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 겪고 있는 관계의 어려움은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사랑하고 아껴준다는 착각 속에서 수없이 반복되고 수십 번 뒤엉킨 관계의 상처는 스스로 가시를 세우는 고슴도치와 눈치만 보는 미어캣이 되도록 한다.
가족심리치유 전문가이자 인문 분야 베스트셀러 저자인 최광현 교수는 『사람이 힘겨운 당신을 위한 관계의 심리학』을 통해 관계와 관련된 여러 심리학 이론들을 저자의 인문학적 견해와 다양한 사례들로 풀어냈다. 내 마음 같지 않은 관계로 힘들어하는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책이 얽힌 매듭을 푸는 실마리가 되었으면 한다는 최광현 교수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목에 책 내용이 모두 녹아 있는 것 같아요. 간단한 책 소개 부탁드립니다.
기술의 발전이 굉장히 많이 이루어진 만큼 사회도 굉장히 복잡해졌습니다. 사회가 복잡해진 만큼 관계도 어렵고 복잡해졌죠. 현대 사회에서 관계를 잘 맺고 유지하는 능력은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가장 소중하고도 중요한 자원이 되었습니다. ‘소확행’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가족과 주변 사람들과의 좋은 관계는 필수가 되었죠. 자기 자신과의 관계도 물론 중요하고요.
저는 이 책이 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 관계에 대한 통찰과 이해를 제공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했습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여러 관계에서 겪는 어려움을 깊이 있는 심리학 이론과 인문학적 견해를 섞어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여기에 제가 경험한 다양한 사례들도 넣었죠. 저는 이 책이 가족과 대인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얽혀 있는 그 매듭을 풀 수 있는 지혜와 실마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관계’라는 주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꾸준한 관심을 받는 주제인 것 같아요. 이번 책 또한 가족을 비롯한 다양한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관계와 관련한 많은 책을 집필해오신 교수님께서 생각하는 ‘관계’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독일의 신경생물학자인 요아힘 바우어는 인간이 가진 비밀 병기가 ‘협력’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대로 협력은 치열한 환경에서 생존 가능성을 높여주고 행복감도 만들어내는 원천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협력은 인간의 생존 기술이며, 여기서 이 ‘관계’가 바로 협력을 위한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한 가족이나 한 집단에 발생한 불행과 위기는 단순히 운이 나빠서 찾아온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협력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잘 유지되던 신뢰가 무너지고 어느 순간부터 가장 미워하고 증오하는 관계가 되면서 외부 위기에 노출되기 시작한 것이죠. 평소에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었던 문제 앞에서도 쉽게 무너지게 됩니다. 이렇게 보면 협력은 현대 사회에서 정말 중요해요. 저는 이런 협력을 끊임없이 만들어가고 유지하는 것이 바로 ‘관계’인 것 같습니다.
이 책은 크게 가족 관계와 대인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우리가 다양한 관계들에서 오는 갈등과 상처를 회복하고 치유하기 위해 가족 관계를 중요하게 살펴보아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지금까지 주로 가족 관계에 대한 저서를 집필했는데요, 관계라는 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태어나고 성장한 가족을 시작으로 해서 대인관계 영역으로 확장되는 경향을 보입니다. 그래서 가족 관계는 일종의 붕어빵 틀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어린 시절 가족 안에서 형성하게 된 관계의 패턴이 마치 붕어빵 틀처럼 그 후 형성될 수많은 관계의 기본 틀을 주조하게 되는 것이죠.
제 책의 기본 전제 중 하나가 바로 ‘상처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인데, 단란하고 안락한 삶을 만드는 관계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예요. 어느 날 찾아온 관계의 어려움은 우연히 찾아온 것이라기보다는 이미 일정한 역사의 일부로서 나에게 찾아온 것이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어려움과 상처, 갈등 등이 여러 세대를 거치며 대체 어떤 방식으로 반복해서 발생했는지를 이해하고 자기 가족의 과거를 더 많이 알게 될수록 그 고통과 문제로부터 빨리 벗어날 수 있습니다.
상처는 가만히 있지 않고, 교묘하게 반복된다는 말이 인상 깊었습니다. 보통 ‘상처’와 ‘트라우마’를 혼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제 생각엔 상처가 교묘히 반복될 때 트라우마가 되는 것 같아요. 상처가 상처로 남지 않고 트라우마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트라우마는 많은 시간이 흘러도 도저히 소화되지 않은 상처를 의미합니다. 그 상처를 잊기 위해 아무리 애를 써도 절대 지워지지 않는 상처인 것이죠. 같은 상처라고 해도 그 상처를 누구에게 받는가에 따라 통증과 크기는 달라집니다. 모르는 사람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받은 상처일수록 깊은 트라우마가 되죠. 사랑하기 때문에 더 아프고, 길고, 질긴 고통을 받게 되는 거예요. 가족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관계이고, 삶의 만족과 행복의 원천을 만들어주는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은 사랑하지만 동시에 상처를 주고받는 관계가 될 수밖에 없죠. 우리가 잘 아는 심리학자인 프로이트는 이 트라우마가 가족 안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아주 예리하게 관찰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교수님께서 직접 강의하셨던 내용을 바탕으로 나온 책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정말 다양한 관계심리학 이론과 학자들이 등장하는데요, 교수님께서 그동안 강의를 하시면서 가장 중요한 것 같다고 생각하시거나 혹은 굉장히 공감하셨던 학자/이론이 있나요?
머레이 보웬이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에 굉장히 공감했습니다. 그래서 보웬의 이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죠. 보웬은 관계에는 기술이 없다고 했습니다. 제 생각에도 관계를 원만하게 잘 이루고 유지하는 능력은 기술적이고 기교적인 차원에 속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저 몇 가지 요령을 익힌다고 해서 완성되는 그런 영역이 아닌 거죠.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과의 관계입니다. 어쩌면 가족 관계보다 먼저 맺는 첫 번째 관계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보웬은 자기와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가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능력을 좌우한다고 말했습니다. 자기 자신과 관계를 잘 맺지 못하고 자신을 늘 낮게 보는 사람은 언제나 열등감과 자신감의 부족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때때로 관계 문제에서 발생하는 진짜 본질적인 문제는 너무나 쉽게 자기 자신을 낮춰 본다는 거예요. 스스로 자기 자신을 무시하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존중받을 수 있을까요? 그래서 이런 분들이 겪는 관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상대방뿐만 아니라 자신의 변화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최근 코로나19가 다시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전보다 더 거리 두기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가족과 함께 지내는 시간도 더 많아지고 그만큼 갈등도 많이 생기는 것 같아요. 반대로 소중한 관계가 멀어지고 서먹해지는 경우도 많아질 것 같고요. 코로나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현명하게 관계를 잘 유지해나갈 수 있을까요?
저도 코로나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식사도 주로 집에서 하게 되니까 가족들 얼굴도 자주 보고 함께할 기회가 많아져 좋지만, 또 그만큼 의견 충돌이라든가 싸우게 되는 경우도 많아진 것 같습니다. 다른 분들도 그렇겠지만, 뉴스를 봐도 불안하고 공포감을 전달하는 뉴스가 많아 더욱 예민해진 것 같기도 하고요.
이럴 때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자신의 뾰족한 부분을 보이게 될 수 있습니다. 만일 상대방이 이를 이해하고 인내한다면 다행이지만, 본질적으로 보면 그런 부분은 대부분의 경우 관계를 최악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화약고와도 같죠. 그래서 이럴 때일수록 오히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역지사지’이죠. 이런 자세는 서로 감정적으로 대응하려고 하면서 관계를 악순환의 굴레로 들어가게 하려는 그 순간을 잘 막아줍니다. 무엇보다 상대방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공감할 수 있게 되는 놀라운 치료 효과도 가져다줄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읽을 독자 분들께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사람이 힘겹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모든 관계를 그만둔 채 뒤로 물러나고 싶을 정도로 지칠 때가 있죠. 지금 내가 겪는 이 어려움이 대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알고, 상처의 실체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알게 되는 순간 그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이 책에 담긴 관계심리학들이 여러분께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최광현 한세대학교 심리상담대학원 가족상담학과 주임교수이자 트라우마 가족치료 연구소장. 연세대학교 대학원을 마치고 독일 본 대학교에서 가족상담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특히 가족치료의 다양한 방법 중 트라우마를 통한 가족치료를 전공하였다. 독일 루르(Ruhr)가족치료센터 레지던트 가족치료사로 활발히 활동하면서 유럽 여러 나라의 가족들이 안고 있는 갈등과 아픔을 목도하였다. 한국으로 귀국 후 트라우마 가족치료 연구소장으로서 수많은 가족의 아픔을 상담해왔으며, 현재는 트라우마 가족치료 보급과 함께 관계 안에서 상처 입은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데에 힘쓰고 있다. 저서로 『나는 내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가족의 발견』, 『나는 남자를 버리고 싶다』, 『가족의 두 얼굴』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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