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마음이 넘치면 무엇이 될까? 한정현 소설가에게 그것은 ‘소설’이다. 소설집 『소녀 연예인 이보나』를 쓰며 작가는 좋아하는 사람들을 이해해보려고 했다. “나쁜 사람들보다는 좋은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싶어요. 어떻게 이런 세상에서 저런 삶의 태도가 나올까 싶죠. 저는 나쁜 사람은 절대 이해해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인지 『소녀 연예인 이보나』에는 작가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쓴 듯한 소설들이 가득하다. 첫 번째로 수록된 「괴수 아키코」는 그가 꽤 오래 소설 쓰기를 쉬다가 발표한 작품이다. “그 시간 동안 소설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나만의 방식으로 기록하는 것이구나.”
한정현이 사랑하는 사람들은 역사에서 지워진 존재들이다. 퀴어, 여성, 이민자 등 이름을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 간 인물들은 서로를 알아보고 깊이 이해한다. 현실에서 그들은 ‘이상하다’고 규정되지만, 소설은 그들에게 자긍심을 되돌려준다. 쓰는 사람인 그는 왜 이들을 사랑하게 됐을까?
“어린 시절, 특이하다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어요. 거기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말을 거의 안 할 정도로요. 그때의 경험이 남아서 저처럼 별나다는 말을 듣는 사람들이 좋더라고요. 실제로 제가 힘들 때 퀴어 친구들의 도움을 많이 받기도 했어요.”
역사적 사건들이 많이 등장하지만, 한정현의 소설은 기본적으로 한 사람을 향한다. 한 사람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젠더, 국적 등 정해진 틀을 벗어나는 인물들의 이야기로 뻗어나간다. 그중, 「소녀 연예인 이보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보고 싶어서 출발한 이야기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돌이켜보면 참 별난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그 시대 사람들 같지 않은 면이 많았어요. 글쓰기를 좋아해서 일기도 많이 남기셨고, 일반적인 성 역할에 부합하지 않는 면들이 많았죠. 저를 그렇게 키우기도 하셨고요. 지금도 과거 사건을 조사하다 그 분들이 한 말이 떠오를 때가 있어요. 역사적 사건이 한 사람과 이렇게 연결되는구나 싶죠.”
좋아하는 사람들을 좇는 소설의 궤적은 폭넓다. 근대 식민지 시기와 오키나와에서 일어난 국가 폭력, 기지촌 여성의 삶이 다채롭게 이어진다. 타인의 삶을 소설로 옮기며 그는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생물학적 제인」을 쓰려고 1년 동안 기지촌 이모들을 취재했어요. 근데 하면 할수록 제가 쓸 자격이 없는 것 같았어요. 실제로 출판사에도 못 쓰겠다고 말씀드렸어요. 나 같은 사람이 그 고통에 대해 뭘 안다고 소설로 쓰는 건지 회의가 들더라고요. 결국 사연을 극적으로 만들기보다, 그 과정을 보여주기로 했어요. 그래서 인터뷰, 다큐멘터리 같은 장치가 들어간 것 같아요.” 「생물학적 제인」에는 다큐멘터리를 찍는 미국인 여성 메리가 등장한다. 그는 기지촌과 관련된 여성들을 인터뷰한 후 말한다. 다시 한번 용기를 내고 싶다고, 그저 응시해 보겠다고.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는 좋아하는 사람을 통해 봐야 한다.’ 「소녀 연예인 이보나」의 문장처럼, ‘좋아하는 마음’의 필터를 거치면, 사라졌던 이들이 보인다. 남녀의 역할을 자유롭게 뒤바꿨던 여성국극에 열광하던 얼굴들, 가부장적인 사회를 떠나 세계의 바깥으로 향하고 싶었던 이들, 서로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기꺼이 손을 잡았던 사람들. 공기처럼 떠다니는 혐오를 걷어내고, 소설 속 인물들은 곧게 나아갈 것이다. 그만큼 좋아하는 마음은 강하며, 멀리 간다.
*한정현 1985년 출생. 201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줄리아나 도쿄』로 제43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소녀 연예인 이보나』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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