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림 "기죽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지금도 저는 인간의 심지가 무엇보다 강해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정인을 제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인간상으로 그리려고 했어요.
글ㆍ사진 신연선
2022.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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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를 주우며 생활을 유지하는 할머니와 단 둘이 사는 중학생 '현정인' 앞에 어느 날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난다. 그 고양이의 정체는 악마 '헬렐'로, 그는 일주일의 휴가 기간을 정인과 함께 보내겠다고 선언한다. 헬렐의 눈에 정인은 자신의 유혹에 하나 하나 걸려 넘어질 존재. 하지만 막상 정인은 수많은 악마의 유혹에도 쉽게 삶을 내어주지 않는다. '만약에'라는 주문은 그러나 정인에게 묘한 파장을 일으키고, 가난한 삶을 변화시키는 선택은 거의 손바닥 위에 올라와 있다. 정인에게 찾아온 악마 헬렐은 행운일까 저주일까.

제15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클로버』는 가난한 중학생 정인을 시종일관 명랑한 시선으로 그린다. 나혜림 작가는 이 소설을 쓰면서 "청소년 문학만이 주는 활력이 좋았다. 아직 해보지 않았으니까 '한번 해보지 뭐'하는 특유의 패기가 재미있고, 그래서 힘들어도 웃으면서 넘길 수 있는 인물들이 좋았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청소년 시기는 인생에서 정말 소중한 시기잖아요. 저는 그 시기를 사는 분들이 그냥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해보면 좋겠어요. 성인이 되어서 돌아보면 그때 진짜로 하고 싶었던 게 의외로 자그마한 거였다는 걸 알게 될 거고요. 해보면서도 무언가를 알게 될 테니까요. 정인처럼 가난하고 어려운 상황에 있다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렸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하고 싶은 거 하고 즐기면서 살았어'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요. 그냥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았으면 좋겠어요."



악마, 그리고 인간의 강한 의지

어느 날 주인공 '정인' 앞에 타락 천사이자 악마인 '헬렐'이 등장하면서 이야기가 시작해요. 악마라고는 하지만 처음에는 수호천사처럼 느껴지기도 했는데요. 이 소재가 어떻게 찾아왔는지 궁금해요. 

약 3년 전에 쓴 소설인데요. 그 시기가 제 개인적으로 무척 힘든 시기였어요. 주변 사람들을 원망하게 되고, 그래서 사람들과 연락도 끊고 그랬죠. 그때 친구 한 명이 제게 전화를 걸어서 "너를 위해서 기도할게"라는 거예요. 저는 신을 믿지도 않고, 그저 인간의 강한 의지 말고는 딱히 믿는 게 없는 사람이거든요. 그 말에 제가 "네가 믿는 신한테 가서 내 눈에 띄면 가만 안 둔다고 전해"라고 얘기를 했어요. 그때는 그냥 주변에 다 화가 났으니까요. 그런데 친구는 "네가 그런 마음을 품는 것도 충분히 이해하니까 나는 그 마음까지 전할게"라고 하더라고요. 

전화를 끊고 나서 이 친구는 도대체 무슨 동기로, 무엇을 믿고 있길래 저렇게 얘기할 수 있는 걸까, 생각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진짜로 내 눈 앞에 신이 있다면 어떤 얘기를 할까 생각하게 된 거예요. 그 당시에는 저를 관장하는 존재가 신이 아니라 좀 악마 같았고요. 그렇게 이야기가 나오게 됐어요.

곳곳에 성경 구절이 인용되기도 하고, 신화적인 요소들도 녹아 있어서 평소에 관심이 많으신 게 아닐까 생각했었거든요. 

전혀 아니에요.(웃음) 관심이 없었는데요. 영화 <조커>에서 조커가 계단을 오르는 장면에서는 너무 힘들어하고, 표정이 어두운데 내려갈 때는 막 신나게 춤추면서 가요. 어떤 영화평에 '올라가는 건 너무 힘들지만 하락하는 건 너무 쉽다'는 내용이 있었어요. 그게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요. 아등바등 버티는 건 너무 힘든데 책임감 없이 그냥 놓아버리는 건 너무 쉬울 것 같은 거예요. 그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종교와 연결이 됐던 것 같아요. 

하지만 주인공은 종교를 믿지는 않잖아요. 그냥 자기 자신을 믿죠. 저는 이 소설에서 종교가 동기 부여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했어요. 악마가 계속 정인의 내적 동기를 흔들려고, 침투하려고 하지만 실패하고요. 정인이 생각을 바꾸는 계기나 동기 정도로만 악마가 존재하고 있는 거죠.  

확실히 정인이 악마에게 너무 휘둘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느껴지기도 했어요. 

지금처럼 마음이 비교적 안정된 상태일 때 정인이처럼 악마를 만나면 로또 번호라도 알려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웃음) 그런데 이 소설을 쓰던 당시에는 악마도 어떻게 못 해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우울의 수렁에 있을 때는 말이에요. 

한편으로는 악마에게 그 정도 역할만 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 워낙 정인이라는 사람이 중심이 단단히 서 있는 아이이기 때문에 악마가 더 침범하지 못하기를 바랐던 거예요. 정인에게 이것저것 많이 유혹해보지만 잘 안 넘어가는 거죠. 지금도 저는 인간의 심지가 무엇보다 강해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정인을 제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인간상으로 그리려고 했어요.

'정인'이라는 캐릭터는 욕망하고 흔들리기는 하지만 끝내 악마의 시험에 들지는 않는 인물이잖아요. 그밖에 복지관 선생님의 후원 제안을 거절하기도 하고요. 어떤 인물을 상상하면서 정인이라는 사람을 만들었는지 구체적으로 들려주세요. 

정인과 우정을 나누는 친구 '재아' 같은 경우는 든든한 보호자가 있고, 생활도 안정돼 있는 편이죠. 저도 힘든 시기가 어느 정도 지나가고 나니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더라요. 출근도 안 했으면 좋겠고, 가방도 사고 싶고, 여행도 가고 싶고요.(웃음) 그런데 너무 힘들 때는 그런 생각은 전혀 안 들고 오직 스스로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정인 역시 비슷한 상태이기 때문에 더 그러는 게 아닐까 싶은데요. 물질적인 것을 생각하기보다 자기 자신을 너무 많이 생각하게 된 거죠. 

그런데요, 복지관 선생님의 제안을 거절한 건 자존심 같아요. 오기죠. 저는 그런 건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그처럼 '내가 다 할 거니까 어른들은 나서지 마세요'라는 태도를 갖는 건 안타까운 일이에요. 그런 도움은 받아들이는 게 일종의 성장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요. 물론,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혼자 중심을 갖고 서 있는 것이지만요. 혼자만 서 있을 수는 없으니까 정인이가 조금쯤은 받아들이면서 성장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가난은 현실이니까

후원을 제안하며 복지관 선생님이 말해요. "네가 영리하고 바르고 꿋꿋한 만큼"(131쪽) 도움도 받고, 약한 모습을 보여도 괜찮다고요. 이에 정인이 "만약 제가 바르게 안 살면요? 그러면 후원자님이 저를 차 버릴까요?"(132쪽)라고 반문을 하거든요. 그 말도 정말 중요한 부분을 짚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유독 힘든 사람한테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를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저러니까 가난하다'는 시선을 주기도 하고요. 가난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는 건데 말이에요. 정인도 어쩔 수 없이 바르게 지냈어야 했던 거예요. 그러지 않으면 다른 애들보다 더 크게 비난 받을 걸 아니까요. 복지관 선생님한테 그렇게 얘기를 하는 것도, 바르지 않아도 괜찮은 애들이 있는데 왜 나는 이렇게 해야 될까, 라는 생각에서 했던 말이 아닐까요. 그 장면을 쓰면서 '정인이 바르지 않으면 어떡할 건데?'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아이에게도 욕망이 있고, 바르지 않게 행동하고 싶을 때도 있을 텐데, 하고요. 저의 바람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 이유로 정인의 주변에 있는, 정인에게 되레 규칙을 어기라고 말하는 어른들의 존재를 곱씹게 되는 거예요. 특히 아르바이트 가게 사장님이 그렇죠.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악마가 아닐까 싶었어요. 

악마보다 더 심한 부분이 있죠. 인터넷 댓글에도 '악마도 손절하겠다'는 식의 표현들이 있는데요. 사실 같은 반 '태주'의 행동 역시 악마가 봐도 심했던 거죠. 그러니까 오히려 악마가 착해 보이는 거잖아요. 결국 선과 악이라는 개념도 인간이 만든 거니까 악마가 더 착하다, 나쁘다를 논할 수는 없겠지만요. 여기서 악마는 그냥 악의 기준 정도로 생각했어요. 이것까지 하면 선 넘는 거야, 이건 진짜 심한 거야, 라고 말하는 존재로 생각했죠.

『클로버』를 읽으면서 작가님께 가난에 대한 남다른 관심사와 문제의식이 있다고 느꼈는데요. 그것은 혹시 작가의 말에서 말씀하신 "불행한 어린 시절"(240쪽)과 연결해서 생각할 수 있을까요? 

사실 제가 힘들었던 건 가난과 크게 관련이 있지는 않아요. 정서적인 어려움이 더 컸는데요. 리뷰 같은 것을 보니까 작가의 말에 쓴 문장을 그렇게 연결해서 생각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그 순간 죄책감이 들었어요. 난 정인이처럼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는데, 물질적으로 이 정도 수준의 어려움을 겪진 않았는데, 하고요. 누군가는 제가 가난을 훔쳤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지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좀 부끄러웠어요.

그럼에도 가난의 지리하고 힘든 현실을 작품에 녹이고 싶었던 마음은 무엇이었나요? 

그게 현실이니까요. 언젠가 김영하 작가님이 이야기는 더 잘 기억하려고 쓰는 거라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기억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클로버』에도 썼지만 사람들은 존재했는지가 의문인 사람에 대해서는 기억하는데 정작 분명히 존재하는, 옆에서 폐지를 줍는 분들은 별로 기억하지 않죠. 저는 그런 곳을, 지리하고 지저분하더라도 계속 그곳을 언급하고 비춰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앞으로 쓰고 싶은 이야기들도 그래요. 장애인, 영케어러, 그밖의 다양한 소수자 분들에 대한 얘기를 쓰는 게 의무라고 생각해요. 저도 그런 분들을 작품에서 보고 싶고요. 사람들이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것을 보면 우울하고 싫으니까 계속 쓰고 싶어요.



하루를 보내는 것은 대단한 일

관련해서 마음 아픈 문장들이 몇 개 생각나요. 할머니와 정인이 서로 뭔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걸 짐작하면서도 자세히 물어볼 수 없어 그냥 침묵하는 장면이 있죠. 그리고 "한 칸짜리 집에는 갈등을 넣어둘 수납 공간이 없다"(162쪽)고 해요. 이들의 삶이 너무 생생하게 와 닿더라고요. 

어떻게든 해결해 주고 싶은데 무력하다는 것, 그건 너무 슬픈 일인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다들 그런 경험이 있으니까 슬퍼하는 거라는 생각도 하고요. 다들 그런 상황을 한번쯤은 겪어봤으니까 공감하는 거잖아요. 저는 모든 사람들이 그냥 그렇게 하루를 보내는 것 자체가 대단한 거라고 생각해요. 적당히 덮어놓고 그냥 내일 살아야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엄청나게 대단한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정인이 재아한테 그런 말 하잖아요. "난 오늘도 나중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해."(101쪽) 지금 말씀을 들으니까 이 대사가 다시 묵직하게 다가와요. 

그냥 하루의 밥값을 하는 것, 그건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내일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을 수도 있고, 오늘 하루를 충실하게 사는 수밖에 없을 수도 있잖아요. 저는 그런 모든 사람들이 대단해 보여요. 실제로 정인이는 그렇게 하고 있고요. 다만 그게 얼마나 대단한지 본인은 모르는 거죠. 아직 어리고, 늘 그래왔던 당연한 일이니까요. 하지만 그게 힘든 거더라고요.

그래서 작가의 말에도 그렇게 쓰신 거죠? "사람들은 극복하는 인간을 좋아한다지만 사실 저는 그 말을 믿지 않습니다. 극복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그냥 하세요."(241쪽)라고요. 

네, 저는 정말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뭘 극복하겠어요. 그냥 하루하루 생존을 하는 거죠.

정인의 "가끔은 나도 여러 가지 중에 골라 봤으면 좋겠어요"(76-77쪽)라는 말은 너무 속상하고, 화가 나기도 했어요. 선택의 가능성이 없으니까 하는 말이었는데요. 

저는 그 부분이 청소년 시기의 사람들에게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소득이 비교적 높고, 보호자가 신경도 많이 쓰는 학생들은 방학이 되면 선택할 수 있는 게 굉장히 많아요. 여행을 갈 것인가, 어학연수를 갈 것인가 등의 선택지가 많죠. 하지만 저소득층 학생들은 아예 선택지가 무엇이 있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더라고요. 모르니까 그냥 이대로, 옆에 형이나 오빠, 언니, 누나가 하는 걸 하고요. 그렇게 하다 보면, 그냥 그 동네 아이들과 똑같이 살게 되고 결국 그 동네를 못 떠나는 거예요. 어떤 연구를 봤는데요. 저소득층에 사는 아이가 동네만 옮겼는데 성적이 향상되었다는 내용이 있었어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죠.

그것이 문화 자본인 거잖아요. 

맞아요, 선택지도 재산이라고 생각해요. 선택 옵션을 제공한다는 건 비용을 들인다는 거니까요. 그게 오늘날의 현실이 아닌가,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어요.



웃을 일은 있다

주문같이 반복되는 중요한 말이 '만약에'예요. 이 말이 헬렐을 통해 정인에게 왜 이렇게 계속 제시가 되었어야 했나요?

정인 같은 아이는 매일 똑같이 살 수밖에 없잖아요. 그러면 내일도 안 달라지고요. 그 와중에 '만약에'라는 가능성을 계속 주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사실 정인에게는 내일은 다를 거야, 라는 말이 오히려 자신을 병들게 할 것 같거든요. 너는 뭐든 될 수 있어, 같은 말을 하는 게 이런 상황에 놓인 아이한테는 망상인 거잖아요. 가능성이라는 것을 좋게만 보고, '만약'이라는 단어 뒤에 거의 대부분 좋은 말이 붙지만요. 그것도 누군가한테는 독이 될 수 있어요. 저는 다양한 상상을 해볼 수는 있지만 거기에 갇혀서 계속 현실을 불평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그랬으니까요. 

그래서 정인이는 안 그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어요. 상상은 어디까지나 재미로만, 밸런스 게임을 하는 정도로만 하고 삶이 조금 힘들어도 오늘은 열심히 살자, 하고 지냈으면 좋겠다고요. 그런 의도로 썼는데요. 어떻게 생각하면 다른 삶에 대한 상상조차도 제한한 것이 된 건 아닌가 싶어서, 너무 가혹했던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들더라고요.

정인은 이 상황에 불만을 느끼다가도 할머니의 헌신, 사랑을 생각하면서 죄책감을 느껴요. 헬렐과 화려한 것을 잠시 누리면서도 결국 현실을 선택하는 데에도 죄책감이 있는 것 같고요. 이 마음은 무엇일까요? 

『천 개의 파랑』이었던 것 같은데요. 힘든 상황에 놓이면 특히 가족들 간에 일종의 부채감 같은 걸 갖게 된다는 말을 읽고 공감한 적이 있어요. 제가 힘들었던 상황도 사실 가족 문제와 관련이 있었던 건데요. 제가 아무리 잘해도 안 되는 거예요. 어쩔 수 없이 부채감을 공유할 수밖에 없고요. '내가 너무 좋고, 행복하면 우리 가족은 이럴 텐데' 같은 생각을 하게 되죠. 그러니까 할머니와 먹는 술빵 하나는 아무 죄책감 없이 먹을 수 있지만 헬렐과 먹는 고급스러운 식사는 죄책감이 드는 거예요. 우리 할머니도 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런 마음이 계속 들고요. 

어떻게 보면 죄책감이 바르게 살 수 있는 원동력도 되지만요. 아마 평생 정인을 따라다니겠죠. 정인을 계속 우울하게 하고, 자기 비하를 하게 만들 거예요. 『클로버』가 만약 우울한 톤의 소설이었다면 어떻게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죄책감 문제를 다루는 소설이 됐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 분들 너무 많잖아요. 말을 안 해서 그렇죠. 그래도 어쨌든 웃을 일은 있으니까요. 블랙 코미디 같아도 한 번 정도는 웃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서 썼어요. 앞으로도 힘든 일은 엄청 많겠지만 그래도 약간의 유머 감각을 가지고 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힘든 상황에 있어도 어떤 순간에는 즐겁고, 설레는 기분도 느낄 수 있는 게 현실이죠. 오히려 어떤 사람을 우울하게만 보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은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정인이는 자기가 몰라서 그렇지, 약간 자기 본연의 유머 감각이 있는 아이예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거든요.(웃음) 그러니까 그냥 받아 치는 거죠. 자신의 현실 같은 것을 말이에요. 나중에는 유머처럼 농담하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뒤지게 가난했어" 그렇게요.(웃음) 좀 그럴 수도 있잖아요.

작가님은 정인이라는 인물에게 어떤 미래를 주고 싶으세요? 소설 안에서 물론 스스로의 동력으로 성장해나가기는 하지만요. 정인한테 현실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지 듣고 싶어요. 

현실적으로 이런 환경이 변화하기는 쉽지 않죠. 사실은 요즘은 30대 초반까지도 아직 어린 느낌이잖아요. 그렇지만 정인 같은 아이는 20살이 넘으면 곧바로 어른 노릇을 해야 할 거예요. 그래서 이 아이가 나중에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생각하면, 사실은 너무 힘들 것 같아요. 아무리 소설에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다짐하지만 솔직히 쉽지가 않을 텐데요. 저는 그냥 정인이가 기죽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처음 가본 식당에서도 그냥 맛있게 한 끼 먹고 나오는 사람이었으면 좋겠고요. 뭐가 뭔지 모르면 눈치를 보기보다는 옆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고, 그러면서 주변에 기댈 수도 있고, 도움을 주겠다는 제안도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나혜림

단편 소설 「달의 뒷면에서」로 소설집 『항체의 딜레마』에 참여하였다. 장편 소설 『클로버』로 제15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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