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조선 선비 연암 박지원과 남산 아래 인문학공동체에서 동양 고전을 공부하는 청년이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남산강학원’에서 청년 셋 남다영, 원자연, 이윤하 저자는 6개월간 매주 한 편씩 연암 박지원에 대한 글을 썼다. 매주 꾸준히 글을 쓴다는 건 말처럼 쉽지 않았지만, 저자들은 생활 속 질문들을 책을 읽으며 풀어나갔고 그 과정이 한 권의 책이 됐다. 아마 동양 고전을 가장 생생하고 발랄하게 읽는 방법이 아닐까? ‘연암 박지원’과 함께한 청년들의 이야기를 지금 만나 보자.
안녕하세요. 연암에 대한 글을 쓴 세 분.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학문 공동체에서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듣고 싶어요.
남다영: 안녕하세요, 저는 남산강학원에서 주로 동양철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공동체에서 생활하고 공부한지는 5년이 넘어갑니다. 공부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요. 하나는 제가 국문학과인데도 글 한 줄 한 줄 쓰기가 너무 어려워, 글쓰기 앞에서 머뭇거리고 막히게 되는 것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서였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고 싶다’라는 마음에서였어요. 제가 일은 이것저것 벌여놓고 끝까지 책임지지 못한다는 문제라든가,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깊이 맺을 수 있는지를 풀고 싶은 마음에서 공부 공동체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원자연: 안녕하세요. 저는 ‘남산강학원’이라는 인문학공동체에서 공부하고 있는 원자연이라고 합니다. 저는 고민 없이 앞으로만 내달리는 삶을 살지 않으려고,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혼자서는 아무리 책을 찾아 읽고, 사람들을 만나도 답답했었거든요. 그런데 인문학공동체에 오게 된 후에는 사람들과 공부로 깊숙이 만나게 되어 참 좋습니다.
이윤하: 남산강학원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며 공부한 지 4년 되었습니다. 처음 남산강학원의 공부와 접속한 것은 중학교를 졸업하면서였는데요. 무작정 ‘공부라는 걸 하고 싶다!’하는 생각에 고등학교를 대신 남산강학원 세미나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2년 정도 세미나만 듣다가 몸으로 와닿는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연암에 대한 글을 매주 쓰는 과제로 이 책이 시작되었다고요. 매주 글을 쓴다는 게 힘들지는 않았나요? 글을 못 쓰겠다 싶을 때는, 어떻게 뚫고 나갔는지요?
남다영: 같이 쓰는 친구들이 제가 흔들릴 때 많이 잡아줬습니다. 제가 ‘못 쓸 것 같다’고 울상을 짓고 있으면, 윤하는 ‘언니한테 할 말이 다 있다’라고 말해주고, 자연언니는 ‘그냥 너에게 와닿는 느낌을 말해라. 연암의 글 중 친구한테 소개해주고 싶은 것을 편한 마음으로 써라’고 말해줬어요. 그러면 ‘잘해야 해 혹은 잘하고 싶어’라는 압박감과 욕심을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씨앗문장으로 고른 글을 다시 읽고, 마음을 잡고 쓸 수 있었습니다.
원자연: 저희가 공부하는 공동체에는 학인들의 글이 연재되는 ‘MVQ(Moving Vision Quest)’이라는 플랫폼이 있는데요. 그곳에 연재를 하게 되면서, 설레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매주 한 편의 글을 쓰는 게 쉬운 작업은 아니었지만, 글 쓰는 리듬에 차츰 익숙해졌던 것 같아요. 못 쓰겠다 싶을 때는, 저의 공동체의 일상을 샅샅이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책으로 돌아와 연암을 다시 만났고요. 그래도 안 되면, 마감이 오길 기다렸습니다.(웃음) 글은 마감이 써주는 거니까요.
이윤하: 처음에는 매주 새로운 글을 쓰는 것이 무척 즐거웠는데요, 6개월 동안 매주 새로운 글을 쓰기는 사실 어려웠습니다. 생각이 나아가기보다는 반복되는 것 같을 때 제일 글이 안 나오고 쓰기 싫었지만 마감이 있었기 때문에(웃음) 어쨌든 글을 마무리 지어야 했습니다. 글 내용은 모르겠고, 마감은 꼭 지키자! 하는 마음으로 난관을 견뎠던 것 같습니다.
연암을 처음 만났을 때의 기분은 어땠나요? 18세기를 산 인물이잖아요. 낯설었을 것 같은데요.
남다영: 연암의 글 자체가 굉장히 낯설었던 것 같아요. 왜 썼는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부터 시작해서 문단 사이가 어떻게 이어지는지 따라가기도 어려워했는데요. 읽다 보면 이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무작정 읽었던 것 같습니다.
원자연: ‘연암’이라는 인물을 만나게 되기까지는 한참 걸렸던 것 같아요. 그래서 첫인상이라고나 할까요? 그런 건 없었어요. 처음에는 한국말이지만 한국어 같지 않은 고전번역문에 적응하는 데 한참이 걸렸습니다. 조선으로 진입해가는 데도 한참 걸렸고요. 연암을 만나게 된 것은 18세기 조선 선비들의 문집을 읽으면서부터였습니다. 홍대용, 박제가, 이덕무 등 당대를 함께 살았던 인물들과의 관계 속에서 연암이라는 사람이 살아있는 인물처럼 느껴졌달까요?
이윤하: 이렇게 안 읽히다니 큰일이다! 싶었습니다. 정말 정성스럽게 번역해주신 번역본을 읽었지만 한자어에 대한 장벽이 컸습니다.
청년들이 ‘중년의 샘들’과 함께 공부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감상을 나누면서 어떤 것을 얻었나요?
저희보다 긴 삶을 살아오신 중년 선생님들께서는 연암과 접합하는 면적이 더 넓으셨습니다. 당신의 지난 삶을 불러오기도 하시고, 연암의 마음에 공감하시는 부분도 많으셨어요. 그래서 혼자 읽었을 때에는 멋지지만 건조하게 읽혔던 글이 선생님들과 공부하면서 정서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덕분에 연암이라는 ‘사람’의 말, 경험, 마음에 다가가기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연암의 글과 ‘나’의 삶을 접속했다고 느껴진 때가 다 달랐을 것 같은데, 언제였나요?
남다영: 접속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두고두고 제 삶에 남는 연암의 글은 있습니다. 연암이 어떻게 글을 읽는지에 대해 쓴 메모들을 모은 글, 『원사』입니다. 제가 가장 많이 되풀이해서 읽은 글이기도 합니다. 『원사』는 저에게 글을 읽을 때의 마음가짐을 제시해주고, 계속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글입니다.
원자연: 벗과의 이야기들이 그랬던 것 같아요. 공동체에서 친구들과 살고 있어서 그런지, ‘우정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싶었던 순간들이 마음으로 다가왔습니다. 백동수가 강원도로 떠날 때의 연암의 모습, 여름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모습, 이들 백탑청연의 멤버들이 각자 나눴던 우정의 방식들이 찡하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이윤하: 저는 연암이 입신양명의 길에 뜻이 없다는 것이 드러나는 글들에서 많이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무언가가 되는’ 길에 서지 않아도 연암은 저처럼 무기력하기는커녕, 사람에게는 끝까지 마음을 쓰고, 학문을 허투루하지 않았습니다. 글을 쓰며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연암에게 배웠던 것 같습니다.
원자연 작가님은 “배움은 여전히 생존의 문제”라고 하셨어요. 공부를 하시면서 ‘나’에 대한 생각도 많이 달라졌다고 하셨는데요. 생활 속에서 어떤 변화를 체감하세요?
원자연: 배우지 않으면 계속해서 ‘나’라는 존재에 갇혀서 지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게 나야!’라고 고집을 부리는 것도 닫힌 존재가 되는 거에요. 공부를 하면서, 나를 떠나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생각하던 내가, 내가 아닐 수 있겠구나. 이런 나는 존재하지 않는구나, 하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내가 나를 고집하는 순간, 잠시 멈춰 설 수 있는 게, 가장 큰 변화인 것 같아요. 잘 안 될 때도 많지만요.(웃음)
이윤하: 작가님은 연암의 글을 통해 ‘나를 사랑하는 법’을 성찰하시는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자기애와 자기혐오가 범람하는 사회에서 우리의 대처법은 무엇이고, 그 과정에서 공부는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이윤하: 저는 ‘자기애’가 자기혐오의 해결책이라고 보이지 않았습니다. 밑도 끝도 없이 ‘나를 사랑하자’는 것은 감정적인 것에 모든 문제를 맡기는 것인데, 그것이 진짜 나를 사랑하는 일도 아닌 것 같고, 별 도움도 안 되니까요. 내가 살만하다고 느끼면 자기애와 자기혐오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살만하다’는 감각은 자신이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의 방식을 찾을 때, 또 그렇게 살 때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우리가 어떤 세상에서, 누구와 살고 있는지 인식하고, 어떤 것이 떳떳하고 떳떳하지 않은 것인지 고민해야겠지요. 이 과정에서 우리보다 이런 문제를 앞서 고민한 스승들의 글을 읽고, 직접 글을 쓰면서 자신을 보는 공부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인연은 다 악연이다’라는 남다영 작가님의 글이 인상 깊었어요. 작가님은 친구의 죽음을 대하는 연암의 태도에서 관계의 괴로움에도 한발 더 나아가는 모습을 보시는데요. 작가님에게 ‘사람을 사귈 때 마음을 다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듣고 싶습니다.
남다영: 저를 비롯한 많은 젊은 친구들이 누군가와 인연을 맺는 것에 자꾸 겁을 내고 있는 것 같아요. 그 끝이 안 좋아질까 봐, 관계에서 어느 정도 적정선이 되면 더 실망하거나 싫어하지 않도록 스스로 상대와 거리두기를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연암은 반대예요. 오히려 인연 자체가 악연이 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자만이 정말 열렬히 아프도록 슬프고 괴로워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줍니다. 보통 악연이라고 하면, 관계가 틀어지고 나빠지는 것을 떠올리는데 특이하죠.
이런 연암을 볼 때, 마음을 다한다는 것은 인연을 맺으면서 따라올 수밖에 없는 고통과 아픔에 겁먹지 않고 상대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연애감정이 아니더라도 좋아하는 친구와 만날 때, 저절로 그 친구에게 좋은 것을 해주고 싶고, 제 안에 있는 말들이 막 쏟아 나오는 것처럼 좋아하는 마음에 머뭇거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어떤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은지 궁금합니다.
남다영: 매일 매일의 차이를 섬세하게 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지금이라는 순간이 유일무이하구나, 그리고 나 또한 지금 무엇을 겪고 있구나’라며 저에게 주어진 환경을 경이롭게, 명확하게 보며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선 매일 매일 써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원자연: 더도 덜도 아닌 딱 배운 만큼, 책과 만나서 느끼고 사유한 만큼의 글을 쓰고 싶습니다. 고전을 통해 저의 삶에 질문을 던지고, 그렇게 생겨난 질문으로 저 자신과 세상을 이해해가면서요.
이윤하: 철학자들이 던져주는 질문을 품어가면서, 또 제가 가지고 있는 가치와 도덕, 감각을 의심하고 따져보면서, 끊임없이 제 언어와 철학을 연마해가는 글쓰기를 하고 싶습니다.
*남다영 대학을 다니다 사람과 관계 맺는 법을 너무 모르는 것 같아 ‘남산강학원’ 청년프로그램을 신청했다. 그 후로 쭉 공동체에서 생활 중이다. 함께 공부하며 살게 되면서 관계뿐만 아니라 그 외에도 모르는 것투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앞이 깜깜하다. 하지만 깜깜한 만큼 간절하게 연암, 양명, 맹자, 장자, 『주역』 속 말씀들을 내 삶에 맞닿도록 배우고 싶다. *원자연 사람과 자연을 이어 주는 일’을 하며 살고 싶어 조경을 공부했다. 그러다 삶에 질문을 던지고, 생명의 원리를 탐구하는 ‘남산강학원’에 와서 배움의 길을 걷고 있다. 연암, 맹자, 양명 등 ‘마음’을 멋지게 쓰는 스승들을 만나 공부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일상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삶’을 실험하며, 계속해서 공부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이윤하 공부가 뭔지도 모르면서 공부를 하러 고등학교 대신 ‘남산강학원’에 왔다. 루쉰, 푸코, 굴드, 카프카 등등을 난생처음 읽으며 내 세상이 참 좁다는 것을 알았다. 슬슬 공동체에 발을 들여놓던 중 동양철학을 만나면서 삶과 공부는 같이 가야 한다는 굳은 믿음이 생겼다. 지금은 맹자, 카프카와 함께 ‘자유’와 ‘함께 사는 삶’에 대해 고민하는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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