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미쓰다 신조의 신간을 장바구니에 담다 말고 『작자미상, 미스터리 작가가 읽는 책』과 『노조키메』를 다시 읽었다. 출간됐을 무렵에 이미 질리도록 읽은 작품들이지만 언제 읽어도 재밌어 종종 찾아 읽곤 한다. 오랜만에 호러소설을 읽고 나니 오싹한 호러에 대한 갈증이 생겨 괜히 책장에 너저분하게 꽂힌 책들을 뒤적였다. 특정 장르에 한 번 꽂히면 먹성 좋은 독자가 되어 이 책 저 책 먹어 치우게 되기 마련이다. 해석이나 평가가 끼어들 틈 없는, 정신없는 폭식이 시작되는 것이다. 폭식기에 접어든 나는 요즘 호러 팬들 사이에서 화제라는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부터 일본 호러계에 많은 지문을 남긴 오노 후유미의 『잔예』까지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 집에 놓인 몇 안 되는 책을 읽고 나니 공포에 대한 허기가 극에 달했다. 나는 곧장 휴대폰을 켜 ‘괴담’을 검색해 읽기 시작했다.
괴담의 매력은 별다른 설명 없이 ‘이게 끝이야?’ 싶을 때 이야기가 끝난다는 점에 있다. 이야기 이음새마다 공백이 크게 자리하지만 작가는 이를 무리해서 메우지 않는다. 불확실성이야말로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므로, 작가는 인간의 불안과 상상력에 기대 이야기를 이어간다. 또, 온라인 괴담의 경우, 작가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책으로 엮어 나온 괴담과 달리 온라인 상에서 떠도는 익숙한 형태의 괴담(나폴리탄 괴담, 규칙 괴담 등)은 ‘오리지널’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 기존의 이야기를 각색•변형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게 괴담 판의 룰이지만, 최초의 이야기를 누가 썼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 수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적어도 온라인 상에서는) 괴담 작가가 다른 작가에게 ‘당신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며 추켜세우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괴담은 이야기 앞에 작가의 이름이 서지 않는 장르인 셈이다.
글을 통해 사람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다. 나처럼 유명 작가나 인기 주제를 연구한 연구자, 훌륭한 비평을 생산하는 평론가가 아닌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세상엔 좋은 글도, 좋든 나쁘든 읽어야 하는(읽어야 된다고 믿는) 글도 많아서 내 글 좀 읽어달라고 어필하는 일이 어렵다. 세상에 둘도 없는 수작을 쓰면 달라질 거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지금 출판되고 있는 책 중 수작은 손에 꼽을 만큼 드문 것이 현실이다. 걸작이 아닌 작품 역시 누군가에게 읽히고 기억에 남는 작품이 되는 걸 보면, 이야기의 핵심은 (애초에 잘 쓰여진 작품이 무엇이냐는 각자의 기준과 별개로) ‘잘’ 쓰여지는 것보다 어떤 독자를 만나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다. 독자가 작가의 이야기 안에서 무엇을 발견하는지, 자신이 가진 이야기를 그 안에 어떻게 삽입하여 해석할 것인지가 좋은 책을 판가름 짓는 결정적인 요소인 것이다. 좋은 글은 괴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쓰여진 것보다 쓰이지 않은 것에 의해 결정된다. (그리고 이 사실은 작가들에게 괴담보다도 더욱 오싹한 진실일 것이다...)
한편, 어떤 글은 개인의 호오나 글의 중요도와 별개로 글을 쓴 이가 그저 그 사람이기 때문에 읽히기도 한다. 혹자는 이를 이른바 ‘지면 권력’을 가진 이의 글이라고 설명한다. 이름 난 작가의 글 앞에는 그가 원하든 원치 않든 거대한 확성기가 놓인다. 이야기 앞에 이름이 먼저 서는 일, 이야기가 담고 있는 내용이 무엇이든 이름만으로 충분해지는 일. 글을 쓰는 이와 독자에게 과연 좋은 일인지 한 번쯤 질문해볼 만하다.
얼마 전 만난 친구가 내게 ‘구구님도 이제 권력 생겼잖아요’ 라고 농담조로 말했다. 이미 지면을 충분히 얻어온 사람들에게는 우스운 소리겠으나 학위도, 뛰어난 작품도 가지지 못한 일개 독서모임장인 내가 지면을 얻은 건 적어도 내 주변에서는 동네 경사 정도는 되는 일이었다. 내가 품은 이야기를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글을 잘 쓰는 편이 못되어서 개인적으로 이것저것 시도해본 작은 성과들이 공적 지면으로 이어져 만들어 낸 결과였다. 남녀노소 꾸준히 드나드는 연재처에 연재를 시작한 건 친구의 말마따나 힘을 가지게 되는 일이었다. 목소리를 내고 싶지만 그럴 기회가 없는 사람들에 비하면 분명 그랬다.
나의 작고 남루한 힘을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까? 아직 구체적인 답은 모르겠다. 내가 할 일은 지금도 온라인에서 괴담을 쓰고 있을 이름 모를 작가들처럼, 그저 내가 쓰고 싶은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계속 쓰는 일이다. 기회가 주어지길 기다리기보다 나의 영역에서, 이름 없는 개척-작가가 되는 일이다. 이 결심이 오래 이어질 수 있도록 지금 당장 쓰고 싶은 주제를 써 본다: 팔레스타인 해방과 새만금 신공항 백지화, 옵티칼 고용승계와 세종호텔 해고자 복직, 트랜스젠더 포용적인 사회와 차별금지법 제정, 누구도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죽지 않는 사회.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노조키메
출판사 | 북로드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
출판사 | 반타

구구 (노혜지)
2017년부터 독서모임 공동체 ‘들불’을 운영해온 모임장. 들불이라는 이름은 2019년 모임 구성원들과 ‘함께’ 만들었다. 2020년부터 도서 큐레이션 레터 ‘들불레터’를 발행 중이며 동료와 함께 『작업자의 사전』(2024, 유유히)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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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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