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첫 책 『프로의 남녀는 차별되지 않는다』를 쓰고 31년 만에 쓴 두 번째 책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를 펴낸 최인아는 한 사람을 떠올리며 책을 썼다. "일을 열심히 잘하고 싶은데 주변의 공기는 그렇지 않아서 헷갈리고 자신 없는 사람.(4쪽)" 그런 사람에게 당신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고, 당신이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7년이라는 시간을 지내며 두 번째 책을 썼다. 지난 4월 19일 출간된 '책방 마님' 최인아의 책은 2주 만에 4쇄, 2만 부 이상이 팔리며 일하는 사람들로부터 각별한 호평을 받고 있다. 서울 선릉역에 위치한 최인아책방 1호점에서 최인아를 만났다.
타인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은 '관점'
두 번째 책이라고 하면 많이들 놀라더라. 책 계약은 언제 했나?
2016년 초에 이혜진 해냄 주간을 만났다. 책을 내자고 제안을 받고 이야기를 하다가 3월쯤 계약서를 쓴 것 같다. 2007년부터 2012년 사이, 서른 군데 이상의 출판사에서 제안이 왔는데 당시에는 제일기획 부사장을 할 때가 쓸 여력이 전혀 안 됐다. 회사일만 해도 허덕였을 때니까. 그리고 나는 공적 마인드가 있는 사람인데, 여기서 '공'이란 일이다. 일을 마친 후에 시간이 남으면 모르겠는데 그럴 여유가 전혀 없었다. 또, 당시 사람들이 나에게 원하는 이야기는 "나 이렇게 성공했다, 출세했다"일 텐데 그렇게 쓰이고 싶지 않았다.
첫 직장인 제일기획에서 카피라이터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했고 '최초'라는 수식어를 여러 차례 달며 부사장까지 29년간 광고쟁이로 살았다. 퇴직 후에도 출간 제안은 많았을 것 같은데.
있었지만 확연히 잦아들었다. 그게 참 재밌더라. 나는 여전히 변함없이 최인아인데 어떤 포지션에 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나에게 오는 것이 이렇게 다르다는 걸 실감했다. 그러다 퇴직 후 2년이 지났을 때였나 <동아일보>에 전면 인터뷰가 나갔다. 이 기사를 계기로 또 십여 군데 출판사에서 제안이 왔는데, 그 중 하나가 해냄이었다. 약속을 하고 만나기로 했는데 처음 만나는 날, 편집자가 지각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감이 갔다. 이제 계약해도 되겠다고 생각해서 "합시다" 이렇게 됐다.
어떤 설득으로부터 결심했나?
당시 이혜진 주간이 신문이나 여러 미디어에 기고했던 내 글을 많이 읽어왔다고 말했다. 자신에게 도움이 됐던 글이라 꼭 책으로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했는데, 나를 상품성 있는 가치로만 보는 것과는 달랐다. 진심이 느껴졌다고 할까, 이 사람이랑 하면 좋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2016년에 계약했으니 출판사에서 7년을 기다렸다. 담당 편집자가 바뀌지 않은 것도 대단하다.
(웃음) 정말 되게 고맙다. 책을 계약한 이혜진 주간도 편집을 맡아준 박신애 편집장도. 다음 책도 같이 만들기로 했다.
에필로그에 "쓰고 싶은 욕구가 다시 올라왔고 제 안에 가득 찼습니다.(340쪽)"라고 썼다. 갑자기 집필 진도가 나간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아니면 시간이 쌓이면서 이제 정리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됐나?
후자에 더 가깝다. 내가 종종 쓰는 표현 중에 '내압'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어떤 일을 할 때 보면 갑자기, 확 쏟아지는 경우는 드물다. 첫눈에 반하는 일도 나에겐 별로 없고. 대개 시간이 쌓여서 임계치가 넘어갈 때, 어떤 레벨을 넘어섰을 때 에너지가 확 집중되는 편이다. 그리고 계약한지도 너무 오래됐으니까 출판사에 미안한 마음이 커서 일단 썼다.
제목을 정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고 들었다.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 뒤에 "무조건 세상에 맞추지 말고"라는 문장을 보태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고. 최근 출간되는 책들과는 좀 다른 결이다. 요즘엔 무엇을 해라, 같은 도전적인 제목이 흔치 않다. 대부분 위로, 격려의 말들이 많다.
다른 논조로 말하자, 같은 의도는 없었다. 처음부터 제목을 두고서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결정된 제목인데, 계기를 굳이 찾는다면 언젠가부터 "우리 좀 잘해보자" 같은 말들이 잘 들리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일이 잘 안 돼도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그냥 천천히 조금만 하자라는 말만 일색인 거다. 순간에는 이런 말들로부터 위로를 받는다고 느낄 수 있는데, 과연 당사자에게 정말 도움이 될까? 이런 질문이 내게 있었고, 어떻게 보면 꼰대의 말로 여겨질 수 있지만 해야 할 말이라고 느꼈다.
안 해도 괜찮지 않다
요즘은 상사, 선배들이 미움 받을 용기를 갖는 일이 극히 드물다. 조언도 함부로 못하는 세상이기도 하고.
맞다. 하지만 말할 필요가 있다는 걸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지금 당장은 기분이 안 좋아도 핵심이 그게 아니니까,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니까 말하고 싶었다. 왜냐면 스스로 나를 규정하는 정체성 중 하나가 선배인데, 이 아이덴티티가 나에겐 꽤 중요하다. 카피라이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현업에서 일했고 전무가 되면서 6년간 본격적으로 조직을 맡았는데 나에겐 굉장히 소중한 배움의 시간이었다. 자연스럽게 나는 선배라는 걸 인식하게 됐고 선배가 된 사람으로서 뭔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받은 만큼 후배들에게 돌려줘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내가 강의할 때도 많이 하는 말인데, 타인으로부터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게 관점인 것 같다.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내가 찾아낼 수 있는 솔루션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게 중요하다.
자기계발서를 쓸 때, 꼭 필요한 것이 자기 검열이다. 하지만 과하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없기도 하다.
그렇다. 나는 이제 꼰대 나이도 지났다. 꼰대라고 해도 할 말이 없는데, 꼰대라는 딱지가 붙는 순간 읽지 않고 듣지 않는다. 즉 전달이 안 되는 거다. 앞에서 바로 돌아서버리니까. 책을 쓰면서 이 점을 가장 염려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배달의 민족이기도 하지만 바람의 민족이기도 해서 바람 하나가 불면 다 그 쪽으로 간다. 확 쏠렸다가 또 새 바람이 불면 반대로 향한다. 내가 느끼기에 지금 우리나라에서 부는 바람은 "안 해도 괜찮아"다. 그런데 이 시간을 다 통과해 온 사람으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안 해도 괜찮지 않다"는 말이다.
"회사 일을 해주는 게 아니라 내 일을 하는 것(68쪽)"이라고 말했다. 요즘 젊은 직장인들이 자조하며 많이 하는 말 "회사 일은 월급 받고 내가 해주는 일"과 정확히 반대되는 문장이다.
내가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회사의 시간이 아니지 않나? 그건 내 인생이다. 요즘 비즈니스 마케팅에서는 '고객 경험'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온라인에서 하기 어려운 경험을 하도록 여러 아이디어를 내는데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가장 희귀한 자원인 '시간'을 들여 한 조직에서 충분히 그 일을 경험하고 있는가? 이것을 생각해야 한다.
2021년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했을 때, 광고 회사 후배들의 환송 영상이 나왔다. 차가운 선배이자 상사였는데, 간부가 되고 나서 오히려 후배들이 방에 찾아와 많이 상담하고 울었다고. 또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가 2015년 일간지 인터뷰에서 했던 말 "만만한 사람이 되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는 말이었다.
신입 시절에는 누구에게도 만만하게 보이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시기를 통과하고 보니, 나를 만만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별로 없더라. 어떤 사람의 캐릭터와는 무관하게 일단 직급이 높아지면 외로워진다. 옆에 아무도 안 오려고 한다. 여기에 사람 자체도 곁을 잘 안 주는 스타일이면 더 안 온다. 조직 관리를 맡고 나서 느낀 점 중 하나는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상사나 간부를 찾아와 의논하면 해법을 더 잘 찾을 수 있는데, 자기들끼리 답을 찾으려다 실패하고 결국 회사를 그만 둔다며 인사하러 오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제일기획은 국내 광고 회사 1위인 조직이니까 우리 직원들을 스카우트 하려는 회사가 정말 많았다. 우리 직원들을 지키는 일이 나의 가장 중요한 업무였다. 직원들이 자기네들끼리 심각해지기 전에 내 방문을 쉽게 두드리게 하는 일이 나에겐 절실했다. 직급도 높은데 찬바람이 쌩쌩 부는 사람이라면 누가 오겠는가?
그래서 노력했나? 좀 더 더 만만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충분하진 않았지만 애를 많이 썼다. 나는 대개 상대가 나보다 나이가 많이 적고 직급이 낮아도 말을 놓지 않았다. 상대를 예우하려는 마음이었는데, 당시에는 후배에게 다 말을 놓는 분위기라서 나를 더 어려워하는 후배들도 있었다. 그래서 어느 날 눈을 질끈 감고 후배를 반말로 부르기도 했다. 좋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편하게 나를 대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통찰을 주는 책을 소개하고 싶다
2016년 강남 빌딩 숲속에 '최인아책방'을 열어 북토크, 클래식 공연, 마음 상담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벌써 7년차 서점인으로 살고 있는데 코로나 시기는 어떻게 지나왔나?
코로나 전까지는 크게 어려움이 없었다. 순탄한 편이었는데 코로나가 시작되고 나서 매출이 55%까지 뚝 떨어졌다. 우리는 오프라인 서점이니까 손님이 안 오면 매출이 생길 수가 없는 구조였다. 2년 반 정도 힘들었는데, 어려운 와중에도 북 토크를 한 번도 중단하지 않았다. 오프라인 만남이 불가능할 때는 Zoom을 통해서도 꼭 독자를 만났고, 공지를 했다가 확진자가 늘어서 행사를 취소하고 행사비를 환불하는 한이 있어도 계속했다. 이런 시기를 보내고 나니까, 출판사들로부터 최인아책방은 북토크를 꾸준히 쉬지 않고 한다는 개념이 잡혔다. 덕분에 주력 신간이 나오면 대형 서점을 제외하고는 우선적으로 제안이 오는 편이다.
책방을 찾는 손님의 연령대는 어떤가?
지금도 허리는 30,40대 독자들인데 다른 서점에 비해서는 세대의 폭이 넓은 편이다. 10대부터 시작해 60대, 70대 은퇴하신 분들도 많이 온다. 서점을 열고 가장 보고 싶었던 광경이 전 세대가 어우러지는 모습이었는데, 콘서트를 열면 모녀가 함께 오기도 하고 세대 구분이 크지 않다. 연유를 찾아봤는데 일단 동네 책방이라고 하기엔 규모가 꽤 커서, 80명에서 많게는 130명까지 수용이 가능하다는 점, 그리고 보편성을 갖고 있는 책방이기 때문인 것 같다.
출판사에서 책방 행사를 제안하면 어떤 기준으로 진행을 결정하나?
일단 이 행사에 신청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인가도 중요한 기준이고 우리 책방에서 소개할 만한 책인가도 중요하다. 행사 모객을 생각하면 비즈니스, 마케팅, 브랜딩 분야의 책들이 반응이 가장 좋은데 이쪽 분야만 하고 싶지는 않다. 최인아책방이 처음부터 모토로 삼은 게 생각의 힘, 생각의 숲이다. 인사이트, 즉 통찰을 주는 책, 저자를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책방에서 판매하는 책들은 어떻게 선별하고 있나?
베스트셀러, 신간 위주로 판매한다면 굳이 우리가 책방을 열 이유는 없었다. 최인아책방의 문을 막 열었을 초창기에는 이문구의 소설 『우리 동네』를 가장 잘 보이는 매대에 올려 놓기도 했다. 그로부터 2년쯤 지났을 때인가 이문구 선생의 따님이 책방에 오셔서 그때 너무 감사했다며, 아버지의 문학관을 만들려고 하는데 꼭 뵙고 싶었다고 찾아오신 적이 있었다.
광고인은 트렌드가 가장 민감한 직업군 아닌가?
희한하게도 나는 30년 가까이 광고를 한 사람이라 누구보다 트렌드에 민감해야 하는데, 유행을 따라가면서도 끊임없이 저항했던 것 같다. 우리 책방도 좋아하는 트렌드라면 따라가지만, 그렇지 않을 땐 스테디셀러를 소개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최인아책방'이라는 이름의 무게도 클 것 같다. 동업자가 있지만 내 이름을 걸고 만든 책방이니까.
사실 이름은 따로 있었다. '토토 책방'. 왜냐면 내 사주에 '토'가 다섯 개인데 정치헌 공동 대표도 '토'가 여섯 개라고 했다. 토토니까 나무가 잘 자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고 (웃음) 또 하나의 후보는 '선배 책방'이었는데, 나보다 더 연배가 높은 분도 오실 책방이니까 건방져 보일 것 같았다. 그래서 이왕 마케팅, 브랜딩에 초점을 맞출 거면 내 이름이 조금 알려졌으니까 그걸 활용하자는 의견에 끝까지 저항하다가 결국 '합시다'가 됐다.
현재 북클럽도 운영하고 있다. 현재 회원 수는 몇 명인가?
지금은 600명 조금 넘는데, 월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평균적으로 600명에서 800명이 가입하고 회비를 내면 매월 책방에서 선정한 도서를 받을 수 있고 월 1회 진행하는 책 모임에 참여할 수 있다.
회원이 되면 편지도 받을 수 있더라.
지금은 디지털 시대지만 사람은 여전히 오감을 느끼는 몸을 가진 존재라서, 우리가 흔히 아날로그라고 칭하는 경험을 만날 때 훨씬 더 크게 감각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경험을 자꾸 찾는 것 같다. 젊은 세대일수록 소비 내역을 보면 뭔가를 소유하는 것보다 경험하는 쪽의 지출이 더 비율이 높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온라인에서는 한 번의 터치로 해결되지만 경험이 남지 않는다. 그래서 오프라인 책방이 많이 내세우는 것 중 하나가 저자의 사인을 직접 받거나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경험이다. 여전히 우리는 몸을 가지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 오프라인 만남 속에서 증명되는 게 아닐까 싶다.
좀 더 쓰는 사람이고 싶다
최인아책방에서 판매하는 책들에는 '실명으로 책을 추천하는 카드'가 꽂혀 있다. 추천 서가는 어떻게 나온 아이디어인가?
오픈 초기부터 있던 거라 사람들은 책방의 차별화라고 말하지만 차별화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점점 책을 안 산다고 하는데 우리는 책방을 열었다. 책을 팔아야 하는데 하루에 열 권이나 팔릴까? 고민하고 있기보다 질문을 바꿨다. 사람들은 책을 왜 안 읽지?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지? 우리 책방은 '일하는 사람들'을 핵심 타깃으로 삼았으니 일하는 사람에게 독서가 갖는 중요한 의미 중 하나로 해법을 찾은 거다. 누구든지 일하다 보면 도전을 맞닥뜨리거나 고민하거나 방황하지 않나? 그럴 때 책이 해법이 되도록 하자, 라고 생각했고 책을 구분할 때 경제, 경영, 문화, 종교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독자의 입장에서 '고민 해결'로 책의 분류를 바꿔버렸다. 그리고 이 책이 왜 좋았는지를 실명으로 써놓은 글을 보면, 책이 읽고 싶어지지 않나?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한 사람들의 추천이 곧 콘텐츠가 되는 거다.
흔히들 책방 주인이 되면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하는데, 어떤가?
그래서 나는 월요일에는 재택 근무를 한다. 책방에 안 나오는 대신 카페에 가서 등 높은 의자에 기대 책을 읽는다. 월요일에 출근하지 않는 건 일종의 나를 지키는 방식이다. 체력이 예전 같지 않기도 하고 사람을 만나는 일에는 에너지가 굉장히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일주일의 하루는 일정 부분 거리를 둔다.
개인의 삶에 있어 소망,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
일단 좀 더 많이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인생의 중요한 고비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고 책방을 운영하게 됐는데, 앞으로 남은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나한테 남은 시간을 어디다 쓸래? 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좀 더 쓰는 사람이고 싶다. 또 하나 가장 후회되는 일도 글을 많이 안 쓴 일이다.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를 먼저 읽은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 책은 내 삶 가운데 의미 있는 일을 잘하고 싶은 사람, 성실히 하고 싶은 사람이 관심을 갖고 읽을 책이라고 느낀다. 독자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애쓰고 애쓴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회사를 위해서 일하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고 회사에서 일하는 그 시간이 바로 당신 인생을 하루하루 충실하게 잘 사는 일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일을 밀도 있게 충만하게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최인아 제일기획에서 카피라이터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며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유, 아무것도 안 할 자유' 등 수많은 카피를 쓰고 캠페인을 만들었다. 1998년 칸 국제광고제 심사위원이었고, '최초'의 수식어를 여러 차례 달며 부사장까지 올라 일하다 2012년 스스로 29년 광고쟁이의 커리어를 마무리했다. 자발적 퇴사 후 학생으로 돌아가 서양사를 공부하다 문득 세상에 다시 쓰이고 싶은 욕망을 발견하고, 2016년 강남 빌딩 숲속에 '최인아책방'을 열었다. 현재 북토크, 강연, 클래식 공연, 마음 상담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사람들의 고민과 해법을 함께 나누는 '생각의 숲'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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