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독에 대한 환상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다. 쇼핑하듯 책을 사고 곁에 쌓아두는 것만으로 읽지 않음의 불안함에서 잠시 벗어날 수는 있지만 그때뿐이다. 지적 허세와 지적인 것은 다른 문제다. 생각 없는 독서는 헛배만 불린다. 이런 포만감은 위장된 자기기만이기도 한다. 남의 글을 읽더라도 결국은 자기 머리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쓰려고 읽습니다』는 다독에 대한 신념을 향해 정면충돌한다. 성실히 책을 읽어온 존재의 노력이 어째서 응축되지 못하고 산허리에 걸린 안개처럼 흩어지고 마는지 그 이유와 대안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책을 완독해 본 적이 없습니다. 책은 나와 맞지 않는 것일까요?
한때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던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판매량과 비교해 완독률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분위기에 이끌려 사기는 했는데 펼쳐보니 어려운 것이죠.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의 책 『모두 거짓말을 한다』의 가장 마지막 부분에 완독률과 관련된 재미있는 연구 내용이 있습니다.
위스콘신 대학교의 수학자 '조던 엘렌버그'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책을 끝까지 읽는지를 연구했습니다. 아마존은 사람들이 책 속의 문장을 인용한 숫자를 알려주는데, 그는 이 자료를 토대로 사람들이 자주 인용하는 문장이 책의 어디에 집중되어 있는지를 조사했습니다. 이 조사는 복잡하고 어려운 책일수록 사람들이 어디까지 읽는가를 밝히는 힌트가 될 수 있었습니다. 예상대로 쉬운 책의 완독률은 높았던 반면, 노벨상 수상을 했던 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의 대표작 『생각에 관한 생각』을 끝까지 읽은 사람은 독자의 약 7%였고, 세계적으로 알려진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은 겨우 3%만이 완독했다고 합니다. 완독을 기준으로 하면 읽기 힘든 책은 대부분 끝까지 읽지 않습니다. "고전은 모두가 읽고 싶어 하지만 정작 아무도 읽은 적이 없는 책이다"라는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말입니다.
책에 나를 맞추려 하지 말고 내가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에서부터 출발해야 주체적인 공부가 됩니다. 『21세기 자본』처럼 유명한 책이라고 해서 모두가 읽는 것은 아닙니다. 남의 눈을 의식해서 책 경쟁을 하는데 읽을 맛이 나나요. 책이야말로 자기 안으로 떠날 때 즐거운 여행이 되지요.
책을 멀리하라는 식의 주장은 다소 불편한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는 "시간을 관리할 수 없다면 당신은 다른 그 무엇도 관리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안타깝지만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책만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림을 감상하거나, 당신이 SNS에서 나누는 사회적 소통도 의미가 있습니다. 운동하고, 기타도 배우고, 글을 쓰거나 여행을 떠나는 것도 삶을 성장시키는 데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하루 한 권씩 수천 권의 책을 목표하고 읽으려면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할 일들입니다. 제가 본 다독은 책을 너무 많이 읽고 뇌는 되도록 적게 쓰는 읽기였습니다. 저는 책이 참 좋습니다. 제 삶을 변화시키고 성찰하게 만드는 중요한 도구인 건 맞습니다. 그 점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하지만 도구는 막 쓰는 게 아니라 잘 쓰라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예리한 칼처럼 최소한의 힘을 들여 최대한의 효율을 얻을 수 있어야 좋은 도구니까요.
책을 도구나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말이 다소 불편하게 들리는데요.
도구를 잘 쓴다는 것은 자기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할 줄 아는 전략 전술에 능하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현재 능력과 한계를 깊이 이해할 때 가능합니다. 책만의 감성이 있다 보니 도구라는 말에 불편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책은 도구입니다. 단단한 자아의 외피를 내리칠 때 책은 도끼라고 하지 않습니까? 도끼도 역시나 도구입니다.
읽은 내용을 어떻게 다 기억하나요?
저는 기억력이 남들보다 좋지 못한 편입니다. 그래서 잊지 말아야겠다는 내용은 그 자리에서 기록해 둡니다. 쌓인 기록을 정리하지 않으면 자료로서 가치가 없습니다. 봐도 모르는 내용투성이입니다. 그래서 메모한 것을 정기적으로 정리합니다. 쓰려고 읽고, 읽은 것은 기억하려고 또 씁니다.
'쓰기를 위한 읽기'라는 개념이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는다면요?
'읽고 나서 쓴다'라고 생각하면 목적이 읽기여서 '쓰거나 말거나'가 됩니다. 하지만 '쓰기 위해서 읽는다'라고 전제하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우선 '무엇을 쓸 건데?'하는 물음부터 생깁니다. 이에 대한 답을 찾았다면, 이번에는 '어떤 책을 참고할 건데?'하는 물음이 자동으로 돌아옵니다. '일단 읽는다'와 '무엇을 읽어야 할지 알고 읽는다'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문제로부터 출발한 '쓰기'는 '구체적인 읽기'를 만나 '문제 해결'에 이르게 됩니다.
쓸 게 없을 때는 어떻게 하나요?
쓸 게 없다는 생각을 버리면 쓸 게 보입니다. 쓸거리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수많은 사물과 상황들로 엮인 의미의 세계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문학자 함돈균이 쓴 『사물의 철학』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사물에 투영한 저자의 인문학적 시선이 매력적입니다. 그는 하이데거의 말을 빌려 "사물을 도구라는 영역으로 제한하고, 우리가 있는 세계를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도구의 연관들이 맺는 의미의 그물만으로 본 것은 탁월한 관점 전환이다"라고 말합니다.
도구는 쓰임이 있고 도구가 지시하는 쓸모들로 우리가 사는 세계는 그물망처럼 촘촘히 얽혀있으니 사물 하나하나가 넓게는 인간에게 좁게는 나 자신에게 구체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물을 어떻게 쓰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삶을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쓸 게 없을 때는 사물의 존재를 뜯어보고 문장으로 당신의 생각을 정리해보세요. 평범한 사물의 존재가 기발한 생각의 전환점이 되어줄 것입니다.
초고를 완성도 있게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초고를 잘 쓰려다 보면 망합니다. 초고는 거칠게 쓰세요. 주제와 맥락만 흐트러지지 않고 이어지면 퇴고 때 다듬으면 됩니다. 처음부터 완벽해지려고 하지 마세요.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글쓰기에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이 글쓰기 재능입니다. 당신이 문학을 할 게 아니라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잘 전달되면 그게 좋은 글입니다. 감정을 능숙하게 전달할 때도 유려한 문장이나 수식 어구가 따라야 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완벽히 하려고 하면 망합니다. 망해도 좋다 하는 가벼운 마음이면 최소한 완주는 합니다. 일단 글은 '완벽'보다 '완주'가 더 중요합니다.
*이정훈 기업 컨설팅을 시작으로 질문하고 생각하고 구체화하는 삶을 15년째 살고 있다. 7년 전 '책과강연'의 대표 기획자로 북콘텐츠 기획을 시작한 이래, 2022년 기준 143종의 북콘텐츠를 만들었다. 2022년부터는 강연 플랫폼 '비즈인큐'를 시작해서 작지만 강한 스몰 브랜더를 강연 무대에 세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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