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여름 <유 퀴즈 온 더 블럭> 제68화 ‘살면서 안 만나면 좋을 사람’ 편에 출연해 화제를 모았던 이승훈 서울대학병원 신경과 교수가 대중의학서 『병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를 펴냈다. 456쪽에 달하는 두꺼운 책이지만 술술 익힌다. 무서운 질병에 걸린 환자도 건강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책을 꺼내든 독자들도 “이런 책은 처음 본다”는 반응이다. 최신 연구 자료를 기반으로 한 매우 솔직하고 과감한 건강 지식이 압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뇌졸중의학연구원 원장을 맡고 있는 이승훈 교수는 최근 뇌졸중 교과서 시리즈 6권을 완간했고 2016년 나노자임을 연구해 온 서울대학병원 연구팀과 바이오 회사 ‘세닉스바이오테크’를 설립해 올해 2월 나노자임 신약 CX213 기반 물질인 ‘지주막하출혈 나노자임 치료제 CX111’과 ‘패혈증 나노자임 치료제 CX171’의 미국 특허 등록을 마쳤다.
병이 곧 우리의 적은 아니다
뇌졸중 전문의인데 암, 감기/코로나19 등을 총망라한 대중의학서를 썼다.
출판사에서 처음 책을 제안했을 때는 뇌졸중 건강서를 원했다. 그래서 서점에 나가서 관련 책들을 쭉 보니까 일본에서 나온 책이거나 한의학, 민간요법 등이더라. 책을 쓴다면 과학교양서로 만들고 싶었는데 일반 대중들에게 외면 받는 책을 쓰고 싶진 않았다. 환자를 비롯한 일반인들에게 꼭 필요한 건강 도서를 쓰고 싶었다.
제목부터 과감하다. “병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불가능한 일인데 책을 읽고 나니 해답이 조금 보이더라.
사람의 몸은 부족하고 불완전해서 누구나 어쩔 수 없이 질병과 살아간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좀더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적극적으로 대처하자는 것이 내 생각이다. 큰 질병을 평생 피할 것이라는 막연하고 잘못된 믿음, 불필요한 공포감, 잘못된 영양제 사용과 필수적 약물 멀리하기 등 비과학적인 건강 태도들을 최대한 의학적, 과학적 시각에서 책에 담아 내려고 노력했다.
새로운 질병 분류법도 제시했다.
2016년에 바이오 벤처 회사를 설립하면서 만든 약물이 급성 뇌손상 뿐만이 아니라 심장, 폐, 간 등의 장기에도 영향을 끼치는 약이었다. 그러다 보니 모든 장기를 다시 공부하게 됐고 암은 오래 전부터 관심이 많았던 분야다. 뇌졸중이나 심장질환은 병이 생기는 원인이 명확하다. 뇌졸중은 2차성 질환이다.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흡연, 음주 등의 위험 요인이 수년에서 수십 년 지속된 후 발생하는 동맥경화성 혈관병변이 일으키는 질환이다. 그런데 암은 느닷없이 예고없이 일어나는 질병이다. 암은 정상 세포의 증식 및 분열 과정에서 발생한 유전자 돌연변이로 인해 생긴 세포들이 무한 증식하면서 벌어지는 병리학적 과정인데, 반드시 노화가 아니라도 암세포는 발생할 수 있다. 당연히 발암물질에 자주 접촉된 세포는 더 많은 증식과 분열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암세포로 발전할 확률이 높다.
암 환자의 경우, 표적치료제 같은 항암은 표준화가 돼 있지만 치료 후 수술이 가능하다고 하는 의사가 있고 또 반대의 경우가 있다. 환자들의 선택이 어려울 때가 많다.
그래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뇌졸중 환자 중에 몇 년째 주치의로 보고 있는 암환자가 있는데 치료에 매우 적극적인 분이다. 암을 완전히 없애는 건 불가능하지만 마지막으로 한 방사선 치료로 암을 거의 억눌러 놓았는데 그 옆에 작은 암이 또 생겼다. 당연히 전이라고 생각했는데 조직검사를 해보니 새로 생긴 암이었다. 그럼 이 암을 따로 봐야 하는데 방사선, 항암을 하는 의사들이 모두 수술을 반대했다. 환자가 포기를 했다면 그 뜻을 존중해줘야 하지만 치료 의지가 무척 강했다. 고민을 하는 시간 동안 그 암이 말도 안 되게 커져서 결국 방사선 치료를 했고 정말 다행히도 결과가 좋았다. 환자가 불가능하지 않은 수술을 하겠다고 하면, 의사는 이 수술에 따른 부작용을 잘 설명해주면 된다. 치료하는 과정에서 죽는 것도 감수하겠다는 환자의 의지를 의사가 꺾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선택은 환자가 하는 일인데 치료의 권한을 가진 사람이 무조건 안 된다고 할 수는 없다.
명의를 찾는 사람들도 많다. 어떤 기준으로 명의를 판단할 수 있나?
명의의 기준은 사실 어렵지 않다. 비슷한 중증도의 환자들을 맡았을 때 환자를 많이 호전시키는 의사가 명의다. 하지만 지금까지 차트를 기반으로 통계를 내서 의사들의 진료 수준 분석 연구가 시행된 적이 없다. 보험심사평가원에서 해마다 각종 질환의 의료 적정성 평가를 시행하지만 의사들에 대한 평가가 아닌 병원의 수준별 평가다. 외래 진료 시간이 굉장히 짧을 수밖에 없는 지금의 현실에서 명의는 존재하기 힘들다. 병원, 학회, 방송, 언론의 평가보다 담당 의사와 많은 교감을 하면서 그 의사의 진정성과 실력을 스스로 잘 판단해보는 게 최선이다. 무책임한 말로 들릴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에서 명의라는 허울 없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다.
상급종합병원에서 외래 진료를 볼 때 진료 시간이 워낙 짧으니 의사에게 질문을 하기도 어렵다. 많은 환자를 봐야 하는 의사들의 상황을 이해하지만 환자의 질문에 핀잔을 주는 의사들도 있다. 의사들과 어떻게 소통하는 것이 좋을까?
중요한 걸 잘 물어보는 게 좋다. 어떻게 보면 너무 사소하고 중요하지 않은 걸 반복적으로 묻는 분들이 있다. 의사가 이미 정확히 답한 부분에 있어서는 받아들이고 다른 질문을 해야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데, 중요하지 않은 부분을 집요하게 계속 물으면 의사와 라포를 형성하기가 어렵다. 의사와 대화할 때는 치료를 받은 이후의 예후에 관한 답을 확실하게 듣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질문을 피하는 의사들은 명의일 수가 없다.
암 환자임에도 완치되고 일상생활을 문제없이 잘하는 사람들도 많다. 병을 극복하는데 환자의 태도가 어느 정도로 영향을 미칠까?
무척 중요하다. 병이 없어도 생활이 몹시 괴로운 사람도 있지만 반대로 뇌졸중 같은 병을 가졌음에도 행복한 노후를 지내는 사람도 많다. 책에서도 말했지만 내가 강조하고 싶은 건 질병의 유무가 아니다. 심각한 질병은 예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겠지만 어쩔 수 없이 질병에 걸렸다면 충분히 치료하고 건강하게 살 기회가 있다. 인간은 병과 함께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병이 곧 우리의 적은 아니다. 병을 갖고도 행복하게 사는 삶은 병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가 얼마나 슬기로운지에 달려 있다.
증명된 데이터를 믿고 약을 현명하게 먹어야 한다
2020년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했을 때 “건강을 챙기기 위한 교수님만의 방법”을 묻는 질문에 “약을 먹습니다”라고 답해 큰 화제를 모았다.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심방세동을 가진 분들은 항혈전제와 함께 각각을 조절하는 약물을 복용해야 한다. 물론 위험 요인 발생 초기에는 약물 없이 생활습관 개선을 시도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그 단계를 넘어서 약물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약을 잘 챙겨 먹는 것이 훨씬 이롭다. 물론 투약 여부는 처음에 신중하게 결정하되 결정된 다음부터는 확실하게 잘 먹어야 한다. 약을 꾸준히 잘 먹는 사람은 위험 요인이 더 발전되지 않고, 해당 약물 하나로 평생 조절되는 사람도 많다. 반대로 약을 적절히 먹지 않으면 고혈압, 당뇨 등이 더욱 나빠져 나중에는 약물 하나로 막을 것을 3~4가지를 써도 안 될 정도로 빠르게 악화되기도 한다.
책에서 무척 유용했던 정보가 ‘감기 예방법’이다. 적어도 며칠간 감기에 걸리지 않기 위한 방법을 소개했다.
일단 감기의 정의를 알아야 한다. 감기 바이러스는 에어로졸, 비말, 오염된 물건 및 손을 통해 전염되고 사계절 항상 주변에 존재한다. 또 감기 바이러스는 체온보다 약간 낮은 온도인 32℃에서 증식이 활발하다. 감기를 예방하려면 마스크를 쓰는 게 좋다. 마스크가 막는 건 감기 바이러스 자체가 아니라 감기 바이러스가 담긴 비말과 에어로졸 및 바이러스로 오염된 본인의 손을 막아준다. 수시로 손소독제로 소독하는 것도 중요하다. 바이러스 중 외피를 가진 바이러스들이 알코올에 노출되면 외피에 손상을 입는데,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바이러스는 대개 외피를 갖고 있어 알코올 소독제만으로도 충분한 살균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 얼굴, 특히 콧속을 자주 닦는 게 좋다. 바이러스가 아무리 얼굴에 많다고 해도 결국에는 코나 입을 통해 호흡기로 들어가야 점막 안에 정착해 감기를 일으킬 수 있어 구강과 비강의 청결이 무척 중요하다. 더불어 귀가 후 옷은 바로 세탁하고 전신 샤워하고, 자기 직전 양치하는 것, 취침 시 저체온을 방지하는 것도 감기를 예방하는 좋은 방법이다. 모든 감염은 위생이 제일 중요하다.
“담배는 최악의 위험물질”이라고 단호하게 밝혔다.
의학적으로 할 말이 없을 정도, 논할 가치도 없다. 폐암을 비롯한 거의 모든 암의 발암물질이고 뇌졸중 입장에서도 뇌경색과 뇌출혈을 모두 확실하게 증가시키는 위험 요인이다. 수많은 예방의학 연구를 통해 백해무익하다는 것이 확실히 밝혀진 이후에도 일반인에게 이렇게 쉽게 노출시킨다는 게 이해할 수 없다. 담배를 끊는 것을 얼마나 고통스러워 하는지 잘 알지만 국민 건강을 위해서는 담배 추방 캠페인이라도 벌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60세 이후 심장질환이나 뇌졸중이 생겼다면 갑작스러운 체중 감량이나 다이어트는 오히려 건강에 해가 될 수 있다.(423쪽)”고 말했다.
일단 60대 이상에 비만한 수준이 아니라면 함부로 살을 빼려 하지 말고 의사와 상담하는 게 좋다. 50대 이하라면 일정 수준의 다이어트는 괜찮지만 과격한 식이 억제는 절대 금물이다. 우리 연구팀의 분석에 의하면 급성 뇌경색 환자는 체중이 가벼울수록 초기에 뇌졸중이 심각하게 발현될 가능성이 높았고, 3개월째 다시 확인했을 때에도 마른 환자의 예후가 더 불량했다. 또한 우리나라 성인 여성의 경우에는 비만보다 저체중이 더 문제다. 모든 연령대에서 가장 중요한 건 단백질을 많이 함유한 육류 및 생선, 적당한 수준의 탄수화물과 지방식, 비타민과 무기질이 많은 야채를 골고루 먹는 균형 잡힌 식단이다.
평소에 자기 몸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상투적이지만 건강 생활을 해야 한다. 적당한 운동, 적절한 체중 관리, 금연, 절주. 이 네 가지만 잘 지켜도 장기와 면역 시스템이 최선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30세가 넘었다면 혈압을 가급적 자주 재보는 게 좋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가 좋다. 40세가 넘었다면 1년에 한 번 당화혈색소와 저밀도 콜레스테롤을 측정하고, 2년에 한 번 위내시경, 5년에 한 번 대장내시경을 추천한다. 초음파 검사는 몸에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니 권고하는 만큼 해도 괜찮고 뇌 MRI는 50세가 넘었다면 한 번쯤은 해보기를 권한다.
자녀들이 어릴 때, 어떻게 건강을 지도했나?
쓸데없는 영양제는 먹이지 않았다. 오히려 뭘 먹으려고 하면 먹지 말라고 했고 샤워와 양치질을 꼼꼼히 하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너무 당연한 예방접종.
책의 타이틀이 ‘아주 작은 수고로 생애 최정점의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이 책을 선택한 독자들에게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약의 정체를 알고 약을 잘 드시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많은 사람이 약을 특수하게 생각하는데 약은 필요한 효과를 내기 위해서 만든 저분자 물질이다. 당연히 잘못된 약을 먹으면 안 되고, 그 약 때문에 생기는 부작용은 의사와 당연히 상의하고 내 몸이 받아들일 수 있는 약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그런데 이 약 때문에 얻게 되는 혜택은 엄청나다. 많은 환자들이 약 때문에 내 몸이 좋아지는 것보다 본인이 느끼는 몸의 이상 증상으로 몸이 나빠진다고 생각하는데, 증명된 데이터를 믿고 약을 현명하게 먹어야 한다.
대중의학서를 또 쓸 계획이 있나?
질병 자체를 다루는 책, 뇌졸중을 아주 자세히 다룬 책도 쓰고 싶고 훗날에는 인간의 의식과 죽음에 관한 인문서도 써보고 싶다.
*이승훈 서울대학교병원 신경과 교수. ㈜세닉스바이오테크 대표이사, (사)한국뇌졸중의학연구원 원장 및 뇌혈관대사이상질환학회 회장을 겸직하고 있다. 의학자로서 뇌졸중의 기초와 임상에 관한 200여 편의 국외 논문을 발표했으며, 대한신경과학회 향설학술상, 서울대학교 심호섭의학상, 유한의학상 대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관 이달의 과학기술자상 및 보건복지부 장관표창 등을 수상했다. 이런 공로로 2014년 심장 및 뇌졸중 분야 세계 최고학회인 미국심장학회/미국뇌졸중학회(American Heart Association/American Stroke Association)에서 석학회원(Fellow of AHA)으로 추대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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