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완 감독의 첫 번째 에세이 『다음으로 가는 마음』에는 「나를 먹이는 일」이라는 글이 있다. 문자 그대로 '나를 배고프게 두지 않는 것', '허겁지겁 먹지 않게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려고 장을 보고, 다듬고, 익히는 찬찬한 시간들을 말한다. 영화는 요리와 달라서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없었고, 마음이 복잡하면 요리를 했다는 말도 덧붙인다. 글은 다음의 문장으로 끝난다.
오늘도 여전히 나는, 내일의 나를 잘 먹이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그런 마음으로 오늘을 건너고 있는 것 아닐까. 인터뷰 중간 중간, 박지완 감독은 자신의 '늦은 데뷔'에 대해 말했다. 첫 장편 영화 <내가 죽던 날>이 관객과 만나기까지, 그의 기다림은 10년 넘게 이어졌다. 많은 것들이 생겨나고 사라지고 바뀌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그 시간들에 대해서, 그 끝에서 만난 지금과 박지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한 시절을 건너는 마음과 '그럼에도' 계속 하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도 나를 기다려줘야 해요
<채널예스>에 연재하셨던 동명의 칼럼이 이번 책의 바탕이 됐죠? 연재 시작하실 때부터 출간 계획이 있었나요?
네, 있었어요. 제가 이런 글을 한 번도 안 써봐서, 출판사 대표님이 처음 (출간) 제안을 주셨을 때 "연재를 하면서 지켜보시고, 안 될 것 같으면 이야기 하셔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시작했어요.(웃음) 영화 시나리오를 쓸 때는 그럴 듯한 가짜를 만드는 게 목표였는데, 이 글은 저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거니까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어요. 지금 나에 대해서 잘 이야기할 준비가 됐나? 하는 고민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내가 나에 대해 생각하고 쓰는 글인데, 그 생각이 바뀌거나 오류가 있을 수도 있는 거니까, 인쇄해서 영원히 남긴다는 게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는데요. 사실 영화를 찍을 때도 그렇거든요. '이걸 영원히 남겨도 되는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함께 만들 만한 가치가 있는가' 항상 고민해요. 책은 더 그런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렇지만 '어쨌든 지금의 나를 남겨두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만약 이상하다면 대표님이 이야기해 주실 거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시작한 것 같아요.(웃음)
칼럼 연재하실 때도 제목이 『다음으로 가는 마음』이었어요.
맞아요. 대표님이 제안해주신 제목인데, 처음 봤을 때부터 마음에 들었어요. 사실은 '왜 나한테 책을 쓰라고 하셨을까?'라는 생각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제목을 듣고 '아, 이런 이야기를 하자고 하시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개인적으로는 어떤 면에서 부끄럽기도 한데, 제가 데뷔가 늦었잖아요. 첫 영화를 만들기까지 시간이 되게 많이 걸렸는데, 그 시간에 대해서 쓴다는 게, 자랑스럽게 할 이야기는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버티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무언가를 하려고 마음먹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잖아요. "이런 사람도 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었어요. 제가 만들었던 영화와도 약간 연결되는 지점이 있고요.
이번 책은 '나를 잘 데리고서' 다음의 시간으로 건너가는 이야기들이 담긴 것 같기도 해요. 감독님이 보시기에는 어떤가요?
사람이 때를 만난다는 것도 되게 알 수 없는 일인데, 나도 나를 좀 기다려줘야 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의지가 있고 욕망이 분명하고 내가 할 일도 분명한데 때를 기다려야 되는 거라면, 그냥 잘 준비하면서 나를 기다려주자고 생각해요. 사실 시간이 제일 비싸잖아요. 그런데 지금 나한테는 시간만 있고 다른 건 없다면, 이 시간을 가장 값지게 잘 써야 하잖아요. 그러려면 후회가 없도록 시간을 촘촘히 잘 채워서 써야겠다고 생각해요.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했던 건 아니었어요. 영화 <내가 죽던 날>를 만들기 4~5년 전까지는 계속 뭔가가 될 듯 안 되는 기간이었는데, 예전에는 그냥 막막해하면서 묵묵히 기다렸어요. 그러다가 '시간은 계속 가고 있고 나는 그걸 막을 수 없는데, 마음이 힘들고 지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내가 하루하루 사는 게 남을 거라고 믿었어요. 그렇게 생각해야 결과가 나오든 안 나오든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것 같더라고요.
감독님이 스스로를 다독이는 말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를테면 "내가 정말 좋은 영화를 만들 수도 있잖아, 그럴 수도 있잖아. 계속 쓰면 좋아질 수도 있잖아"라고 말하는 거죠.
제가 이야기 자체는 되게 우울하고 어두운 이야기를 좋아해요. 그런데 기본적으로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것을 해석하는 것은 나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하는 태도가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사람이 막을 수 없는 일들이 더 많잖아요. 물론 제가 완전히 꺾일 정도의 일들이 안 일어나는 행운이 있어서 그랬겠지만, 어쨌든 멈출 게 아니면 계속 가야 된다는 전제가 마음에 있어요.
예를 들면 <내가 죽던 날>도 그 작품 하나만 준비하면서 10년을 보내지는 않았어요. 계속 다른 것도 하다가 '이건(영화 <내가 죽던 날>) 진짜 안 되려나 보다' 생각했을 때 시작하게 됐어요. 그래서 '정말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구나, 적당한 타이밍에 좋은 제작자와 투자자와 배우를 만나는 것 자체가 영화구나' 생각했어요. 그리고 영화라는 것 자체가 제가 선택한 거니까,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한 일종의 책임으로 잘 기다려야 된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사실 시나리오를 썼는데 영화가 (제작) 안 되는 걸로 결정되면 너무 괴로워요. 그런데 한 일주일 지나면 '어떡해, 이게 안 됐으면 또 다른 걸 해야지' 이렇게 되는 거예요. 영화가 저보다 더 오래 남기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성급하게 만들어서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오래 남는 것보다, 시간이 걸려도 내 마음에 드는 모양으로 남는 게 나에게도 좋다' 그런 생각도 하는 거죠.
<내가 죽던 날>은 '그 장면' 때문에 시작했다?
후일담을 좋아한다고 쓰셨어요. "어떤 일이 일어나는 중간보다, 다 끝나고 시간까지 지나버려 뭐가 진실인지 알 수 없어지는 상황이 더 흥미롭다"고요.
제 성격과 취향 때문인 것 같아요. 일단 제가 좀 정확하게 보는 걸 좋아하는데요. 어떤 일이 막 일어나고 있는 중간에는 파악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정말 영리한 사람이 아니라면, 보통은 그냥 휘말리고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 '그때 이래서 그랬구나' 하고 생각하죠. 그렇게 생각하는 과정 자체를 제가 좋아하는 것 같아요. 주인공이 사건의 중심에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제3자나 전혀 관계없는 사람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바라보는 것도 좋아하고요.
소위 덜 상업적이라고 말하는 지점인데, 제 취향이 그런 것 같아요. <내가 죽던 날>도 상관없는 두 사람이 어떤 일을 겪는 이야기니까, 초반에는 '도대체 이런 이야기를 누가 좋아하겠어?'라는 말도 많이 들었어요. 너무 상업적이지 않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는데 '아니, 상업적으로 만들 거야, 두고 보자' 이러면서 했어요.(웃음) 제가 기본적으로 '상관없어 보이는데 사실은 상관이 있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내가 죽던 날>의 관객들이 '영화가 끝난 후에 인물들은 어떻게 됐을까요?'라고 물은 적도 있었나요?
네, 인물들이 어떻게 살았을 것 같은지 질문하셨었어요. 재미있었던 건, 제작진들 안에서도 이야기가 많았다는 건데요. 마지막 장면이 있어요. 그게 진짜 후일담인 건데, 그 장면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와 '전혀 필요하지 않다'로 딱 나뉘었어요. 그런데 저는 그 장면을 찍으려고 이 영화를 시작한 거나 마찬가지거든요.
'현수(김혜수)'와 '세진(노정의)'이 같이 맥주를 마시는 장면이었죠?
맞아요. 나중에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세진이는 현수의 존재를 모르지만 그 자장 안에 있게 되는 것을 관객이 두 눈으로 확인하는 거죠. 그래서 (제작진들의 의견이 갈리는 걸 보고) 사람들이 이야기를 이렇게 다른 시선으로 받아들이는구나, 생각했어요. 연출자로서 그리고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되게 신선한 경험이었어요. 그 장면은 저한테는 너무너무 중요한 장면이었는데, 둘의 안부를 확인시켜주고 이야기를 끝내는 것이 저의 임무라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보면 거짓말 같은 이야기잖아요. 어떤 아이가 신분을 위조해서 도망쳐서 살아가는 이야기인데, 관객들이 그걸 확인하고 약간 안도하고 극장을 떠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어요.
"두 사람의 안부를 확인시켜주는 게 나의 임무라고 생각했다"라는 말씀에서, 현수와 세진에 대한 애정이 느껴져요.
그 모든 일을 이겨내고 아이(세진)가 웃으면서 지내고 있다는 게, 현수에게도 너무 중요한 것 같고 관객에게도 중요하지 않은가 생각했어요. 저한테는 당연히 중요하고요. 제가 이 시나리오를 되게 오래 썼는데, 처음에는 세진이의 관점에서 썼어요. 그래서 세진이 분량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았어요. 그런데 시나리오 쓰는 동안 제가 나이가 들면서, 약간 현수로 옮겨가더라고요. 그때 30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좋은 어른이 뭐지?'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그래서 그렇게 되지 않았나 싶어요.
첫 작품부터 관객과 평단의 인정을 받으셨고, 앞으로 두 번째 작품을 선보이실 텐데요. 지금 시기에 느끼시는 부담도 있을 것 같아요.
사실 고민이 되게 많았고, 지금도 연장이 되고 있는데요. 책에도 썼지만 일본에서 영화를 찍을 뻔했는데 무산됐어요. 또 다른 작품으로 튀르키예도 갔는데 그것도... 그래서 약간 '아, 아직 수양이 부족하다' 이런 느낌이죠.(웃음) 이럴 때 제가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서 되게 달라질 것 같은데, 아직 저도 영화를 하나밖에 만들지 않은 감독이라 제가 뭘 잘하는지 확실히 알지 못해요.
그런데 영화가 무서운 게, 연습을 하기가 너무 어려워요. 지금 제가 단편 영화를 찍겠다고 하는 것도 민폐가 될 가능성이 많은 일이고요. '그러면 나는 무엇을 준비해야 되나' 하는 생각이 계속 들죠.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 그리고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것을 잘 맞춰서 다음 행보를 가야 되는데, 고른다고 해서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웃음) 그래서 요즘은 내가 관심을 가지는 것에 꾸준한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려고 해요. 어떤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느껴질지 알 수 없으니까요. 세상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계속 유지하는 게 다음 과제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인생이 내 영화보다 크다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좋은 마음이라는 오만함을 경계해야 한다"고 쓰셨어요. 어떤 의미인가요?
좋다는 게 '좋은 게 좋은 거지' 할 때의 좋음일 수도 있고, 섬세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고, 냉정하게 판단해야 될 때 그냥 뭉뚱그려 말하는 것일 수도 있잖아요. 그냥 박지완으로 사는 것과는 상관없을지 모르지만, 특히 뭔가를 쓰거나 만들 때는 굉장히 예민하게 굴어도 비는 곳이 생길 테니까 더 날카롭게 접근해야 되는 것 아닌가 생각해요. 사실 책을 쓰면서도 되게 조심스러운 지점이 있었어요. 10년 동안 어떤 일 하나를 하는 것도 특권에 가까운 것일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아마 제가 부모님을 부양해야 하거나 먹여 살려야 자식이 있었다면 저도 못했을 거예요. 그런데 다행히 저희 부모님이 (저를) 내버려 두시고, 도와주기도 하셨고, 제 동생도 말없이 묵묵히 있어줬어요. 그게 저한테만 있었던 행운일 수도 있는데, 그걸 굉장히 고생한 것처럼 보이게 하면 누군가에게는 재수 없고 상처가 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저한테 시간이 많이 있었다고 썼는데, 그 시간조차 없는 사람들도 많고, 그런 부분들이 되게 조심스러웠어요. 이 이야기를 고생이라고 명명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다만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 '당신의 선택지에 고려해볼 수도 있지 않나' 이 정도 이야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내 인생이 내 영화보다 크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영화가 내 인생의 전부는 아니기를" 바란다고 하셨고요.
사실 (처음) 시작할 때는, 영화를 만들게 되면 그게 내 인생을 결정하고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 면도 있기는 하겠죠.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영화보다) 내 인생이 더 중요하다고 표현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더 큰 건 확실한 것 같아요. 제가 그런 생각을 할 무렵에 김혜수 선배님을 만났는데, 선배님도 똑같이 이야기하시더라고요. 본인의 인생이 (영화보다) 더 크다고 생각하니까 작품을 고르는 것, 같이 일할 사람들을 선택하는 것에 조바심을 덜 낼 수 있고 더 좋아졌다고 하시더라고요. 선배님은 저보다 훨씬 더 오래 이 길을 걸어오셨으니까, 제가 생각한 게 그렇게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런 이야기는 정은(이정은) 선배랑도 한 적이 있어요. '인생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길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같이 나눴던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조금 더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맥락으로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있어요.
나의 인생이 더 크다, 라는 말씀이 왠지 위로가 됩니다.
예전에는 저도 '이게 아니면 죽을 것 같고, 인생이 망한 것 같고'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생각만큼 그렇지 않더라고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잘 안 되더라도, 조금 더 넓게 생각하면 더 좋은 결정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너무 괴로운 상태에서는 선택하는 폭이 더 줄어들잖아요. 뭔가가 안 된다고 인생이 끝나지 않고, 오히려 그걸 수습하는 게 나한테 더 중요할 수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다른 길을 찾을 수도 있고요. 적어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게 되잖아요. 그것만으로도 좋은 거죠.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아닌 이상 한숨 돌리고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5~6년차일 때는 그런 생각을 못했어요. 그런데 6년, 7년 넘어가니까 '그만둘 거야? 그만둘 거 아니면 그냥 계속 열심히 하는 거야, 그것 말고는 답이 없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오히려 더 좋은 결정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박지완 영화감독. 단편 영화 <여고생이다>, 장편 영화 <내가 죽던 날>을 만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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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