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있지
꽃들은 따뜻한 오월이면
꽃을 피워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
철새들은 가을하늘 때가 되면
날아가야 한다는 것을
- 한영애, ‘조율’(1992) 중에서
때가 되면 꽃이 피고 또 철새가 뜬다고 할 때 이들이 그 ‘때’를 어떻게 느낄까 하고 궁금해하여 본다. 각기 줄기와 허공을 찢고 나서는 순간, 새로운 공간 속으로 뛰어드는 순간의 앞에 선 그들은 여행을 앞둔 사람처럼 설레거나 두려울까? 몸에 새겨진 업으로 여기며 담담히 악물고 영차, 할 뿐일까? 혹은 그 모든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육신 안쪽 시계의 태엽이 탁, 풀리면 그저 자신을 던지는 것일까?
주변의 동식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나 혹은 인간의 경우에 빗대어보며 삶의 여러 가지 측면을 생각할 때가 종종 있다. 그중에서도 새는, 우리가 가지지 않았으므로 유독 낭만적으로 다가오는 ‘낢’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있기에 더더욱 몽롱하게 느껴지고, 또 그래서 좀 더 넓고 먼 사유와 비유의 단초가 될 때가 있다.
조류학자와 철학을 전공한 기자가 함께 쓴, 새들에 대한 관찰을 바탕으로 온갖 사유를 펼쳐내는 책 『새들에 관한 짧은 철학』 속에서 저자들은, 가본 적 없는 아프리카 중서부의 숲으로 이동하는 어린 뻐꾸기를 경이로이 바라보며, 이 경험을 아래와 같은 철학적인 질문으로 만들어낸다.
무엇이 새끼 뻐꾸기를 아프리카로 떠나게 하는지, 그리고 무엇이 모든 철새를 북극으로 떠나게 만드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새들의 여행에서 중요한 건 ‘왜’일까, 아니면 ‘어떻게’일까?
-필리프 J.뒤부아·엘리즈 루소, 『새들에 관한 짧은 철학』, 46쪽
위의 질문에서 “새들의 여행”을 “인간의 살기”로 바꾸면 이렇게 된다. “인간의 살기에서 중요한 건 ‘왜’일까, 아니면 ‘어떻게’일까?” 질문에 잠시 머무르고 나니 문장의 바로 앞에 답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리고 이 문구 앞의 이야기들만이 장엄한 사실로서 오롯이 남았다. 예컨대 “무엇이 나를 내일로 떠나게 하는지, 그리고 무엇이 모든 사람을 어제로 떠나게 만드는지”와 같은 문장 말이다.
그렇게 해서, 모두들 떠난다. 내일로든, 어제로든, 아프리카든, 북극으로든, 왜든, 어떻게든. 아래의 노래는 떠나려는, 혹은 떠나기를 주저하는 어떤 이 곁에서 불린다.
거기서 멈춰있지 마
그곳은 네 자리가 아냐
그대로 일어나 멀리 날아가기를
얼마나 오래 지날지
시간은 알 수 없지만
견딜 수 있어 날개를 펴고 날아
- 이승열, ‘날아’(2014) 중에서
철새가 어느 순간 낯선 공간으로 훌쩍 떠 가는 것이 육신에 프로그래밍되어 있고, 인간이 끊임없이 새로운, 빈 시간 속으로 던져지는 것이 거역할 수 없는 행성(들)의 문법에 의거하여 있다. 결국 우리는 새처럼 매 순간, 빈 어드메에 떠서 떤다. 멈춘다는 것은 거역하는 것이고, 불가능한 것이다. 가사는 “그곳은 네 자리가 아냐”라고 말한다. 떠 있는 몸을 둘러싼 시간들이 어떤 공기로 채워져 있는지, 어떤 빛깔이며 얼마나 지속될지 우리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견딜 수 있고, 견딜 수밖에 없으니, 할 수 있는 일은 있는 날개를 펴고 저항을 받는 것뿐이다.
새 식탁보
새 식탁보, 노란색!
그리고 신선한 흰 종이!
단어들이 올 것이다
천이 좋으니
종이가 섬세하니!
피오르에 얼음이 얼면
새들이 날아와 앉지
-울라브 하우게, 『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주다』 15쪽 수록시 전문
그리고, 다음 순간으로 날아간다. 피오르에 언 얼음처럼 단단히 다음 순간이 준비되어 있다면 좋겠다. 단단한 지반이 있다는 확신 속에서 새들은 그리고 우리는 먼 길을 날아 마침내 앉는다. “신선한 흰 종이” 위로 날아드는 단어들처럼, 노란 “새 식탁보” 위로 풍성히 차려질 음식처럼, 우리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아주 잠시 앉는다. 그다음 순간으로 도약하기 전까지 말이다. 우리가 다음 순간으로 늘 새로이, 새처럼 도약하는 모습을 보며 내일이 단단해진다고 생각해 본다. 순간에서 순간으로 날았다가 앉았다가 하는 모습의 반복이 내일을, 내일의 내일을 단단하게 만들어 마침내 아주 길고 긴, 탄탄한 길 하나를 만든다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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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현(뮤지션)
음악가. 1인 프로젝트 ‘생각의 여름’으로 곡을 쓰고, 이따금 글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