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것을 섬세한 시선으로 발견해 매혹적인 글로 독자들에게 말을 거는 이화열 작가. 프랑스 파리 앙리지누 가 사람들 이야기로 독자들을 사로잡았던 『배를 놓치고, 기차에서 내리다』 이후 8년 만에 신작 에세이로 돌아왔다.
2019년 파리에서 갑작스레 직장암 판정을 받고 수술과 항암치료를 하며, 작가는 의도치 않게 ‘무위하거나 혹은 특별한’ 1년을 보내게 된다. 『지지 않는 하루』는 그 시기의 일상을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특유의 섬세한 필치로 담아낸 책이다. 그리고 매일 수많은 두려움과 싸우고 있는 지금의 우리들에게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삶의 태도에 대한 꼭 필요한 질문들을 다시금 던진다. 그녀가 전하는 ‘다른 이유가 없는 행복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무려 8년 만에 신작을 내셨는데요. 독자로서 매우 반갑습니다. 이렇게 오랜만에 책을 쓰시게 된 이유와 새 책을 『지지 않는 하루』로 내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하는 일, 어쩌면 사는 일에 바빠서 신간을 오랫동안 내지 못했습니다. 항상 마음 한구석은 밀린 숙제를 쌓아두고 사는 기분이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암이라는 병 앞에 소환되었죠. 불행한 소식을 전해준 의사가 불쑥 저의 직업을 물었습니다. 디자인도 하고 글을 쓴다는 대답에 그가 말했어요. “그럼 마담, 제가 책을 쓸 수 있는 좋은 주제를 준 셈이군요.” 이따금 병원 창문으로 비치는 하늘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과연 그가 준 책의 주제가 무엇일까?’ 수술을 받고, 긴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죽음 앞에 발가벗겨 던져진 한 존재가 육체적 고통을 겪는 동안 정신은 결국 그 고통과 맞바꿀 수 있는 삶의 진정한 가치를 찾게 된다는 것을 알았어요. ≪지지 않는 하루≫는 그 질문에 대한 제 자신의 기록입니다.
암수술과 항암치료 기간의 일상을 담으셨는데요.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때로는 유쾌하기도 하고 유머와 여유가 잘 녹아 있는 글이라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 삶의 태도와 생각은 무엇으로부터 나오는 것일까요?
암이라는 병은 확률적으로 한 집 건너 한 집도 아닌, 한 집에서도 몇 명이 걸리는 병이 되어버렸어요. 하지만 인간은 여전히 자신이 암이라는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렵죠. 죽음에 이르는 병,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아파서 죽는 게 아니라, 살아 있기 때문에 죽는다’라고. 인간은 누구나 병에 걸릴 수 있고, 나도 죽을 수 있다는 지극히 당연한 생각을 거부하며 삽니다.
만약 암에 걸리는 사건이 ‘One of them’ 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면 비극적인 생각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 수 있어요. 어떤 독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저는 자신의 불행을 ‘스펙타클한 간증의 서사’로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암이라는 병을 겪는다는 건 죽음을 일상 가까이 두고 살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슬픔과 절망의 의미로서의 죽음이 아니에요. 삶이 영원할 것 같은 어리석은 착각에서 눈을 뜨게 만들지요. 사색하고 삶에 집중하게 만듭니다. 우리 인생은 둘 뿐입니다. 두 번째 인생은 인생이 하나뿐이라는 걸 알았을 때 시작돼요.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여타 책과 비교하면 투병기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아요. 이 책을 통해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생각이나 메시지는 무엇이었나요?
저는 행복이 ‘소유하고 있는 것을 계속 욕망하는 것’이라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문구에 전적으로 동의해요. 인생의 아름다움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인생이 한시적이라는 각성, 일상과의 어떤 미적 거리가 필요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암이라는 병이 주는 선물일 테지요. 관습과 습관에 잠들지 않고 아름다움을 보는 법을 깨우치기, 이것이 제가 나누고 싶었던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투병하는 일 년 동안 태어나서 가장 많은 여행을 떠났고, 가장 많은 케이크를 구웠어요. 『지지 않는 하루』는 고통이 아니라 감미로운 일상의 기록에 가깝습니다.
『지지 않는 하루』를 읽다 보면 ‘암’이 특별하거나 대단히 위험한 어떤 사건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런 시각이 한국적 정서로는 매우 생경하기까지 했어요. 병이나 죽음마저도 그저 보통 사람의 일상 중 하나로 느껴지는데요. 현재 질병이나 힘든 일을 겪고 있는 독자들이 있다면 어떤 말씀을 해주고 싶으세요?
인간은 자신의 의지로 어쩔 수 있는 부분과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어요. 병과 죽음은 자신의 의지와 선택 바깥의 영역이죠. 저는 버튼을 그냥 껐어요. 그랬더니 두려움도 같이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이 있지요. 판단, 욕망, 현재 살아 있다는 것을 충만하게 느끼는 것, 숨을 깊게 들이마시는 것, 자연의 이불을 들추고 그 안으로 포근하게 들어가는 것, 관계의 친밀함을 느끼는 것, 후회 없이 하루를 사는 것. 병에 걸렸다고 반드시 병적일 이유는 없어요.
책에서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시는데요. 그 대상이 암이나 질병이 아니더라도 요즘 한국 사회에서 두려움이나 불안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하는지요?
실패에 대한 두려움, 고통에 대한 두려움, 유한한 삶에 대한 두려움, 타인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 두려움의 종류는 바이러스 종류보다 훨씬 더 다양할 거예요.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 보면 두려움은 두려움에 대한 상상에서 나옵니다. 두려움은 쉽게 인간을 포획하죠.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두려움에 덜미를 잡히면 연약한 동물로 변해요. 두려움은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우리의 발목을 잡습니다.
불안과 두려움은 한국 사회뿐 아니라 현대인의 고질병입니다. 저와 비슷한 시기에 췌장암 수술을 겪은 시아버지가 죽음의 문턱 앞에서 두려움에 완전히 마비된 모습을 봤어요. 평생 자신의 일에 충실했고 가족을 위해서 희생했지만, 그는 자기만의 즐거움과 행복을 찾지는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삶의 희생자였던 것이죠.
식탐이 마음의 공허와 결핍에서 오는 것처럼 인생도 비슷한 측면이 있습니다. 허겁지겁 먹거나, 허겁지겁 사는 건 좋은 습관이 아니에요. 한 숟가락 한 숟가락을 맛있게 음미하고 먹어야 합니다. 맛을 통해서 느끼는 기쁨조차 자기 것이 아닌 사람도 있어요. 우리는 어차피 산해진미를 다 맛볼 수 없고 세상의 아름다운 곳을 다 여행할 수 없습니다. 느낌의 밀도가 중요할 뿐이죠. 만약 각자가 자신의 인생에서 즐거움을 연주하는 법을 배우지 않는다면 인간은 이 부조리한 삶의 희생자일 뿐입니다. 키케로는 철학이 죽음을 배우는 것이라고 말했죠. 저는 철학이 거창하고 현학적인 학문이 아니라, 순간을 최대한으로 살기 위해 깨우침을 습득하는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작가님의 책은 에세이가 아니라 소설 같다는 서평들이 꽤 많습니다. 신형철 평론가는 전작 『배를 놓치고 기차에서 내리다』를 두고 ‘한국식 에세이의 관습이 말끔히 제거된 글’이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죠. 글을 쓰시는 입장에서 그런 평을 받으시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소설이 삶의 단면인 것처럼 소설적인 요소들은 일상에서 나옵니다. 제 에세이가 소설 같다는 건, 일상을 들여다 보는 시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요? 저는 서사적인 스토리텔링보다 일상의 부스러기에 스며 있는 삶의 단면에 더 관심이 있어요. 그래서 에세이를 쓰는 것 같습니다. 글쓰기는 어쩔 수 없이 한 사람의 스타일이 드러날 수밖에 없으니까요. 관습의 옷을 입고 편한 사람이 있지만, 그 옷이 잘 맞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전 후자인 편입니다. 감상으로 치장하는 것도 감정의 방향제 같은 요소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라면을 끓일 때, 먹지 않는 라면 부스러기를 넣고 끓이지 않는 것처럼.
마지막으로 평소 가장 좋아하시는 책이나 현재 두려움과 싸우고 있는 독자들을 위해 『지지 않는 하루』와 함께 읽으면 좋은 에세이가 있다면 추천 부탁드려요.
몽테뉴의 『수상록』을 추천하고 싶어요. ‘에세이'가 몽테뉴의 『수상록Les essais』에서 나온 말이기도 하죠. 한국에서 번역된 『수상록』 은 발췌 번역본이라 평소 유감스럽게 생각하는데요. 만약 제가 번역에 뛰어난 재능이 있었더라면, 전권을 번역했을 했을 거라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몽테뉴는 현대 철학자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철학자예요. 16세기에 살았던 인물이지만 그가 지녔던 현대성은 놀랍습니다. 오래 전부터 몽테뉴를 좋아했지만, 특히 투병할 때 저에게 가장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두려움과 죽음에 대한 몽테뉴의 글은 책에 여러 번 인용이 되었고요. 하지만 책에 이야기한 것처럼 『수상록』 도 저는 몽테뉴 식으로 읽습니다. ‘난 책을 슬렁슬렁 읽지 자세히 파고들지는 않는다. 그렇게 읽고 났을 때 내게 남는 건 그 책의 내용 자체가 아니라 그 책을 통해서 내가 판단한 것, 감동받은 것, 상상한 것뿐이다.’ 저는 수상록을 머리맡에 두고 오랜 세월 야금야금 읽고 있어요. 음미할 책을 머리맡에 두는 건, 평생 믿음직스러운 친구를 갖는 것에 견줄만한 일입니다.
*이화열 196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꿈은 혼자 새로운 세계를 여행하는 것이었다. 1987년 성균관 대학교 의상디자인학과를 졸업한 후 1991년 홍익대 대학원 산업디자인학과에 입학, 대학원에 다니면서 정치광고회사에서 아트디렉터로 일했다. 경제적으로 독립한 스물아홉 살이 되던 해에 정치광고디자인을 그만두고 파리 유학길에 올랐다. 파리 타이포그래피 국립 아틀리에L’Atelier National de Creation Typographique 국가 연수생으로 뽑혀 수학하던 중, 파리지앵인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파리에 정착했다.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했으며, 정치광고 아트디렉터로 일하고, 한국 도시디자인 회사를 운영했다. 그가 지은 책으로 에세이 『배를 놓치고 기차에서 내리다』, 『그 남자 그 여자의 파리』, 『마망 너무 사양해』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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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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