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 빵에 진심인 빵순이의 본격 베이킹 에세이, 『난생처음 베이킹』은 갓 구운 빵처럼 온기와 향기가 가득한 책이다. ‘먹는 빵순이’가 ‘만드는 빵순이’가 되고 그러면서 빵을 더 좋아하게 되는 과정은 잘하지 못한다고 해도 좋아하는 걸 계속해나간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한다. 서투른 초심자의 시각이 담겨 있기에, 너무 소소해서 오히려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사소한 베이킹 팁을 얻을 수 있다는 건 기대하지 않았던 수확이다.
방송작가, 국제구호개발 NGO 콘텐츠 기획자 등으로 10년여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빵에서 크나큰위안을 얻었고, 베이킹을 하며 나날이 빵 사랑이 깊어졌다는 김보미 저자를 서면으로 만났다.
요즘 홈베이킹에 도전하는 분들이 부쩍 늘어났는데, 작가님이 베이킹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조금 남다른 것 같아요. 어떻게 베이킹을 시작하게 됐는지 이야기해주세요.
워낙 빵을 좋아해서 ‘언젠가 기회가 되면 베이킹을 해봐야지’ 생각은 했지만 요리엔 그다지 관심이 없어서 적극적으로 해볼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또 갖춰야 할 장비나 도구도 적지 않으니 본격적인 취미로 베이킹을 시작할 마음은 아니었죠. 그런데 빵 값으로 쓰는 돈이 점점 늘어나더니 어느 날 충격적인 카드 값을 마주했어요. 그래서 생각했어요. ‘이럴 바에야 그냥 만들어 먹자. 만들어 먹으면 사 먹는 것보다 돈을 아낄 수 있겠지.’
하루 2만 5천 보씩 걸으며 ‘빵지순례’ 하는 에피소드가 인상적이던데요. 빵덕후로서 ‘이 집은 추천할 만하다’ 싶은 빵집이 있나요? 그리고 작가님이 생각하는 ‘맛있는 빵집’의 기준은 뭘까요?
저는 재료의 맛이 분명히 살아 있는 빵과 디저트를 좋아해요. 정체성이 분명한 빵이라고 하면 될까요. 겉모습은 예쁜데 재료의 맛이 잘 느껴지지 않으면 어쩐지 속은 것 같은 기분이거든요. 그리고 만드시는 분의 다정함이 함께 느껴지는 빵집을 좋아해요. 빵과 디저트는 보통 기분이 좋아지려고 먹으니까 정서를 함께 먹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왕이면 다정한 가게가 좋아요. 저만의 맛집으로는 연희동의 ‘버드스틱’을 추천하고 싶어요. 주말에만 예약 판매를 하는데 모양이 예쁘기도 하고 소박한 듯 꽉 채운 재료의 맛이 확실히 느껴지는 곳이에요. 가보시면 제가 왜 그곳을 좋아하는지 알게 될 거에요. 그리고 이미 유명한 곳이지만 제가 가장 오랫동안 먹기도 하고 많은 사람에게 소개하기도 했던 ‘폴앤폴리나’의 브라운 치아바타도 꼭 드셔보셨으면 좋겠어요. 발사믹 식초를 섞은 올리브유에 꼭 찍어 드세요.
흔히 ‘빵은 만드는 거 보면 못 먹는다’고 하잖아요. 들어가는 버터와 설탕의 양에 놀라서 말이에요. 그런데 작가님은 베이킹을 하면서 빵을 더 사랑하게 되셨다면서요?
맞아요. 저도 베이킹을 시작했을 때 그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베이킹을 해보니 ‘이렇게 맛있는 재료가 많이 들어가니까 맛있는 거지’ 하는 생각에 빵을 더 사랑하게 되었어요. ‘내가 먹을 건데 이왕이면 좋은 재료로 만들자’ 하고 좋은 재료만 사게 됐고, 그렇게 고른 재료를 배합하면서 더 안심하고 맛있게 먹게 됐죠. 모든 요리가 그렇듯 좋은 재료가 맛의 절반은 책임지잖아요. ‘이렇게 좋은 재료를 잔뜩 넣어 내 손으로 만든 빵’을 완성하고 나면 좋은 재료의 맛에 수고의 맛까지 더해져 더 맛있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렇게 자꾸 만들면서 빵을 더 사랑하게 됐어요.
빵을 완성해냈을 때의 성취감,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하면서 느끼는 즐거움 등 베이킹의 매력도 다양할 텐데요. 작가님에게 있어서 베이킹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인가요?
처음엔 베이킹의 모든 과정을 혼자 즐길 수 있다는 게 좋았어요. 밀가루, 버터, 계란 세 가지 기본 재료를 다루는 방식, 배합과 굽는 시간, 온도 등에 따라 다양한 모양과 맛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었고요. 낯선 베이킹의 세계를 한 꺼풀씩 벗겨내면서 새로운 걸 알아가는 것도 즐거웠어요. 그런데 그 모든 즐거움 가운데 가장 좋은 건 누군가를 생각하며 만들고 선물했을 때 그걸 먹으면서 행복해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는 일이었어요. 지금 카페를 하면서 가장 좋은 것도 바로 그런 거예요. 케이크를 주문하고 찾으러 오는 분들의 행복한 표정을 보는 일. 행복한 사람들의 얼굴을 매일 볼 수 있는 직업은 흔하지 않으니까요. 취미로 베이킹을 할 때도 지금도 가장 좋은 순간은 내가 만든 걸 먹는 행복한 얼굴을 볼 때인 것 같아요.
책을 읽으면서 “이분은 ‘뜨거운 I’다!” 싶더라고요. 일이나 사람에 은근한 열정이 있으신 분이라는 인상이었습니다. 특히나 내향인에게 일과 사람은 어려운 숙제인데, 좋아하는 일을 밀고 나가는 작가님만의 원동력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멋진 결과보다는 좋아하는 일을 즐기는 과정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요리 곰손’이라 베이킹을 하면서도 남들보다 훨씬 실수와 실패가 많았어요. 좋아하면 더 잘하고 싶은데 마음처럼 안 되면 실망하게 되잖아요. 그럴 땐 ‘좋아하는 걸 재밌게 하는 게 중요하지 결과는 거들 뿐’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좋아한다고 다 잘할 수는 없다"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자주 해요. 잘할 때보다 못할 때가 많은 게 당연하다고 수시로 상기시켜요. 그러면 마음의 부담이 덜어지거든요. 박찬욱 감독님 댁 가훈이 ‘아니면 말고’라는 말을 듣고 무척 공감했어요. 결과까지 좋으면 고마운 일이지만 아니면 말고 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즐기는 것, 그게 꾸준히 좋아하는 일을 이어가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면 경험이 쌓여 점점 더 잘하게 되지 않을까요?
‘먹는 빵순이’에서 ‘만드는 빵순이’가 되고, 이제 디저트 카페까지 열어서 ‘덕업일치’를 이루셨어요. 같은 베이킹이라도 취미로 할 때와 업으로 할 때는 다른 점이 많을 텐데요. 무엇이 가장 큰 차이점일까요?
혼자 만들고 먹을 땐 완전히 제 취향에 맞춰 만들었어요. 지금은 저의 취향이 가게의 색깔을 이루는 기본이라면 그 위에 손님들의 취향이 더해진다는 것이 달라진 점이겠죠. 손님들의 반응에 따라 레시피를 수정하면서 저와 손님들의 취향의 접점을 찾는 거죠. 취향을 섞는 것도 흥미롭지만 제 취향대로 만든 디저트를 손님들이 맛있게 드실 때면 잘 통하는 친구를 만난 것처럼 행복해져요. 가끔 손님들이 “맛있어요”라고 짧은 인사말을 해주면 고마운 말을 굳이 말로 표현해주는 예쁜 마음에 감동해요. 카페를 하면서 취향의 교집합을 찾는 즐거움이 새롭게 늘어난 것 같아 감사해요.
마지막으로 책과 함께하고 있을 빵순이, 빵돌이, 빵덕후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책 안에 저만의 방식으로 사랑했던 빵과 베이킹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어요. 빵덕후라면 제가 사랑하는 마음으로 먹었던 빵 이야기에 공감하실 수 있을 거예요. 우리끼린 통하는 게 있잖아요. 혹 빵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베이킹을 통해 일상을 끌어갈 새로운 힘을 채우고 즐거워하고 위로받았던 순간의 기록이 책을 읽는 분들에게도 힘이 되고 즐거움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좋은 빵과 디저트를 먹을 때처럼 기분 좋게 책장을 넘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김보미 열네 살 떡잎부터 될 성 불렀던 빵순이. 빵과 디저트를 먹기에도 끼니가 모자란 빵덕후. 향긋한 빵과 디저트를 먹는 순간 하루 중 영혼에 가장 생기가 돌기에 빵의 치유력을 믿는 사람. 빵에 대한 열렬한 애정으로 ‘먹는 빵순이’에서 어쩌다 보니 ‘만드는 빵순이’가 되었다. 방송작가, 국제구호개발 NGO 콘텐츠 기획자 등으로 10여 년간 직장생활을 했고, 지금은 베이킹의 매력에 매일 새롭게 반하면서 인천 땅끝마을 송도에서 작은 디저트 카페 스윗언스윗을 운영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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