배려하게 되고요. 저는 어떤 상황에 대해 단언하는 걸 안 좋아해요. 소설을 볼 때도 그래요. 이건 촌스럽다, 세련됐다 이런 평가를 좋아하지 않아요. 굉장히 다양한 사람이 있는 만큼 소설도 다양할 수 있으니까요. 소설을 쓰는 친구들을 보면서 배우는 것이 참 많은데요. 다양한 삶을 읽고 그것을 말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 아닌가 싶어요. 물론 미학적인 기준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다양한 언어로 말하는 일이에요.
전작 장편소설 『다른 사람』의 띠지 카피가 “영페미의 최전선”이었어요. 곧 등단 10년차가 되니 이제 이런 타이틀로 불리진 않을 거예요. 대신 책임감이 더 커질 거고요.
의식을 전혀 안 한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 같아요. 다만 각자 활동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활동가 성격이 강한 사람은 나서서 페미니즘을 말할 것이고, 소설을 통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작품으로 말하겠죠. 저는 소설로 발언하는 사람이고 싶어요. 어떤 기조의 소설을 쓰는 일이 저에게도 의미가 있고, 누군가에게도 의미가 있었으면 해요.
앞으로 어떤 소설을 쓰고 싶나요?
정말 어려운 질문인데요. 그건 저도 모르는 것 같아요. 『화이트 호스』에 실린 소설들도 이렇게 나올지 몰랐거든요. 제가 상상했던 형태로 썼을 뿐이라서 “다음에 제가 쓰는 걸 봐주세요”, 이렇게 말하는 게 가장 정직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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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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