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이 단골이 되고 싶은 노포 이야기
‘오래가게’는 대를 이어 운영할 만큼 오랜 시간이 축적되어 고유의 정서와 전통이 있는 가게를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이 가게들이 앞으로 더 오래가길 바라는 마음도 담고 있습니다. 중의적 제목 맞아요.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1.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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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골목 한쪽에 세월을 짐작할 수 없는 오래된 가게가 있다. 이 오래된 가게는 어떤 주름진 역사를 만들며 100년에 가까운 시간을 이어온 걸까? 『또 올게요, 오래가게』는 서로 다른 것을 만들고 파는 노포의 얼굴과 목소리를 담아낸 책이다. 24곳 가게의 주인들이 들려준 그들의 작은 역사가, 시간의 더께가 쌓인 건물의 그림이 동네에 하나쯤 있던 가게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또 올게요, 오래가게’라는 중의적인 제목이 재미있으면서도 참 다정한 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내용이 담긴 책인가요?

흔히 ‘노포老鋪’라고 하죠. 직관적으로는 ‘맛있다고 이름난 음식점’을 떠올리게 되는데요.  『또 올게요, 오래가게』에서는 음식점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만들고 파는 다양한 표정의 가게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쌀집, 목욕탕, 신발가게, 자전거포, 대장간, 제면소, 양조장, 다방, 헌책방과 같이 언젠가 한 동네에 옹기종이 이웃하고 있었을 법한 곳들을 반갑게 마주할 수 있어요. 분야를 가리지 않고 ‘새로운’ 것에 관심이 쏠리는 시대인데 짧게는 한 세대, 길게는 백 년이 넘도록 변함없는 모습으로 매일같이 문을 열고 있는 가게들이에요. 가게 문턱을 넘어 들어갔던 분들이 뒤돌아 나올 때면 아마도 같은 마음일 거라 믿습니다. ‘또 올게요, (더) 오래가게’라고요. ‘오래가게’는 대를 이어 운영할 만큼 오랜 시간이 축적되어 고유의 정서와 전통이 있는 가게를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이 가게들이 앞으로 더 오래가길 바라는 마음도 담고 있습니다. 중의적 제목 맞아요.


  

각기 다른 표정이라 하면 책에 소개된 가게들의 업종이 저마다 다르다는 이야기일 텐데요, 가게 선정에 어떤 기준 또는 원칙이 있었는지 궁금해집니다.

유행하는 말로 ‘있었지만 없었습니다’라고 표현하고 싶은걸요. 얼마 동안이면 오래된 걸까요?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지 않을까요? 가령, 한 세대에 해당하는 30년을 기준으로 잡는다 했을 때 그럼 29년은 아니 되는 걸까요? 누가 봐도 오래된 곳인데 취재하던 시점에 폐업한 곳도 있었고요. 그래서 최소한의 기준은 잡되 얽매이지 않기로 했어요. 편집부와도 소통하면서 ‘우리가 가게를 평가하지는 말자’라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고요. 그렇게 정한 몇 가지를 나열하자면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한 세대 이상 운영하고 있는 곳, 대를 이어 운영하는 곳이면 더 좋겠고, 머지않아 사라지게 될지도 모를 업종, 우리 동네에도 있었으면 하는 가게… 이렇게 ‘여긴 안 돼!’가 아니라 ‘이곳은 꼭 기록으로 남겨야 하겠다’ 싶은 곳들로 발걸음하게 되었습니다.



책에 실린 가게들을 보면 전국 방방곳곳입니다. 제법 이름난 곳도 있지만 정말 그 동네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을 것만 같은 가게도 있고요. 책을 보면 내용이 꽤 내밀한데 인터뷰가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특히 가게 주인 분들의 반응이 어땠을지 궁금합니다. 

방송국 PD나 신문기자도 아니고 작가라고는 하지만 알지도 못하는 이가 인터뷰를 하겠다고 하면 저라도 마뜩찮을 것 같아요. 요즘은 가게 홍보를 해 준다 하고선 돈을 요구하는 못된 업체들도 많다고 하고요.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인터뷰에 응해주신 가게에선 ‘오면 이야기하는 것이야 뭐 어렵겠소’ 이런 분위기였달까요. 물론 주인어른의 성향에 따라 ‘인터뷰는 무슨…’ 하며 처음엔 시큰둥하게 맞아 주신 곳도 있지만요. 곧 ‘하루로는 부족하다’ 하며 오히려 제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했습니다. 가게가 위치한 지역, 그 업종의 산증인과도 같은 분들이니 당연한 일이었고요. 코로나19로 대부분의 가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요즘인데, 저는 그 덕분에 조금 더 여유 있게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 같아 감사하면서도 마음이 아리기도 합니다. 부산 온천장에 위치한 만수탕의 경우 인터뷰를 한 날 제가 유일한 손님이었거든요.



책의 부제처럼 ‘기꺼이 단골이 되고 싶은 다정하고 주름진 노포’들을 알게 되어 정말 뜻깊은데요. 이들 가운데 머지않아 사라지게 될지도 모를 업종과 가게가 있다는 건 너무 아쉽습니다. 어떤 곳들인가요?

괴산에 있는 청인약방, 천안에 있는 역전쌀상회가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는 가게들이에요.

1953년 한국전쟁 직후 정부가 의료 소외 지역을 중심으로 일정 자격을 갖춘 이에게 약을 판매할 수 있도록 허락한 약종상 면허 제도가 있었어요. 당시 청인약방은 시골마을의 병원이자 약국 역할을 했던 곳이죠. 1971년 약종상 제도가 폐지되었는데 그전에 약업사 허가를 받은 곳은 계속해서 약방을 운영할 수 있었다고 해요. 약방도 우리 약업의 역사인데 몇 남지 않은 약방이 문을 닫으면 그대로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워 청인약방 어르신께선 2020년 괴산군에 약방을 기부하셨어요. 그 덕분에 어르신이 더 이상 출근하지 않는 날이 오더라도 약방은 박물관으로 단장해 계속 사람들을 맞이할 수 있게 되었지만 제 기능을 하는 약방은 마지막이 되겠죠.

일제 때 여관으로 운영되었던 이른바 ‘적산’에 자리 잡은 역전쌀상회는 천안역 원도심 일대 도시재생사업이 진행되면서 철거될 것으로 예상되고요. 클릭 몇 번이면 새벽녘 로켓처럼 쓱 배송해주는 장보기에 익숙해진 시대에 봉지쌀을 파는 가게가 아직까지 남아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지만 곧 없어질 거라 생각하면 또 마음이 이상한데요. 오히려 주인 어르신께선 “시대에 맞게 잘 살았지유.” 하셔서 ‘아, 이것이 어른의 마음이구나’ 배웠습니다.




그런 면에서 ‘가벼운 이야기일거라 예상했는데 생각할 거리가 많고, 깊은 여운이 남는다’라는 독자 리뷰들이 눈에 띕니다. 양장 제본이라는 물성, 세밀한 펜드로잉 삽화가 주는 시각적 자극도 분명 큰 역할을 할 테지만 표면적인 것 외에 어떤 부분이 독자들에게 여운을 남게 한 걸까요? 

우리 이야기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먹고사는 이야기이고 어쩌면 나 혹은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 이웃의 이야기이니까요. 가십(gossip)이 아니라. 그간 우리 역사는 세상을 놀라게 한 굵직한 사건 사고로 기록되어 왔잖아요. 제게 욕심이 있었다면  『또 올게요, 오래가게』를 통해서 매일 성실하게 문을 연 가게들이 축적해 온 그 오랜 시간들이 우리 역사의 한 축이 될 수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가게 자체의 역사는 물론 지역과 업종의 변화상을 충분히 풀어내려 노력했습니다. 상호는 분식이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분식의 대명사 ‘떡튀순’은 팔지 않는 덩실분식에서 ‘분식’의 의미를 되짚고, 인천 배다리의 아벨서점을 통해 사람과 물자가 모이고 흩어지던 곳에 헌책방 거리가 형성되었던 맥락을 이야기한 거죠. 그런 부분들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책을 읽은 분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지고 여운을 남게 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건도, 서비스도, 공간도, 대상이 무엇이든 조금 더 ‘새로운’ 것에 반응하는 것이 일반적인 시대에 ‘오래가게’의 미덕은 무엇일까요?  

글로벌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닷컴 원예 부문 수공구 카테고리에서 한국 제품이 TOP 10에 올라 화제가 된 적이 있어요. 지난해에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도 출연하셨던 영주대장간 석노기 명장의 호미가 그 주인공입니다. 명장께서 말씀하시길 50년 대장간 일을 해도 호미 천 개를 만들면 그중 한두 개 불량이 나온대요. 불량 확률이 1/1000 정도인 거죠. 그런데 꼭 그 하나를 골라 가는 사람이 있대요. 호미를 만드는 사람에겐 천 개 중 하나여도 사 가는 사람에겐 그게 전부이니 5천 원짜리 호미 하나 바꿔주는 데 택배비 8천 원이 더 들어도 잘못된 호미는 본인이 책임을 진다고 하셨어요. 내 물건 사는 사람은 손해 보지 않도록 하는 그 마음. 세월을 머금어 ‘빈티지’ ‘레트로’ 분위기가 깃든 것은 그저 덤이고요. 결국엔 ‘믿을 수 있는 곳’이 주는 안정감, 저는 그 부분이 크게 다가왔어요. 때문에 저 역시 그 값진 시간들을 정직하게 기록하려 노력했고요.

『또 올게요, 오래가게』에 소개된 가게에 직접 방문하고 싶은 독자들도 생겨날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많이 찾아가시고, 많이 팔아도 주셨으면 좋겠어요. 동네 골목의 오래된 가게들은 때때로 파출소이고, 우체국이고, 은행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대나무 숲이자 은신처이기도 했습니다. 어쩌다 들어오는 외지인들에게는 그 무엇보다 정확한 이정표이고, 내비게이션이고, 검색창이었습니다. 생활에 필요한 것을 만들고 파는 사람들이 우리 곁의 이웃이었던 시절의 이야기인데요. 고백컨대 저는 언젠가부터 낮이고 밤이고 동네 골목이 무서워졌고 이웃을 경계했습니다. 많은 것들을 의심하며 지내 온 날들입니다. 세상이 변했다고 탓했습니다. 그런데 오래된 가게를 드나드는 내내 생각했습니다. 내가 변해버린 건 아닐까?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 동네에 있었으면 싶고, 기꺼이 단골이 되고 싶었던 가게들을 뒤로하고 지금 제가 살고 있는 동네 골목 어귀에 들어설 때면 조금씩 걸음이 느려졌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동네를 다시 보게 되더라고요.  『또 올게요, 오래가게』가 내 주변을 애틋하게 바라보게 하는 기록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함께 눈 밝은 이웃이 되어 보는 건 어떨까요?



또 올게요, 오래가게
또 올게요, 오래가게
서진영 저 | 루시드로잉 그림
arte(아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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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